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맙다 - 상담가 폴라 다시의 감성 에세이
폴라 다시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대학시절 절친한 후배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평소 활발하고 늘 밝게 웃고 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내어 식사하고 난 후 오랜 시간 대화했다.

그러나 대화를 한 시간만큼 그 후배의 진짜 어려움과 아픔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보다 뭔가 말을 돌리고 진실을 내게 얘기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미 없는 대화의 종지부를 찍으며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을 때, 그 후배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형~! 형은 부모님이 이혼하신 그 느낌을 알아요? 모르잖아요! 그러면 소용없어요”

소리치지도 나를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그렇게 내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을 텐데 후배는 체념하듯 말했다.

분명히 기억한다.

아무런 희망이나 낙관이 담기지 않은 공허한 단어와 단어의 조합이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문장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두고 후배는 서둘러 버스를 타기 위해 내달렸다.

 

그 후론 어떠한 사람을 만나도 ‘내가 다 이해하고 있는 척’, ‘내가 다 아픔을 헤아리는 척’,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는 척’ 하지 않는다.

내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가진 철칙이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과 상처 내지는 경험에 대해서 상담을 한다느니, 해결해 준다느니 하며 거들먹거리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에 다름 아닌 일이라 치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버지께서 6년 정도 대장암 투병을 하고 계신다. 지금은 다행히 90% 완치된 상태시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가 좋다고 해서 6년간의 투병생활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겪었던 가족들의 아픔과 상실감, 상처와 배신감 등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친척이나 주위 절친한 이웃들조차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로지 투병생활을 오롯이 지켜보고 감내해 온 아버지와 가족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 의미 없는 격려를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말을 가볍게 받아 넘길 때가 많다. 물론, 그들도 아버지와 가족을 위로하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선의겠지만 종종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지는 그들의 말에 또 한 번 상처받고 마음 아파할 때가 있다.

 

폴라 다시의 책 「세상에 고맙다」를 최대한 아버지 투병생활을 생각하며 읽었다. 나와 작가의 아픔의 정도를 산수로 계산해 저울에 달아 누가 더 힘들고 아팠나를 따져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의 부재가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 중 가장 높은 수치라는 결과도 있듯이 작가는 최고의 상실과 절망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주 작은 렌즈를 통해 삶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며, 지금까지 굳게 믿어온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 그 메아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커지고 있었다.” (p.80)

 

“‘본다는 것’은 대단히 불분명한 일이다. 우리는 사물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이미지를 창조한다. 우리의 추측은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도 흐릿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신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미리 정해놓기 때문이다.” (p.89)

 

하지만 작가는 책을 통해 나의 외부를 둘러싼 불편하고 아프고 상처 되고 상실감이 느껴지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때로는 무시하기를 권유한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방어하고 애써 반응하는데 쏟는 에너지를 완전히 나의 내부로 돌리기를 또한 권유한다.

 

특히 우리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것인지 책의 곳곳에서 지적하는데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다.

 

 

‘나의 바깥’보다 ‘나의 안’을 집중하고 그 안에서 나와 너, 너와 세상을 바라보고 관계 맺었을 때 경험한 놀라운 신비에 대해서 소개해 놓고 있다.

 

“그 순간 눈보라 속의 어떤 존재가 나에게 다가와 명령했다.”

“멈춰.” (p.164)

 

물론, 눈보라에 파묻혀 같이 가던 친구도 잃어버리고 죽음의 갈림길에 있을 때 작가가 들었다던 ‘멈춰~’라는 신비로운 음성 같은 것은 전혀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어떠한 역경과 곤란함 가운데에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잃지 않고 처한 외부적 환경에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름대로 해석해 이해했다.

 

바쁘기도 바쁘고 신경 쓸 것도 많은 현대를 살아가며 작가의 권면대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쓸데없고 배부른 소리 정도로 취급받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문득 하게 된다.

 

좀 천천히 살고 자세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아버지의 투병생활 중 겪은 여러 가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것들로부터 하나하나 나 자신을 구출해 내는 진지하고 솔직한 내면의 과정과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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