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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1학년 겨울방학,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개학 전까지 며칠 간 집에서 뒹굴 거릴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늘 있었던 책장을 들여다보다가 시커먼 책 수십 권이 꽂혀 있는 것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즘 책 표지와 같은 산뜻하고 멋있는 디자인은커녕 양장본으로 제목과 저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낡은 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장을 넘기자 세로글로 되어 있었다. 글자크기는 또 왜 그렇게 작은지 이렇게 멋도 없고 세로로 쓰여 불편한 책이 어디 있나 싶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세계문학전집이라는데 한 번 읽어봐야 겠지~’ 그래서 읽었다. 1시간, 2시간이 흐르고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듣는 둥 마는 둥 새벽 2시 경까지 그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웠지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다음날부터 책장에 꽂힌 전집을 닥치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던 책이 톨스토이의 책이라 그랬던지 주로 러시아 문학을 읽었다.
‘이래서 고전 고전 하는구나~!!’
싶었다.
몇 달 전, 함께 책을 보던 아내가 소리쳤다.
“아~ 이 책 뭐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진짜 절망을 준다. 절망을 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절망」이었다. 「롤리타」를 보고 싶다고 한 아내에게 「롤리타」의 작가인 나보코프의 다른 책을 먼저 사주었다. 아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도플갱어 미스터리’라는 「절망」의 소개 글에 혹해 사게 되었다. 아내는 그 책을 절반도 읽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 나는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기에 손도 대지 않았고ㅡ.ㅡ
이 책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제목 그대로 미국으로 이주해 대학에서 러시아 고전 문학, 유럽 모더니즘 문학을 강의한 것을 옮긴 책이다.
나보코프가 쓴 「절망」에 대한 절망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나보코프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절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작품을 쓸 때와는 달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다 보니 쉽게 재미있게 러시아 문호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과 찬사가 동시에 담겨 있다. 물론, 번역자인 이혜승씨의 공도 크다. 수십 년이 지난 책을 번역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러시아어는 물론 영어에 대한 언어·문학적 통찰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나와 같은 문외한을 쉽게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 그 개념 자체에 대해 비러시아인들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대여섯 명의 위대한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우선 떠올린다.” (p.29)
책은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 6명의 러시아 대문호를 소개한다. 이후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창작동기가 되고 지금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들에 대한 나보코프의 강의는 역자의 소개대로 재미있고 친근하다.
“훌륭한 독자는 자신을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이나 소녀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구상하고 구성하고 있는 사고와 동일시한다.” (p.44)
책을 구상하고 구성하고 있는 사고는 그 책을 창조해 낸 작가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 판단한다. 그래서 나보코프는 러시아 문학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가장 먼저 작가에 대한 성장배경과 작품 집필 배경을 상세히 소개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나는 고골과, 투르게네프, 체호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나머지 세 명의 작품은 복수로 읽어서 알고 있었다.
책은 나보코프가 실제로 강의한 강의노트를 바탕으로 엮었는데 강의의 첫 부분은 작가에 대한 소개와 성장배경 및 집필배경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뒷부분은 작품에 대한 의의와 의미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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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망 후, 그는 소작농들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하인들을 해방시켰으며 1861년 농노 해방 당시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p.133)
부유한 대지주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역사의식은 물론 보다 나은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투르게네프에 대한 소개다.
이 책에 소개된 6명의 러시아 문호들은 각자 조금씩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급변하던 러시아 역사 한 복판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다. 어느 누구도 치열한 시대정신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지식인으로서 사명에 충실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것이 꼭 정치적 입장이나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작품과 삶에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나보코프의 견해는 당황스러웠다.
초반에 언급했다시피 처음 고전문학을 접한 것이 톨스토이의 「부활」이었고, 이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너무나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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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토록 많이 들어 왔던 설교도, 그토록 많이 해 왔던 기도도 아니오. 수세기 동안 진흙탕과 거름통 속에 파묻혀 있던 인간 존엄의 가치를 민중들에게 일깨우고 교회의 가르침이 아닌 상식과 정의에 부합한 권리와 법, 그리고 가능한 한 엄격하게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 바로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것이오.” (p.193)
문학비평가 벨린스키가 쓴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중 일부인데, 나보코프는 벨린스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에 나타난 한계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크게 동의되지 않았다. 나보코프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할 당시는 냉전의 초창기였고, 그 이전 도스토옙스키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다.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도스토옙스키를 폄하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나보코프의 평이 야속하기만 하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보며 감동 받기도 하고, 책을 읽던 초창기였기 때문에 대단한 작가의 대단한 작품을 읽었다는 성취감 또한 컸었기 때문이다.
10년이 넘게 지켜오던 순정을 듣도 보도 못했던 나보코프란 양반이 작대기로 후벼 파는 심정이었다.
“형이 죽은 후 그가 출간했던 잡지는 폐간되었고, 도스토옙스키는 파산했다. 게다가 형의 가족도 부양해야 했다. 이 무거운 짐을 해결하기 위해 일에 몰두했다. 「죄와 벌」,「백치」,「악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은 모두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쓰였다.” (p.200)
책에서도 분명히 지적하지만 훌륭한 독자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구성하고 구상한 인물에게 몰두해야 한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다른 비평서적을 전혀 읽지 못한 내게는 나보코프의 비평이 전부다. 형이 죽고 파산한 후 주옥같은 작품들을 쏟아낸 도스토옙스키의 몰두는 그것만으로 인정받고 의의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나보코프는 그것마저 인정해 주지 않는 듯하다.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비천하고 멸시당하는 이들에 대한 그의 오만한 연민은 순전히 감상적인 동정일 뿐이며, 그만의 독특한 색채로 번득이는 그리스도교적 신앙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책을 통해 주장한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p.267)
이 부분을 읽고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좀 귀엽기도 했다. 작가라는 정체성은 완고하고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티격태격하는 것으로 보였다.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톨스토이에 이르러서는 그에게 극찬을 쏟아낸다. 분명 도스토옙스키와는 뭔가 사단(事端)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의식의 흐름 또는 내적 독백의 기법은 제임스 조이스보다 훨씬 앞서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개발한 표현 방식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흘러가는 대로 보여 주는 방식이다.” (p.336)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에 대한 작품설명은 책에 실린 다른 작가의 작품들 몇 배에 달하는 분량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강의한 다른 작가들 보다 톨스토이를 우위에 두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읽으며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궁극의 미로를 체험했던바 톨스토이는 이보다 훨씬 앞선 표현 방식으로 의식의 흐름 또는 내적 독백의 기법을 작품에 담았다고 표현한다. 적어도 내게는 톨스토이의 작품이 율리시즈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고 감정선을 따라잡기가 수월했다. 같은 표현 방식이라도 톨스토이가 앞서 했다보니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방식대로 더 구체화하고 내면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톨스토이도 그의 생애에 있어서 후세에 여러 가지 비판을 받은 면이 있지만 나보코프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와는 달리.^^;;
이것도 귀엽다고 이해해야 할지 얄밉다고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제껏 이해하고 인식해 오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한 색다른 견해와 언급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
더불어 책에 소개된 네 명의 다른 문호들의 책들도 하나하나 찾아 읽어보려 한다.
“확고한 혁명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터라 급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명성이 갈수록 높아졌지만” (p.530)
특히 문학작품의 열성적인 창작과 함께 열성적인 정치활동을 펼쳤던 막심 고리키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