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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새끼입니다 -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 정철의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개새끼’라는 어감은 좋지 않다. 불편하다. 흔히 욕으로 통용된다. 지역에 따라 ‘개새끼’를 발음할 때 강세가 다르다. 어렸을 때 서울에 사는 큰 고모 댁에 놀러가서 그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들었던 ‘개새끼’는 내가 살던 경상도 지역의 아이들이 하던 ‘개새끼’와는 달랐다. 욕이라기보다 귀여운 말장난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저기 벌교, 순천 정도의 질펀한 욕은 아니지만 내 고향 경상북도 해안 지역의 욕 또한 질펀하다. 아마 서울·경기 지역에서 표준말(나는 이 말을 참 싫어한다. 도대체 무엇이 표준이란 건지 모르겠다. 여튼,)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들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구토바운스를 일으킬 정도다.
하긴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서울 지하철을 타고 실컷 수다를 떨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들 쳐다보고 슬금슬금 비켜섰던 적도 있다.(사실 그땐 철없이 약간은(?) 놀던 때라 입고 있는 옷도 거시기 했었고, 대화의 98%는 욕이었으니까.^^;;;;)
욕 하나 조차도 이렇게 다르다. 지도만 보면 참 작은 땅덩어리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허리가 뚝 끊긴 체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지역마다 욕이 다르고 말이 조금씩 다르다. 생각은 더 다르고 고정관념은 더욱 다르다. 아주 사소한 것도 이렇게 다른데 국가적인 중대 사안에 대한 생각은 더욱 다르다. 늘 봐왔듯이 지난 4월 총선은 하나의 국가에서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가장 명확한 실제 사례이다.

아름다운 색의 대비를 보라. 누가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할 수 있을까?ㅜㅜ
이 책 「나는 개새끼입니다」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저자인 정철씨와 같이 나는 흔히 비꼬듯 표현하는 ‘노빠’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도 노무현이다. 여전히 정치적 타살에 의해 추락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훗날 역사가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재해석 할 때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할 정부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노빠’ 정치인들을 개 몰 듯 몰고 있고 이번 총선에 출마한 이른바 ‘노빠’진영의 후보자 들 중 대다수가 낙선했다. 봉하마을의 방문객은 꾸준하지만 정작 노무현을 바라보는 시선은 천양지차다.
나는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잘 몰랐다. 정치적 각성을 한 대학시절 그는 이미 정권 후반기에 이르렀고 아들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게 김대중은 그저 나이 많이 먹고 겨우 대통령이 되었다가 아들들 단속 제대로 하지 못해 정권 말년이 비루해진 대통령에 다름없었다. 김영삼과 거의 동일시 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정치적 각성을 한 후 김대중 대통령이 걸어온 정치적 삶과 행동을 제대로 복기한 후 김대중 대통령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재 각성이 없이는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총선에서 왜 20대 투표율이 그렇게 저조했느냐에 대한 많은 말이 쏟아졌다. 다들 맞는 얘기고 날카로운 분석이다. 하지만 노무현 시대를 살지 못한 20대 초·중반, 정확히 말하면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이어온 민주·개혁의 정치적 바람을 정치적으로 각성하지 못한 채 중·고등학교를 졸업 한 20대는 지금의 이명박 가카의 멜랑콜리한 바람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정치? 개나 줘버려~ 재미없는 아저씨들! 투표가 뭔데? 당장 취업 준비해야 하는데 뭐래?’ 이렇게 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뛰고 나는 인기 정치인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해도 먹히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한 정치적 각성을 어느 때에 하게 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요점이다.
나의 선배 세대가 가졌던 김대중에 대한 생각과 내 생각이 달랐던 것처럼 내가 가졌던 노무현에 대한 생각이 내 후배 세대의 생각과는 굉장히 다를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한 인식을 하지 못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림이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정철씨의 한 문장 한 문장은 내게는 참 아프고 안타깝고 답답하고 또 가카에 대한 일갈에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카피라이터답게 촌철살인으로 가득 담긴 내용이 쏠쏠하게 재미있다. 허를 찌르는 재치에 피식 웃다가도 현실을 적나라하게 해부하는 칼날 같은 문장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웃프다. 이 시대는 웃프다라는 웃픈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충분히 웃프다.” (p.54)
웃고 있지만 동시에 슬픈 현실. 그것을 가리키는 ‘웃프다’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현실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단어인 듯하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SNS에 잘못 올렸다가 고소가 되기도 하는 철권시대에 그저 술자리에서 술기운을 빌려 욕지거리 내뱉는 정도의 우리네 삶의 정형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다. ‘웃프다’. 웃퍼서 웃기고 슬프다.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더욱 이상하고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매일매일이 ‘웃픈’, 웃픈이들이 가득하다.
“모든 ‘서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p.28)
참 웃픈일이다. 아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서민’이니까 당연히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져야지. 물론. 돈 많고 권세 있고 빽 있고 힘 있는 분들은 미리미리 영주권이 있으시든가 병을 만들어 놓으시든가 아님 생각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방법을 준비하셔서 더 큰일을 하셔야지. 국방의 의무 따위야 ‘서민’이 하면 되지~~. 당연한 거 아냐??

악마 같은 북한을 무찔러 버려야지. 우리 ‘서민’들이. 힘을 합쳐서. 군대에서 3년 6개월을 썩고 제대하고도 이 나이까지 예비군 훈련을 가야하는(다음 달에 예비군 마지막 년차 2박3일 동원훈련이 있다. 제길!!) 나 같은 ‘서민’ 따위가 해야지. 지옥에나 떨어졌을 김정일이 남침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예비군 때문이라지 않나!!! ㅋㅋㅋ. 인간어뢰와 더불어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코미디다. ㅋㅋㅋㅋ
길게 얘기했지만 노무현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이 읽으면 이 책은 분명 재미없을 것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과 미안함이 절절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같은 이에게는 위로가 된다. 위안이 된다. 책을 읽는 동안은 현실의 ‘웃픔’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3주기가 가까워 더욱 그러하다.
한 때 '노빠'였던 것이 부끄러운 사람이나, 한 때 '노빠'였으나 전향한 사람이나, '노빠'를 비하하는 사람이나, '노빠'를 증오하는 사람이나, '노무현'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제발 이 책을 읽지 마시기를.
그렇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 중 이 책을 안 읽어본 사람들은 당장 사서 읽어 보시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이 사진에는 모두들 공감을 하겠지?

많이 많이들 드시고 얼른 인간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