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공부도 잘 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는지, 이 부당한 현실이 참담하다. 국내 최고 대학을 나온 저자의 등장만으로 문단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문단만큼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곳은 드물기 때문에 문단의 문턱조차 넘지 않은 저자의 등장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 책 「타워」를 읽어보니 내용 또한 불편하다. 사실 이 책을 구입 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작가 중 한 명인 박민규의 추천사 때문이었다. ‘100년 후 한국 문단은 작가 배명훈의 존재를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정도의 추천사 였는데, ‘박민규가 저런 말 할 정도면 배명훈의 책도 박민규의 그것만큼 재밌겠는데’라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오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은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블랙코미디를 의도한 것 같지만 그 정도 효과를 받지는 못했다.

674층에 인구가 50만이나 되고 주변국들과 철저히 격리된 빈스토크, 작은 고시원 한 칸이 주변국 아파트 세 채 값이라고 하는 빈스토크

한 층 한 층이 올라갈수록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무너질 바벨탑이라고 혀를 끌끌 찾지만 결국 60년의 세월이 가져다 준 그곳의 안락함과 우월함에 압도되어 폭탄을 해체해버리게 만든 빈스토크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손가락질 하지만 속으로는 들어가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가진 곳, 빈스토크

 

삼성 생각도 나고 한국 생각도 났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욕망의 합과 그것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문명발달의 합을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더 클까? 맑은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컵에 시커먼 간장을 부으면 금세 섞여 하나의 용액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욕망의 합과 문명발달의 합이 섞여 버릴 수도 있겠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몇 편이 하나로 묶여 있다. 각 편마다 다른 주인공과 소재가 등장하지만 구조나 의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오히려 분산되는 느낌이다. 아예 가벼운 농지거리 정도의 목적이 아니라면 애초에 하나의 작품으로 구조를 짜고 기승전결을 확실히 그리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빈스토크가 상징하는 의미가 결코 가벼운 농지거리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에 대한 기시체험(데쟈뷰)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지만 현실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674층의 빈스토크보다 높아지면 높아졌지 결코 못하지 않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욕망의 합을 674층이라고 한정지을 수는 없다. 욕망과 탐욕의 크기의 비대함을 상징하는 숫자가 674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지금의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기득층은 철저하게 자신들 편이다. 그들에게 국가나 국민은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끼리의 갈등이다.

언론에서 흔히 남남갈등이라 표현하는 그것이다.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이념추구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 그래서 기존 정치와 국가 주요 의제에 관심을 끄게 만드는 것. 그것이다.

빈스토크에서는 수평주의자들과 수직주의자들로 함축된다.

수평주의자들의 공론장이고 스트레스 해소창구이던 520층 카페 빈스토크가 없어지면서 사람 간 의사소토의 창구도 사라져버렸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520층을 지켜내지 못하면 520층 역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p.255)

 

우리가 지켜야 할 사수해야 할 520층은 무엇일까?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3년 반 동안 이런 것들의 박탈이 가져온 허탈함과 결핍은 굳이 자세히 말하기 피곤할 정도다.

매번 어이없게 지는 싸움이 반복되다 보니 아무리 비상식적인 결과가 나와도 ‘그러려니... 다 그렇지 뭐’ 정도의 반응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저들이 바라는 바다.

빈스토크 674층 꼭대기에서 한 가득 비웃음을 머금은 저들이 바라는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지치거나 피곤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긴 싸움이다.

내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을 확인하고 씨익 웃으며

 

“너도 쫄지마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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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키 펭귄클래식 60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올리버 해리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의 내용보다 표지 그림이 훨씬 강렬하고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찾아봤다.

표지 그림인『싱어』를 그린 사람은 오스트리아 예술가 “에곤 쉴레”였다. 표지 그림에 등장한 기괴한 표정의 남성처럼 그렇게 살았던 예술가였다. 20세기 초·중반에는 금기시 되던 성애와 여성의 나체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 의미 없는 표정으로 가득 담긴 자화상과 초상화 등 그림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나도 컴퓨터 모니터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그림이었다.

 

“돌란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한테는 품위라곤 없어. 난 쥐새끼야.’” (p.68)

 

쥐새끼.... 책에 등장하는 마약 중독자들을 표현하는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다. 주인공 빌을 비롯한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과 동성애자들은 쥐새끼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물론이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 또한 그 정도다. 쥐새끼.

 

“마약에 빠진 사람과 공산주의에 빠진 사람은 동일한 사람이기 마련입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미국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p.149)

 

“프렌치쿼터에 몇 군데 있는 퀴어 술집은 손님으로 붐벼서, 밤마다 보도에 호모들이 쏟아진다. 호모들로 가득한 공간을 보면 공포스럽다... 호모는, 복화술사 안으로 들어와서 그 육신을 다 차지한 복화술사의 인형이다.” (p.149)

 

마약에 빠져 이성을 잃은 자들은 공산주의자로 치부되고 특히나 마약을 하는 자들 중 동성애자가 많았기 때문에 사회악으로 분류되었다. 마약에 찌든 내가 동성애자인데 마약에 찌들고 찌들어 내가 동성애자인 것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동성애자가 득실대는 퀴어 술집을 드나들며 또 다른 동성애자와 원 나잇을 즐기지만 다음 날 밤 그들을 쳐다보며 역겨운 시선을 보낸다. 복화술사의 인형 따위로. 이성도 통제도 없다. 그냥 쥐새끼가 더러운 하수구를 드나들고 떨어진 음식쓰레기를 찾아 거리를 돌아다니듯 그렇게 쥐새끼가 된다.

 

이 책 「정키」의 배경은 헤로인의 중심 도시였던 1945년의 뉴욕이다. 당시 전쟁시기의 물자 부족으로 마약 업자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개시되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중국을 집어 삼키기 위해 아편을 사용한 것처럼 뉴욕과 워싱턴의 지배자들 또한 마약쟁이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겉으로는 단속을 한다 하지만 마약쟁이들과 끈끈하게 결탁한 사정당국을 모른 체했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어차피 마약을 실제로 하는 마약쟁이들의 삶이 아무리 피폐해진다 해도 그들에게서 달러만 뺏어오면 신경 쓸 거리도 없는 쥐새끼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 마약 중독자가 되는가?’ 답은 ‘스스로 중독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이다. 나는 호기심에 시작했다. 돈이 있었고, 별 생각 없이 주사를 맞으러 다닌 것뿐이다. 결국 중독됐다.” (p.54)

 

그런데 이런 내 무모한 추측과 억지는 책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 책은 하릴없이 무미하고 건조하다. 그냥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하고 취해 있고 다시 마약을 사고 병원치료를 받지만 이내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멕시코로 가서 또 마약을 하고... 이것이 전부이다.

책이 출간 된 20세기 중반에는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돈이 있었고, 별 생각 없이 주사를 맞으러 다는 것뿐이고, 결국 중독됐다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결론은 쥐새끼는 잡아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잡아서 병원에 집어넣든지. 감방에 집어넣든지.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죽음은 삶의 부재다. 삶이 물러난 때마다 죽음과 부패가 자리 잡는다.” (p.195)

 

리뷰를 다 쓰고도 기억에 남는 건 에곤 쉴레의 표지 그림뿐이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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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원래 그런 집단이라 여겼다.

정치인과 이 정권은 말하기도 역겹다.

그나마 사법부가 최근 내린 상식에 입각한 판결을 내리고 있었기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법부 또한 의식불명 상태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결국 그들은 한 편이다.

유죄를 확정지은 주심 판사가 다른 대법관과는 달리 진보적 인사니 뭐니 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그 또한 뭔가 캥기는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레임덕의 절정에 와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왜 정봉주 판결을 서둘렀을까?

애매모호한 타이밍이다.

늘 절정의 타이밍을 보여준 이 정권이다.

그들 또한 허투로 이런 위험부담을 떠 안을리 없다.

분명 무엇인가가 있다.

그림을 읽어야 한다. 구조를 읽어야 한다.

 

일단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모든 놈들은 더러운 자신들만의 캥기는 그 무엇으로 얽히고 섥혀 누구하나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이것은 분명하다.

최고의 양심을 가져야 할 대법관들 마저도 저러니 다른 놈들은 보나마나.

 

 

 

 

 

 

 

 

어떻게 일이 전개가 될 지 모르겠다.

청원을 하고 서명을 받는 움직임이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총선전까지 어떤 형태로 결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대사의 과오로 남을 정봉주 판결을 담당한 판사들의 이름 또한 역사에 남겨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보고 배우고 다시는 저런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최소한의 상식도 가늠하지 못하는 사법부가 도대체 무슨 사법부란 말인가.

그 따위 사법부는 없어지는 것이 도리어 나라의 운명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은 내년 말까지 설마 설마 하는 일들을 계속 할 것이다.

이미 브레이크 터진 내리막길을 거침없이 내려가고 있으니까.

 

아마도 이런 걸 기대하겠지

 

'너희들 이놈의 새끼들. 우린 정봉주도 잡아들인다. 까불지 마. 쫄지 마!! 쫄지 마!! 개나 소나 떠들고 다니니까 뭐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인데 지랄들 하지마. 여전히 패는 우리가 쥐고 있다고 병신들아. 그러니까 원래 하던대로 입닥치고 정치에 신경끄고 살아! 그렇게 등신들같이 살다보면 쥐구멍에 볕들날이 있을테니까. 계속 그렇게 구석에 처박혀서 잔뜩 쫄은 표정으로 하루하루 풀칠이나 하고 살아!!'

 

그런데 어쩌지. 이제 별로 겁나지 않다.

정치가 똑같은 놈들끼리 지들 밥그릇 싸움 하는 거라 아예 신경 끄고 투표도 안 하고 그런게 독야청청이 아니란 걸 확실히 깨달았단 말이다.

정치가 내 생활에 직접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아주 살가운 거라는 걸 완전히 알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안 쫄린다.

 

너희들의 마지막 발악이 어디까지 가나 한 번 지켜보자.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린 새롭게 인식했다.

너희들이 만들어내고 강요하는 프레임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는다고 이 꼰대들아!!!!

 

우리가 만든다.

우리의 프레임으로

우리가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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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책을 한번에 선물로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사진으로 읽는 세계사] 4권도 좋지만 창비의 [세계문학]이 너무너무 기대된다.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 아니어서 더욱 좋다.

성실하게 솔직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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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일하는 법 -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을 내편으로 만드는 인간관계 기술
로버트 M. 브램슨 지음, 조성숙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삶은 관계이다.

 

가정과 직장, 친구 등 모든 것과 곳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관계가 없으면 삶도 없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관계가 어렵고 까다롭다. 내가 원하는 관계만 맺고 살아가면 얼마나 편하겠나.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때로는 나를 싫어하고 공격하는 사람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책에서 소개된 많은 경우처럼 그런 사람이 내 직장의 상사인 경우는 더욱 머리 아픈 일이다.

 

이 책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일하는 법」은 이런 사람들과 일하는 법을 재미있게 제시한다. ‘무조건 깔아뭉개는 탱크 형’부터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꾸물꾸물 형’까지 10가지의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이런 ‘트러블메이커와 즐겁게 일하는 법’을 알려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유형은 9번 유형인 ‘잘난척쟁이 풍선형’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유형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하다.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정확하게는 ‘그때그때 달라요 형’이라고 해야 될 거 같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특히,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중요한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같은 문제나 논의 사항에 대해 ‘이 사람에게 하는 말 다르고 저 사람에게 하는 말 다른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중간에서 말을 전하거나 옮길 때 자신에게 말해 준 사람과 말해 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내용을 바꾸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 의도하던 내용과 논의 사항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그때그때 달라요 형’은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은 원만한 의사소통을 위해 자기가 뛰어난 융통성을 발휘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그때그때 달라요 형’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당사자들은 바보가 되어 버린다. 불필요한 오해를 하게 되고 까닭 없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다가 성실하지 못하고 책임감마저 없다면 더욱 심각하다. 완전히 트리플 크라운이다.

 

사실, 얼마 전 함께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여기에 100%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서 조직 구성원들 간에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이 생겼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했다. 결국 내가 ‘탱크형’처럼 분노를 쏟아내고 그 사람의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며(나는 ‘무조건 깔아뭉개는 탱크 형’과 ‘은밀하게 공격하는 저격수 형’이 혼합된 유형인 듯하다^^;) 쫓아내버렸다.

그래야만 그 사람이 벌여놓은 문제와 오해들은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전해들은 소식으로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처음부터 하기 싫었는데 거기서(내가 포함된 조직) 하도 붙잡고 도와달라고 해서...’라며 또 ‘그때그때 달라요 형’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트러블메이커를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하면서 간단한 방법은 그들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무척 어려운 문제이다.” (p.279)

 

책의 저자가 14년 동안 200개 이상의 조직을 대상으로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가 정말 맞다. 누구도 그들을 바꿀 수 없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쫓아낸 ‘그때그때 달라요 형’도 이 책을 읽은 후 였다면 책의 소개된 여러 가지 방법대로 좀 더 효과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으로 쫓아내지 않는 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나도 늘 ‘내가 혹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자문하며 살아야겠다.

 

 

 

 

 

 

 

이 리뷰는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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