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키 펭귄클래식 60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올리버 해리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의 내용보다 표지 그림이 훨씬 강렬하고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찾아봤다.

표지 그림인『싱어』를 그린 사람은 오스트리아 예술가 “에곤 쉴레”였다. 표지 그림에 등장한 기괴한 표정의 남성처럼 그렇게 살았던 예술가였다. 20세기 초·중반에는 금기시 되던 성애와 여성의 나체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 의미 없는 표정으로 가득 담긴 자화상과 초상화 등 그림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나도 컴퓨터 모니터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그림이었다.

 

“돌란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한테는 품위라곤 없어. 난 쥐새끼야.’” (p.68)

 

쥐새끼.... 책에 등장하는 마약 중독자들을 표현하는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다. 주인공 빌을 비롯한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과 동성애자들은 쥐새끼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물론이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 또한 그 정도다. 쥐새끼.

 

“마약에 빠진 사람과 공산주의에 빠진 사람은 동일한 사람이기 마련입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미국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p.149)

 

“프렌치쿼터에 몇 군데 있는 퀴어 술집은 손님으로 붐벼서, 밤마다 보도에 호모들이 쏟아진다. 호모들로 가득한 공간을 보면 공포스럽다... 호모는, 복화술사 안으로 들어와서 그 육신을 다 차지한 복화술사의 인형이다.” (p.149)

 

마약에 빠져 이성을 잃은 자들은 공산주의자로 치부되고 특히나 마약을 하는 자들 중 동성애자가 많았기 때문에 사회악으로 분류되었다. 마약에 찌든 내가 동성애자인데 마약에 찌들고 찌들어 내가 동성애자인 것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동성애자가 득실대는 퀴어 술집을 드나들며 또 다른 동성애자와 원 나잇을 즐기지만 다음 날 밤 그들을 쳐다보며 역겨운 시선을 보낸다. 복화술사의 인형 따위로. 이성도 통제도 없다. 그냥 쥐새끼가 더러운 하수구를 드나들고 떨어진 음식쓰레기를 찾아 거리를 돌아다니듯 그렇게 쥐새끼가 된다.

 

이 책 「정키」의 배경은 헤로인의 중심 도시였던 1945년의 뉴욕이다. 당시 전쟁시기의 물자 부족으로 마약 업자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개시되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중국을 집어 삼키기 위해 아편을 사용한 것처럼 뉴욕과 워싱턴의 지배자들 또한 마약쟁이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겉으로는 단속을 한다 하지만 마약쟁이들과 끈끈하게 결탁한 사정당국을 모른 체했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어차피 마약을 실제로 하는 마약쟁이들의 삶이 아무리 피폐해진다 해도 그들에게서 달러만 뺏어오면 신경 쓸 거리도 없는 쥐새끼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 마약 중독자가 되는가?’ 답은 ‘스스로 중독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이다. 나는 호기심에 시작했다. 돈이 있었고, 별 생각 없이 주사를 맞으러 다닌 것뿐이다. 결국 중독됐다.” (p.54)

 

그런데 이런 내 무모한 추측과 억지는 책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 책은 하릴없이 무미하고 건조하다. 그냥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하고 취해 있고 다시 마약을 사고 병원치료를 받지만 이내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멕시코로 가서 또 마약을 하고... 이것이 전부이다.

책이 출간 된 20세기 중반에는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돈이 있었고, 별 생각 없이 주사를 맞으러 다는 것뿐이고, 결국 중독됐다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결론은 쥐새끼는 잡아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잡아서 병원에 집어넣든지. 감방에 집어넣든지.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죽음은 삶의 부재다. 삶이 물러난 때마다 죽음과 부패가 자리 잡는다.” (p.195)

 

리뷰를 다 쓰고도 기억에 남는 건 에곤 쉴레의 표지 그림뿐이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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