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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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구입한 로또 한 장이 1등으로 당첨되어 대박이 나거나 우연하게 나간 자리에서 첫 눈에 반한 상대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거나 우연하게 본 책의 구절에서 인생을 뒤흔들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하는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고 싶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또 1등에 당첨되었지만 흥청망청 쓰느라 오히려 돈을 다 까먹고 빚 독촉에 시달린다거나 첫 눈에 반한 상대가 말도 못할 바람둥이라거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깨달음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겪거나 깨닫는다면 우연은 우연히 아니라 절망이다.

그래도 한 번 쯤은 겪어보고 싶다.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생각지도 못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한다면 그저 쳇바퀴 돌리는 것에 만족해야 할 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김중혁은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다름없다. 처음 읽었던 김중혁의 책은 「좀비들」이었다. 뒤통수를 철퇴로 맞은 듯 얼얼했다. 기발하고 생뚱맞았다. 이 책 「미스터 모노레일」또한 그랬다. ‘아~ 똑같은 사물을 보고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 자신을 자학했다. 작가는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상상력은 부수적인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사물과 사안에 대한 아주 민감하고 세밀한 관찰력이 있어야 작가다.

 

처음 읽었던 「좀비들」보다 재미는 없었다.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스토리의 힘도 부족한 듯싶었다. 차라리 제목을 「볼스 무브먼트」로 해야 전체 구성과 맞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도 재미있기는 재미있었다. 주인공 모노가 겪는 모든 일들이 실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히 모노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우연히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어 전 세계적인 히트를 하게 되고, 동업자인 고우창의 아버지 고갑수를 찾으러 간 유럽에서 만나는 레드아저씨와 프링글스 승무원, 44번 빨간 제복의 특검반 아저씨 모두 우연히 만난다.

 작가 김중혁은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우연의 일치를 독자로 하여금 ‘아~ 뭐야~! 또 우연이야~!’, ‘이거 너무 한거 아니야~!!’라고 느낄 틈이 없게끔 스토리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는 모노가 겪는 우연한 일들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작가의 의도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전적으로 작가의 힘이다. 이것은.

하여 유치하지 않다. 억지스럽지

도 않다.

 

 

“모두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런던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외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

 

책의 마지막장에서 작가의 기가 막힌 센스와 그것을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능력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우연인가...우연인가 봐...우와...이런 일도...있을 수 있나... 있겠네... 우와...신기하다.... 진짜 그런가....나도...가보고....싶다....’

그런데!!! 뭐???? 다 허구라고???

허탈하면서 뭔가 사기를 당한 것 같으면서도 피식 웃음이 난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 몬탈치노라는 마을과 그 마을의 사람들은 존재 가능성만으로 모노의 마음속에 실재했다.” (p.225)

 

작가 김중혁은 점철된 우연의 반복을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으로 치환한다. 그것이 본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레드 아저씨로부터 우연히 들었던 이탈리아의 몬탈치노 라는 마을에 대한 동경과 희망의 존재가 새로운 존재로의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게임이란 말야, 어떤 일을 누가 더 잘하는가를 겨루는 게 아니라 제한된 환경 속에서 누가 오랫동안 살아남는가를 겨루는 거라고 할 수 있어.” (p.12)

 

“어쩌면 사람들은 진실 같은 건 오히려 모르고 싶어 하는지도 몰라. 삶의 진실에 짓눌려서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단 거짓된 평온함 속에서 환희를 찾는 걸 택할지도.” (p.364)

 

 

한 쪽에서 정해버린 게임의 룰은 공평하지 않다. 이제껏 그래왔다. 하지만 내 쪽에서는 섣불리 대항할 수 없다. ‘아~ 이거 뭔가 잘못되지 않았냐!! 공평하지 않잖아~!!’ 얘기할 수 없다. 저 쪽은 에이씨!! 수틀려 버리면 게임 판 전체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한다. 모노처럼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며 위기를 넘기고 절묘한 타이밍에 구세주를 만나는 따위는 소설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다.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 쓰러지되 고개는 빳빳이 쳐들어야 한다.

 

직면하기 두려운 진실은 가슴에 묻어두고 얼빠진 놈 마냥 꽃춤을 춰줄 수 있어야 한다. ‘저 놈 저거~! 바보아냐?? 하하하’ 비아냥에도 동네바보처럼 히죽거리며 춤 춰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헬로, 모노레일]에 갇힌 5개의 캐릭터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애당초 시건방진 기대 따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주사위는 공평한 거니까. 1의 반대쪽에는 6이 있고 2의 반대쪽에는 5가 있고 3의 반대쪽에는 4가 있으니까... 이제는 내가 던질 차례다.” (p.409)

 

 

흐흐흐...

당신은 던질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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