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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클라시쿠스 - 클래식 멘토 7인이 전하는 클래식 대화법
김용배 외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4월
평점 :
고등학교 때 여고와 펜팔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몇몇이서 하는 게 아니라 반 전체가 하는 펜팔이었다. 그때는 한 반의 학생이 50명을 웃돌 던 때라 펜팔을 주선한 아이가 그쪽 여학교 아이와 편지를 교환해 와서 교탁에서 아이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부르며 편지를 나눠줬다.
참 재미있었다.
1학년 여름 즈음에 시작했는데 학년말까지 그리고 2학년 때까지 펜팔을 유지한 건 내가 유일했다. 나와 펜팔을 하던 아이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친구였다.
그 아이가 다니던 학교가 지역에서는 공부를 제일 잘 하는 학교였고(흔히 지역명이 학교이름이던 학교^^)두발 단속이 여학교에도 심하던 시기임에도 그 학교는 두발 자유화였던 터라 찰랑거리는 생머리로 타 여학교에서 껌 좀 씹는 아이들에게 지탄이 대상이 되기도 했던 학교다.
물론, 남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ㅋㅋ
펜팔이 잘 유지되고 친한 친구 사이가 되면서 주말에 한 번씩 만나기도 했다. 그 아이에게 처음 받았던 선물은 소니뮤직에서 나온 카세트테이프(CD가 보편화되기 직전이었다) 베토벤 소나타 ‘월광’ 이었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완전한 문외한이던 내게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예쁜 포장을 해서 건네준 ‘월광’ 카세트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다. 당시 나는 한창 드럼에 빠져 있던 터라 나는 레드핫칠리페퍼스를 선물했다.ㅋㅋ
이후로 몇 번의 선물 교환이 더 있었고 베토벤의 ‘비창’과 ‘폭풍’을 듣게 되었다.
그 아이는 고2때까지 피아노와 다른 인문계열 전공을 고민하던 끝에 피아노를 포기하고 인문계열로 진학했다.
이후로 계속 연락을 유지하고 지금껏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멀리 캘리포니아에 있는 00야~~ 잘 있냐?? 한 번 나와라~~”
이것이 클래식과의 첫 만남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합창단이 있었다. 남자 학교여서 남성4중창이었다.
1학년 음악시간에 합창단의 지휘자를 겸하시던 음악선생님이 자기 목소리가 테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구자’를 부르게 했고, 베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집 앞’을 부르게 했다.
나는 ‘그 집 앞’을 불렀고 합창단에 뽑혔다.
우리 학교는 매년 가을 문화예술회관에서 합창제를 했다. 꽤 유서 깊은 행사라 합창제가 다가오면 학교에서도 합창단은 야간자율학습을 빼줘서 합창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운 좋게도 합창단 안에서도 전국대회를 위해 뽑는 중창단에 들어갔다. 4개의 파트 중 2베이스를 맡아 2학년 때 있었던 도대회에 나가서 은상까지 받았었다.
또 2학년 때 마침 지역에서 도민체전이 열렸는데 도민체전 합창단 지휘를 학교 합창단 선생님이 맡으셔서 도민체전 주제가와 개·폐회식의 여러 곡들을 방송국에서 녹음도 해보고 도민체전 팸플릿에 이름도 올려봤던 경험이 있었다.
드럼을 치느라 늘 락음악만 듣던 내게 합창단은 새로웠다.
짧은 스포츠머리의 풋내 나는 남자고등학생들이 내는 4중창은 꽤나 매력적이고 짜릿했다. 각자 파트 연습을 하고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화음을 맞출 때의 그 쾌감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 때 불렀었던 수많은 가곡과 창작곡의 2베이스 멜로디는 아직도 생생하다.
4개의 파트가 톱니가 맞물리듯 맞아 들어가는 화음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직도 그 멜로디와 음정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가장 큰 이유는 연습 시 잘 못하거나 음이탈을 하면 합창시간이 끝난 후 선배들에게 무시무시한 체벌을 받았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ㅋㅋ 야구방망이와…….난무하는 욕설과…….ㅋㅋ
이것이 클래식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현재 나의 출·퇴근길에 함께 하는 라디오 주파수는 FM89.7이다.
출·퇴근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에 주로 음악을 듣는다.
어느 날 우연히 맞춘 89.7에서 민요가락이 흘러나왔다. 유명한 주파수들의 프로그램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중간 중간 광고가 지겹고 음악보다는 토크가 많아 오래 듣지 못했는데 89.7의 민요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KBS FM클래식 채널이었다. 민요, 클래식을 주로 들려주는 채널이었는데 몇 번 반복해 듣다보니 어느새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이 클래식과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네 번째 만남은 이 책 「행복한 클라시쿠스」이다.
세 번째 클래식과의 만남인 KBS FM클래식 채널 개국 33주년 기념도서였다. 전혀 모르고 읽다가 중간쯤 읽고서야 알았다.
“클래식음악은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 전 작곡된 음악들을 지칭한다.” (p.6)
“클래식과 동행하는 사람들, 클래식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의미부여” (p.7)
“어느 날부터인가 클래식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p.19)
‘클래식’에 대한 정의를 가장 쉽게 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7명의 클래식 멘토들은 ‘클래식’이 결코 어렵거나 잘난 체 하는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는, 유식한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님을 공통적으로 얘기한다. 7명의 멘토가 클래식을 처음 접하고 클래식으로부터 말을 건네받은 연유도 각각 다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의 유익함을 소개하고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쉽고 재미있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사실 나도 클래식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많았다. 앞서 장황하게 얘기한 첫 번째와 두 번째 클래식과의 만남은 짧고 짜릿했을 뿐 더 많은 클래식을 찾아 듣거나 공연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차안에서도 매일 KBS 클래식FM을 듣지는 않기 때문에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른다.
“클래식음악은 결코 한정된 계층과 사람의 음악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p.201)
“두세 시간 음악에만 집중하면서 휴대전화도 꺼놓고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p.216)
클래식을 듣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에서 한 멘토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5분 사이에 한 곡을 들을 수 있는 현대음악에 익숙해 져 있는 귀는 클래식의 수십 분에 달하는(몇 시간을 들어야 하는 것도 있다) 감상시간은 고역이다. 물론, 7명의 멘토처럼 클래식과의 잊을 수 없는 조우가 있었던 사람에게는 즐겁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와 같은 짧은 만남에 불과했던 사람에게는 여전히 힘들고 지루하다.
바쁜 일상에서 두세 시간 음악에 집중해 휴대전화도 꺼놓을 수 있는 여유를 상황을 가진 사람도 흔치 않다. 클래식은 고사하고 요즘 나오는 노래 한곡조차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또 수백 년을 이어온 클래식을 듣기 위해서는 찾아보는 공부가 필요하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래식 공연은 참 비싸다. 멘토들은 요즘은 찾아가는 공연도 많고 지역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공연도 많다고 하는데 사실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몇 년 전 열린음악회 녹화가 진행되던 야외음악당에 가서 들어본 것이 전부다.
그래도 책에서 멘토들이 하나같이 얘기한 것처럼 클래식이 주는 특별한 위안과 느낌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태교에 좋다느니 식물생장에 좋다느니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운전을 하며 클래식을 들을 때는 마음이 안정이 된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랬던 경험은 분명하다.
짜증나는 교통체증에서도 가만히 클래식에 집중하면 ‘욱’하는 것이 사그라진다. 그때 들리던 클래식이 무슨 곡이고 작곡가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것이 책에 소개된 ‘클래식이 내게 말을 건네 온’ 순간이었을까? 근데 나는 그러고 나서 그 곡에 대해 다시 찾아보지 않았는데……. 그러면 내가 클래식의 대쉬를 거절한 건가? ㅋㅋ
책은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아직은 클래식과의 진한 만남을 하기에는 그 절실함이 덜하고 시간과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며 더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 있다.
그래서 이번 클래식과의 네 번째 만남 이후 언제쯤 다섯 번째 만남이 있을지 예견할 수 없다.
당분간은 89.7에 맞춰진 FM클래식을 들으면 짜증나는 출·퇴근길을 견뎌보려 한다
더불어 다섯번째 만남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