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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베노, 아빠! ㅣ 사거리의 거북이 11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박민정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센 베노~!
이 말은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안녕”이다. 우리말로 “여보세요”라고 할 때는 그냥 “베노~”라고 한다.
5년 전과 4년 전 몽골에 다녀온 후 몽골의 팬이 되었다. 이미 여러 포스팅과 리뷰를 통해 가깝게 지내는 몽골 가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번의 몽골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된 몽골 가족은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학교를 다니며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다시 몽골에 가 있다.
이 책 「센 베노, 아빠!」는 저자 자비에 로랑 쁘띠의 「153일의 겨울」에 이은 속편이라고 한다. 이전 책을 읽지 못해 아쉽기만 했지만 갈샨과 아빠 리함이 재회할 때의 짧은 대화와 할아버지 바이타르와 겪는 유목 생활만 들여다보아도 이전 작품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유목인의 생활을 벗어나 트럭 운전을 하는 아빠 리함이 ‘눈물의 계곡’에서 갑작스레 닥친 눈사태로 실종된다. 트럭 회사 사장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딸 갈샨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인 라알라조차 설득하지 못할 정도로 아빠가 분명 살아 있다고 생각한 갈샨은 아빠의 소식을 전하러 찾아간 할아버지 바이타르의 게르에 남게 된다. 엄마는 당연히 심하게 반대했지만 갈샨의 확고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갈샨은 할아버지와 함께 게르에 머물려 유목 생활을 한다. 사나운 조드가 찾아오기 전 양떼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할아버지를 돕는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할아버지 바이타르에게 생명의 빚은 진 우우간 아저씨와 차아메드 아줌마, 다라이와 이아라드 쌍둥이를 만나게 된다.
각막의 질병으로 하루가 다르게 시력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바이타르를 돕는 것이 갈샨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몽골의 유목민들의 시력은 일반 사람들의 시력보다 4∼5배 정도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 시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유목민에게는 초원 저 끝의 양 한 마리까지 볼 수 있어야 늑대의 위험에서 지켜줄 수 있는데, 시력을 잃어간다는 것은 유목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것이다.
이미 자신을 떠난 아들이 낳은 손녀는 유목민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놓여있던 벽을 허물어져 버렸다. 극적으로 소통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 바이타르 덕에 목숨을 건지고 지금은 굉장히 많은 가축을 가진 유목민이 된 우우간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머리털 하나 보기 힘든 사막에서 죽기 직전 바이타르에 의해 생명을 건지고 양떼를 이동시키며 리함을 찾아 나선 바이타르와 갈샨에게도 큰 어려움 직전 도움을 준다.
‘눈물의 계곡’에서 엄청난 눈사태로 인해 실종된 리함이 구조된 장면은 더욱 극적이다.
“동굴은 그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장소였지.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어, 갈샨. 우리를,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어” (p.189)
“그들이 내 목숨을 구해 줬어.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죽고 말았을 거야. 갈샨, 나는 그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야. 마지막 원시인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고.” (p.191)
시력을 잃어가던 바이타르가 한밤중에 자신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늑대에게 총을 쏘는데, 그것은 늑대가 아니고 자신의 아들이자 갈샨의 아빠 리함이었다.
리함은 완전히 피폐해진 모습에다가 다리에 총상까지 입어 수일을 게르에서 치료받는다. 늑대로 오인하여 자신을 쏜 사람도 아버지 바이타르고 자신을 들쳐 업고 게르에서 며칠 밤을 새며 치료하고 간호한 사람도 아버지 바이타르였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리함은 딸 갈샨에게 놀라운 얘기를 전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존재가 동굴에 살고 있는 원시인이라는 것이었다. 동굴에 살고 있는 원시인은 바이타르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얘기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내 치료한 존재가 원시인이었고,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 것도 그들이었다고 한다.
인간과 문명을 피해 살고 있는 마지막 원시인의 존재가 조금 뜬금없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았던 몽골의 끝없는 초원과 사막을 감안하면 개연성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책에서 리함을 구해준 원시인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는가 싶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까지 인간과 공존해 오던 것들은 한순간에 ‘미개’한 것으로 치부된 것이 사실이다. 자연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유목민들도 반강제적으로 학교에 다녀야 하고 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교육을 받지 않는 유목민들은 미개한 사람들로 여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한다. 도시와 유목민, 현대인과 원시인, 양 떼와 사람들, 노인과 소녀 등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영역을 이 책에서 잇는다.
공간적 소재를 몽골에 둔 것이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해야 할 시도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고, 책에서의 극적 장면들처럼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조우할지 모르는 일임을 감안할 때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두 번의 몽골 여행을 통해 중부내륙과 고비사막을 다녀왔는데 서북쪽 산악지역을 가보지 못했다. 이 책의 배경도 아마 그쪽일거 같은데 다음 번 여행 때는 산악지역과 아름다운 호수인 홉스굴에 꼭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