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본기 1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을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고전이 아직까지 살아 숨 쉴 수밖에 벗는 이유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인류와 함께 해온 그 생명력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하다.

 

사실 중국고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홍신문화사의 「한비자」를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특별히 중국고전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자가 많고 양이 워낙 방대해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리고 아무리 유명한 고전이라해도 번역본이 너무 오래전인 것이 많아 읽기가 버겁다.

 

중국고전을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 내에서 내 나름의 언어와 사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기」라는 Text는 변하지 않지만 시대와 역사를 통해 일어나는 Context들은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같은 Text에서도 나름의 해석을 해내는 것이 책을 읽는 독자의 중요한 의무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세 가지를 생각했다. 옮긴이사마천, 슈퍼차이나이다. 리뷰를 읽으시며 확인해 보시라.

 

 

첫 번째는 옮긴이다.

“42일, 1만 9,376킬로미터, 역자가 본기(本紀)의 현장을 답사하는 데 투자한 총 시간과 거리. 하루 평균 약 461킬로미터를 이동한 셈.”

“어지러운 책이란 뜻의 ‘난서(亂書)’라는 야유부터 어려운 책이라는 뜻의 ‘난서(難書)’에 이르기까지 많은 별명을 갖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완역본을 15년 넘게 고민하게 구상해 옴.” (p.35)

 

먼저 책을 번역한 김영수씨의 노력과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방대한 역사서를 한국어로 다시 옮긴다는 일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 텐데 단지 책상 앞에 앉아 검색하고 책 찾아가며 번역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사마천의 역사루트를 따라 「사기」에 등장하는 지명을 따라 발품을 팔았다. 사진을 찍고 기록하며 최대한 「사기」의 날 것. 그대로를 한국어로 옮기려 한 사명감에 감탄했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후 남은 삶의 전부를 <사기>의 완성에 쏟았다.” (p.53)

 

억울한 누명에 의해 남자에게는 치욕스러운 형벌인 궁형을 당하면서도 온 몸을 불태워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의 사명감과 오버랩 된다.

 

또한 나와 같은 중국고전에 대해 문외한이고 ‘중국고전은 어렵다~. 재미없다~.’라는 선입견을 가진 독자가 이 책 「완역 사기」를 볼 때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책을 구성했다.

 

“<사기>는 12편의 ‘본기’, 10편의 ‘표’, 8편의 ‘서’, 30편의 ‘세가’, 70편의 ‘열전’으로 다섯 체제, 총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p.88)

 

입이 떡 벌어지는 방대한 책인 「사기」는 더욱 독자를 주눅 들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옮긴이의 지극정성으로 꽤나 이해가기 쉽다.

 

먼저 각 ‘편’의 가장 앞부분에 ‘해제’를 배치한다. 각 ‘편’이 쓰여진 배경과 역사적 상황 등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한국어 번역문’이 온다. 앞서도 말했듯이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원문은 볼 필요가 없다. 그 다음에는 ‘명언·명구 풀이’, ‘관련 인명표’, ‘관련 서명 인명표’가 배치된다.

그리고 각 구성의 곳곳에는 옮긴이가 직접 사기루트를 따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 삽입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두 번째로 사마천이다.

 

황제에 대한 충정으로 올린 직언이 황제의 노를 사 사형을 선고 받는다. 사마천은 억울했지만 평생의 명(命)으로 삼았던 「사기」집필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남자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을 자청하여 사형을 면했다. 그 때 사마천의 나이 49세였다고 한다. 목숨보다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시 했던 고대 문인들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하지만 사마천은 살아남아 죽음의 수치를 글로 대신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석 자와 그의 책은 수천 년을 아로새기며 아직도 살아 있다.

 

사마천은 이전의 수많은 역사서의 집필 방향과 집필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사기」를 집필했다. 새로운 역사서술체인 기전체를 창조해 냈고 인간군상에 대한 관심이 가장 우선이었으며 사회적 소수자와 비주류 계층에 대한 차별함이 없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표상이 아닌 사실을 중시하였는데, 항우와 여후가 본기에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다. 사마천은 본기를 통하여 그 사람이 제왕이든 아니든 천하대세를 주도했다고 판단하면 그를 역사 사건의중심인물로 삼아 논술을 덧붙였다.” (p.174)

 

사람의 출신 성분이 어떠하고 배경이 어떠한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주목받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면 그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열전(70권)’은 <사기>에서 가장 중요한 체제다…….사회적 비주류 계층이었던 상인, 자객, 유협, 동성애자, 점술가 등 실로 다양한 계층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생동감 넘치는 인간학 보고서이다.” (p.27)

 

“열전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포함되어 있다. 특정한 시대나 시기에 그 나름 역사적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한 사람은 누구나 포함시켰다. 정치가, 학자, 군사가, 문학가, 관리 등 주류 계층은 물론 유협, 자객, 연예인, 장사꾼, 점쟁이 등 비주류 계층이나 천민들까지 두루 망라하는, 말 그대로 적나라한 인간 시장이 펼쳐진다.” (p.102)

 

사실 아직도 <열전>에 실린 사회적 소수자들은 여전한 차별 속에 살아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분명한 차별법과 사회적 제도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사회적 통념은 더욱 단단하고 경직되었다고 본다.

사마천의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더 적나라한 차별과 실제적인 위협과 처벌을 가했을 계층에게까지 눈길을 담았다는 것은 역사가로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관점이다. 역사라는 것은 늘 승리한 개인과 집단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서술에 있어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와 집필방식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당시 많이 읽히고 가치를 평가받던 역사서들을 모두 망라해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하여 「사기」를 집필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왕조들에 대한 계보와 주요사건들을 계통적으로 서술했다.

최초 중국의 설화와 중세 중국의 왕조의 중간기에 존재했던 공백을 메우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 중국, 슈퍼차이나의 ‘역사 소프트 파워 전략’이 되리라고는 사마천은 당연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슈퍼차이나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제목이기도 한데, 경제적·군사적으로 힘이 강해진 ‘슈퍼’가 아니라 수많은 소수민족과 동북아시아 타국가와의 역사격론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슈퍼’를 말하는 것이다.

 

 

 

“<사기>의 첫 편인 <오제본기>는 상고시대 다섯 제왕의 덕과 공적 그리고 계보를 기록. 특히 사마천은 자신이 주로 참고하였던 문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중화민족의 시조를 만들어냄으로써 훗날 중화주의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대일통(大一統)’ 관념을 만들어 냄.” (p.187)

 

“우의 공적을 집중적으로 수록한 <하본기>는 중화(中華)의 원형질로 거듭나고, 우의 구주는 천하의 개념이자 중국의 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夏)’는 중국이요, 중국인을 가리키는 단어로 발전하였다. 이런 점에서 <하본기>는 처음부터 정치논리와 이데올로기에 휘둘릴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p.251)

 

“이런 위험성은 최근 중국이 의욕적으로 전개하는 ‘역사 새로 쓰기’공정에 의하여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전 세계를 향한 중국의 ‘소프트 파워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p.251)

 

이 책 「완역 사기 본기」 1권이다. 전체 사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전체 「사기」에 대한 평가를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후세의 개인과 집단·국가·정권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기」의 일부 내용을 전도하여 이용한다면 이것은 꽤나 심각한 일이다.

 

<오제본기>와 <하본기>는 쉽게 얘기하면 고대 중국의 왕조에 대한 이야기다. 상고시대와 중세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는 역사의 단추를 찾지 못하던 중국에게는 「사기」야말로 딱 들어맞는 역사책인 것이다. 「사기」에 실린 고대 왕조의 기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관변·어용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더해지면 금세 강력한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수많은 소수민족과 주변국들과의 역사문제들에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연속성을 확보하여 한족의 발상지인 중원 지역에 둥지를 틀었던 하·상·주의 건국 연도와 주요 사건들의 연대를 확정하는 것은 향후 이어질 55개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프로젝트의 방향타를 설정하는 일이며,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한족 중심의 역사관 확립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수립하겠다는 의미다.” (p.253)

 

 

그것은 다름 아닌 ‘중화주의의 부활’이다. 중국이 최고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슈퍼차이나다. 어차피 현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2대 파워로 자리 잡았고 국제무대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과 중국 내 인권·여론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특히 미국)의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별한 사고와 사안이 있어도 중국 정부의 대변인이 나와 ‘내정간섭이니 조용들 해라!!!’라고 얘기하면 아무 말 하지 못한다.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하고 정치적 파워도 급속히 높아져 가는 시점에서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고 봉합해야 할 문제는 ‘역사문제’이다.

 

‘중화, 중화’ 떠드는 것이 단순한 중국 민족의 자존심이나 인구 수, 경제 성장력 따위가 아닌 ‘고대 역사책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라는 인증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기」에 대한 재평가와 특히 <본기>에 실린 <오제본기>와 <하본기> 등에 대한 집착이라 할 수 있다.

 

옮긴이는 이러한 문제의 시급성과 중대성에 대해 분명히 강조하고 경고하고 있다. 어차피 <오제본기>, <하본기>는 한국의 고대 역사와도 맞물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양국이 협력해서 함께 연구하고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 조차 역사를 배우지 않는 한국에서 이런 옮긴이의 주장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 확신한다.

 

그냥 손 놓고 있다가 슈퍼차이나에게 역사마저 통째로 뺏기게 된 후에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슈퍼차이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이러한 역사문제에 대해 예산을 편성하고 조직을 구성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치밀함이 무섭기도 하다. 단순히 경제만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마저도 새롭게 재편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닌 존재가 이미 되어버렸다.

 

한국도 준비를 해야 할 텐데 걱정만 앞선다. 준비를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출간된 「사기 본기 2권」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옮긴이가 「사기」전체를 번역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명감에 대한 열정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느라 고생한 나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방수지구심어방수(防民之口甚於防水)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은 물을 막는 일보다 심각합니다- 소공(召公)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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