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정한 소통의 방향은 믿음 속에 존재한다!

내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자리를내 마음의 귀중한 한 조각을 마주하게 되는 일곱 편의 단편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두 번째 책 함께 걷는 소설의 주제는 우정이다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인 백수린이유리강석희김지연천선란김사과김혜진의 대표 단편작 중 우정과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우리가 가족이라는 품 밖에서 맺는 여러 관계 중 가장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관계가 있다면 바로 친구일 것이다때로는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진솔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자때로는 나를 비추는 거울로 삶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공유하기도 한다여기 일곱 편의 단편작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장과 이별 사이에서 겪은 따뜻한 우정과 유대감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소통과 공감오래된 추억 속에 남겨진 쓸쓸한 기억부터 서로를 다독이고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다또 이를 통해 내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자리를내 마음의 귀중한 한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네가 있어 나의 삶은 조금 더 특별한 것이 된다

 

 

  “그래어머니께 대충 들었어요돌이 말을 한다구요?”

  이유리의 작품 치즈 달과 비스코티에는 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 등장한다고도 비만으로 여성형 유방 증후군을 앓고 있는 는 어느 날 친구의 집요한 괴롭힘을 당하던 중 던져날 던지라고!” 하고 소리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그건 날카로운 돌멩이였다어차피 이것저것 잴 것도 없었던 는 돌멩이를 던져 녀석의 이마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맞힌다그 사건을 시작으로 는 간혹 돌멩이들이 내는 소리를 듣게 된다이후 의 가장 오래된 친구는 스물세 살 때 만난 조면암이다얼핏 보면 어머니가 종종 굽는 비스코티 과자와 비슷해 스콧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돌은 의 자신의 현명한 조언자이자 재치 있는 절친이다정신병자고도 비만모태 솔로인 와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하지만 정신 병원 치료실에서 자신의 이름을 쿠커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그는 유일하게 가 돌멩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믿는다심지어 스콧을 잃어버렸을 때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어딘지 비정상적인 듯하지만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처는 다시 관계 속에서 극복될 수 있음을진정한 소통의 방향은 믿음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에서 미국 정신 의학회가 제정한 정신 장애 진단 통계 편람에 따른 망상 장애의 기준을 찾아보았다그 첫 번째 항은 이랬다. ‘기괴하지 않은 망상일 것’. 나를 진찰한 의사가 나를 기괴하지 않다고 판단한 건 썩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만약 일 항이 충족되었다면 나는 망상 장애가 아니라 조현병 진단을 받았을 테니까그렇다나는 기괴하지 않다그리고 기괴하지 않은 정신병은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지 않은가. / 치즈 달과 비스코티」 중에서 55p

 

 

치료사님께 얘기 들었어요돌이랑 대화를 할 수 있다면서요지금 잃어버린 돌도 당신 친구죠정말 미안해요난 당신 말 다 믿어요정말 미안해요당신 친구를 찾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게요.”

그 순간 내가 차로 달려가려던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비록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같은 꼴을 한 정신병자였지만생전 처음으로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까? / 치즈 달과 비스코티」 중에서 71p

 

 

 



 

 

 

 

  이 외에도 가늠하고분류하고평가의 대상으로 저울질되곤 하는 얄팍한 관계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발견하게 하는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잃는 수술을 받은 주인공이 20년 만에 우주에서 돌아온 친구 도아와의 재회로 다시금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천선란의 그림자놀이가 눈에 띤다. “용서는 안 해 줘도 되니까 그냥 와.” 서로를 싫어했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용서를 구할 수 있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애써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 속에서 관계의 회복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여는 김지연의 굴 드라이브」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겠지그렇게 돌아갈 것이다상처만 가득 안았던 본인의 행성으로오직 한 존재만을 바라보기 위해서오직 그 존재에게 위로받고 공감받기 위해서.

그거면 충분하다는 것을이 주인공은 먼 우주에 와서야 깨닫는 것이다끊임없이 그 존재에게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부터상처뿐인 언어로부터 멀어진 우주에서 제 숨소리를 유일한 소음으로 삼으면서 그림자놀이」 중에서 170p

 

 

상처받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막이었어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지쳐 있었으니까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그래서 나를 비롯해 곁의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감정을 잃더라도 모두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었어. / 그림자놀이」 중에서 171p

 

 

- 먹으러 와.

뜻밖이었다그 문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건가 의아해하는데 이어서 메시지가 왔다.

용서는 안 해 줘도 되니까 그냥 와.

그건 또 알 수 없는 말이었다반장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나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커튼으로 차창의 습기를 닦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작은 눈발이 날리고 있어 한참이나 창에 코를 박고 있었다붕붕거리며 바닷속을 떠돈다는 굴 유생들도 저런 모양일까. / 130p

 

 

 




 

 

 

 

  불완전하고 완벽하진 않지만 왠지 우리라는 이름 안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을 주는 일곱 편의 작품들이다그 미더움이 사랑스럽고 따스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쓴 가족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들!

사랑과 갈등상처와 화해를 거듭하는 가족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엄마는엄마는 안 먹어?” “나는 입맛이 없어서 나중에 먹을래.” 식사 시간이 되면 엄마는 꼭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수저를 거두시곤 하셨다내내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열심히 하셔놓고 왜 정작 자신은 먹지 않겠다는 건지 나는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먹을 때 같이 먹자고이왕이면 따뜻할 때 먹자고 채근을 하면 마지못해 자리에 앉곤 했지만그마저도 뜨뜻미지근한 표정이라 나로서는 참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그런데 며칠 전큰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왜 안 먹어?” 하고 묻는데 불현듯 그때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끼니 때 마다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상당한 노동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이제는 삼시세끼 아이의 식사를 책임지는 엄마가 되고나서야 얻은 큰 깨달음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일까정지아 작가의 말의 온도」 속에서 주인공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유독 나를 울컥이게 한다. “엄마는 평생 어떻게 아버지 입맛에 맞추고 살았어?” “내 식성이 워떤지 알기나 했가니니 아부지가 해 달란 대로 해줬제. (그 시절에 여자들은 다 그랬을 것이다어매가 주는 대로 묵고남편이 묵자는 대로 묵고 살았제.” 주인공은 열여섯에 시집와 엄마로 살아온 세월은 육십칠 년엄마가 딸로 살아온 세월은 고작 십육 년이었을 시절을 생각한다엄마가 엄마가 아니고 외할머니의 딸이던 시절에는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기도 했었을 텐데그러니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라 한때는 마음껏 투정을 부려도 되는 딸이기도 했었을 텐데가족 안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두고 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목이 막히는 것이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너무도 비슷한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맺는 인간관계의 그물가족세상의 모든 가족은 그 가족만의 다른 사연을 갖고 있지만의외로 비슷한 이유로 갈등과 상처를 겪고 또 반목과 화해를 반복한다가족이라는 물리적정서적 공동체는 결국 유사 사회의 문화와 제도권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때문에 가족과 관련된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비록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동질감을 얻게 된다끌어안는 소설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이 바로 그러하다분명 구성원도 등장인물도 다르지만 그들의 사연 안에 나의 사연을 겹쳐보게 되는 것이다나의 엄마와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딸들을 바라보게 하는 정지아의 말의 온도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어버리고 남은 가족이 느끼는 자책을 시간을 담은 손보미의 담요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다투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윤성희의 소설 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 등으로 비추어본 가족의 모습은 다른 듯 너무나 유사하다.

 

 

 

어머니가 가스레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십 년 전이었다우리가 가스레인지를 사 준다고 해도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그 무렵엔 읍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도로 포장도 되지 않은 우리 집에까지 가스 배달을 해 주지도 않았다가스레인지를 들인 뒤에도 어머니는 우리 남매들이 내려오면 굳이 아궁이에 불을 피워 숯 위에 생선이나 고기를 구웠다숯 향기가 배어 훨씬 맛있기는 했지만 볼 앞에 쭈그려 앉아 수시로 석쇠를 뒤집어야 했다그 고달픈 노동으로 어머니는 우리의 배를 채웠다어머니는 자기 앞에 놓인 굴비구이도 그만한 노동을 거쳐 나온 줄 아는 것이다. / 말의 온도」 중에서 17p

 

 

어머니는 달랐다어머니에게 음식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겨울이면 어머니는 두 시간을 걸어 읍내 장에 갔다자식들에게 비린 것을 먹이기 위해서였다동태 한 궤짝을 머리에 이고 온 어머니는 펌프가 설치된 수돗가에서 차디찬 물로 반나절에 걸쳐 동태를 손질했다동지섣달 칼바람이 휘몰아쳐도 어머니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어머니가 손질한 동태로 끓인 국은 콩나물국처럼 맑디맑았다어머니는 꼬막도 일일이 칫솔로 닦았다우리 식구 먹을 양을 하나하나 칫솔로 닦으려면 그 또한 한나절이었다어머니 손은 겨우내 발갛게 곱아 있었다. / 말의 온도」 중에서 24p

 

 

나는 늘 그 아이가 죽은 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알아요당신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죠많은 사람들이 그 애가 죽은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소하지만그렇다면 그게 누구의 잘못일까요그날 죽은 사람은내 아들과 록 밴드의 보컬을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소그건 물론 많은 숫자지하지만 공연장에는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소그렇다면 그들 중 유독 그 여섯 명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오그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 거야?” / 담요」 중에서 47p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끌어안는 소설은 정지아손보미황정은김유담윤성희김강김애란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쓴 소설 중 가족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 한 편씩을 수록해 엮은 책이다각자의 온도로 서로를 끌어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각각의 작품들은 오늘날 가족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고독자들에게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고 질문을 던진다개인적으로는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라는 기이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황정은의 모자가 상당히 인상적이다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오마주한 듯하룻밤 사이에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처럼 어느 날 갑자기 모자가 되곤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세 남매는 아버지가 언제부터 모자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다 아버지의 구깃구깃한기울어진 삶의 그늘을 바라본다흥미롭게도 세 남매는 아버지가 모자로 변하는 난처한 현실을 꽤 덤덤하게 서술한다어딘가에 툭 내던져진 듯한그래서 함부로 밟힐 수도 있는너무나 일상적인 물건에서 아버지의 삶을 조망하는 작가의 탁월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

이사를 하면 첫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장도리를 들고 다니며 벽에 박힌 못을 뽑아내는 것이었다못이 있으면 아버지가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거기 걸리고틀림없이 모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일단 모자가 되면 언제 아버지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 모자」 중에서 67p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어맑은 날이었는데 아버지는 정말 구깃구깃해서그렇잖아우리 아버지는 셔츠 같은 것을 칼라나 앞섶이 때에 절 때까지 입곤 했으니까갈아입으라고 옷을 챙겨 줘도 말이지이상하게 고집을 부려서 바지도 무릎이 완전히 솟아서 각이 잡혀 버릴 때까지 입고 다니고아버지는 그때 일자리를 잃은 상태였고그것 때문에 어딘가를 가려는 것 같았는데그러다 먼 제서 나를 알아보고 서 있는 듯했어안색이 좋지 않은 상태로 전단지 따위가 잔뜩 달라붙은 전봇대 옆에서부끄러워서모르는 척했어. / 모자」 중에서 77p

 

 

 




 

 

 

 

  나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대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우리 시대의 어떤 모습을 비추고 있을까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끌어안는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에 다가가게 된다. ‘함께 걷는 소설’ ‘기억하는 소설’ ‘가슴 뛰는 소설’ ‘여행하는 소설’ 등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 역시 문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지표들을 통찰하는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있다웃긴다이 시리즈 계속 또 읽고 싶다!

작가가 주인공인 싱글맘이 킬러로 오해를 받아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그린 로맨틱 서스펜스 스릴러!

 

 

 

 

  지금 나는 누구라도 걸리기만 하면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다내 출판 에이전트는 워싱턴 유니언역행 기차를 타고 내가 원고 마감을 얼마나 넘겼는지 정확히 따져보러 오고 있는데메이플 시럽 범벅인 두 살배기와 곧 유치원에 가야 하는 네 살배기는 제 머리를 직접 자르겠다고 야단이다어찌된 일인지 베이비시터는 행방이 묘연하고이제는 전남편이 된 작자는 부동산 중개이자 입주자 협의회 임원까지 맡은 여자와 바람이 났으니 이쯤 되면 누구 한 명 죽여도 시원치 않을 지경이다시시각각 다가오는 마감일연체된 자동차 할부금수금원의 끊임없는 독촉 전화두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대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일 대로 꼬인 거지?

 

 

 

로맨틱 코미디미스터리 서스펜스 스릴러를 절묘하게 결합한 유쾌 발랄한 소설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의 주인공 핀레이 도너번은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으로인생 최대의 위기 앞에서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현실을 자조하는 중이다잘 나가는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내 앞가림도 못하고 아이들을 보살필 능력도 없는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다그 와중에 베이비시터는 도망가고 아이들은 울고한 벌뿐인 외출복은 엉망이 되고 에이전시와의 중요한 약속에 늦기까지 한 그날이보다 더한 최악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핀레이에게 뜻밖의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에이전트와 새로 발표할 스릴러 소설을 두고 나누던 대화를 우연히 옆자리에서 엿들은 퍼트리샤라는 여자가 핀레이를 킬러로 오해한 것이다목표는 그녀의 남편 해리스 미클러그것도 무려 5만 달러라는 거액의 성공 보수를 제안할 줄이야!

 

 

 

당신 벌이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하잖아.”

당신이 베이비시터만 안 잘랐어도 벌써 책 한 권은 쓰고도 남았어!”

(좋아해보자 이거지.

그 여자와 약혼했다는 소리를 스티븐의 입으로 직접 듣고 술김에 딜리아의 지점토 덩어리로 테리사의 BMW 배기관을 틀어막은 것이 성숙한 행동은 아니었음은 나도 인정한다하지만 그 여자가 계약금 절반을 가져가는 꼴을 보고만 있던 남편의 처신은 내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 14p

 

 

아름답고 상냥한 비운의 여인을 나쁜 놈한테서 구하면 그만인걸나쁜 놈만 제거하면 가련한 여자는 진심으로 고마워할 테고모두모두 행복해지는 거죠당신은 보상을 두둑이 받고요.

이런 세상에.

1만 5천 달러 이하로는 안 받을 생각이에요…….

다음 건은 이번 건을 해치운 다음에 이야기하죠.

5만 달러그녀는 내가 5만 달러를 원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럴 수가안 돼안 돼안 돼! / 29p

 

 

 



 

 

 

 

  머릿속으로는 거부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5만 달러라는 제안을 선뜻 거부하기 어려웠던 핀레이는 그저 해리스라는 남자에 대해 알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뒤를 밟는다그런데 이 남자정말로 살려둘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개자식이지 않은가이렇듯 소설은 작가가 주인공인 싱글맘이 킬러로 오해를 받아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그린 로맨틱 서스펜스 스릴러다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사건에 휘말리며 거듭 위기가 발생하지만 해리스의 죽음에 얽힌 이해관계를 하나씩 풀어가며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쉴 틈 없이 전개되어 근래에 읽은 소설 중 가장 강력한 페이지터너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퍼트리샤가 내 점심 쟁반에 끼워놓은 쪽지 이야기부터 시작해 사건의 세부 정황을 최대한 상세히 떠올리기 시작했다내 차 안에서 전화를 걸고러시로 찾아가고해리스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빠져나가고차고에서 죽어 있는 그를 발견한다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에 푹 빠져 내 기억으로 줄거리의 공백을 베울 수 있었다해리스퍼트리샤줄리언과 내 이름술집 이름을 바꿨지만그날 밤의 사건들은 있는 그대로 쏟아냈다. / 142p

 

 

 




 

 

 

 

  핀레이 도너번 시리즈는 미국에서 이미 3권까지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끄는 중이고드라마화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니 앞으로의 시리즈들도 기대가 된다웃음과 긴장감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흥미로운 미스터리 작품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찾는 10대를 위한 진로수업 -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추천도서
정형권 지음 / 성안당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도 알지 못해 진로를 설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내 아이를 위해!

인생이라는 숲을 가꾸어 가는데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삶의 유용한 지혜들!

 

 

 

 

  “공부부터 열심히 해일단 좋은 대학에 가고 나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도 늦지 않아.” 진로 교육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일단 좋은 대학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좋은 대학높은 성적에 따라 진로에 대한 선택지 역시 다양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현행 교육 제도가 다양한 진로 교육을 통해 일찍이 체계적으로 진로를 탐색하고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다고는 하지만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성적에 맞춰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거나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휴학과 계속된 학업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보면 지금 10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나 수학을 공부하듯자신의 진로를 주기적으로 생각하고 정리해보는 시간은 아닐까진로도 하나의 과목처럼 시간을 정해서 정기적으로 점검하고고민의 질을 높여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진로에 대한 생각과 철학이 정리되는 과정이 학습과 함께 동반될 때 목표 역시 구체적으로 설정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아울러 다양한 직업과 실제 사례를 활용한 교육이야말로 진로 철학과 방향성을 정하는 데 반드시 중요하다그런 의미에서 꿈을 찾는 10대를 위한 진로수업은 우리 아이들이 진로 설계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인물과 사례를 제시한 점이 눈길을 끈다나폴레온 힐과 조앤 롤링월터 크라이슬러마이클 델 등 자신의 길을 묵묵히 헤쳐 나간 인물들의 빛나는 업적을 통해 진로 탐색의 핵심 주제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진로 생각 실천 노트>로 하여금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자기표현목표학습노력자기경영행복을 기준으로 살펴본 진로 탐색법

 

 

  19세기 말~20세기 초는 산업화로 인해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던 시기였다피카소는 미술에서 중요시되었던 기존의 원근법을 거부하고몸의 색깔이나 모양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 예술가다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렇게나 그린 듯한 그의 그림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또한 대중들은 피카소를 마치 즉흥적인 영감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천재인 것으로 묘사하곤 했다하지만 그가 죽은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그가 마지막으로 작업하였던 곳에서 수백 장이 넘는 비슷비슷한 스케치가 발견된 것이다그것은 피카소가 남긴 치열한 연습의 흔적이었다.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훈련된 창의성이라는 말로 설명한다재능을 심화하고 강화하는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 덕분에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저자는 피카소가 하루에 평균 7개의 작품을 만들고 대략 50,000점에 달할 정도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자기 안의 가능성을 믿고 누구보다도 깊이 몰입했던 시도들에 있었다고 말한다나에게는 어떤 능력이 숨어 있을까내가 희망하는 진로나 직업 분야에서 창조적 파괴를 통해 고쳐 나갈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이러한 부단한 질문 속에서 결국 새로운 나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이 책의 메시지를 우리 아이들도 반드시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골리앗과 싸운 다윗은 열세가 아니라 우세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그의 위대함을 나약한 사람이 장점을 파악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무기를 잘 활용한 데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였다다윗처럼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잘 알고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일의 성격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약점은 언제든 강점이 될 수 있다. / 43p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인류 역사상 위대한 창의적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바로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는 몰입의 대가라는 점이다.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루이스 이그내로도 수상 비결을 묻자, “과학은 9시 출근, 4시 퇴근하는 일이 아니다매일 24시간 어떻게가 머리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몰입을 하면 사고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게 되고 내 안에 잠든 천재성이 깨어난다낯선 문제에 부딪혀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 대응을 할 수 있다. / 113p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하버드 의대 디팩 초프라 박사 역시 심상(imagrey)은 인간을 만들고 고치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고 밝힌 적 있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그동안 연구해 온 것이나 치밀한 성찰 끝에 마음에 품게 된 사물의 윤곽을 상상해 보면 적지 않은 도움을 얻게 된다그리고 이것은 인상 깊은 사물을 기억하는 데 유용한 연습이기도 하다.”라고 하였다이 외에도 잭 니클라우스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에서 주인공 어니스트 역시긍정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믿음을 시각화 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 상상은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한 상상 훈련이 의외로 큰 도움이 된다실천 노트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봄 직한 것은 무엇일지 적어보고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가 실현되는 상상을 자주 해볼 수 있도록 아이와 실천해봐야겠다.

 

 

 

하버드대 석지영 교수는 삶에 완벽한 것은 없으며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계속 실패하고 배우며 반복적으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성장 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라고 하였다모든 실패에는 그에 상응하는 성공의 씨앗이 담겨 있다고 한다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속에서 성공의 씨앗을 발견하는 사람은 이미 또 다른 빛의 길에 들어선 셈이다. / 182p

 

 

시간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을 지혜로 숙성시키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그런데 해와 달의 교차즉 시간의 흐름과 결합하지 않으면 경험은 지혜로 승화되지 못한다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오늘의 패배자를 내일의 승리자로 바꿀 수 있고오늘의 절망을 내일의 희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따라서 시간이 있는 한 영원히 절망할 이유는 없다시간을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 212p

 

 

 



 

 

 

 

  이 외에도 목표로 자신의 마음을 꽉 채우는 법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세우는 법불편을 개선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법실패 거듭했지만 계속 도전하여 성공했던 경험흥미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을 선택했는데도 성공할 수 있는 법 등 책은 아이들이 인생이라는 숲을 가꾸어 가는데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삶의 유용한 지혜들을 제시해준다내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도 알지 못해 진로를 설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보는 건 어떨까이 책에서 제시하는 그림들에 자신을 덧입혀보고 일찍이 부단한 자기계발과 연습을 통해 한 발 한 발 꿈에 다가가는 데 도움을 얻어 보시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패와 미완성고뇌와 좌절의 역사로 바라본 예술의 세계!

미술의 이면을 비추는 책이지만 그래서 미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책!

 

 

 

 

  “ET IN ARCADIA EGO(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니콜라 푸생의 작품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는 한 무리의 목동들이 돌로 된 석관에 쓰인 글을 읽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이들이 사는 아르카디아는 곧 낙원죽음이나 고통이 없어야 마땅한 곳이나 어찌된 일인지 이 축복의 땅에서 무덤이 발견되었으니 모두 충격에 빠질 만하다.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라는 말은 너희도 나처럼 죽을 것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삶 속에 죽음이 존재하니행복 속에서 불행을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벌거벗은 미술사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의 양정무 교수는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속의 메시지처럼생명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있고 에덴의 동산에 선악과가 있듯이 아름다운 미술에도 그늘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따라서 이 책은 여느 그림에세이와 달리 그간 고상한 취미나 교양으로 포장되곤 했던 미술의 또 다른 얼굴즉 시대의 영광과 몰락인류의 도전과 좌절영욕의 인류사를 담은 미술의 생생한 실체에 다가가려 한다. ‘라는 개념의 허상을 걷어내고 완벽과는 거리가 먼 미술의 이면을 비춰보는 이러한 여정은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생물 같은 속성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를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

 

 

  우리는 흔히 고전미술’ 하면 <벨베데레의 아폴로>, <밀로의 비너스>처럼 순백색의 대리석에 아름다운 몸의 곡선과 균형미가 두드러지는고전시대의 모든 아름다움을 집약한 듯한 조각품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사람은 빙켈만이라는 독일 출신의 고전주의자였다그는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스 미술을 찬양하며 유럽의 지배층들을 열광시킨 바 있다. ‘우리의 조상은 누구이고 어디서 왔을까?’에 관한 유럽인들의 궁금증에 대해 빙켈만 같은 이들은 그들의 뿌리를 아폴로같이 이상화된 신의 얼굴을 한 그리스 조각들에서 찾음으로써 그들의 우월함을 수사화한 것이다이는 서양 근대미술에도 영향을 주어 고전미술로 집약되는 절대적인 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하에 지금까지도 여기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근대미술의 수용 과정을 거친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이처럼 저자는 고전미술이 신비화되는 과정을 짚어냄으로써 우리가 품고 있는 미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이 착각이거나 허상일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미란 인간의 감정에 광범위하게 관계하기 때문에 단지 몇몇 개념이나 조건으로 단순화할 수 없음을마찬가지로 우리는 미술 역시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미술교육의 중심은 바로 드로잉이었습니다드로잉은 선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식으로프랑스어로 하면 데생이죠고전 조각이나 그것의 석고상을 따라 그리는 데생 훈련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퍼져 근대 미술교육의 핵심이 되었고이 미술교육 방식이 아시아까지 건너왔던 겁니다.

혹시 고전미술을 오래되거나 우리와 관계없는 낯선 예술이라고만 생각하셨나요고전미술을 중심으로 짜인 교육과정은 20세기 초까지 서양미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한국의 근대 미술교육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한국의 수많은 예비 작가들이 고전미술의 석고상 그리는 법을 암기하듯 훈련했고이 때문에 고전미술은 지난 20세기 내내 우리의 미감을 좌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18p

 

 

그리스 조각에 대한 관심이 샘솟던 르네상스 시기부터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이 원래 채색되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복제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니까요이런 이유로 르네상스 이후 조각 하면 순백색 대리석 조각을 이상적인 피부의 재현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게 됩니다인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이 시기에 새하얀 대리석 표면은 맑고 깨끗한질병 없는 백인의 신체를 연상시켰나봅니다. / 25p

 

 

다시 말해 육체의 파시즘 사회였던 것입니다전사를 끊임없이 육성해야 했던 그리스에서 건강한 신체를 선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존강령이었겠지만다른 한편 신체적으로 약하거나 뒤떨어진 사람들은 살아나기 힘든 사회였다고 봐야겠죠.

미술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육체를 숭배한 그리스 사회는 미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남성 육체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기에 이를 기초로 미술에서 남성 몸 보여주기’ 역시 가능했거든요. / 63p

 

 

 



 

 

 

 

  1장이 고전미술의 신비화 과정과 그 안의 허상을 들여다본다면 2장에서는 왜 초상화에는 웃는 얼굴이 드물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이 장에서는 미술과 웃음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고대-중세-르네상스-근대-현대의 시대정신과 각 시대의 문명을 대표하는 표정을 탐구해본다이러한 과정은 미술이 어떻게 문명을 비추는 거울로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업으로종교와 경제정치 등 삶의 전 분야를 넘나드는 미술사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석조 조각의 가장 큰 미덕은 죽어 있는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었습니다그렇다면 입가의 미소는 조각에 생명의 충만함을 추가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실제로 고대 그리스어로 웃음을 가리키는 겔로스는 건강을 의미하는 단어인 헬레에서 유래했죠삶의 충만함을 추구했던 고대인들에게 미소는 신성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86p

 

 

누가복음」 6장 25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교리를 충실히 따랐던 중세인들에게 웃음이란 경박하고 죄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이 때문에 중세 사회 속에서 웃음이 허용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100p

 

 

20대부터 성공을 위해 거침없이 살아왔던 그가 유행의 변화에 뒤처지면서 거듭된 투자 실패가족의 잇단 죽음극심한 경제난 등으로 인해 처절히 변해가는 모습을 제 손으로 그린 자화상을 통해 냉정히 보여줍니다한편 렘브란트의 경제적 실패는 당시 네덜란드 경제의 쇠퇴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네덜란드와 영국이 1652년부터 1667년까지 두 번에 걸쳐 벌인 전쟁은 네덜란드 경제를 점차 위축시켰고이 과정에서 렘브란트는 경제적 파국을 맞이했습니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은 화가 개인을 넘어 17세기 네덜란드 사회를 대표하는 표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126p

 

 

 

  3장 반전의 박물관’ 편에서는 길면 300짧게 잡으면 200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여온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에 대해 살펴본다놀랍게도 박물관의 시작점이 혁명과 약탈의 서사치열한 국가적 경쟁으로 점철되었던 패권주의·제국주의와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나폴레옹의 원정대가 이탈리아 전역을 평정하며 수많은 미술품을 파리로 옮겨온 것이 박물관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이는 누가 고전을 중심으로 세기의 명작을 차지하는가가 곧 유럽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하는가의 문제로 직결되었음을 시사한다이후 영국을 비롯해 독일에서도 박물관 건립의 붐이 일었던 것을 보면박물관의 위상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발휘할 정통성과 군사적 승리를 인정받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이런 의미에서 보면 박물관은 침탈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썩 유쾌하지는 않으나 더 이상 미술품을 사치품이 아닌 문명화된 삶의 본질로 삼으려 했다는 점지속적으로 인류의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할 듯하다.

 

 

 

이 칙령의 다른 대목을 보면 혁명에 성공한 프랑스는 위대한 국가인 반면 봉건 체제에 머물러 있는 이탈리아는 나약한 국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이탈리아 대신 프랑스가 자유의 조국을 수호하면서 미술을 통해 그 위대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국립 박물관’, 즉 루브르가 있으며 이곳을 약탈한 미술로 채워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이 포고령 속에는 인류의 유산을 보호하여 널리 알린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서 살펴본 오늘날의 박물관 개념과 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보호라는 미명하에 타국의 미술품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 154p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루브르에 부여하는 까닭은 이곳이 바로 프랑스혁명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구체제의 심장이었던 왕궁을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방한다느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고이곳을 과거의 지배층으로부터 몰수한 미술품으로 채운다는 것도 놀라운 결단이었습니다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미술관으로 개방된 루브르 궁전의 회랑을 걸으면서 새로운 세계가 왔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을 겁니다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건설된 웅장한 회랑이 이제 시민들의 공간이 되었고지배층만이 누려왔던 미술품들을 시민들도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 161p

 

 

영국박물관내셔널 갤러리 같은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은 세계의 주인공이 귀족과 소수 엘리트 집단에서 시민사회로 교체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명칭을 그대로 풀면 국민의 미술관이 되는데소수 지배층과 대다수 국민 사이의 오래된 투쟁의 추가 국민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당시의 정치가 토머스 와이즈는 미술이 사치가 아니라 문명화된 삶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면서 미술을 강력한 만큼 보편적인 언어로 보았습니다이 때문에 그는 미술이 몇몇 소수의 특권층에 한정된 세계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 184p

 

 

 



 

 

 

 

  이외에도 책은 팬데믹 시대에 따라 화려한 미술 속에 담긴 질병의 그림자까지 함께 살펴봄으로써 미술이 단순히 미적 가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시대를 사유하고 개인과 시대적 고민에 끊임없이 맞서 싸운 도전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덕분에 예술은 넓게 보면 완벽과는 거리가 먼 오류의 세계이며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산물임을 느끼게 해준다미술의 이면을 비추는 책이지만 그래서 미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미술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안목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