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회를 옮기고 싶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했던 생각임에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을 못하겠지만 십 수 년을 다니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모태신앙(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이거나 오랜 기간 한 교회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사실 교회라고 해봐야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보다 더 나은 교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무슨놈의 교회 안에서 문제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옥성호씨의 에필로그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나 내가 그 동안 교회에 다니며 겪은 일들은 뉴스나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보도된 것들 보다 더 심각하고 다양하다. 군사독재시절 폭발적으로 증가한 교회의 숫자와 교인의 숫자는 언제인지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지만 90년대 들어서부터 정체되거나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의 뒤통수를 보면 한국교회의 심각함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교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70,80년대 폭발적 교회성장을 낳은 1세대 목사들 이후 2세대 목사들이 등장하면서 교회는 무작정 대형화되는 것을 멈추고 수평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교회 옮기기 현상이다. 토속적 기복신앙과 이상하게 결합된 한국교회의 특이한 교리는 더 이상 젊은 교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교인들은 보다 새롭고 젊고 신선한 교회를 찾아 떠났다. 9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런 현상은 이어졌다.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등장한 이후 골목상권이 깡그리 없어지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 젊고 신선하고 새로운 교회에 교인을 빼앗긴(?) 기존 교회들은 교회 내 수평이동을 조장하느니, 뭐니 하면서 비판을 했지만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떠나는 젊은 교인들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올해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는 교회다.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고 명망 있는 교회다. 몇 년 전부터 교회 설립 100주년을 준비했는데, 올해 100주년을 맞아 하는 행사들과 행태들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자세히 언급하기조차 싫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회의 위상과 곪을 대로 곪은 지역 사회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젊은 교인들이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모조리 무시되었다.

최소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100년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다가오는 101년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교회가 과도한 예산을 들여 하는 이상한 일들을 보면서 말들이 많다. 한 번씩 인터넷을 달구거나 하는 교회내의 싸움과 분열과 숙청(일부 교인들이 대거 쫓겨나는)의 가장 큰 이유는 이런 100주년이다 교회 건축이다 하는 큰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큰 교회 몇 군데는 이미 그런 일들로 홍역을 치렀다.

교회 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다. 한 교회에 있는 목사를 비롯한 교역자에서부터 장로, 권사, 집사, 일반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려 하니 각기 상충하는 욕망들이 충돌하는 것이다. 교회도 똑같다.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다. 당연히 갈등이 있고 욕망이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상하게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목사와 장로의 세력 다툼, 장로와 장로의 세력 다툼 등으로 왜곡되어 이용된다. 사실 이런 것들을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다. 교회와 목사와 장로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그마이고 교리이며 교회의 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교회 형에게 열심히 드럼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떤 장로가 창문을 벌컥 열더니 “그런 쓰레기 같은 노래 집어치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정말 이상한 걸 배우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대학 때 성경을 몇 번 읽고 많은 신앙서적을 읽으며 신앙관이 180도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교회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이후 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해보고 내가 다니는 교회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모두 헛수고 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제 지쳤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더 이상 뭘 건의하거나 교회 내 어른들을 만나 대화를 하거나 목사나 전도사님을 만나 토론을 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렇다.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 책 「서초교회 잔혹사」는 출간되기 전부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책이다. 출간직후 그 유명한 사랑의 교회에서는 명예훼손이다 뭐다 해서 난리를 쳤던 모양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의 교회가 일으킨 분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제와 내용이다. 아마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책의 저자가 고(故)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고 사랑의 교회가 서초동에 위치하고 있으니 지레짐작으로 ‘아~ 우리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이구나’ 싶었겠지만 전혀 아니다. 저자 옥성호씨는 책의 처음과 끝에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 한다.

‘사랑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고 한국교회 내 전반적인 모순과 문제들에 대한 풍자’라고 말이다.

나도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책을 읽으면 별 내용도 아닌데 왜 호들갑들인지 모르겠다.

 

 

목사라고 별 수 있나

 

“기억하게. 교회를 살리는 길이야. 교회가 살고 담임목사님이 살아야 하나님이 일하시지. 교회가 없고 담임목사님이 없는데 하나님이 어디 있나? 안 그래? 여기서 열심히 해야 결국 자네도 언젠가는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길 거 아냐?” (p.284)

 

대형교회 중 대형교회인 서초교회에 김건축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서초교회가 국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고 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를 만든 사람은 정지만 목사다. 정지만 목사는 교회 내 교인들은 물론 국내 많은 교인들과 목회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단한 목사다. 그런 그가 담임목사를 그만두고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김건축 목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서초교회에서 일하는 교역자(목사와 전도사)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 교회이다 보니 후임 담임목사에 대한 이런 저런 의구심과 이야기가 오갔지만 워낙 막강한 영향력과 존경을 받는 정지만 목사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건축 목사가 서초교회 담임목사가 된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런 의구심과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글로벌 미션’을 기치로 내걸고 교역자 회의에서부터 영어로 회의를 하고 유학파 목사와 한인2세 목사들을 대거 영입해 영어바람을 일으킨다. 김건축 목사는 부임하기 전부터 서초교회 목사들의 동향을 파악해 자신의 부임 이후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목사들을 요직에 앉힌다. 엥? 무슨 조폭두목도 아니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교회는, 더군다나 교회의 목사는 하나님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거 아냐? 순진한 소리다. 정지만 원로목사 시절 기를 펴지 못하고 한직에서 맴돌던 목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김건축 목사의 눈에 들기 위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김건축의 종’이 된다. 담임목사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김건축 목사의 눈에서 벗어나면 다른 교회의 목사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는 목사들에게 그들의 신앙은 헌신짝이 된다. 오히려 자기합리화를 한다. 김건축 목사의 ‘글로벌 미션’과 이런 저런 일들을 방해하는 무리는 사탄이라고 확정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어 버린다.

목사라고 별 수 없다.

 

 

“기업으로 치자면 서초교회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그 큰 교회의 청년부를 내가 총괄하게 되다니!” (p.10)

“사실이 그랬다. 좋은 대학을 나와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까지 갔다 온 목사들이 즐비한 서초교회에서 간사 출신인 나는 남들 눈에 그저 그런 신학대학원을 나와 운 좋게 교회에 남게 된 사람으로 비춰졌다.” (p.23)

 

더군다나 장세기 목사 같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 부서 담당 목사를 채용하는 데 이력서가 수십 장이 접수되었다고 하니 서초교회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장세기 목사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다. 어떻게 해서든지 김건축 목사의 눈에 드는 것.

처음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고 그의 이상한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목사들도 점차 순응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못해 먹겠다고 교회를 뛰쳐나간 목사들의 행보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장세기 목사도 마찬가지다.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기 전 서초교회에서 자신의 롤모델이 되었던 선배 목사들의 충고도 이젠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교회의 정치화 - 아멘 하는 교인들

 

“‘서초교회 김건축 목사의 베스트셀러 <글로벌 마인드로 정복하는 영어회화>, 자신이 직접 쓰지 않았다!’” (p.147)

 

김건축 목사와 그가 요직에 앉힌 목사들은 교묘하게 언론을 이용한다. 부임 초기 ‘글로벌 미션’을 앞세우고 영어 회의를 하고 아프리카 찬송을 부르고 하는 등의 우스갯거리가 언론에 대서특필 된다. 서초교회는 물론 다른 교인, 일반인들에게까지 단번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김건축 목사는 베스트셀러를 집필하는데 이것 또한 대박이 난다. 그런데 대필 의혹에 휘말린다. 직접 대필을 한 사람의 내부고발이 있었음에도 결국 탁월한 언론플레이로 무마해 버린다. 이후 ‘글로벌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땅을 사들이는 일도 내부고발로 밝혀지게 되는데 이것도 넘겨 버린다.

 

“여론을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해. 댓글은 철저히 PC방이나 중국 쪽 우회 서버를 통해서 달아야 해. IP 추적을 해도 절대 알 수 없도록. 절대 실수하지 마. 이 사이트는 교회와 별개인 자발적 사이트여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p.286)

 

마치 지난 대선 전 짠~ 하고 등장한 십알단이 생각나는데, 차마 실제로 저런 것이 지금의 교회 안에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장세기 목사는 대언론 전을 담당하게 된다. 이런 저런 의혹과 폭로에 휘말리지만 김건축 목사에게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멘~ 할렐루야’라고 대답하는 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조용기 목사와 전병욱 목사의 설교에 아직도 크게 ‘아멘’을 외치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교회 내에서 올바른 비판을 하고 교회와 목사, 장로와 집사가 정치화 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세력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그대로 가위로 오래내듯 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는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나는 청년부의 부흥이라는 결과로 내 존재 가치를 보여 줄 자신이 있었다.” (p.137)

 

장세기 목사가 김건축 목사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청년부를 계속해서 담당하게 된 후 하는 다짐이다. 한국교회에서 생각하는 부흥은 교회의 대형화와 교인의 증가다. 한국교회에만 존재하는 부흥의 해석이다. 그래서 교인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에 목사와 교회는 아주 민감하다. 장세기 목사도 그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김건축 목사의 라인을 잡았으니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청년부의 부흥이다. 청년부의 부흥은 무엇으로 증명하나. 청년부 구성원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교회 내에서도 물신(物神)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성장과 증가가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

 

 

 

청년의 씨가 마르는 한국교회

 

“목사님, 아직은 뭐라 말하기가 좀 이릅니다. 청년부 회원 상당수는 이런 보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사실 지금은 다들 취업이다 뭐다 해서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한 회원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그는 그런 건 관심이 없고 혹시 청년부에 간사 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묻더라고요.” (p.157)

 

책을 읽으며 자꾸만 장세기 목사가 담당하는 청년부 회원에 대한 언급을 찾게 되었다. 서초교회가 분명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을 저자가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다. 결국 청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슬프고 암담했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80년대 청년들은 교회 내에서 민주화 운동과 독재투쟁에 대해 공론화하고 함께 기도하고 실제로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지역 교회의 실정은 더 형편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들이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다른 정치적 아젠다에도 관심이 없는 청년들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슨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김건축 목사의 비위와 거짓말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청년부 간사자리를 물어보기에 이른 것이다. 요즘 대학의 동아리 활동은 무척 위축되었다고 한다. 학회 활동도 그렇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런 학내 활동과 문제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학점과 취업에만 매달린다고 한다. 이들을 탓할 수 없다. 사회와 국가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청년부 예배를 본 후 소그룹으로 나눠져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하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의 참석률은 저조하기 이를 데 없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냥 관성으로, 부모의 간섭으로, 친구 만나러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청년 교인들을 나무랄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는 젊은 교인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다. 그냥 저냥 지금의 교회 몸집 유지하는 것에 급급하다.

이 소설의 결말은 암울하다. 김건축 목사는 여전히 굳건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고 떠들던 언론도 조용하다. 심고 만든 댓글부대도 견고하다. 목사들은 김건축의 눈에 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교인들은 그저 ‘아멘~’ 한다. 청년들은 제 밥그릇 찾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교회 내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교회 내 문제에 대해서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던 내가 보기에도 이 책의 내용들 중 ‘진짜 이렇겠어? 소설이라 과장을 한 거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 옥성호씨는 이 책의 내용은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곪아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이런 책은 교회 목사님은 물론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청년들을 비롯한 젊은 교인들은 필수적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한국 교회의 치부를 그냥 덮어버리고 모른 척만 하다가는 정말 희망이 없다. 돌이키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신의 일을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으니 말을 줄인다.

이 책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 교회에 비판적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 넓이가 한국 교회에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광과 어느 목수 이야기
이반 바레네체아 지음, 유 아가다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가지면 더 가지고 싶고 받으면 더 받고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그 혹은 그녀가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그 자체로 욕심 덩어리다. 역사 상 존재했던 이념 중 가장 평등하고 이상적이었던 공산주의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과소평가 한 것이다. 새롭게 창조되는 유토피아에서는 인간들이 모두 같은 지위와 계급이 되고 ‘내 것이 네 것이 되는’ 아름다운 이상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라 생각했다. 공산주의라는 이상 앞에 함께 모인 사람들 안에서도 숙청과 파벌과 싸움이 빈번했고 가장 진보적인 정치이념 속에서 가장 보수적인 파시즘과 스탈린주의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기심과 욕심이 인간 본성, 그 자체임을 간과한 것이다.

「전쟁광과 어느 목수이야기」는 얇은 그림책이다. 그림에 비해서 글은 턱없이 내용이 적고 비슷한 구절과 문장이 반복되는 형태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목수 피르민은 어찌나 솜씨가 좋던지, 그가 만든 나무 바퀴는 정말 완벽해서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떼굴떼굴 굴러갔다. 바퀴는 구르고 굴러서 지평선 밖으로 사라졌다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한두 해 뒤에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목수 피르민은 이 책에서 완벽하게 기술을 지배하는 현대사회로 그려지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사를 통해 알게 된 진실은 결국 그 문명과 과학의 한 가운데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목수 피르민은 그런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미국의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이 그대로 수십,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최첨단의 전쟁 기술로 활용되었다. 당시의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와 실험이 정확하게 어떻게 활용될지 몰랐을 것이다. 목수 피르민은 다만 그가 가진 기술을 활용했을 뿐이다. 나무 바퀴만 만들어서 쳐다보기만 해도 떼굴떼굴 굴러가고 그 나무 바퀴가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을 탑재할 수 있는 최고의 과학자였다. 목수 피르민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술로 봄부스 남작을 만난다.

 


“팔이 만족스럽게 움직이자, 봄부스 남작은 피르민에게 다가가 꼭 껴안으며 말했다.”

“훌륭하군, 목수 선생! 훌륭해! 이 나무 팔은 정말이지 이전 팔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것 같네!”

 

 

봄부스 남작은 아마 부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속한 국가를 향한 뜨거운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목수 피르민이 봄부스 남작의 각종 신체기관을 새로 만들어 줄 때마다 봄부스 남작의 침실을 찾아 온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한 걸 보면 그가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봄부스 남작은 참전한 전쟁에서 꼭 신체기관 중 일부를 잃어버리고 온다. 어찌 보면 엽기적일 수도 있는데 봄부스 남작의 입장에서는 목수 피르민의 존재가 엄청난 위안과 용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재력, 내가 가진 국가를 향한 충성심, 내게 있는 능력으로 나는 전쟁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이다.’라고 매번 전쟁에 참전할 때마다 다짐했겠지만 번번이 큰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봄부스 남작에게는 목수 피르민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봄부스 남작과 목수 피르민이 있을까? 책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봄부스 남작은 목수 피르민보다 사회적 계급적 우위에 있다. 봄부스 남작은 고용인이고 목수 피르민은 피고용인인 것이다. 매번 심각한 부상을 안고 돌아올 때마다 남작은 피르민을 부른다. 피르민이 가진 최고의 기술로 더 나아진 신체기관을 장착(?)한다. 그리고 또 다시 전쟁에 뛰어 든다. 나방이 자신의 불행한 결말을 예측하지 못한 채 불빛으로 뛰어드는 것 같이 전쟁에 뛰어들면 뛰어들수록 더 심각하고 더 치명적인 부상을 안게 되는 데도 불구하고 남작은 멈추지 않는다. 만약 목수 피르민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봄부스 남작과 목수 피르민의 관계는 어떻게 재설정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을 해봤다. 능력 있고 돈 있고 야망 있고 충성심 있는 봄부스 남작을 움직인 것은 결국 목수 피르민이라는 것이다. 목수 피르민의 존재가 없었다면 봄부스 남작은 첫 전쟁에서 입은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다시는 전쟁에 참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술과도 같은 피르민의 기술로 인해 남작은 거듭 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다. 결국 ‘갑은 목수 피르민’, ‘을은 봄부스 남작’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해괴한 생각을 하고 나니 일상에서 보게 되는 여러 가지 현상에도 적용해보게 된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입법을 주도하고 정치를 주무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국회의원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국회의원들이 발의하고 입법한 법을 집행하고 일반 국민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은 행정부에 속한 직원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자본가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앞에 나서서 뭇매를 맞는 이들은 국회의원들과 정치인, 행정가들이지만 그들의 뒤에서 그들을 좌지우지 하는 존재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로 바꿔 버리면 그만이다. 목수 피르민이 봄부스 남작의 팔을 고치고 다리를 고치고 머리를 고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요점은 그들이 가진 힘이다. 그것이 돈, 인맥, 명예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 막강한 힘으로 인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목수 피르민이 없었다면 봄부스 남작은 한 쪽 팔을 잃은 첫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 내지는 장기간의 요양과 휴식, 치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그의 야망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피르민의 기술은 계속해서 봄부스 남작을 움직인다.



“간신히 목숨만 건진 터라 경황이 없어서 어느 쪽 다리로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피르민은 양쪽 다리를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지금까지의 경우보다 두 배로 힘든 도전이었지만 피르민은 겁내지 않았다. 피르민은 작업실로 들어가 사흘 내내 쉬지 않고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다리를 완성했다.”

 

 

봄부스 남작은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내리막길의 자동차처럼 질주한다. 멈출 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위태롭지만 목수 피르민의 강력한 추동으로 인해 멈추지 못한다.



“봄부스 남작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나무 팔과 나무다리를 쭉 편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예전처럼 적들을 찾아 나설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주치의와 남작부인, 총리 그리고 추기경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목수에게 다가가 한 명씩 돌아가며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피르민에게 금으로 가득 찬 주머니를 건네며 기쁘며 말했다.”

 

처음 봄부스 남작이 팔이 새로 만들어졌을 때, 다리가 만들어졌을 때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시큰둥함 이다. 그림에서 잘 드러난다. ‘설마 또?’, ‘에이~ 이제 그만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뭐 이래? 또 졌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책에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추해 보자면 마지막 봄부스 남작의 머리를 새롭게 바꾸고 그로 인해 남작이 생을 마감했을 때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훌륭하군, 목수 선생! 훌륭해! 이 나무 머리는 정말이지 이전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것 같네!”

 

마치 ‘잘 됐어’, 내지는 ‘이제 좀 편안하네’ 정도의 표정으로 읽힌다. 앞서 했던 괴이한 추측처럼 유교기간이 다 차도록 쓴 후 자연스럽게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닌 가 싶다. 그들은 매번 새로운 봄부스를 창조해 내는 목수 피르민을 향해 경의를 표했지만 마지막 경의 또한 이전 것들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봄부스 남작의 야망, 욕심은 끝난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2, 제3, 제4의 봄부스는 차고 넘친다. 마치 ‘을’의 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갑’의 위치에 있는 숨어 잇는 목수 피르민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봄부스를 바꿀 수 있다. 몸부스, 봄무스 등의 형태로 뜨거운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뛰어들 충성심 넘치는 봄부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지켜낸다는 것 - 칭화대 10년 연속 최고의 명강, 수신의 길
팡차오후이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가 들면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30대 중반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더욱 간절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말과 행동의 신중함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소위 잘 나가는 3학년 형들의 눈에 띄어 1년을 실컷 놀았다. 할 거 다 해보고 각종 먹을 거 다 먹어 봤다. 그리고 각종 탈 거 다 타 봤다. 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차마 장동건을 닮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겠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을 보고 당시 젝스키스에서 활동하던 은지원을 많이 닮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은지원 보다 조금 더 강하게 생기고 인상이 좀 더 무섭다고 보면 되겠다. 한참 정신 팔려 놀고 다닐 때는 눈빛도 무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하면 ‘더 노는 애처럼 보일까? 더 무섭게 보일까? 상대를 겁먹게 만들까?’ 가 주된 관심사였다. 그래서 오만상을 쓸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실컷 놀고 나니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떨어진 성적과 부모님의 실망 정도? 아무튼 대학교와 군대까지 첫 인상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군대는 또 장교를 지원해 복무했던 관계로 소대장 시절에는 40명 정도의 소대원을 이끌어야 했기에, 더 사나와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 소초에 들어가 경계근무를 하고 있을 때, 전방 소초에서 ‘김일병 사건’이 일어나 이후 소대장 시절 내내 인상을 쓰고 있어야 했다. 도무지 선해질 줄 모르던 내 인상을 그나마 지금정도로 바뀌게 한 것은 아내다. 100% 장담한다. 나는 인상도 무섭게 생긴데 더해 성격도 급하다. 급한 성격에 다가 바른말을 면전에서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 이해되지 않는 처사, 내지는 걸어오는 시비를 일부러 피하지는 않는 성격이다. 그렇다 보니 인상과 기질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가 많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정의로운 신념을 행동으로 보이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맨날 싸움개처럼 싸우고만 다녔다는 것도 아니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살면서 나의 기질과 인상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매일 아내와 마주하고 살다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 또는 어떤 상처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사람의 종류는 딱 두 가지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성실하지 않은 사람. 특히 시간약속. 나는 어지간해서는 시간약속에 늦지 않는다. 어떤 길로 가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약속장소에 도착한다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서 머릿속에서 그린다. 그러면 늦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시간약속에 철저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나는 이렇게 잘 지키는데, 시간 약속하나 안 지키는 것들은 뭐야!!’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분노 게이지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분명히 좋지 않은 그 짓을 꾸준히 해오다가 결혼하고 확 바뀌었다. 여전히 나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만 상대가 혹시 약속 시간에 늦더라도 분노 게이지를 채워 놓지 않는다. 아내의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었는지에 대해서까지 말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으니 생략하고, 어쨌든 나는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과는 다른 기질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허나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고 변할 리는 없는 터, 이 책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책은 총 9강으로 되어 있다. 저자 팡차오후이 교수는 중국 내 젊은이들에게 동양의 고전에서 ‘나를 돌아보고, 지켜내는’ 방법을 찾기를 원했다.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는데, 저자도 수없이 많은 서양철학과 책들을 읽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에 손을 놓았던 동양의 고전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비로소 결핍을 메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팡차오후이 교수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이것을 전한다. 값싸게 멘토질 하려는 자기계발서 따위가 아니라 10년을 꾸준히 젊은 학생들과 만나고 호흡하며 만들어낸 책이다.

없는 말이 아니라 책의 9강 모두 가슴에 새길만한 주제다. 학교에서나, 책에서, 혹은 TV를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주제들임에도 새롭게 전해진다. 어렵고 두껍고 귀찮다고 해서 내쳤던 동양의 고전 중 일부를 소개하는 저자의 친절함이 더해져 읽기에도 어렵지 않다.

 

 

“근언(謹言), 언행을 삼가 군자에 이르는 힘” (p.237)

“나이가 들수록 ‘근언(謹言)’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부주의한 말을 내뱉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하려 하지 않는 사람, 또 남의 스승 노릇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고” (p.240)

 

‘근언(謹言)’, 이 책을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다. 근언이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봤거니와 앞서 길게 말했던 것처럼 요즘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해서 눈을 부릅뜨고 읽었다. 나는 딱히 군자에 이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도 굳이 이르고 싶은 모습을 말하자면 ‘범인(凡人)’ 이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 하지만 범인으로 산다고 해서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근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언이 중요하고, 말이 가볍고 함부로 내뱉는 것, 척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지 않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책으로 읽고 이렇게 풀어보면 아주 당연한 것이고 쉬운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굉장히 어려운 가르침이다. 30대 중반, 내 나이쯤 되면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많다. 직장에서의 직책으로, 교회에서의 직분으로, 친구들 사이에서의 관계로 가르치고 스승 노릇 하고 싶어 할 때가 부지기수다. 운 좋은 날에는 적절한 타이밍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어떤 날에는 상대방의 싫은 내색을 분명히 인지했음에도 그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모임은 영락없이 불편해 진다.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그 말이 무겁고 조용하며, 안정되지 못한 사람은 그 말이 가볍고 빠르다.” <근사록> (p.266)

 

<근사록>이라는 책에는 근언의 중요한 포인트가 담겨 있다. 단지 말을 삼가고 행동에 주의를 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을 우선한다. 마음이 안정된 사람이 내뱉는 말은 가볍지 않으며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뭔가 다급하고 급박할 때 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결코 진중하지 않다. 일을 할 때는 물론 사람과 대화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뭔가 잘못을 해서 변명을 하는 사람의 말과 일을 끝낸 후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은 사람의 말은 차원이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음색과 목소리 톤도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경험하지만 귀담아 듣지 않아 넘어갈 뿐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겁고 조용한가, 아니면 가볍고 빠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신독(愼獨)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힘” (p.169)

“<중용>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걱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신독을 이해했습니다. 즉 마음에서 솟아나는 모든 생각과 행위에 대해 극도로 경계한 말입니다.” (p.183)

 

또 하나의 주제 ‘신독(愼獨)’도 인상 깊었다.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힘.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럴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냥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 생각을 줄곧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책에서는 <중용>을 소개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걱정해야 한다.’ 이것 또한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 비로소 자유를 경험하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혼자 있는 것조차 조심하고 경계하란 말이야!’라는 타박을 받기 딱 좋은 권유다. 하지만 이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대학 때까지 내가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졸업 후 성격유형검사를 통해 나의 내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로 내향성을 더 발전시키고 내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외향적인 사람에게도 꼭 필요하다. 사실 성격과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눈과 손과 발이 향해있는 곳은 늘 외부다. 밖이다. 상대방이다. 그곳에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나를 돌아보고 나와 마주하라고 가르친다. 그것도 철저하게 나와 마주하라고 한다. 상대방을 지적하고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향했을 경우는 다르다. 애써 피하고 직면하지 않으려 한다. 결코 나에 대한 부정이 아님에도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방어하려 한다. 그래서 ‘신독(愼獨)’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말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특히 SNS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다들 너무 똑똑하고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스마트폰 키패드에 손가락을 올리기 전에 한번만 ‘신독(愼獨)’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존양(存養) 마음을 살펴 하늘의 뜻을 찾는 힘” (p.41)

“치심(治心) 양심을 지켜 자유를 누리는 힘” (p.135)

 

더불어 존양(存養), 치심(治心)과 같은 개념도 흥미롭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 계속해서 누적되기만 하고 있는 고민의 웅덩이를 조금이나마 개이게 해 주었다.

남에게 시선을 향하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이 나를 향했을 때는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상 어른이 되는 길은 요원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꼰대가 아니라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지켜내는 일’이 우선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 친구 익현이는 조교 생활을 했었다. 군대 휴가 차 학교에 들러 익현이를 만났다. 학부때 전공에 관심이 없어 늘 다른 분야 책들만 들고 다니던 녀석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부 전공을 그대로 살려 조교 생활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조교 생활이 너무 바쁘다며 투덜대는 녀석과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2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호출이 왔다. 지도교수라고 했다. 절반도 비우지 못한 밥을 우걱우걱 집어넣으며 지도교수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지도교수는 세미나에 가 있다고 했는데, 뭔가 중요한 서류를 빠뜨렸나 싶었다. 헐레벌떡 뛰어 나가며 익현이가 말했다.

“개 밥 주러 가야돼.”

1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점심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도교수라는 사람의 전화 한통에 부리나케 뛰어나간 용건은 ‘개 밥’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익현이의 조교 생활은 가관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지도교수의 아파트 도우미였다. 밥을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개밥을 주고, 아무튼 시키는 것은 모조리 순종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씩씩거리는 내게 익현이가 말했다.

“원래 그래.”

익현이는 대학원 졸업 후 군에 갔다. 전역 후 바로 취직했다. 취직 직후 다시 익현이를 만났다. 그가 취업한 곳은 지역에서는 유망한 중소기업이었다. 당시가 최악의 취업난이었는데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좋은 회사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냐는 물음에 익현이가 말했다.

“교수님이 소개시켜 줬어.”

전역 후 찾아 간 지도교수는 이력서를 만들어 오라고 했단다. 그리고 조만간 OO회사 인사팀에서 전화가 올 테니, 가보라고 했단다. 전화를 받고 찾아간 그 회사의 이사실에는 지도교수가 있었단다. 그 회사의 이사와 지도교수, 익현이가 점심 한 끼를 같이했단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익현이는 그 회사에 출근했다.

“개고생을 한 보답이 있다.”

라며 쓴웃음과 함께 쓴 소주를 들이키던 그 무렵의 어느 날 밤 술자리가 아련하게 기억 된다.

지금 익현이는 그 회사의 과장이 되었고,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

 


“류성문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저분이 어떤 분인가? 평생을 한국 문학을 위해 몸 바쳐 왔고 언제나 후학들에게 학문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실천해 보여온 분이었다. 어려운 제자들에겐 사비를 털어 학비와 책값을 보태주기까지 하던 분이었다.” (p.144)

 

김윤식은 그야 말로 산과 같은 분이다. 적어도 류성문과 같은 그의 후학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 문학의 값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그때에도 홀연히 찬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 낸 어른이다. 후학과 제자들에게는 한 없이 따뜻한 아버지였다. 그로 인해 류성문은 문학비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문단에서, 교단에서, 출판계에서 이름을 알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류성문이 조교 한혜원과의 정사(情事)를 이어갈 수 있는 것 또한 어찌 보면 김윤식 덕이다. 그를 이 자리까지 오르게 해 준 사람이 김윤식이다. 그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의 자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익현이는 셈이 빠른 녀석이 아니다. 홀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뒷바라지 하셨다. 익현이 위로 누나만 셋이라 익현이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학부 졸업 직전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모두 미뤄두고 한 동안 농사일을 하고 여러 마리의 소를 키웠다. 그렇게 가업을 이어갈 줄로만 알았다. 오히려 익현이에게는 그게 더 잘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시 학교로 와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2년의 대학원 생활은 지도교수 도우미 생활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미련하다고 당장 때려치우라고 항의하라고 들볶았지만 익현이는 참아 냈다. 그리고 보상을 받았다. 제대로 된 면접조차 생략한 채 지도교수의 얼굴만으로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지금도 익현이가 지도교수와 연락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익현이의 인생에서 그 지도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만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주위에서 보기에 처절하고 불쌍해 보이던 조교 생활 덕택에 지금은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익현이를 제외하고도 그 교수를 거쳐 간 조교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모든 조교들이 익현이가 받은 만큼의 교수의 성심과 성의를 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교수가 시키는 일만 잘 했다면 분명 적절한 보상은 주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쁜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사회정의 차원에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익현이는, 다른 조교들은? 어쨌든 그렇게 최악, 최악이라 노래를 부르던 시기에 그 교수 덕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기이한 것은 일본 문학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을 일문학자들이나 한국의 국문학자들은 왜 단 한 번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p.128)

 

이인서는 김윤식이라는 이름 앞에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제 카르텔” (p.80)에 대항하려 한 것일까?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의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고 <말>지에 인터뷰가 실리면서 학계에서 난리가 났다. 언론계나 대중들은 관심이 없었는데, 학계는 뒤집어 졌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적어도 그 분야 학계에서는 김윤식이 임금이었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용안이었다. 젊은 학자의 순수한 비평적 태도였는지, 치기어린 용기였는지 이후에 전개된 이인서의 태도에서 대략 유추해 볼 수는 있지만 미처 소설적 맥락에서 담지 못한 정황을 놓칠까 싶어 실제 ‘이명원 사태’ 즈음한 기사와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기대와는 달리 딱히 책의 픽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 책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소설의 형식을 취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추적하지 않지만 주인공의 이름 중 유일하게 김윤식 교수만 실명으로 그리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반증이다. 여전히 김윤식 교수는 학계의 거두다.

일본 문학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을 읽고도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지적하지 않은 “사제 카르텔”은 그 형성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반복적인 탓에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익현이가 부당한 처우나 지시를 받는 것에 대해 그저 속 좋은 친구라서, 원래부터 착하고 심성이 고운 녀석이라서 찍 소리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원래 그렇게 다들 한다.”라는 쳐다볼 수조차 없이 솟구친 강력한 카르텔의 벽앞에 찍 소리조차 할 수 없도록 압도된 것이다. 그런 카르텔에 균열을 가한(카르텔을 깨부수기라도 한 것도 아닌) 이명원은 매장된다. 이명원을 제외한 다른 학계 인사들은 모종의 합의를 하고 다시 카르텔의 균열을 메운다.

 


“그렇더라도 박사가 학원까지 나가야 한단 말야?”

“한 해에 박사가 8천 명 이상씩 배출돼요. 이제 10만 명이 넘는데요. 쉽지 않아요.” (p.62)

 

한 해에 박사가 8천 명 이상씩 배출되는(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 학계에서 일정한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잘 찾아보면 주위에 그런 박사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적채된 박사가 10만 명에 이른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이다. 그래서 박사가 학원에까지 나가 강의를 해야 할 실정이다. 취업난은 교수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익현이는 분명 대학원 지도교수와 연락을 하고 지낼 것으로 확신이 든다. 명절이나 생일에는 전화 정도, 선물 정도는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교수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카르텔”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교수를 거쳐 간 후학과 제자들은 시멘트를 덧대어 바르고 발라 카르텔을 지탱한다.

 


“그 책은 그래도 지적할 거리도 많지만 유치한 가운데서도 꽤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 보이던데, 여성의 심리를 그렇듯 섬세히 그려 보이기도 쉽지 않구요. 아닌가요? 그런 점은 어떠셨는지요?”

“글쎄, 사실 나도 읽지를 못해서……. 그런 부분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 작가 생각은 어때?”

“글쎄요, 저도 아직 읽질 못해서…….” (p.87)

 

한혜원도 이인서와 내 친구 익현과 다르지 않다. 류성문과의 잠자리가 어떤 감정의 발로인지, 순수한 사랑인지도 알 수 없다. 책에서는 그런 구차한 감정을 묘사하지 않는다. 한혜원 또한 지도교수 부친상에 와서 음식을 나르고 일을 해야 한다. 류성문과의 섹스 뒤, 류성문에게 남겨진 섹스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시나리오를 디밀어야 한다. 그것이 생존하는 방법이다. 한혜원은 가장 천박한 수를 써서라도 본인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의 눈에 평론가, 소설가, 교수랍시고 앉아서 문학이 어떻네 저떻네 떠드는 비평은 천박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달고 있는 명찰에 쓰여진 직책으로 가치가 평가 된다. 이것은 비단 문학계, 타 학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인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나 라인이 있다. 어느 라인이 동아줄인지, 썩은 줄인지 판단해야 한다. 무리지어 공격하고 수비한다. 입체적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들어 온 자원으로 판단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술자리 안주거리 삼아 뜯고 씻고 맛보고 삼킨다. 그러다 한혜원과 같은 진짜 속물을 만나면!! 깨갱~ 어흠~... 그게 말이야…….

 


“나는 이 현실이 비단 내가 소속되어 있는 대학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된 하위모순이다. 구조와 맞서 고립된 한 개인이 싸울 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희생양’의 딱지일 확률이 높다. 나 자신의 삶이 그것을 증거한다.” (p.223)

 

가수 이승환이 고(故) 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가를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수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승환은 이미 친노종북 가수로 찍혀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관계된 행사와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낙인이 찍혔다. 김제동, 윤도현 등 수많은 연예인, 문화·예술 인사들에게 피의 보복이 가해 졌다. 이것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개인의 싸움과는 다르지만 보복의 방식은 유사하다. 이인서가 김윤식 교수의 표절의혹을 제기하고 거듭된 교수 카르텔의 경고와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자살행위에 기꺼이 몸을 던진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인서와 이명원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어느 미친 대학원 조교가 단지 자신의 치기를 들이밀고 싶어 그런 무모한 짓을 하나? 말만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면 어느 정도의 자리는 보장받을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어차피 한 번의 기사에 큰 반향을 기대했던 것은 아냐. 다른 언론에서 전혀 받아쓰질 않는 게 아쉽지만, 김윤식 교수 쪽에선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게 감지되고 있어.” (p.179)

 

월간 <말>지의 김진현 기자는 특종으로 이것을 보도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일견 예상된 일이었지만 참담할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표절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물 제비처럼 퍼져나가기 전에 차단되었다. 김윤식 이라는 봉우리를 떠받치는 산자락과 계곡과 산등성이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뉴스도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되기 전까지는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언론과 권력의 카르텔>은 이전 정권부터 이 구조를 고착화 해 왔다. 밀어붙여 통과시킨 후 만들어 낸 구조의 뿌리가 이제 완전히 자리 잡아 참담한 결과물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받아쓰지 않는 특종을 터트린 김진현 같은 기자는 업계에서 왕따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분 표절건 혹시 들어본 적 없어?”

“글쎄? 그런 이야기가 있어? 김윤식 교수면 한국 문학계에서 대통령 같은 사람 아냐? 그 사람이 이룬 학문적 성과는 가히 추종을 불허하잖아. 오늘 신문에도 문화면 톱이더만. 저서가 백 권에 이르렀다며. 감히 범접하기 힘든 봉우리라고.” (p.45)

 

그래도 여전히 김진현 기자와 정세진 사장과 같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한쪽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인서의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면 반드시 예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판사 사장 정세진은 책을 출간한다. 김진현 기자는 특종으로 보도한다. 오늘자 신문 문화면 톱을 장식했지만 쉽게 잊혀진다. 대중이 가진 한계라 봐야 하나?

 

이인서는 책이 출간되고 특종이 보도된 후 갑자기 조교를 그만둔다. 그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이면의 근본 이유는 주지하는 바다.

책을 읽고 이인서의 실제 주인공 이명원씨의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지, 그 일 이후 그가 부딪혔던 <카르텔>은 더 굳건해 졌는지 등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결국 양의 문제다. 이인서와 이명원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발전한다.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각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암약하는 <카르텔>을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은 반복해서 균열을 만드는 것뿐이다.

내 친구 익현이와 같은 대학원생 조교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 조교를 지원할 학생은 넘쳐 난다. 수요 공급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낳는 한국 사회가 더 악랄한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균열을 가하고 가해야 한다. 더불어 대중은 알아야 한다. 찾아서라도 알아야 한다. 우연히 포털 뉴스를 뒤지다가, SNS를 왔다 갔다 하다가 마주친 작은 사건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혹여 청소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3교대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 속에서, 수백 군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봐도 도무지 합격 통보 전화가 오지 않는 청춘들의 모습 속에서, 대학과 성적의 서열로 인생 전체를 결정짓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아주 작은 균열을 발견해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결국 김진현도 정세진도 책의 출간과 특종 보도를 통해 사회적 목표 달성은 물론 사적 욕망도 채우려 한 것이다. 그 욕망이 욕심이 되어도 상관없다. 자세나 체면은 고루한 껍데기다.

소설 속에 만난 인물들도, 익현이를 비롯한 내가 실제 만나는 인물들도 선악이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더 어렵다. 명확한 악이 구분되면 하다못해 욕이라도 실컷 퍼부을 수 있을 텐데 어려운 일이다.

선과악의 명징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에둘러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할 것도 없다. 무의미한 일이니까.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현실에서 무시무시한 카르텔에 균열을 만들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 기대해보는 수밖에. 어려워 보인다고, 무의미해 보인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처참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국가범죄- State Crimes
이재승 지음 / 앨피 / 2010년 11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14년 10월 24일에 저장
품절
20세기 환경의 역사
J. R. 맥닐 지음, 홍욱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12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380원(1% 적립)
2014년 10월 24일에 저장
절판
[중고]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문학동네 / 2012년 3월
36,000원 → 20,900원(42%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판매자 : 하얀책들
출고예상시간 : 통상 72시간 이내
2014년 03월 27일에 저장
판매중지
[중고]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 2004년 11월
24,000원 → 15,000원(38%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판매자 : needsbook
출고예상시간 : 통상 72시간 이내
2014년 03월 27일에 저장
판매완료


2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