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횡무진 한국경제 - 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라
김상조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3월
평점 :
촛불로 온 나라가 뜨겁던 2008년 초여름 MBC 100분 토론에 나온 김상조 교수를 똑똑히 기억한다. 반대편 정부쪽 패널로 나온 국회의원과 평론가의 어이없는 주장과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생떼를 웃음으로 받아 넘기며 조목조목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쉽고 논리적으로 정부쪽 패널의 입을 하나씩 다물게 했던 그 분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교수라는 직업이 정말 잘 어울리는 외모와 목소리,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완전히 원사이드한 토론이 되어버려서 정부쪽 패널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지켜보는 나는 얼마나 시원하던지~ 어려운 경제 분야에 대해서 시청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주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이분이 [경제개혁연대]라는 단체의 소장이시고 한국의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골칫덩어리인 삼성과 수년을 싸워온 전사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이 책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사실 좀 어려웠다. 100분 토론에 나와서 농담과 비유를 섞어가며 하는 주장과는 사뭇 달랐다. 그림책을 방불케 할 정도로 도표와 그래프가 난무한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이 개혁과 진보의 ‘실체적 내용’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접근하는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 (p.13)
“흔히 나는 진보경제학자라 불리지만, 케인스주의자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많다. 맞다. 그만큼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 개입의 현실적 수단인 관료를 신뢰하지 않는다.” (p.19)
[경제개혁연대]는 1997년 설립된 이래 줄곧 재벌과 싸워온 민간단체이다. 창립선언문에서도 <작고 소중한 성공 경험의 축적을 통해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갑니다>라고 주창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이제껏 아무도 하지 않았던 재벌을 향한 계란 던지기를 계속해서 해오고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덤빌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재벌의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편법 상속·증여, 탈세 등등 수많은 경제범죄에 대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표창을 주어 마땅한데 리뷰를 쓰기 전 [경제개혁연대] 홈페이지에 들어 가보니 열악함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하긴 그렇다. 한국에서 삼성과 싸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어쩌면 목숨까지도) 불구덩이에 기름통을 움켜쥔 채 뛰어드는 것인데 참 대단한 분들이다.
일각에서는 김상조 교수를 진보경제학자라느니, 좌파경제학자라느니 말이 많은 듯하다. 이건 뭐 재벌에 조금이라도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면 모두 빨갱이니 뭐. 그런데 자신도 진보냐 보수냐 이념의 실존적 자세에 대한 의미보다 어떻게 해야 경제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또한 책의 곳곳에서 모피아(금융 정책과 관련된 전·현직 관료들이 정부정책과 산하기관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용어)로 불리는 경제 관료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진실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정과 고민이 있지만 공적체제에 예속된 직장인으로서의 공무원이 되면 그렇게 이기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총수 일가가 5%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황제처럼 경영하는 불건전한 기업지배구조의 문제, 특히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승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법행위의 문제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전근대적 잔재의 상징이기도 하다.” (p.176)
“기업인 범죄에 대해, 검찰은 불구속 기소에 그치고,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곧이어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관행이 되풀이되는 법치주의의 이중 잣대 속에서는 경제성장은 물론 민주주의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p.192)
대단한 수사를 할 것처럼 재벌총수를 잡아들이지만 휠체어 타고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퍼포먼스 한 번 보여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다.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검찰과 법원의 과정이 진행되고 적절한 타이밍에 사면복권~! 늘 하는 얘기는 ‘한국 경제를 위해서…….’ 개가 뿔 뜯어 먹을 소리다.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이상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온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1부에서는 경제사를 다루며 거시적 경제정책에서부터 역사의 곳곳에서 태동된 경제담론을 다루는데 서구 경제가 400년에 걸쳐 수없이 만들고 부수며 만들어 낸 경제체제를 한국은 단 60년 만에 만들어 버렸다. 안 맞는 장기를 몸 속 깊은 곳에 이식해 놓다 보니 이곳저곳이 여차하면 한순간에 끝장날 것 같은 살얼음이다.
“한국경제는 중상주의(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로 건너뛴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서구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이룩한 성과, 즉 법치주의 내지 ‘법 앞의 평등한 정의’로 요약되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매커니즘이 확립되지 못했다.” (p.57)
쉽게 말하자면 서구의 경제가 오랜 기간 수많은 갈등을 몸으로 받아내고 상처를 싸매고 봉합하고 또 다른 체제를 만들어 내면서 그에 따른 정치적 제도도 뒷받침되고 국민들의 의식도 동반 성장하고 하는 과정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월남에 가라고 해서 가고 신작로라는 이름으로 논과 밭이 파헤쳐지고 집을 허물어버리면서 ‘잘 살아 보세’ 노래에 맞춰 길을 닦고 집을 만들었다.
잘 살게만 되면 그만이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 독재는 충분히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국가통제를 극대화하여 특정 수출산업을 육성해 외화를 끌어 모으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면서 재벌은 완전한 왕이 되어 버렸다. 세계 어느 재벌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문어발 경영, 족벌세습, 온갖 경제범죄가 국가의 비호와 경제 관료의 묵인아래 자행되어 왔다. ‘재벌이 잘돼야~~’, ‘낙수효과를 볼 수 있다~~’라는 말로 미혹해 왔다.
하지만 김상조 교수는 줄곧 낙수효과의 허구를 줄곧 지적해 왔고 이 책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주주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가 될 뿐이고” (p.201)
투명성, 책임성 따위는 쿨하게 개나 줘버리는 우리네 재벌님들은 왕국에서 사시기 때문에 전혀 개의치 않으실 것이다. 오죽하면 동네 빵집 상권까지 위협하는 지경이겠나. 그것도 재벌 3세의 경영수업을 위해……. 참……. 무심코 던진 돌팔매에 연못에서 놀던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아~ 할아버지 저 이제 사업 좀 해 볼래요’, ‘음~ 그래 빵집이나 한 번 해보렴.’
한국의 재벌은 안하무인이다. 제멋대로다. 그래도 걔네들이 왕이다.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간 지 오래다.
작년에 읽었던 「복지국가 스웨덴」에 제시된 경제체제가 현 시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덴마크 모델을 스웨덴 보다 진일보된 것으로 소개한다.
“덴마크에서는 실업 후 최대 4년간 실업 전 소득의 90%를 지급하는 관대한 실업급여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노동자에게 큰 저항 없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조건이 된다.” (p.338)
“실업급여의 지급기간은 90∼240일, 소득대체율은 49%에 불과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OECD 최하위권이다.” (p.340)
위는 덴마크, 아래는 한국의 현실이다.
노당자들에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제로 떠넘기면서 전혀 현실성 없는 대책을 떠드는 한국과는 참 다르다. 그래서 더 슬프고 절망적이다.
실업의 상태에 있어도 소득대체율이 90%에 달하고 4년간 실업급여가 나오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재취업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주기 위해 의무적으로 직업교육을 받게 해 주는 덴마크와 한국은 떨어져 있는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다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덴마크 모델을 소개 받으니 더 암울해 졌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바위를 깨뜨리기 위해 작은 계란이 되어 몸을 던지는 일이 [경제개혁연대]의 창립선언문처럼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되어 언젠가는 비뚤어지고 굉장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한국의 경제체제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의 무모한 도전과 제 정신이 아닌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만 찝찝하고 답답한 마음은 숨길 수 없다.
“경제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이념이 편견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추기 위함이다.” (p.67)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경제학자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간결하지만 폐부를 찌른다.
다음 책은 조금만 더 쉽게 써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