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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안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평점 :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523_1.jpg)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쓴 ‘가족’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들!
사랑과 갈등, 상처와 화해를 거듭하는 가족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엄마는? 엄마는 안 먹어?” “나는 입맛이 없어서 나중에 먹을래.” 식사 시간이 되면 엄마는 꼭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수저를 거두시곤 하셨다. 내내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열심히 하셔놓고 왜 정작 자신은 먹지 않겠다는 건지 나는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먹을 때 같이 먹자고, 이왕이면 따뜻할 때 먹자고 채근을 하면 마지못해 자리에 앉곤 했지만, 그마저도 뜨뜻미지근한 표정이라 나로서는 참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큰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왜 안 먹어?” 하고 묻는데 불현듯 그때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 끼니 때 마다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상당한 노동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삼시세끼 아이의 식사를 책임지는 엄마가 되고나서야 얻은 큰 깨달음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정지아 작가의 「말의 온도」 속에서 주인공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유독 나를 울컥이게 한다. “엄마는 평생 어떻게 아버지 입맛에 맞추고 살았어?” “내 식성이 워떤지 알기나 했가니, 니 아부지가 해 달란 대로 해줬제. (…) 그 시절에 여자들은 다 그랬을 것이다. 어매가 주는 대로 묵고, 남편이 묵자는 대로 묵고 살았제.” 주인공은 열여섯에 시집와 엄마로 살아온 세월은 육십칠 년, 엄마가 딸로 살아온 세월은 고작 십육 년이었을 시절을 생각한다. 엄마가 엄마가 아니고 외할머니의 딸이던 시절에는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기도 했었을 텐데. 그러니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라 한때는 마음껏 투정을 부려도 되는 딸이기도 했었을 텐데, 가족 안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두고 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목이 막히는 것이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너무도 비슷한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맺는 인간관계의 그물, 가족. 세상의 모든 가족은 그 가족만의 다른 사연을 갖고 있지만, 의외로 비슷한 이유로 갈등과 상처를 겪고 또 반목과 화해를 반복한다. 가족이라는 물리적, 정서적 공동체는 결국 유사 사회의 문화와 제도권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족’과 관련된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비록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동질감을 얻게 된다. 『끌어안는 소설』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이 바로 그러하다. 분명 구성원도 등장인물도 다르지만 그들의 사연 안에 나의 사연을 겹쳐보게 되는 것이다. 나의 엄마와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딸들을 바라보게 하는 정지아의 「말의 온도」,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어버리고 남은 가족이 느끼는 자책을 시간을 담은 손보미의 「담요」, 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다투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윤성희의 소설 「유턴 지점에 보물 지도를 묻다」 등으로 비추어본 가족의 모습은 다른 듯 너무나 유사하다.
어머니가 가스레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십 년 전이었다. 우리가 가스레인지를 사 준다고 해도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그 무렵엔 읍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도로 포장도 되지 않은 우리 집에까지 가스 배달을 해 주지도 않았다. 가스레인지를 들인 뒤에도 어머니는 우리 남매들이 내려오면 굳이 아궁이에 불을 피워 숯 위에 생선이나 고기를 구웠다. 숯 향기가 배어 훨씬 맛있기는 했지만 볼 앞에 쭈그려 앉아 수시로 석쇠를 뒤집어야 했다. 그 고달픈 노동으로 어머니는 우리의 배를 채웠다. 어머니는 자기 앞에 놓인 굴비구이도 그만한 노동을 거쳐 나온 줄 아는 것이다. / 「말의 온도」 중에서 17p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에게 음식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두 시간을 걸어 읍내 장에 갔다. 자식들에게 비린 것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동태 한 궤짝을 머리에 이고 온 어머니는 펌프가 설치된 수돗가에서 차디찬 물로 반나절에 걸쳐 동태를 손질했다. 동지섣달 칼바람이 휘몰아쳐도 어머니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손질한 동태로 끓인 국은 콩나물국처럼 맑디맑았다. 어머니는 꼬막도 일일이 칫솔로 닦았다. 우리 식구 먹을 양을 하나하나 칫솔로 닦으려면 그 또한 한나절이었다. 어머니 손은 겨우내 발갛게 곱아 있었다. / 「말의 온도」 중에서 24p
“나는 늘 그 아이가 죽은 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알아요. 당신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죠. 많은 사람들이 그 애가 죽은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소. 하지만, 그렇다면 그게 누구의 잘못일까요? 그날 죽은 사람은, 내 아들과 록 밴드의 보컬을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소. 그건 물론 많은 숫자지. 하지만 공연장에는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소. 그렇다면 그들 중 유독 그 여섯 명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 거야?” / 「담요」 중에서 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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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끌어안는 소설』은 정지아, 손보미, 황정은, 김유담, 윤성희, 김강, 김애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쓴 소설 중 ‘가족’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 한 편씩을 수록해 엮은 책이다. 각자의 온도로 서로를 끌어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각각의 작품들은 오늘날 가족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고, 독자들에게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고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로는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라는 기이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황정은의 「모자」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오마주한 듯, 하룻밤 사이에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처럼 어느 날 갑자기 모자가 되곤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세 남매는 아버지가 언제부터 모자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다 아버지의 구깃구깃한, 기울어진 삶의 그늘을 바라본다. 흥미롭게도 세 남매는 아버지가 모자로 변하는 난처한 현실을 꽤 덤덤하게 서술한다. 어딘가에 툭 내던져진 듯한, 그래서 함부로 밟힐 수도 있는, 너무나 일상적인 물건에서 아버지의 삶을 조망하는 작가의 탁월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
이사를 하면 첫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장도리를 들고 다니며 벽에 박힌 못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못이 있으면 아버지가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거기 걸리고, 틀림없이 모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일단 모자가 되면 언제 아버지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 「모자」 중에서 67p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어. 맑은 날이었는데 아버지는 정말 구깃구깃해서, 그렇잖아, 우리 아버지는 셔츠 같은 것을 칼라나 앞섶이 때에 절 때까지 입곤 했으니까. 갈아입으라고 옷을 챙겨 줘도 말이지,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서 바지도 무릎이 완전히 솟아서 각이 잡혀 버릴 때까지 입고 다니고. 아버지는 그때 일자리를 잃은 상태였고, 그것 때문에 어딘가를 가려는 것 같았는데, 그러다 먼 제서 나를 알아보고 서 있는 듯했어. 안색이 좋지 않은 상태로 전단지 따위가 잔뜩 달라붙은 전봇대 옆에서. 부끄러워서, 모르는 척했어. / 「모자」 중에서 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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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대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우리 시대의 어떤 모습을 비추고 있을까?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끌어안는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에 다가가게 된다. ‘함께 걷는 소설’ ‘기억하는 소설’ ‘가슴 뛰는 소설’ ‘여행하는 소설’ 등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 역시 문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지표들을 통찰하는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