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참견 : 운수 좋은 날 -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김양수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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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은 역시 슬램덩크가 최고였다. 동네 서점에서 슬램덩크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었다. 슬램덩크 최신판 한 권 들고 학교에 가면 그날만큼은 인기 최고의 학생이 될 수 있었다.
슬램덩크를 읽고 나면 바로 농구공을 들고 농구코트로 뛰어나갔다.
'왼손은 거들 뿐'
이 명대사를 중얼거리며 수 십번 레이업슛을 시도했다.
그리고 종이 만화책은 별로 읽어보지 않았다. 슬램덩크가 나오기 전 드래곤볼 정도?

인터넷이 발전되어 웹툰이 나왔다. 별로 찾아보지 않았다.
몇 년 전 윤태호씨의 이끼를 읽었는 데 대박이었다. 물론, 영화는 엉망이었지만ㅡ.ㅡ
지금 한겨레에 연재되는 [내부자들] 또한 예술이다.

웹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가는 강풀이다.
절찬리에 상영중인 [이웃사람]이 잘 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웹 상에서는 어떤 작가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 자리에 있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면 별다른 재미를 못 봤었다. 이번 영화 [이웃사람] 만큼은 더 많이 흥행했으면 좋겠다.
강풀의 작품 중 나는 [26년]이 가장 좋았다. 슬펐지만 좋았다.

이 책 [운수 좋은 날]은 네이버에 연재된 김양수씨의 만화를 엮어 만든 책이다.
김양수 작가의 베스트 작품만 모아 놓은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부제는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생활의 참견]이다.
[운수 좋은 날]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읽었던 수많은 근대 한국 문학 작품 중 가장 인상깊었고 충격적이었던 현진건 선생의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났다. 김첨지의 마지막 대사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은 최고였다. 하지만 이 책 [운수 좋은 날]과 <운수 좋은 날>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부제 [생활의 참견]은 나의 영화에 대한 안목을 격상시켜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떠올리게 했다. 김상경의 찌질하고 소심하지만 즉물적이고 본능적인 캐릭터가 너무 리얼해서 오금이 저렸었다. 하지만 이 책은 [생활의 발견]이 아니라 [참견]이었다.

김양수 작가는 어렵게 풀어내지 않아서 좋았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의 삶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 그 일상 속에서 뜻하지 않게 일어났던 황당한 사건이나 폭소와 실소를 터뜨린 사건들을 카메라도 찍듯이 캡쳐해서 만화로 표현한다.
부담스럽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만도 않다.
만화를 표현하는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장점을 가졌다.



1.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

 

대학교 때 친구들과 야구를 보러 갔다. 함께 간 친구들 중 여자 친구들도 있었다.
개그의 소재로 쓰이던 것을 실제로 경험하니 속이 이만저만 뒤집어 지지 않았다.
"1루에서 2루로 갑자기 왜 뛰어?", "타자가 공을 쳤는데 왜 안 뛰어?" 등

남자들 중에서도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군대에 가서 알았다.
전 소대원이 축구를 하면 정말 평생 단 한번도 축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 큰 축구공을 제대로 한 번 차보지도 못하며 끙끙대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축구 전술도 생소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야구의 룰보다야 훨씬 간단하지만 말이다.^^;;

분명 축구의 한 팀은 11명이 분명한데, 전술은 4-4-2, 3-4-3. 4-2-3-1 이렇다. 1명이 비는 것이다. 납량특집도 아니고 말이다. 놀라운 의문제기는 정당하다. 다만 무시당하고 멸시 천대 받을 뿐이다.ㅎㅎㅎㅎ
하지만 궁금한 채 축구경기 내내 찝찝해 있다가 몰래 지식인 형들에게 물어보는 것보다는 훨신 낫다. 친구들에게 즐거움도 주고 궁금증도 풀고 말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게 낫다.ㅋㅋㅋ


2. 직장인계의 엄용수 (포복절도)

이혼의 아이콘인 개그맨 엄용수씨를 차용한 "직장인계의 엄용수"라는 대사가 빵~~ 터졌다. 정말 포복하고 절도했다. ㅋㅋㅋ 예능에 출연하는 엄용수씨는 자신의 불안정한(?) 결혼사를 가감없이 개그의 소재로 활용한다. 개인이야 얼마나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겠냐마는 시청자들은 너무 재미 있어했다.
천성이 너무 착한데다 거절을 할 줄 모르는 개그맨 엄용수씨! 이제는 웃음 더 안줘도 되니까 좋은 분 만나셨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직장인계의 엄용수씨는 17살이나 어린 여친을 두고 있는 능력남이었다. 좀 더 '젊은 척'에 대한 연구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ㅎㅎㅎㅎㅎ



3. 생각하고 싶은 대로

 

 

무지 '개' 같아요. '개'. 도그. 푸하하하하하~~!!!!!!
복학 후 너무나도 상큼한 신입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MT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만취되어 '개'진상을 떨었던 모양이다. ㅎㅎㅎㅎㅎㅎ
무지 '개(dog)'를 '무지개(rainbow)'로 해석할 수 있는 저 창조성.
맞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잠시 동안이라도 행복하고 짜릿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직장에도 무지'개' 같은 분들이 꼭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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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 동문선 현대신서 205
호카마 슈젠 지음, 심우성 옮김 / 동문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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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내 프로야구팀이 전지훈련을 가는 곳 중 하나가 일본의 오키나와였다. 근래는 더 많은 돈을 들여 미국까지 가는 경우도 많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오키나와였었다. 프로야구 구단 뿐만 아니라 프로축구 구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키나와가 우리나라 보다는 훨씬 아래쪽에 있으니까 겨울에 덜 추워서 그리고 가는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몇 달 전 한TV프로그램에서 다문화 가정 하나가 소개되었는데,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가정이었다. 방송에 출연하고 아내의 친정에 방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그 일본인 아내가 오키나와 출신이었다. 그런데 흔히 알고 있고 봐 오던 일본인의 외모와는 확연하게 다른 오키나와 출신 아내를 보고 막연한 의구심이 생겼다.

그리고는 지도를 찾아봤다.

헉~! 내가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도(本島)와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고, 만약 일본에 속한 영토가 아니라면 차라리 대만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였다.

 

 

지도를 보고 나서 왜 오키나와 출신 일본인 여성은 내가 흔히 알고 있던 일본인 여성의 외모와 그렇게 다른 것인지, 오키나와는 일본 본도(本島)와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여러 책을 찾아보다 구입한 책이 바로 이 책.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이다. 이 책의 저자 호카마 슈젠씨는 오키나와 출신으로 일본 내에서도 오키나와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섬나라 일본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여러 섬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루었던 옛 류큐 왕국이었다.” (p.5)

 

책을 읽기 전 나는 오키나와가 하나의 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많은 섬들이 있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그 섬들 중 하나이고 지금은 통칭해서 오키나와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4백37건이나 기록하고 있다.” (p.5)

 

조선왕조실록에는 류큐 왕국에 대한 기록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당시 동아시아의 패권국이었던 명나라에 대해 조선과 류큐 왕국은 확고한 조공정책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긴밀한 협조와 교역이 이루어졌었다고 한다.

또한 지도상으로 보아도 당시 류큐 왕국과 탐라국(현재 제주도)과의 빈번한 교역과 통상, 왕래를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무수한 자료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섬을 통치하기 위한 경제적 기초가 해상 무역에 있었다. 섬 통일(1492년)을 이룩한 츄우산 세력은 명나라는 물론 멀리 샴, 말라카, 수마투라, 팔레반, 자바에까지 배를 보내 교역하며 국가 경제의 기초를 다졌다.” (p.77)

 

9세기 이전 족장 중심의 부족문화를 형성해 오다가 15세기 섬을 통일해 왕국에 이르는데, 책의 저자는 9-15세기 사이 5-6세기 간 오키나와 역사에 대한 자료나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에 의문을 둔다.

 

어쨌든 왕국을 이루고 섬 왕국의 경제발흥을 위해 남중국해는 물론 멀리 인도네시아 지역까지 배를 보내 교역하고 명나라와 조선, 일본 본도(本島)까지 연결하는 해상 중계무역의 거점이 되었다고 한다.

흔히 무역의 거점이 되는 지역이나 나라의 특징은 개방성·혼합성으로 볼 수 있다. 책에서 설명한 오키나와의 전통 문화(언어, 도자기, 공예, 건축 등)는 오키나와 고유의 것이라기보다는 빈번한 왕래가 오갔던 많은 나라의 문화들과의 혼합이라 봐야 한다.

 

“지금껏 오키나와 문화를 일본문화와 상대화시키는 것으로 동질성과 이질성을 찾아내려는 시점이 주목을 끌어왔지만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나아가 태평양문화권이라는 광대한 범주 안에서 오키나와를 개방해 보는 비교문화적인 견해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p.31)

 

그런 측면에서 저자의 제안은 설득력이 있고 공감이 된다. 이전까지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 내 연구는 대부분 중세 일본의 문화가 오키나와를 위시한 남방으로부터 북방으로의 전파였는지 북해도 지역인 북방으로부터 남방으로의 전파였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까지 소모적인 과정에 불과했었고, 좀 더 큰 틀에서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의 그것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나아가 태평양문화권이라는 범주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0여 년 전, 시마오 도시오라는 학자에 의해 제시된 야포네시아(일본 열도의 활 모양의 연결을 오키나와까지 포함하여 야포네시아라 부르고, 인도네시아·멜라네시아·미크로네시아·폴리네시아 등 태평양을 둘러싼 도서군과의 연쇄로서 일본문화의 심층을 생각하고자 하는 구상)구상에 저자는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지지한다.

 

 

그러나 나는 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애초에 오키나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이 책을 찾아 읽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왜 오키나와와 일본 본도(本島) 사람의 외모가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북해도의 아이누족처럼 오키나와의 원주민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와 자료 제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고고학·역사학 등의 자료가 부족하여…….”라고 하며 다른 연구 영역의 전문가들의 비판을 바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지만 못내 아쉬웠다.

 

분명히 류큐 왕국 이전 그리고 9세기 더 이전 부족시대에는 지금 일본인의 외모와는 많이 다른 원주민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며 살았을 텐데 말이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9세기부터 통일 왕국이 형성된 15세기 사이 수백 년의 오키나와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이미 다 밝혀졌는데 내어놓지 않는 것인지 정말로 기록이나 자료가 부족하여 공백으로 남겨두는 것인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북해도에서 지금의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언어와 외모를 가진 채 살았던 아이누족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데, 북해도보다 일본 본도에서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는 일본 국내에서 유일한 지상전의 독무대가 되었다. 1945년 4월부터 약 3개월간 일본군인 9만 4천, 오키나와 주민 9만 4천, 미군 1만 2천이 전사한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였다.” (p.106)

 

오키나와는 아픔이 많은 섬이다. 명나라와 일본 본도에 대한 조공에 신음했었고,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참혹했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미국의 동북아시아 군사거점으로 악용되었고 70년대 중반 일본에 귀속된 이후에도 얼마 전까지 군사적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일본의 영토, 미국의 군사기지 등으로 불려지기 이전부터 그곳에는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바람과 바다, 야자수와 구름을 친구 삼아 살아왔던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비바람이 심하고 종종 태풍의 습격을 받는 오키나와에서, 처마와 차양은 깊을수록 좋았을 테고, 깊은 처마에는 골격이 튼튼하고 넓은 지붕이 필요했으며, 확실하게 맞물리는 암우기와가 요구된 것은 당연할 것이다.” (p.206)

 

남중국해로 북상하는 태풍을 처음으로 맞는 곳이 오키나와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고 당연히 아주 오래전부터 오키나와에 살던 사람들은 여름철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태풍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태풍을 견딜 최적의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문화에 태풍에 대한 언급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두려움의 존재였는지, 경외의 존재였는지 확인할 바는 없지만.

좀 더 오키나와만의 제대로 된 역사와 문화, 특히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도 오키나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조금 더 알고 싶다. 다른 책들을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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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베노, 아빠! 사거리의 거북이 11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박민정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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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베노~!

이 말은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안녕”이다. 우리말로 “여보세요”라고 할 때는 그냥 “베노~”라고 한다.

5년 전과 4년 전 몽골에 다녀온 후 몽골의 팬이 되었다. 이미 여러 포스팅과 리뷰를 통해 가깝게 지내는 몽골 가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번의 몽골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된 몽골 가족은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학교를 다니며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다시 몽골에 가 있다.

 

 

이 책 「센 베노, 아빠!」는 저자 자비에 로랑 쁘띠의 「153일의 겨울」에 이은 속편이라고 한다. 이전 책을 읽지 못해 아쉽기만 했지만 갈샨과 아빠 리함이 재회할 때의 짧은 대화와 할아버지 바이타르와 겪는 유목 생활만 들여다보아도 이전 작품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유목인의 생활을 벗어나 트럭 운전을 하는 아빠 리함이 ‘눈물의 계곡’에서 갑작스레 닥친 눈사태로 실종된다. 트럭 회사 사장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딸 갈샨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인 라알라조차 설득하지 못할 정도로 아빠가 분명 살아 있다고 생각한 갈샨은 아빠의 소식을 전하러 찾아간 할아버지 바이타르의 게르에 남게 된다. 엄마는 당연히 심하게 반대했지만 갈샨의 확고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갈샨은 할아버지와 함께 게르에 머물려 유목 생활을 한다. 사나운 조드가 찾아오기 전 양떼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할아버지를 돕는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할아버지 바이타르에게 생명의 빚은 진 우우간 아저씨와 차아메드 아줌마, 다라이와 이아라드 쌍둥이를 만나게 된다.

각막의 질병으로 하루가 다르게 시력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바이타르를 돕는 것이 갈샨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몽골의 유목민들의 시력은 일반 사람들의 시력보다 4∼5배 정도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 시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유목민에게는 초원 저 끝의 양 한 마리까지 볼 수 있어야 늑대의 위험에서 지켜줄 수 있는데, 시력을 잃어간다는 것은 유목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것이다.

 

이미 자신을 떠난 아들이 낳은 손녀는 유목민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놓여있던 벽을 허물어져 버렸다. 극적으로 소통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 바이타르 덕에 목숨을 건지고 지금은 굉장히 많은 가축을 가진 유목민이 된 우우간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머리털 하나 보기 힘든 사막에서 죽기 직전 바이타르에 의해 생명을 건지고 양떼를 이동시키며 리함을 찾아 나선 바이타르와 갈샨에게도 큰 어려움 직전 도움을 준다.

‘눈물의 계곡’에서 엄청난 눈사태로 인해 실종된 리함이 구조된 장면은 더욱 극적이다.

 

“동굴은 그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장소였지.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어, 갈샨. 우리를,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어” (p.189)

“그들이 내 목숨을 구해 줬어.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죽고 말았을 거야. 갈샨, 나는 그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야. 마지막 원시인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고.” (p.191)

 

시력을 잃어가던 바이타르가 한밤중에 자신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늑대에게 총을 쏘는데, 그것은 늑대가 아니고 자신의 아들이자 갈샨의 아빠 리함이었다.

리함은 완전히 피폐해진 모습에다가 다리에 총상까지 입어 수일을 게르에서 치료받는다. 늑대로 오인하여 자신을 쏜 사람도 아버지 바이타르고 자신을 들쳐 업고 게르에서 며칠 밤을 새며 치료하고 간호한 사람도 아버지 바이타르였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리함은 딸 갈샨에게 놀라운 얘기를 전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존재가 동굴에 살고 있는 원시인이라는 것이었다. 동굴에 살고 있는 원시인은 바이타르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얘기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내 치료한 존재가 원시인이었고,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 것도 그들이었다고 한다.

 

인간과 문명을 피해 살고 있는 마지막 원시인의 존재가 조금 뜬금없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았던 몽골의 끝없는 초원과 사막을 감안하면 개연성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책에서 리함을 구해준 원시인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는가 싶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까지 인간과 공존해 오던 것들은 한순간에 ‘미개’한 것으로 치부된 것이 사실이다. 자연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유목민들도 반강제적으로 학교에 다녀야 하고 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교육을 받지 않는 유목민들은 미개한 사람들로 여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한다. 도시와 유목민, 현대인과 원시인, 양 떼와 사람들, 노인과 소녀 등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영역을 이 책에서 잇는다.

공간적 소재를 몽골에 둔 것이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해야 할 시도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고, 책에서의 극적 장면들처럼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조우할지 모르는 일임을 감안할 때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두 번의 몽골 여행을 통해 중부내륙과 고비사막을 다녀왔는데 서북쪽 산악지역을 가보지 못했다. 이 책의 배경도 아마 그쪽일거 같은데 다음 번 여행 때는 산악지역과 아름다운 호수인 홉스굴에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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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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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이분법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힘을 가진 자와 힘을 가지지 못한 자, 돈이 있는 자와 돈이 없는 자. 심플하고 날카로운 구조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이분법의 경계가 모호하지도 흐릿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행여 이분법 중간 어디 즈음 고개를 내밀라치면 예전 오락실에서 보던 두더지 머리 내려치듯 사정없이 내려쳐 버린다. 더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이분법이 가진 구조의 힘이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힘과 돈을 가진 쪽은 모든 것을 가진다. 미디어와 권력은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따라 간다.

 

내 생각이 너무 비관적이고 염세적이고 편협한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존재보다 예민하고 섬세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동시대에 일어나고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세밀하게 참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면 예술가로서의 직무를 방기하는 것이라 추론한다.

 

이 생각도 나만의 편협한 것이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내게 성석제와 그가 내놓은 작품 「위풍당당」은 예술가로서 그의 창작을 통해 동시대를 비꼬고 풍자하며 에둘러 조롱하여 나와 같은 독자로 하여금 실소와 함께 현실의 피곤함을 배설하게 해준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긴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은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존재일 뿐인가. 인간이란 뭔가.” (p.188)

 

조폭 보스가 시골 촌뜨기에 의해 자신의 조폭 동생이 다치자 데리고 있던 조폭 부하들을 깡그리 모아 시골로 쳐들어간다. 그런데 녹록하지 않은 시골 촌뜨기들에 의해 똥물 공격을 받는다. 어이가 없는 것인지 화가 나는 것인지 분명치 않은 멘붕 상태에서 자조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까지 이르게 된다.

 

분명 이분법 저 끝에 있는 존재에게 던지는 똥폭탄이다.

 

근래 몇 년 동안 많은 책을 통해 “분노하라”, “짱돌을 던져라”, “닥치고 O해라” 말이 많았다. 하지만 저 끝에 있는 존재들에게 닿지 않는다. 아무리 분노해서 닥치고 짱돌을 들어 던져도 내 발치에 떨어질 뿐이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루하며 지쳤다.

차라리 똥폭탄이 저들 머리위에 떨어진다는 해괴망측한 설정이 속 시원하다.

 

“그는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130수 최고 원단으로 만든 양복에, 아르마니 넥타이를 매고 페라가모 구두를 신은 채, 베스사체 선글라스 끼고 까르티에 시계 차고 봐줄 사람 하나 없는 개떡 같은 절벽을 바보 같은 부하 한 놈 때문에 땀을 흘리며 내려간다. 구두에 그놈의 똥을 묻히고.” (p.65)

 

소설 속 조폭은 시골 촌뜨기들과는 단순 비교로 상대가 안 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시골로 쳐들어갔다. 흔히들 하는 방법이다. 시골 촌뜨기들은 명랑만화에나 있을 법한 방법으로 조폭을 상대한다. 똥통에 가두고 고춧가루를 뿌리고 벌을 쏘이고 똥을 퍼붓는다. 공상과학에서나 등장할 대치형태다.

조폭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도, 치명적 공격을 가한 후 조폭 보스와 협상하는 것도 시골촌뜨기들이 우위에 있다. 시골촌뜨기들의 결정에 왈가왈부하지 못한다.

애초에 시커먼 벤츠를 타고 시골 촌뜨기지만 빼어난 외모와 싱싱한 젊음을 가진 새미를 발정난 수캐처럼 뒤쫓은 것 자체가 사실 말이 되지 않아야 할 말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이라 설정하는 것이 말도 되지 않을 현실이다. 나와 당신이 살아가는 이놈의 세상이다.

작가는 말도 되지 않는 현실과 소설의 현실을 대치시킨다.

 

“그런데 따라오고 있다. 검정색 벤츠에 탄 사내들. 우리에게 뛰쳐나온 맹수. 끈 풀린 미친 개 같은 인간들. 시속 오 킬로미터로 걷는 새미를 시속 오 킬로미터의 속도로 따라오는, 짙은 선팅으로 시커먼 유리 속,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세 인간들.” (p.24)

 

시커먼 벤츠를 타고 시커먼 속내를 감춘 채 히죽거리며 서성이는 인간들은 소설의 조폭처럼 멍청하거나 어설프지 않다. 집요하고 꼼꼼하며 성실하다. 그럴 것이라고 추정한다.

나는 새미만큼 매력적이거나 그들의 먹잇감이 될 정도의 깜냥도 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살지만 도처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저들의 새미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추정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다 자기 가족한테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야. 상처를 줬을 수도 있지. 어쨌든 옛날 가족과는 다들 남남이 되었어. 그리고 여기 이 마을에 어찌어찌 와서 다시 한식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우리는 서로를 가족으로 선택했다.” (p.164)

 

다소 진부하고 늘 들었던 말인 것 같지만 작가는 소설 속 시골 촌뜨기들이 조폭들이 말하는 식구의 개념이 아니라 제대로,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식구가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해소한다고 설정한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자신의 조폭 부하들에게 함께 밥을 먹는 게 ‘식구’라고 했었다. 소설 속 조폭 보스 정묵이 [비열한 거리]를 보고 따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인성과 정묵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밥만 같이 먹어서 식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선택하여 식구가 된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새미와 그의 남동생 준호가 갑자기 시골에 나타난 것도 이령, 소희, 영필이 시골에 나타나 식구가 된 과정도 그랬다.

공동체적 담론밖에는 해소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의도로 판단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좀 촌스럽다.

 

물론 소설 속 플롯은 아기자기하고 기상천외하며 유쾌발랄하다. 플롯을 담는 얼개가 흔한 것일 뿐이지.

이것 또한 작가 성석제의 힘이다. 고소(高笑)하게 갈무리하는 것.

 

 

*****

“자신보다 약간 더 큰 키에 몸무게가 삽십오 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체구로 사뿐사뿐 리듬을 타면서 걸어오는 스님을 봤을 때, ‘오 마이 갓네스,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며 합장을 하고 말았다.” (p.50)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웃었던 장면이다. 소희가 시골 산자락에 은둔하고 있는 스님과 처음으로 우연히 마주치던 장면. ‘오 마이 갓네스,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며 합장을 하고 말았다. 나는 배를 잡고 뒹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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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1학년 겨울방학,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개학 전까지 며칠 간 집에서 뒹굴 거릴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늘 있었던 책장을 들여다보다가 시커먼 책 수십 권이 꽂혀 있는 것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즘 책 표지와 같은 산뜻하고 멋있는 디자인은커녕 양장본으로 제목과 저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낡은 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장을 넘기자 세로글로 되어 있었다. 글자크기는 또 왜 그렇게 작은지 이렇게 멋도 없고 세로로 쓰여 불편한 책이 어디 있나 싶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세계문학전집이라는데 한 번 읽어봐야 겠지~’ 그래서 읽었다. 1시간, 2시간이 흐르고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듣는 둥 마는 둥 새벽 2시 경까지 그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웠지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다음날부터 책장에 꽂힌 전집을 닥치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던 책이 톨스토이의 책이라 그랬던지 주로 러시아 문학을 읽었다.

‘이래서 고전 고전 하는구나~!!’

싶었다.

 

몇 달 전, 함께 책을 보던 아내가 소리쳤다.

“아~ 이 책 뭐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진짜 절망을 준다. 절망을 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절망」이었다. 「롤리타」를 보고 싶다고 한 아내에게 「롤리타」의 작가인 나보코프의 다른 책을 먼저 사주었다. 아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도플갱어 미스터리’라는 「절망」의 소개 글에 혹해 사게 되었다. 아내는 그 책을 절반도 읽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 나는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기에 손도 대지 않았고ㅡ.ㅡ

 

 

이 책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제목 그대로 미국으로 이주해 대학에서 러시아 고전 문학, 유럽 모더니즘 문학을 강의한 것을 옮긴 책이다.

 

나보코프가 쓴 「절망」에 대한 절망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나보코프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절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작품을 쓸 때와는 달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다 보니 쉽게 재미있게 러시아 문호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과 찬사가 동시에 담겨 있다. 물론, 번역자인 이혜승씨의 공도 크다. 수십 년이 지난 책을 번역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러시아어는 물론 영어에 대한 언어·문학적 통찰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나와 같은 문외한을 쉽게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 그 개념 자체에 대해 비러시아인들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대여섯 명의 위대한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우선 떠올린다.” (p.29)

 

책은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 6명의 러시아 대문호를 소개한다. 이후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창작동기가 되고 지금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들에 대한 나보코프의 강의는 역자의 소개대로 재미있고 친근하다.

 

“훌륭한 독자는 자신을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이나 소녀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구상하고 구성하고 있는 사고와 동일시한다.” (p.44)

 

책을 구상하고 구성하고 있는 사고는 그 책을 창조해 낸 작가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 판단한다. 그래서 나보코프는 러시아 문학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가장 먼저 작가에 대한 성장배경과 작품 집필 배경을 상세히 소개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나는 고골과, 투르게네프, 체호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나머지 세 명의 작품은 복수로 읽어서 알고 있었다.

책은 나보코프가 실제로 강의한 강의노트를 바탕으로 엮었는데 강의의 첫 부분은 작가에 대한 소개와 성장배경 및 집필배경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뒷부분은 작품에 대한 의의와 의미에 주목한다

.

“어머니 사망 후, 그는 소작농들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하인들을 해방시켰으며 1861년 농노 해방 당시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p.133)

 

부유한 대지주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역사의식은 물론 보다 나은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투르게네프에 대한 소개다.

이 책에 소개된 6명의 러시아 문호들은 각자 조금씩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급변하던 러시아 역사 한 복판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다. 어느 누구도 치열한 시대정신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지식인으로서 사명에 충실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것이 꼭 정치적 입장이나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작품과 삶에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나보코프의 견해는 당황스러웠다.

초반에 언급했다시피 처음 고전문학을 접한 것이 톨스토이의 「부활」이었고, 이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너무나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토록 많이 들어 왔던 설교도, 그토록 많이 해 왔던 기도도 아니오. 수세기 동안 진흙탕과 거름통 속에 파묻혀 있던 인간 존엄의 가치를 민중들에게 일깨우고 교회의 가르침이 아닌 상식과 정의에 부합한 권리와 법, 그리고 가능한 한 엄격하게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 바로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것이오.” (p.193)

 

문학비평가 벨린스키가 쓴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중 일부인데, 나보코프는 벨린스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에 나타난 한계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크게 동의되지 않았다. 나보코프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할 당시는 냉전의 초창기였고, 그 이전 도스토옙스키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다.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도스토옙스키를 폄하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나보코프의 평이 야속하기만 하다.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보며 감동 받기도 하고, 책을 읽던 초창기였기 때문에 대단한 작가의 대단한 작품을 읽었다는 성취감 또한 컸었기 때문이다.

10년이 넘게 지켜오던 순정을 듣도 보도 못했던 나보코프란 양반이 작대기로 후벼 파는 심정이었다.

 

“형이 죽은 후 그가 출간했던 잡지는 폐간되었고, 도스토옙스키는 파산했다. 게다가 형의 가족도 부양해야 했다. 이 무거운 짐을 해결하기 위해 일에 몰두했다. 「죄와 벌」,「백치」,「악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은 모두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쓰였다.” (p.200)

 

책에서도 분명히 지적하지만 훌륭한 독자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구성하고 구상한 인물에게 몰두해야 한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다른 비평서적을 전혀 읽지 못한 내게는 나보코프의 비평이 전부다. 형이 죽고 파산한 후 주옥같은 작품들을 쏟아낸 도스토옙스키의 몰두는 그것만으로 인정받고 의의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나보코프는 그것마저 인정해 주지 않는 듯하다.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비천하고 멸시당하는 이들에 대한 그의 오만한 연민은 순전히 감상적인 동정일 뿐이며, 그만의 독특한 색채로 번득이는 그리스도교적 신앙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책을 통해 주장한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p.267)

 

이 부분을 읽고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좀 귀엽기도 했다. 작가라는 정체성은 완고하고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티격태격하는 것으로 보였다.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톨스토이에 이르러서는 그에게 극찬을 쏟아낸다. 분명 도스토옙스키와는 뭔가 사단(事端)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의식의 흐름 또는 내적 독백의 기법은 제임스 조이스보다 훨씬 앞서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개발한 표현 방식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흘러가는 대로 보여 주는 방식이다.” (p.336)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에 대한 작품설명은 책에 실린 다른 작가의 작품들 몇 배에 달하는 분량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강의한 다른 작가들 보다 톨스토이를 우위에 두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읽으며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궁극의 미로를 체험했던바 톨스토이는 이보다 훨씬 앞선 표현 방식으로 의식의 흐름 또는 내적 독백의 기법을 작품에 담았다고 표현한다. 적어도 내게는 톨스토이의 작품이 율리시즈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고 감정선을 따라잡기가 수월했다. 같은 표현 방식이라도 톨스토이가 앞서 했다보니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방식대로 더 구체화하고 내면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톨스토이도 그의 생애에 있어서 후세에 여러 가지 비판을 받은 면이 있지만 나보코프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와는 달리.^^;;

 

이것도 귀엽다고 이해해야 할지 얄밉다고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제껏 이해하고 인식해 오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한 색다른 견해와 언급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

 

더불어 책에 소개된 네 명의 다른 문호들의 책들도 하나하나 찾아 읽어보려 한다.

“확고한 혁명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터라 급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명성이 갈수록 높아졌지만” (p.530)

 

특히 문학작품의 열성적인 창작과 함께 열성적인 정치활동을 펼쳤던 막심 고리키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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