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박경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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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해부학」이라는 책 제목을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해부학이나 의학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터라 찾아보지는 않았다. anatomy의 뜻이 ‘해부학’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 책 「해부학자」를 읽으며 「그레이 해부학」이 얼마나 해부학 역사에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유명한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와는 무슨 관련이 있을 까 생각했는데 주인공 이름이 그레이 였다는 사실을 친절하게도 번역자가 해 주었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꽤나 어렵고 지루한 책일 거라 지레 짐작 했다. 그런데 「그레이 해부학」을 집필하고 삽화를 그린 두 명의 친구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이야기를 그린 논픽션이었다. 주로 삽화를 그린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일기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으며 그때를 그려낸다. 저자인 빌 헤이스 또한 해부학 실습에 직접 참여하면서 150년 전 두 명의 헨리가 애쓰고 힘들게 만들어 낸 그레이 해부학 책속으로 들어간다.

 

 

 

“헨리 그레이라는 인물에 관한 전기는 단 한 권도 없었던 것이다.” (p.15)

 

 

「그레이 해부학」이 오랜 시간 해부학계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 책이지만 책의 저자인 헨리 그레이와 삽화가인 헨리 밴다이크 카터에 대한 전기 및 기록은 거의 없다는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저 사진을 발견하면서 완전히 두 명의 헨리에게 빠져 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되었다.

 

먼저, 나는 진화론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화론과는 조금 다르지만 창조주가 우주와 만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많은 책과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내가 믿는 창조론을 재확인하고 확고하게 느낄 때는 종종 경험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이었다. 의도치 않은 신비에 압도되는 경험 그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몸에서도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연이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증거를 제공하지만 내 경우에는 인간의 해부 구조가 그렇다고 보는 바이다.”

“머리를 돌릴 수 있게 하는 선회축, 고관절의 구멍 안에 들어 있는 인대(ligament), 눈의 도르래 또는 활차근육(trochlear muscles)” (p.149)

 

 

인간의 손가락 관절과 유사한 로봇의 관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라와 기업과 연구소와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하지만 굉장히 간단한 관절기술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팔꿈치가 안으로만 굽혀지는 것, 눈꺼풀이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는 것. 등 작가는 해부학 실습을 실제로 하며「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참고하는데 이 책에 실린 삽화들만 봐도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진화론, 창조론 둘 다 이론이다. 어떤 이는 믿음으로 믿기도 하고 어떤 이는 믿음으로 믿지 않고 어떤 이는 과학으로 믿고 어떤 이는 과학으로 믿지 않는다. 선택은 각자가 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친구다. 친구.

 

“나이와 종교와 출신 배경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의학과 과학에 관한 깊은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소 섬뜩하게도 해부에 관한 열정 또한 공유하고 있었다.” (p.161)

“그레이는 감독관으로서 머리에 온통 일에 관한 생각뿐인 반면, 카터는 변덕스러운 예술가로서 뮤즈가 찾아오지 않는 까닭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p.237)

“불과 1년 6개월 안에 해부학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책을 써야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속에서라면 이들 두 사람 사이에 더 많은 다툼과 창의적 갈등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p.239)

 

작가가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일기를 읽으며 내린 결론은 두 명의 헨리가 참 다른 면을 가진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일생의 역작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그들은 대중 해부학 서적을 내는 것이 애초 목표였다. 더군다나 시중의 해부학 책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초판이 판매되었다.) 「그레이 해부학」집필과 삽화제작을 위해 만나고 이야기하고 관계를 이어왔지만 둘은 애초부터 참 다른 사람이었다.

 

헨리 그레이는 저작권을 확보해 두어 지금까지 4대에 걸쳐 저작료를 챙기고 있지만 헨리 밴다이크 카터는 단돈 150파운드로 끝났다고 한다.

 

 

나도 친구가 있다. 어릴 때는 꽤 많았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보니 숫자는 줄어들었다. 두 명의 친구가 있다. 대학 때부터 이어오는 인연들이다. 십 수 년이 지나고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들이 되었지만 여전히 만나면 애들같이 논다. 유치하게도 ‘삼합회’라는 이름도 만들어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 춥고 배고프던 대학생 시절 종종 모여 고기를 구어 먹었었다. 셋이 마음을 합해 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 해서 ‘삼합회’다.

 

세 명이다 다르다. 기질유형 검사 중 MBTI가 있는데 세 명의 기질이 같다고 나온다. 하지만 모이면 다 다르다. 성격부터 습관, 기질 등 모든 것이.

그래서 더 재미있다. 많은 것들을 함께 해오고 있다.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두 명의 헨리는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한 명의 일기에 의존한 추론이기에 100% 맞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했다고만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늘 한 명의 일기에 또 다른 한 명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빌 헤이스도 이 책을 집필하며 소중한 친구 스티브를 잃는다. 마흔 셋의 젊은 나이인 친구를 잃은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생뚱맞게도 나는 내 친구 두 명과 함께 아직 먼 일이기는 하지만 ‘누가 한 명 죽기 전에 책에 등장하는 두 명의 헨리나 작가와 스티브처럼 무언가를 해 놓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레이 해부학」이나 「해부학자」처럼 멋진 책을 내기에는 세 명 모두 글 실력이 없고 노래를 만들자니 작곡 실력이 없고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리뷰를 쓰며 카톡을 날렸지만 답이 없다. 이런 무심한 놈들을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그냥 삼겹살이나 한 번 더 구워먹어야 겠다.

 

 

아!! 곳곳의 숨어있는 삼겹살 집을 찾아다니는 삼겹살 맛집 기행으로 여행·맛집 에세이를 써볼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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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세트 - 전2권 - 가난한 성자들 조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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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두 번 갔다 온 것이 이 책 「조드」를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광야와 게르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참 신기한 노래 허미와 말 머리를 한 악기 마두금을 연주하던 공연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 책에서 그런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몽골에 가기 전에는 여행의 필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여행 갈 돈으로 책을 사서 더 다양하고 알찬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독서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몽골 현지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그들과 어울리고 게임을 했다. 시장을 보고 그들의 친지들을 만났다. 너무 달랐다. 완전히 달랐다. 인종적·어문학적으로 한민족과 굉장한 유사성이 있는 몽골이었지만 삶의 양식은 완전히 달랐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던 대륙성 기질을 직접 보고 겪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흔히 유럽의 대륙성 기질이라고 말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대륙적 기질의 태동이 유럽이 아닌 칭기스칸이 이룬 대정벌을 통해 유입된 몽골 기마민족 특유의 기질이 아니었나 싶었다.

 

 

“성이 뭔데요?”

“말을 탄 사람이 못 넘어 다니게 마을을 빙 둘러서 막은 울타리야.”

“왜 그런 곳에 갇혀서 살아요?” (1권, p.69)

“국경이 뭐지? 아마도 자기들 땅이라 표시한 만리장성을 말하나 보지요. 하하, 그놈들 참 귀엽구만. 푸른 하늘도 만 리 구름으로 막아놓고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그래. 하하하하.” (2권, p.160)

 

 

끝없는 초원과 지평선을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자라온 몽골의 유목민들에게 “경계”, “담”, “성”같은 것은 무의미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고 눈을 뻗어도 닿지 못하는 땅과 초원인데 성을 쌓고 담을 두르고 당시 금나라가 축조한 만리장성 따위는 한낱 레고 쌓는 놀이처럼 장난질로 여겨졌을 것이다.

 

 

“칭기스칸은 쥐르긴 족을 반역자의 예속민이 아니라 평범한 백성으로 분류해 몽골국의 일원으로 흡수해버렸다.” (2권, p.170)

 

“초원에는 이제 귀족도 없고, 특권 가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나 공적의 크기에 따라 품신을 받고, 품신의 크기에 따라 전리품을 가졌다.” (2권, p.286)

책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지만 당시 칭기스칸의 군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한 법의 형량을 받아야 했고 신분의 귀천이 없었다고 한다.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 장군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팍스로마나나 팍스아메리카나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융화·융합 정책 또한 상하의 개념보다 좌우의 개념에 익숙하고 체득화된 몽골 유목민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의 제목 「조드」또한 그렇다.

 

 

“마침내 겨울이 지났다. 조드는 유목민의 삶을 초토화시켰지만 인간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여주고 갔다. 고원에 엄청난 추위가 머무는 동안 푸른 하늘처럼 영원한 것과, 낱낱으로 존재하는 찰나의 생명들이 너무나 극적이고 생생하게 대조되었다.” (2권, p.67)

“신기한 일이었다. 조드를 겪고 나서 초원의 모든 세력은 일제히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다.” (2권, p.73)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조드는 인간과 가축에게는 잔인한 형벌이다. 하지만 자연만이 내릴 수 있는 가장 공정한 형벌이다. 조드는 사람과 가축, 식물을 비껴가지 않는다. 조드 앞에서는 다 똑같다. 두 번의 몽골 여행 시 홈스테이를 했던 민데형네 가족이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곤 하는데, 재작년과 작년 유목민인 친척들이 조드로 많은 가축을 잃어서 유목민 생활을 접고 수도인 울란바타르로 이사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참 무서운 것이라 했었다. 재작년 조드는 전 세계적으로도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근래 일어나는 조드는 책에 등장하는 1000년 전 조드 보다 훨씬 무섭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몽골의 초원이 더욱 사막화되어 가고 그로 인해 조드의 횟수와 강도, 세기가 증가하는 것이다. 유목민은 점점 줄어들고 너도나도 울란바타르로 이주하다 보니 도시는 도시대로 실업난과 환경공해(가난한 유목민들은 도시에서도 낮은 구릉지에 게르를 짓고 산다. 울란바타르에 가서 주위 산들을 둘러보면 온통 게르로 가득 차 있다.)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과거의 찬란하던 역사를 되새김질할 틈도 없이 힘든 시기를 겪은 몽골이 지금도 과도기를 겪고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광물자원의 대다수가 이미 탐욕스런 나라의 기업들에 팔려나간 실정이다.

그래도 민데형네 가족을 만날 때마다 늘 칭기스칸을 얘기한다. 초콜렛도 보드카도 칭기스칸이 새겨진 것이 많다.

 

 

 

 

                                                       (ㅋㅋ 조드와 함께 ㅋㅋ)

 

 

작년 말 민데형 아버지께서 한국에 다녀가실 때 선물해 주신 보드카. 너무 독해 4분의1도 마시지 못했다.ㅋㅋ

이 책에 대한 몽골의 관심이 뜨거운 것도 사실은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몽골사람들의 고육지책인지도 모르겠다.

조드는 1000년 전이나 1000년 후인 지금이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말발굽으로 재패한 칭기스칸의 본격적인 활약상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후속작 연재를 넌지시 밝혔는데 신나는 내용이라면 조드1,2권 보다 더욱 대박이 날 것 같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큰 감동이었던 엘승타슬라헤(작은 고비라는 뜻) 사막에서의 일출장면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펼쳐지는 장관에 넋을 잃고 주룩주룩 눈물만 흘렸었다.

저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말발굽 소리를 기대해 본다.

 

 

 

아~~ 몽골에 또 가고 싶다. 저 초원으로 저 사막으로 조드의 흔적으로

“삶이란 그렇게 몽롱한 것이다. 아름답고 참혹하다.” (1권,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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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금 - 호리에 다카후미 장편소설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 / 네오픽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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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한복음 2장 13-15절)

예수님 당시에는 유월절이 가장 큰 명절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죄를 대신해 죽을 가축을 사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까지 가야 했다. 걸어서 예루살렘까지 가며 종교적 의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종교 지도자라 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종교 장사를 시작했다. 시골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가축을 끌고 오기가 힘이 드니 편하게 유월절을 치러낼 수 있도록 성전 안에서 가축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매매를 더욱 유용하게 하기 위해 환전 및 고리대업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월절이 돈 장사가 된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유월절은 한 몫 챙기는 대목이 되어버렸다. 예수는 분노하시며 장사치들을 쫓아내셨다.

지금의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물신화이다. 교회가 돈과 권력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교회의 성장, 교회건물의 대형화, 성도수의 증가에 혈안이 된 것이다. 맘몬으로 지칭되는 물신을 섬기게 되었다. 교회의 맛을 잃어버리면 본질은 놓치게 된다. 교회가 돈 문제에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면 예수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 한국교회에 예수가 오시면 채찍을 휘두르시던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분노보다 훨씬 큰 분노로 한국교회를 쓸어버리리라 확신한다.

결국 돈 문제이다.

이 책 「배금(拜金)」은 구미를 당기는 책이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한 소설인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어이, 유사쿠. 부자 되고 싶지 않아?”

“부자로 만들어줄까?”

“네가 부자가 되면 대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어졌어.” (p.51)

“그래, 욕망이야. 욕망이 돈의 가치를 정하지. 그리고 그건 사람마다 달라. 원래 돈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 (p.61)

상상조차 못할 정도의 힘과 돈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나에게 저런 말을 한다면 나는 주인공 유사쿠처럼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농이라도 좋으니 한 번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같은 얘기가 있지 않나. 어느 허름한 노인에게 베푼 우연한 친절로 인해 친구가 되고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편지 한 통 에는 그 노인이 죽었고 알고 보니 그 노인은 대단한 재력가였고, 죽기 직전까지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젊은이에게 유산을 상속해준다는 편지...

유사쿠는 아저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예전에 하던 다마고치 형식의 게임을 개발해 엄청난 IT업계 실력자로 등극한다.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아저씨가 지시한 대로 움직였더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다 망해가는 2군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고 거대 언론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한다.

“어떤 소동이 일어나면 언론은 그 당사자에게 공개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때로 몰려들어 몰아붙인다. 그러다 결국엔 사생활까지 파헤치는 주제에 자신들은 늘 익명성을 보호받고 있다. 언론이라는 집합체 안에서 그 개인은 결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고도 뻔뻔스레 있는 것이리라.” (p.173)

표면적인 이유는 아주 좋았다. 갑자기 게임개발 하나로 떼돈을 번 IT의 새내기에서 곪을 대로 곪은 프로야구계와 언론계를 개혁하려 덤벼드는 혁명가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가장 순수해야 할 스포츠의 영역에서도 가장 공정해야 할 언론의 영역에서도 돈과 연관이 되고 섞이면 말도 못하게 추잡해 진다.

유사쿠는 신이 났다. 자신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의 이복여동생 유리코에 의해 아저씨가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아버지 가도쿠에게 복수하기 위해 만든 치밀한 계획에 등장하는 그럴듯한 주연배우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폭로하게 되어 유사쿠는 한 순간에 자신이 누리던 지위와 돈, 권력을 잃어버린다.

한순간의 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소설의 구성은 소재만큼 치밀하지 못하다. 글이 작가의 머리를 따라오지 못한 것 같다. 마치 전능자처럼 유사쿠를 조종하고 그의 예언대로 모든 일이 되어가는 프레임을 받쳐 줄 치밀한 구성이 뒷받침 되었다면 더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유사쿠가 아저씨의 아버지인 가도쿠를 찾아가 아저씨의 모든 복수극을 폭로하는 것으로 사건이 허황되게 끝나 버리는 설정 또한 좀 당혹스러웠다. 실화에 바탕을 두더라도 좀 더 극적으로 각색하였다면 좋았을 듯싶다.

결국 돈의 문제다.

종교도 정치도 거의 모든 갈등도 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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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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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1잔.. 4분, 권총 1정.. 3년, 스포츠카 1대.. 59년!

모든 비용은 시간으로 계산된다!!

근 미래,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팔뚝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13자리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때문에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시간을 갖고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 반면, 가난한 자들은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노동으로 사거나, 누군가에게 빌리거나, 그도 아니면 훔쳐야만 한다.

돈으로 거래되는 인간의 수명!

“살고 싶다면, 시간을 훔쳐라!!”

얼마 전 보게 된 영화 『인 타임(In Time)』에서도 시간을 사고 파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산만한 전개와 피식 조소를 던지게 되는 결말에 아쉬움이 많았다. 콜라를 따서 마셨는데 톡~! 쏘는 맛이 없는 것과 같았다.

이 책 「스타터스」또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북미대륙의 초토화가 배경이다. 태평양 연안국들과의 전쟁에서 생물학 미사일이 사용이 되고 먼저 백신을 맞은 어린 세대와 늙은 세대를 제외한 중년층은 모두 사망하게 된다.

사회계급은 완전히 둘로 나뉘게 된다. 엔더로 불리는 노년층과 어린 아이들 둘로. 기득권의 모두를 가진 엔더들은 기존의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노년층을 노예처럼 부린다. 그리고 그들은 확실한 신변이 보장되지 않은 아이들을 잡아다 처벌하고 강제 노역을 시킨다. 물론, 돈 많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할아버지, 할머니를 둔 아이들은 제 부모가 없어도 여전히 조부모의 보호 아래 모든 것을 향유하며 살아간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엔더들의 탐욕을 끝이 없다. 젊음을 훔치려 한다.

그런 엔더들의 심리를 이용해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이라는 회사는 연고도 없고 형제도 없는 거리의 부랑자 아이들을 찾아 엄청난 계약금을 들이밀면서 늙어빠진 노인들에게 자신들의 싱싱한 몸을 렌트할 것을 제안한다.

뭔가 찝찝하고 뒤가 켕기는 일이지만 살아갈 방도가 없는 아이들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엔더와의 트랜스폼 수술 간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쓴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문제가 상존하지만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은 개의치 않는다. 넘치는 돈을 가진 엔더들의 욕구를 풀어주고 돈 없는 아이들의 절망스러운 현실을 개선해 준다는 명목상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켈리 또한 병을 앓고 있는 동생 타일러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을 찾는다. 하지만 이상한 환청이 들리고 자신을 산 엔더 헬레나와 접선을 하게 된다. 헬레나의 손녀 엠마는 흥청망청 부잣집 공주로 자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을 찾았고 실종되고 만 것이다. 자신의 손녀를 잃어버린 헬레나는 직접 트랜스폼을 하여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실질적 리더 올드맨과 적극적 지지자인 상원의원 해리슨을 살해하려 한다. 그것에 켈리를 이용한 것이다.

“켈리... 그러지 마.. 프라임으로... 돌아가면 안 돼. 위험해... 내 말 들리니? 돌아가서는 안 돼...너무 위험해...” (p.164)

“나는 너를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너를 이용하게 돼서 미안하구나. 그리고 우리가 너에게 남겨 준 세상에 대해서도 미안하다.” (p.447)

뭐...어쨌든 올드맨과 해리슨의 음모를 파헤치고 젊음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입법추진을 막게 된다. 그 과정에서 헬레나가 죽게 되지만 켈리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신의 재산 절반을 내어주고 살고 있던 대저택도 타일러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켈리에게 준다.

아... 사실 소재의 기발함에 미치지 못하는 구성과 전개가 아쉬웠다. 영화 『인 타임(In Time)』도 소재와 도입부만큼은 좋았지만 끝이 흐물흐물했다. 이 책 「스타터스」도 비슷했다.

트랜스폼 수술과정에서 칩하나를 더 넣고 덜 놓는 단순한 실수와 의도를 통해 헬레나와 켈 리가 접선을 하고(사실 내게는 접신과 같은 느낌이었다) 켈리와 올드맨이 접선을 하고 이런 것이 다소 유치했다.

마지막 올드맨과 켈리가 벌이는 헬리콥터에서의 난투극도 만화 같았다.

조금만 더 세련되게 전개했다면 소재의 기발함을 더욱 배가 시켜 흥미롭고 손에 땀이 나는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텐데...아쉽다.

“영구렌탈입니다. 렌터가 되는 대신에, 몸의 주인이 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전문 기술이 갖춰진 완벽한 몸을 선택하실 수 있고 여러분의 남은 삶 동안 그 몸을 유지하실 수도 있습니다. 영원히 환상으로 사시는 겁니다.” (p.301)

지금은 짐작할 수 없는 미래의 언젠가 정말 젊음을 사고팔고 시간을 사고파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환상으로 산다는 것이 무작정 좋은 일은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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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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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구입한 로또 한 장이 1등으로 당첨되어 대박이 나거나 우연하게 나간 자리에서 첫 눈에 반한 상대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거나 우연하게 본 책의 구절에서 인생을 뒤흔들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하는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고 싶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또 1등에 당첨되었지만 흥청망청 쓰느라 오히려 돈을 다 까먹고 빚 독촉에 시달린다거나 첫 눈에 반한 상대가 말도 못할 바람둥이라거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깨달음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겪거나 깨닫는다면 우연은 우연히 아니라 절망이다.

그래도 한 번 쯤은 겪어보고 싶다.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생각지도 못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한다면 그저 쳇바퀴 돌리는 것에 만족해야 할 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김중혁은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다름없다. 처음 읽었던 김중혁의 책은 「좀비들」이었다. 뒤통수를 철퇴로 맞은 듯 얼얼했다. 기발하고 생뚱맞았다. 이 책 「미스터 모노레일」또한 그랬다. ‘아~ 똑같은 사물을 보고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 자신을 자학했다. 작가는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상상력은 부수적인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사물과 사안에 대한 아주 민감하고 세밀한 관찰력이 있어야 작가다.

 

처음 읽었던 「좀비들」보다 재미는 없었다.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스토리의 힘도 부족한 듯싶었다. 차라리 제목을 「볼스 무브먼트」로 해야 전체 구성과 맞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도 재미있기는 재미있었다. 주인공 모노가 겪는 모든 일들이 실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히 모노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우연히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어 전 세계적인 히트를 하게 되고, 동업자인 고우창의 아버지 고갑수를 찾으러 간 유럽에서 만나는 레드아저씨와 프링글스 승무원, 44번 빨간 제복의 특검반 아저씨 모두 우연히 만난다.

 작가 김중혁은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우연의 일치를 독자로 하여금 ‘아~ 뭐야~! 또 우연이야~!’, ‘이거 너무 한거 아니야~!!’라고 느낄 틈이 없게끔 스토리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는 모노가 겪는 우연한 일들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작가의 의도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전적으로 작가의 힘이다. 이것은.

하여 유치하지 않다. 억지스럽지

도 않다.

 

 

“모두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런던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외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

 

책의 마지막장에서 작가의 기가 막힌 센스와 그것을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능력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우연인가...우연인가 봐...우와...이런 일도...있을 수 있나... 있겠네... 우와...신기하다.... 진짜 그런가....나도...가보고....싶다....’

그런데!!! 뭐???? 다 허구라고???

허탈하면서 뭔가 사기를 당한 것 같으면서도 피식 웃음이 난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 몬탈치노라는 마을과 그 마을의 사람들은 존재 가능성만으로 모노의 마음속에 실재했다.” (p.225)

 

작가 김중혁은 점철된 우연의 반복을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으로 치환한다. 그것이 본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레드 아저씨로부터 우연히 들었던 이탈리아의 몬탈치노 라는 마을에 대한 동경과 희망의 존재가 새로운 존재로의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게임이란 말야, 어떤 일을 누가 더 잘하는가를 겨루는 게 아니라 제한된 환경 속에서 누가 오랫동안 살아남는가를 겨루는 거라고 할 수 있어.” (p.12)

 

“어쩌면 사람들은 진실 같은 건 오히려 모르고 싶어 하는지도 몰라. 삶의 진실에 짓눌려서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단 거짓된 평온함 속에서 환희를 찾는 걸 택할지도.” (p.364)

 

 

한 쪽에서 정해버린 게임의 룰은 공평하지 않다. 이제껏 그래왔다. 하지만 내 쪽에서는 섣불리 대항할 수 없다. ‘아~ 이거 뭔가 잘못되지 않았냐!! 공평하지 않잖아~!!’ 얘기할 수 없다. 저 쪽은 에이씨!! 수틀려 버리면 게임 판 전체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한다. 모노처럼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며 위기를 넘기고 절묘한 타이밍에 구세주를 만나는 따위는 소설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다.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 쓰러지되 고개는 빳빳이 쳐들어야 한다.

 

직면하기 두려운 진실은 가슴에 묻어두고 얼빠진 놈 마냥 꽃춤을 춰줄 수 있어야 한다. ‘저 놈 저거~! 바보아냐?? 하하하’ 비아냥에도 동네바보처럼 히죽거리며 춤 춰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헬로, 모노레일]에 갇힌 5개의 캐릭터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애당초 시건방진 기대 따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주사위는 공평한 거니까. 1의 반대쪽에는 6이 있고 2의 반대쪽에는 5가 있고 3의 반대쪽에는 4가 있으니까... 이제는 내가 던질 차례다.” (p.409)

 

 

흐흐흐...

당신은 던질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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