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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리, 잠든 교실을 깨워라
리처드 위트마이어 지음, 임현경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미국의 메이저리그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MLB.com(메이저리그 공식 웹사이트)을 들락거린다. 30개의 팀이 어느 주, 어느 도시에 있는지 구글 검색을 해서 캡처해 둘 정도다. 팀의 주축선수가 누구인지 매년 관중 동원 순위는 어떻게 되는지도 주요 관심사다.
[Washington Nationals]라는 팀이 있다. 200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미국 워싱턴으로 연고 이전을 하면서 팀명도 바꾸게 된다. 그 때 ‘팀이름이 내셔널스가 뭐야~ 수도를 연고로 두고 있다고 그런가? 참 팀이름 촌스럽네~’생각했다. 내셔널스는 전신인 엑스포스가 그랬던 것처럼 늘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었다. 수도를 연고로 하고 있는데 여전히 팀의 성적이 부진하고 관중 동원이 잘 되지 않는 것이 궁금했다. 우연히 내셔널스 경기를 중계해주는 캐스터의 입에서 “워싱턴에는 흑인 수가 월등히 많죠~!”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는 사람, 권력, 돈, 힘이 모두 모이는 곳인데 그래서 오죽하면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는 말도 있는데, 전 세계의 중심·전 세계의 주인인 미국의 수도에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많다니. 이상했다.
이 책 「미셸 리, 잠든 교실을 깨워라」를 읽으며 워싱턴D.C.와 미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물론, 마음에 두고 있던 궁금증도 해소됐다.
워싱턴 D.C.가 미국의 수도이고 미국 입법·행정·사법부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산업 활동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인구 구성의 70%이상이 흑인이고 빈부의 격차와 학력의 격차가 주변 대도시권의 그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 그리고 다른 도시들처럼 주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연방정부에 의한 지원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워싱턴 D.C.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97퍼센트가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갖추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p.172)
가장 심각한 것이 교육문제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린 사람이 바로 미셸 리 교육감이다. 몇 해 전 한국에서는 ‘한국계 교육감 미셸 리’라 해서 앞 다투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교육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에 있어서 그녀의 생각과 내 평소 생각이 일치했다.
나는 한국의 공교육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정년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철밥통’이라는 직업인식이 깨지지 않는 이상 공교육 문제의 해결은 요원한 일이라고 본다. 50·60의 나이인 교사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교사들의 구태의연하고 반복되는 교수방식과 내용이다. 긴장감이 없으니 가르치는 것도 아이들 상담하는 것도 대충대충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사가 더 많을 거라 희망을 가져보지만 아이들에게 직접 듣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더 심각하다.
“교육제도를 떠받들고 있는 대표적인 세 가지 기둥은 바로 고정 급여, 종신 재직권, 근속 연수입니다. 하지만 교수 능력, 성적에 대한 책임, 실력의 토대 위에 교육제도를 바로 세우지 않는 이상 성공할 수 없습니다.” (p.106)
“웨인가튼을 비롯한 미국 교원노조 지도부가 보기에 미셸 리는 도심 지역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력 없는 교사들을 쓸어 없애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기회주의적인 교육 개혁가들의 우두머리였다.” (p.173)
미셸 리가 진단하는 워싱턴D.C. 교육제도의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미국의 수도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 요소인 읽기와 숫자 셈에 있어서도 미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교육시스템’이라고 진단했다.
나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학교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상의 미국 학생들과 교사들은 격의 없는 대화와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 뭔가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교실의 모습 등이었다. 수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과 힘을 동원해 아이를 미국에 유학 보내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낯선 진단이었다.
물론, 책을 통해서 미국은 각 주와 도시마다 교육수준이나 환경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흔히들 이해하고 있고 예상하고 있으며 기대하고 있는 장밋빛 학교의 모습이 100% 진실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약 4년 동안 워싱턴 D.C. 교사들 중 대략 절반이(해고,사임,퇴직 등으로)자리를 떠났고, 교장 중 3분의 1이 해고당해 워싱턴 D.C.를 떠났다.” (p.300)
미셸 리는 과감히 철퇴를 가했다. 시의원과 강력한 힘을 가진 교원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낸다. 학생 수도 없이 교육예산만 깎아먹는 학교를 폐교하고 무능한 교사들의 자리를 없애버렸다.
“잠깐 머무르다 떠나는 교육감들은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변화를 일구어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p.36)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학교가 변했다. 도저히 수업환경 조성이 되지 않았던 공립초등학교의 분위기가 바뀌고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젊은 교사들의 수업으로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시장, 시의원, 교육청 직원,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가 좋아할 일이었다. 하지만 확연한 반대를 이겨낸 정책들은 예상치 못했던 지속적이고 졸렬할 정치적 공세에 탱크같이 밀어 붙이던 그녀도 질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미셸 리의 논리도 인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워싱턴 D.C. 유권자들에게는 소용없었다.” (p.251)
“왜 가장 먼저 ‘자신들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냐’는 것이 아마 시의원들의 본심이었을 것이다.” (p.255)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한국에는 미셸 리 같은 교육감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진보적 교육감이 몇 명 등장하기는 했지만 무상급식 같은 당연한 논리조차도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빨갱이라 공격받는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교육문제 관련 책이 출간되고 수많은 해결책이 난무하지만 ‘교사 정년제 폐지나 무능 교사 해지’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제 살 깎아 먹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공론화와 진단·해결 방안이 없는 이상 쏟아지는 정책들은 ‘모래위에 쌓는 성’일 뿐이다.
또한 정치적 분위기에 가장 먼저 휘둘리는 것이 교육 정책인 한국에서 정치권 눈치 안보고 정말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두둑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나올 리 만무하다.
미셸 리가 한국에서 교육감을 했다면 절대로 워싱턴D.C.에서 했던 것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