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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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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통의 방향은 믿음 속에 존재한다!
내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내 마음의 귀중한 한 조각을 마주하게 되는 일곱 편의 단편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두 번째 책 『함께 걷는 소설』의 주제는 ‘우정’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인 백수린, 이유리, 강석희, 김지연, 천선란, 김사과, 김혜진의 대표 단편작 중 우정과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품 밖에서 맺는 여러 관계 중 가장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관계가 있다면 바로 친구일 것이다. 때로는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진솔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자, 때로는 나를 비추는 거울로 삶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여기 일곱 편의 단편작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장과 이별 사이에서 겪은 따뜻한 우정과 유대감,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소통과 공감, 오래된 추억 속에 남겨진 쓸쓸한 기억부터 서로를 다독이고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다. 또 이를 통해 내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내 마음의 귀중한 한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네가 있어 나의 삶은 조금 더 특별한 것이 된다
“그래, 어머니께 대충 들었어요. 돌이 말을 한다구요?”
이유리의 작품 「치즈 달과 비스코티」에는 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가 등장한다. 고도 비만으로 여성형 유방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친구의 집요한 괴롭힘을 당하던 중 “던져! 날 던지라고!” 하고 소리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건 날카로운 돌멩이였다. 어차피 이것저것 잴 것도 없었던 ‘나’는 돌멩이를 던져 녀석의 이마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맞힌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나’는 간혹 돌멩이들이 내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후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는 스물세 살 때 만난 조면암이다. 얼핏 보면 어머니가 종종 굽는 비스코티 과자와 비슷해 스콧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돌은 ‘나’의 자신의 현명한 조언자이자 재치 있는 절친이다. 정신병자, 고도 비만, 모태 솔로인 ‘나’와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신 병원 치료실에서 자신의 이름을 ‘쿠커’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유일하게 ‘나’가 돌멩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믿는다. 심지어 스콧을 잃어버렸을 때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 어딘지 비정상적인 듯하지만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처는 다시 관계 속에서 극복될 수 있음을, 진정한 소통의 방향은 믿음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에서 미국 정신 의학회가 제정한 정신 장애 진단 통계 편람에 따른 망상 장애의 기준을 찾아보았다. 그 첫 번째 항은 이랬다. ‘기괴하지 않은 망상일 것’. 나를 진찰한 의사가 나를 기괴하지 않다고 판단한 건 썩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일 항이 충족되었다면 나는 망상 장애가 아니라 조현병 진단을 받았을 테니까. 그렇다. 나는 기괴하지 않다. 그리고 기괴하지 않은 정신병은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지 않은가. / 「치즈 달과 비스코티」 중에서 55p
“치료사님께 얘기 들었어요. 돌이랑 대화를 할 수 있다면서요? 지금 잃어버린 돌도 당신 친구죠? 정말 미안해요. 난 당신 말 다 믿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 친구를 찾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게요.”
그 순간 내가 차로 달려가려던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비록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같은 꼴을 한 정신병자였지만, 생전 처음으로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까? / 「치즈 달과 비스코티」 중에서 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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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가늠하고, 분류하고, 평가의 대상으로 저울질되곤 하는 얄팍한 관계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발견하게 하는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잃는 수술을 받은 주인공이 20년 만에 우주에서 돌아온 친구 도아와의 재회로 다시금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천선란의 「그림자놀이」가 눈에 띤다. “용서는 안 해 줘도 되니까 그냥 와.” 서로를 싫어했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용서를 구할 수 있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애써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 속에서 관계의 회복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여는 김지연의 「굴 드라이브」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겠지.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상처만 가득 안았던 본인의 행성으로, 오직 한 존재만을 바라보기 위해서. 오직 그 존재에게 위로받고 공감받기 위해서.
그거면 충분하다는 것을, 이 주인공은 먼 우주에 와서야 깨닫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 존재에게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부터, 상처뿐인 언어로부터 멀어진 우주에서 제 숨소리를 유일한 소음으로 삼으면서 / 「그림자놀이」 중에서 170p
상처받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막이었어.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지쳐 있었으니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를 비롯해 곁의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감정을 잃더라도 모두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었어. / 「그림자놀이」 중에서 171p
- 먹으러 와.
뜻밖이었다. 그 문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건가 의아해하는데 이어서 메시지가 왔다.
- 용서는 안 해 줘도 되니까 그냥 와.
그건 또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반장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나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커튼으로 차창의 습기를 닦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작은 눈발이 날리고 있어 한참이나 창에 코를 박고 있었다. 붕붕거리며 바닷속을 떠돈다는 굴 유생들도 저런 모양일까. / 1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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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고 완벽하진 않지만 왠지 ‘우리’라는 이름 안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을 주는 일곱 편의 작품들이다. 그 미더움이 사랑스럽고 따스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