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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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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야기하다보니 오히려 나의 삶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엿보다!
삶의 방향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우리는 죽음 앞에서만큼은 같은 꿈을 꾼다. 내가 평소 생활하는 침대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머리맡에 앉아 손을 잡아주고, 고통 없이 편안하게 잠이 들 듯 세상과 작별할 수 있기를.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야 해. 너무 슬퍼하지는 마, 나는 그냥 강을 건너는 거야.” 반려견의 죽음을 담은 조원희 작가의 『혼자 가야 해』 속에서 반려견이 쪽배를 타고 묵묵히 혼자서 노를 저어 강의 저편으로 떠나가는 것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우리 나이가 되면 말이야, 사는 거랑 죽는 거랑 다 동시에 만져지는 느낌이 들어.” 언젠가 한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말씀처럼 너무나 다른 두 감각이 비슷하게 매만져지는 때가 나에게도 찾아온다면, 나는 그때 남은 내 생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 수 있을까? 석양이 아름다운 것처럼 나의 저무는 삶도 과연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삶을 더욱 또렷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삶에 대한 여러 질문들은 어쩌면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더욱 명확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범석의 에세이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속에도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그조차도 종종 잊어버릴 때가 있어서 죽음이 걸어오는 말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브라질의 완화의료 전문가이자 이 책 『죽음이 물었다』의 저자인 아나 클라우디아가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죽음을 삶의 저 반대편에 있는, 혹은 알고 싶지 않은 두려운 영역처럼 의식했지만 이제는 삶의 한 부분으로써 죽음을 받아들이고 또 배워야 한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듯 죽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만 삶과 죽음이 보다 명확해지며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이 책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죽음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처음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존재하며, 단지 육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행위로도 존재한다. 그리고 오로지 그 존재 안에서만 죽음은 끝이 아닐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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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오직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 117p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는 없는 곳, 죽음의 냄새가 짙게 깔린 곳. 굳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자면 저쪽은 죽음의 세계일까.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입원 병동과 호스피스 병동이 나뉜 병원 복도에서 숨을 죽인 채 우두커니 서있었던 적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은 늘 보호자들의 울음이 끊이지 않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괴로운 음성으로 메아리치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곳은 고요했다. 완화의료 전문의인 저자는 실제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진행하는 완화의료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완화의료 전문의들이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고 죽음을 기다리거나, 반대로 안락사나 죽음의 촉진을 지지한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완화의료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내 환자에게 신체적, 정서적, 가족적, 사회적, 영적 안락에서 오는 웰빙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건강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조치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죽음을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음이 적당한 때에 찾아올 수 있다고 믿으며 그들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도 함께 죽음의 과정을 이해하고, 그러다 보면 애도의 동굴에 갇히지 않고 향후 새 삶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도 얻게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죽음의 날이 올 때까지 삶이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내 차례가 오면, 나는 멋지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
그날, 나는 살아 있고 싶다. / 152p
잃는 법을 배우려면 우선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끝난 건 끝난 것이며, 영원한 연장은 없다.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키워야 할 능력이다. 진실을 직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보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진살을 분노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당신을 배반한 사람, 당신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상사,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직업을 사랑하려면 우선 자신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런 태도를 취하고,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유해한 사람과 짝을 맺기로 결심했을 때 당신은 거기까지밖에 볼 수 없는 눈을 갖고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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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오히려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엿본다. 두려움이나 증오, 상처, 죄책감 같은 것에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소진하기보다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삶과 아름답게 이별하기를 독려한다. 죽음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예외란 없다. 그때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나의 삶이 죽음도 만든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죽음을 만드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책이 물어오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가 앞으로의 내 인생을 결정지으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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