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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
김명진 외 지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 / 이매진 / 2011년 6월
평점 :
해안소초에서 군 복무를 했다. 경북 울진에 있는 소초였다.
소위로 임관해 낯선 지역에 낯선 이들과 낯선 사투리를 들으며 한 소초를 책임지는 소초장 생활은 참으로 고되었다. 물론,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처음 울진에 가서 놀란 두 가지는 사투리와 원자력발전소였다. 포항이 고향인 나는 경상북도 지역의 다른 곳도 사투리가 비슷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러나 울진 사투리는 인접한 강원도 삼척의 사투리와 섞인 탓인지(예전엔 울진도 행정구역상 강원도였었다.)
내가 쓰는 사투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신기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부대에 전입 온 신입 장교들 몇몇이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했다. 어릴 때 ‘울진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배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일반인이 방문하면 발전소 입구에 홍보관이 있어 거기서 견학 및 소개를 듣는데 우리는 유관기관을 방문해 협조사항을 배우는 자리였기 때문에 발전소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발전소 내부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원자로로 추정되었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나를 압도했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값싼 원자력’이라는 주입식 교육과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연간 100어거 원이 넘는 광고에 익숙해진 까닭” (p.28)
내가 근무하던 소초에는 울진 지역 상근근무자들이 있었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인원들이었다. 부임 초기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했던 기억이 있어 이것저것 물었다.
“그래도 울진에 원자력발전소 들어와서 경기도 많이 좋아지고 취직도 많이 한 거 아니냐?”
“아닙니다. 처음에 들어올 때 반대가 많으니까 취직도 많이 시켜주겠다. 학교도 세우겠다. 지역경기 살리겠다. 했는데 아닙니다.”
“아니~! 실제로 많이 일하지 않냐?”
“중요한 자리는 전부 서울 사람들이 하고 울진 사람들은 별로 취직도 못했고 취직 했다 해도 저~ 말단 자리나 하고 있습니다. 발전소 들어와서 북면 여기 물가만 높아지고 술집이나 많아지고 별로 안 좋아해요?”
그리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끼쳐질지 모를 건강상의 위험에 대해서도 늘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책 「탈핵」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출간된 책이다. 원자력발전으로 통칭되는 핵 발전의 역사와 그 태동의 과정을 풀어내는 것으로 도입부를 전개한다.
“핵 발전은 시작부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선택이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 세대 안의 탈핵을 목표로, 우리 후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p.176)
무엇보다 핵 발전은 미·소 양국의 첨예한 냉전대립의 결과라는 것을 강하게 피력한다. 서로를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 보다 더 강력하고 폭발적인 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양국은 과학을 그런 목적을 달성할 도구로 사용했다.
허무하게 한쪽의 붕괴로 끝나버린 냉전대립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는데 그 중 가장 공황상태로 빠져버린 것은 군비경쟁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 무기를 발명하고 만들어 대던 시스템이 이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었다. 상대가 없으니 당연하다.
그때부터 핵은 발전에 이용되었다. 일반 전력을 만들어 내고 여전히 잠수함이나 항공모함 따위의 군사무기에도 활용되었다.
핵이 가져 올 엄청난 재앙에 대해서는 깊이 있고 차분하게 성찰하지 않은 채 당장의 효율을 위해 사용과 활용이 가능한 분야에는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기존 석탄·석유 발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비용 고효율의 마법을 보여주던 핵 발전은 인류의 마지막 에너지 대안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꿈은 구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미국의 스리마일 사고를 겪으며 완전히 깨졌다. 핵 발전이 결코 대안에너지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세계가 인식했다. 일본과 중국 프랑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가동 중인 원전을 멈추거나 다른 에너지 대안을 찾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 세계적인 흐름에 힘을 실어 준 것이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당장 7개의 원전을 잠정적으로 가동 중단한 독일이나 원전 건설 계획을 중단한 중국하고는 사뭇 다른 대응이다.” (p.70)
이제는 중국마저도 핵 발전이 유일한 대안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중동에 원전수주를 했다고 뉴스속보를 내보냈다. 일본과 지구반대편에 있는 유럽의 국가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물질이 유럽 상공에 도달하는 시간을 예측하고 대비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한국은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곳임에도 ‘우리 원전은 안전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무조건적 비판을 일삼는 무리에 현혹되지 말라’ 며 오히려 큰소리쳤다.
“방사능에 관한 한 허용 기준치라는 것은 면밀한 의학적 연구 결과가 아니라 원자력 산업의 유치와 확대를 위해 어용학자들이 자의적으로 만든 수치라는 사실이다.” (p.9)
유명한 교수라는 사람들은 모두 저렇게 말했다. 허용 기준치보다 현저히 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서울의 모 지역의 도로에서 허용 방사능 수치의 몇 배에 달하는 수치가 측정되었음에도 애써 무시하고 덮어 버렸다.
“한국 정부는 전력 생산량의 30∼40퍼센트 대를 유지하는 원자력을 2030년까지 59퍼센트(약 40기 추가 건설)로 높일 계획을 세웠다.” (p.27)
“현재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원전을 보유한 국가라는 썩 내키지 않는 타이틀까지 보유하게 됐다.” (p.86)
“한국은 원전 중심의 전력 시스템, 성장과 공급 중심의 에너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하고 민주적인 에너지 전환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p.86)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나라가 원자력발전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석유에너지는 고갈이 가까워졌고 풍력·태양열 등의 대안에너지는 아직 상용화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 분석한 것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가장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던 미국은 이미 잠정적인 핵발전 중지를 선언했고 유럽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던 독일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대안에너지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쏟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만이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과 전체 에너지 비중에서 원자력의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OECD국가들 중에서도 청소년 자살률과 이혼율 정도만 1등을 기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1인당 전력 소비량도 독일과 영국보다 더 높다고 한다. 수출산업군이 국가 주력산업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수출의 역군들에게 최대한 값이 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문제가 많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자력발전을 계속해서 고집하는 것은 먼 미래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몰지각이다.
실제로 책의 4장에서는 [독일이 어떻게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풍력·화력·태양열 등 여러 대안 에너지 대책이 강구되고 실제 상용화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완전히 국민 개개인에게 보급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 타 전력에 비해 비용이 높고 개발비가 높지만 핵 발전처럼 수백 년간 심혈을 기울이고 끝도 없는 돈을 쏟아 부어 핵처리물질들을 처리하고 보관해야 하는 어려움과 위험에 따르는 비용과 비교한다면 푼돈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도 더 늦기 전에 ‘탈핵’을 선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설령 재생 가능한 에너지라는 대안이 없고, 전력이 부족해 경제가 여려워지고, 삶이 고달파진다 하더라도 핵 발전은 용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p.13)
“우리는 더 안전하고 더 깨끗하고 더 경제적인 에너지 대안을 옆에 두고서도, 원자력 중독에서 아니 그 신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 (p.25)
여전히 고리 원전과 월성 원전은 수명을 연장하고 있고 영덕, 삼척 등 신규 원전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책에서도 여러 번 말하지만 지금 당장 ‘탈핵’을 선포하고 원전의 가동을 멈추면 바로 눈에 보이는 비용 문제와 ‘이미 건설한 것은 최대한 사용하자’라는 효율·편의주의가 강하게 대두되겠지만 확실하게 보이는 원전으로 인한 미래의 곤혹스러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해결해 둘 수 있다면 이만한 담보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에너지 대안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막연한 이상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데이터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 이해하기 용이했다.
“우선 에너지 수요의 증대가 필연적이지 않으며, 재생 에너지의 잠재력은 핵에너지를 대체할 만큼 크고 점진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57)
“서울의 건축물 지붕만 잘 활용해도 태양광으로 서울 전체 에너지의 30퍼센트 정도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수도권에서 에너지 소비가 집중되고, 멀리 떨어진 핵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동안 손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도권의 지역 재생 에너지 보급은 핵 발전의 필요성을 더욱 줄이게 될 것이다.” (p.167)
70∼80년대 수출을 위해 가동되던 공장 중심의 산업구조와는 다르기 때문에 전력수요가 처음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때처럼 수직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상식적인 차원의 접근이다. 맞는 말이고. 그리고 대안에너지 산업의 선두주자인 독일의 학자는 ‘독일보다 일조량이 몇 배나 많은 한국에서 왜 태양열·태양광 산업에 집중하지 않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에서 여러 번 지적했던 것은 서울과 수도권의 전력집중화를 감당해 내기 위해 멀리 울진·고리·월성에서부터 에펠탑 같은 대형 송전탑을 만들고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충분히 대안 에너지와 재생 에너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리하게 원전을 가동(수명이 다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등의)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까지 송전탑을 무리하게 건설하는(밀양 송전탑 문제 등) 것이 서울과 수도권까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서울의 건축물 지붕만 잘 활용해도 태양광으로 서울 전체 에너지 30퍼센트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하는데 왜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그에 따른 기타 확충해야 할 정책과 기술적 문제가 많겠지만 이전까지 핵 발전을 위해 쏟아 부은 막대한 돈과 국가적 지원이 재생에너지·대안에너지 산업으로 그 방향을 돌린다면 불가능한 말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결론이다. 국가적 에너지 정책을 핵 발전에서 재생에너지·대안에너지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그에 앞서 이것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수명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월성 1호기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일”
“이미 수명 연장에 들어간 고리 1호기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일”
“삼척, 울진, 영덕 등에 예정된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을 중단하는 일” (p.175)
이제는 더 이상 핵 발전만이 최고이자 마지막 대안인 것처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감당 못할 짐과 위험이 아닌 깨끗하고 안전한 실제적인 대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
어차피 우리만 살다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식의 전환과 구체적 정책의 실현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