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312_10.jpg)
감각이란 이토록 놀랍고 신비한 것이다!
세상에 반응하는 나의 감각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다!
감각은 우리와 세계 사이에 있다. 냄새는 기억 중추와 시공을 초월하여 어느 날 내가 마주한 소박한 밥그릇 앞으로 데려간다. 탯줄이 끊어진 뒤에 공포처럼 찾아오는 단절은 엄마의 손길과 따스한 품속에서 새로이 연결된다. 우리는 초콜릿의 진득한 단맛으로 하여금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연인의 다정한 목소리로 안정감을 얻는다. 봄이 다가오면 우리는 붉고 푸릇한 생명이 움트는 광경을 마주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그 찬란한 풍경 앞에서 매번 색다른 경이를 느낀다.
우리는 감각이라는 영토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우연한 사건을 넘어, 나와 다른 사람들 나아가 세상과 연결된다. 무척 사적이고 즉흥적이기 이를 데 없는 감각이란 것이 이처럼 생명을 지탱하고, 나와 세상을 잇는 다리였음을 알고 보면 생의 모든 존재 안에서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 세상에 반응하는 나의 감각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것이 다이앤 애커먼이 열어 보이는 감각의 세계다.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 그 안에서의 나
『감각의 박물학』은 다양한 층위의 감각을 통해 인간과 자연, 우주의 조화를 조망함으로써 인간의 정신과 행동의 비밀을 밝혀낸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오감이라 불리는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을 비롯해 냄새, 빛, 소리, 촉감, 맛이 한데로 뒤섞여 예술과 감각의 폭격을 경험케 하는 ‘공감각’에 이르기까지, 감각이라는 신비로운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예술과 철학, 인류학, 과학을 넘나드는 지식의 향연, 시적이고 유려한 필체 사이로 파고드는 풍만한 감성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설레게 한다.
색깔은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 438p
헬렌 켈러는 냄새에 대해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라고 말한다. 냄새는 오랜 세월 동안 덤불 속에 감춰져 있던 지뢰처럼 기억 속에서 폭발한다. 할머니 집 뒷 베란다에서 맡았던 꼬릿꼬릿한 된장 냄새,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는 달큼한 떡볶이 냄새, 서리가 내려앉은 아침을 데웠던 따뜻한 커피향… 이처럼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수많은 영상들이 덤불 속에서 튀어 오른다. 생존에 있어 냄새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상실과 고립을 느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냄새는 평범하고 소심한 일상과 호사스러운 광휘를 마음껏 넘나드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여전히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이유로 신비로운 거리를 유지한다. 따라서 냄새는 수수께끼이고, 이름 없는 권력이며, 성스러운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냄새만큼 입체적인 감각이 또 있을까.
에드윈 T. 모리스가 『향기』에서 지적한 대로, 냄새에 관한 한 단기적 기억은 거의 없다. 냄새에 관한 기억은 아주 오래가고, 게다가 냄새는 학습과 저장을 격려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문장을 후각 정보와 함께 주었을 때 후각 정보를 주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쉽게 기억되고 오래간다”고 모리스는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향수를 줄 때, 기억의 액체를 주는 것이다. 키플링의 지적이 옮다. “냄새는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 / 28p
나폴레옹은 등화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 성분으로 만든 향수를 좋아했다. 나폴레옹은 1810년, 향수 장인 샤르댕에게 똑같은 향수 162병을 주문했다. 그는 몸을 씻고 난 다음 목, 가슴, 어깨에 향수를 쏟아부었다. 가장 힘겨웠던 전쟁 기간에도 그는 공들여 장식한 막사에서 장미 향이나 제비꽃 향이 나는 로션, 장갑 등 아름다운 장식품을 고르곤 했다. / 117p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312_20.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312_30.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312_40.jpg)
촉각은 가장 친밀한 감각이다. 한때 신생아였던 우리는 눈을 뜨거나 세상에 대해 알기도 전에 자동적으로 촉각을 통해 세상을 느꼈다. 입술의 촉각 수용체 덕분에 젖을 빨 수 있었으며, 따뜻한 것을 향해 손을 내밀어 움켜쥘 수 있었다. 신체 접촉은 ‘나’와 ‘타자’의 차이, 나의 외부에 누군가, 엄마가 있을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를 만지고 엄마의 손길로 받는, 최초의 따스한 경험과 사랑의 기억으로 평생토록 남는다.
반면, 입은 ‘육체에 이르는 문이고,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며, 대단히 위험한 응접실’이다. 진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 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각은 모든 생명의 원초적인 본능이지만, 다른 생명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면서 그들의 생명을 훔쳐야하는 달콤한 유혹 속에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또한 전쟁터에서 인간을 대량 살상하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이 사회가 왜 인간이 죽이기에는 좋지만 먹기에는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우리는 이러한 모순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폰 부덴브로크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의 한 양봉업자가 벌통이 차가워지지 않는 이유를 발견했다.
그의 설명은 그럴 듯하다. 겨울철에 수만 마리의 벌이 벌통 속에 무리 지어 있다. 가운데 있는 벌들은 온도가 떨어져도 따뜻하지만, 바깥쪽에 있는 벌들은 추워진다. 그러면 벌들은 발을 차며 빠르게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추울 때 우리가 몸을 떠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외곽에 있는 벌들의 동요는 1만 마리 이상으로 이루어진 무리 전체에 퍼져나간다. 무리 전체의 노력이 조화를 이루면 결국 상당한 양의 열이 발생된다. 그 결과 온도가 올라가고 벌들은 다시 조용해진다. 다시 온도가 떨어지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 165p
손은 복잡한 유기체다. 그것은 먼 곳의 근원에서 온 많은 생명이 합류하여, 커다란 물줄기로 흘러가는 삼각주다. 손에는 자신만의 역사가 있고, 자신만의 문명이 있으며,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손에는 스스로 발전할 권리, 자신만의 희망, 느낌, 정서,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 209p
미뢰라는 이름은, 미각세포들이 꽃잎처럼 겹쳐져 있는 봉오리를 발견한 19세기 독일의 과학자 게오르크 마이스너와 루돌프 바그너가 만든 것이다. 미뢰는 1주일에서 10일 정도에 닳아 없어지고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데, 45세까지는 이러한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입천장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닳는다. 그래서 똑같은 수준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욱 강렬한 맛이 필요하게 된다. / 243p
청각은 연인들에겐 구애의 수단이, 아이들에겐 부모와 화해를, 사회에서는 가장 고귀한 꿈이나 가장 저열한 편견을 표현할 수 있으며 때로 제국의 흥망을 결정 짓기도 한다. 심리학자 알렌 브론자프트는 만성적 소음에 노출된 아이들은 ‘공격성이 증가하고 건강한 행동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히틀러는 “확성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독일을 정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듣는다는 것은 소통에 있어서 큰 축복이지만, 이렇듯 불협화음을 낳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퍽 애석한 일이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소개장보다 나은 추천서”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본다는 것 역시 아주 단순하면서 유용한 기능에서 비롯되었지만 아름다움을 추앙하는 인간의 속성으로 인해 감각에도 이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흰돌고래는 달콤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옛날의 포경꾼들은 흰돌고래를 ‘바다의 카나리아’라고 불렀다. 지금 흰돌고래의 숫자는 바다의 오염으로 급격히 줄어들어 우리에게 해양의 건강 상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미신을 믿는 선원들은 선체를 통해 울리는 고래의 구슬픈 노래를 듣고 매혹되고는 했다. 노래하는 고래들은 한때 지중해에도 살았는데, 선원들을 유혹하여 난파시킨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은 어쩌면 고래였을지도 모른다. / 349p
베토펜은 <글로리아>를 작곡했을 때 화산처럼 분출하는, 하늘을 향해 부르짖고 싶은 환희를 느끼지만 기뻐 춤추는 대신, 북이 묘사한 대로, 그것을 “영원히 보존되는, 전달 가능하고 재생 가능한 형태의 에너지로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 “전 세계가 들을 수 있는 음악적인 환희의 외침이었고, 그가 죽은 다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다.” 베토벤인 적어놓은 음표는 “그의 영원한 환희의 외침을 울리기 위한 (……) 그것을 정확히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를 기록한 지시문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은 그들의 생애를 관통하는 감정의 징검다리, 육체를 떠난 정서와 집착, 감각을 의미한다. 베토벤은 죽었지만 삶에 대한 그의 감각은 지금 이 순간까지 악보 속에 살아 있다. / 365p
세잔은 붓질을 한 번 하기 전에 몇 시간씩 생각에 잠기기도 했는데, 버나드가 말한 것처럼 한 번의 붓질은 ‘공기, 빛, 대상, 구도, 성격, 윤곽, 양식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무한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 461p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312_50.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312_60.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312_60_1.jpg)
이렇게 우리는 감각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을 살고 있지만, 많은 감각들이 우리 내부의 번역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검열 당한다. 일부는 침묵하고, 일부만 반응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감각은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저자는 “가장 멋진 일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과의 가장 멋진 연애는 가능한 다양하게 사는 것이라고. 힘이 넘치는 순종의 말처럼 호기심을 간직하고 매일 햇빛이 비치는 산등성이를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감각이라는 매력적인 영토가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오직 끝없는 길을 무미하게 걷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 오늘 내가 몽유병자처럼 그냥 지나쳐온 이 세계를 되도록 자주 보고 들으며 가까이 마주하자. 다가올 찬란한 봄날이 그러라고 손짓하고 있지 않은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