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평점 :
교회를 옮기고 싶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했던 생각임에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을 못하겠지만 십 수 년을 다니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모태신앙(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이거나 오랜 기간 한 교회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사실 교회라고 해봐야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보다 더 나은 교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무슨놈의 교회 안에서 문제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옥성호씨의 에필로그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나 내가 그 동안 교회에 다니며 겪은 일들은 뉴스나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보도된 것들 보다 더 심각하고 다양하다. 군사독재시절 폭발적으로 증가한 교회의 숫자와 교인의 숫자는 언제인지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지만 90년대 들어서부터 정체되거나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의 뒤통수를 보면 한국교회의 심각함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교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70,80년대 폭발적 교회성장을 낳은 1세대 목사들 이후 2세대 목사들이 등장하면서 교회는 무작정 대형화되는 것을 멈추고 수평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교회 옮기기 현상이다. 토속적 기복신앙과 이상하게 결합된 한국교회의 특이한 교리는 더 이상 젊은 교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교인들은 보다 새롭고 젊고 신선한 교회를 찾아 떠났다. 9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런 현상은 이어졌다.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등장한 이후 골목상권이 깡그리 없어지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 젊고 신선하고 새로운 교회에 교인을 빼앗긴(?) 기존 교회들은 교회 내 수평이동을 조장하느니, 뭐니 하면서 비판을 했지만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떠나는 젊은 교인들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올해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는 교회다.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고 명망 있는 교회다. 몇 년 전부터 교회 설립 100주년을 준비했는데, 올해 100주년을 맞아 하는 행사들과 행태들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자세히 언급하기조차 싫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회의 위상과 곪을 대로 곪은 지역 사회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젊은 교인들이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모조리 무시되었다.
최소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100년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다가오는 101년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교회가 과도한 예산을 들여 하는 이상한 일들을 보면서 말들이 많다. 한 번씩 인터넷을 달구거나 하는 교회내의 싸움과 분열과 숙청(일부 교인들이 대거 쫓겨나는)의 가장 큰 이유는 이런 100주년이다 교회 건축이다 하는 큰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큰 교회 몇 군데는 이미 그런 일들로 홍역을 치렀다.
교회 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다. 한 교회에 있는 목사를 비롯한 교역자에서부터 장로, 권사, 집사, 일반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려 하니 각기 상충하는 욕망들이 충돌하는 것이다. 교회도 똑같다.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다. 당연히 갈등이 있고 욕망이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상하게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목사와 장로의 세력 다툼, 장로와 장로의 세력 다툼 등으로 왜곡되어 이용된다. 사실 이런 것들을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다. 교회와 목사와 장로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그마이고 교리이며 교회의 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교회 형에게 열심히 드럼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떤 장로가 창문을 벌컥 열더니 “그런 쓰레기 같은 노래 집어치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정말 이상한 걸 배우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대학 때 성경을 몇 번 읽고 많은 신앙서적을 읽으며 신앙관이 180도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교회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이후 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해보고 내가 다니는 교회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모두 헛수고 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제 지쳤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더 이상 뭘 건의하거나 교회 내 어른들을 만나 대화를 하거나 목사나 전도사님을 만나 토론을 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렇다.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 책 「서초교회 잔혹사」는 출간되기 전부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책이다. 출간직후 그 유명한 사랑의 교회에서는 명예훼손이다 뭐다 해서 난리를 쳤던 모양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의 교회가 일으킨 분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제와 내용이다. 아마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책의 저자가 고(故)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고 사랑의 교회가 서초동에 위치하고 있으니 지레짐작으로 ‘아~ 우리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이구나’ 싶었겠지만 전혀 아니다. 저자 옥성호씨는 책의 처음과 끝에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 한다.
‘사랑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고 한국교회 내 전반적인 모순과 문제들에 대한 풍자’라고 말이다.
나도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책을 읽으면 별 내용도 아닌데 왜 호들갑들인지 모르겠다.
목사라고 별 수 있나
“기억하게. 교회를 살리는 길이야. 교회가 살고 담임목사님이 살아야 하나님이 일하시지. 교회가 없고 담임목사님이 없는데 하나님이 어디 있나? 안 그래? 여기서 열심히 해야 결국 자네도 언젠가는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길 거 아냐?” (p.284)
대형교회 중 대형교회인 서초교회에 김건축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서초교회가 국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고 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를 만든 사람은 정지만 목사다. 정지만 목사는 교회 내 교인들은 물론 국내 많은 교인들과 목회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단한 목사다. 그런 그가 담임목사를 그만두고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김건축 목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서초교회에서 일하는 교역자(목사와 전도사)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 교회이다 보니 후임 담임목사에 대한 이런 저런 의구심과 이야기가 오갔지만 워낙 막강한 영향력과 존경을 받는 정지만 목사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건축 목사가 서초교회 담임목사가 된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런 의구심과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글로벌 미션’을 기치로 내걸고 교역자 회의에서부터 영어로 회의를 하고 유학파 목사와 한인2세 목사들을 대거 영입해 영어바람을 일으킨다. 김건축 목사는 부임하기 전부터 서초교회 목사들의 동향을 파악해 자신의 부임 이후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목사들을 요직에 앉힌다. 엥? 무슨 조폭두목도 아니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교회는, 더군다나 교회의 목사는 하나님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거 아냐? 순진한 소리다. 정지만 원로목사 시절 기를 펴지 못하고 한직에서 맴돌던 목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김건축 목사의 눈에 들기 위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김건축의 종’이 된다. 담임목사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김건축 목사의 눈에서 벗어나면 다른 교회의 목사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는 목사들에게 그들의 신앙은 헌신짝이 된다. 오히려 자기합리화를 한다. 김건축 목사의 ‘글로벌 미션’과 이런 저런 일들을 방해하는 무리는 사탄이라고 확정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어 버린다.
목사라고 별 수 없다.
“기업으로 치자면 서초교회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그 큰 교회의 청년부를 내가 총괄하게 되다니!” (p.10)
“사실이 그랬다. 좋은 대학을 나와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까지 갔다 온 목사들이 즐비한 서초교회에서 간사 출신인 나는 남들 눈에 그저 그런 신학대학원을 나와 운 좋게 교회에 남게 된 사람으로 비춰졌다.” (p.23)
더군다나 장세기 목사 같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 부서 담당 목사를 채용하는 데 이력서가 수십 장이 접수되었다고 하니 서초교회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장세기 목사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다. 어떻게 해서든지 김건축 목사의 눈에 드는 것.
처음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고 그의 이상한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목사들도 점차 순응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못해 먹겠다고 교회를 뛰쳐나간 목사들의 행보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장세기 목사도 마찬가지다.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기 전 서초교회에서 자신의 롤모델이 되었던 선배 목사들의 충고도 이젠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교회의 정치화 - 아멘 하는 교인들
“‘서초교회 김건축 목사의 베스트셀러 <글로벌 마인드로 정복하는 영어회화>, 자신이 직접 쓰지 않았다!’” (p.147)
김건축 목사와 그가 요직에 앉힌 목사들은 교묘하게 언론을 이용한다. 부임 초기 ‘글로벌 미션’을 앞세우고 영어 회의를 하고 아프리카 찬송을 부르고 하는 등의 우스갯거리가 언론에 대서특필 된다. 서초교회는 물론 다른 교인, 일반인들에게까지 단번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김건축 목사는 베스트셀러를 집필하는데 이것 또한 대박이 난다. 그런데 대필 의혹에 휘말린다. 직접 대필을 한 사람의 내부고발이 있었음에도 결국 탁월한 언론플레이로 무마해 버린다. 이후 ‘글로벌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땅을 사들이는 일도 내부고발로 밝혀지게 되는데 이것도 넘겨 버린다.
“여론을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해. 댓글은 철저히 PC방이나 중국 쪽 우회 서버를 통해서 달아야 해. IP 추적을 해도 절대 알 수 없도록. 절대 실수하지 마. 이 사이트는 교회와 별개인 자발적 사이트여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p.286)
마치 지난 대선 전 짠~ 하고 등장한 십알단이 생각나는데, 차마 실제로 저런 것이 지금의 교회 안에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장세기 목사는 대언론 전을 담당하게 된다. 이런 저런 의혹과 폭로에 휘말리지만 김건축 목사에게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멘~ 할렐루야’라고 대답하는 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조용기 목사와 전병욱 목사의 설교에 아직도 크게 ‘아멘’을 외치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교회 내에서 올바른 비판을 하고 교회와 목사, 장로와 집사가 정치화 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세력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그대로 가위로 오래내듯 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는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나는 청년부의 부흥이라는 결과로 내 존재 가치를 보여 줄 자신이 있었다.” (p.137)
장세기 목사가 김건축 목사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청년부를 계속해서 담당하게 된 후 하는 다짐이다. 한국교회에서 생각하는 부흥은 교회의 대형화와 교인의 증가다. 한국교회에만 존재하는 부흥의 해석이다. 그래서 교인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에 목사와 교회는 아주 민감하다. 장세기 목사도 그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김건축 목사의 라인을 잡았으니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청년부의 부흥이다. 청년부의 부흥은 무엇으로 증명하나. 청년부 구성원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교회 내에서도 물신(物神)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성장과 증가가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
청년의 씨가 마르는 한국교회
“목사님, 아직은 뭐라 말하기가 좀 이릅니다. 청년부 회원 상당수는 이런 보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사실 지금은 다들 취업이다 뭐다 해서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한 회원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그는 그런 건 관심이 없고 혹시 청년부에 간사 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묻더라고요.” (p.157)
책을 읽으며 자꾸만 장세기 목사가 담당하는 청년부 회원에 대한 언급을 찾게 되었다. 서초교회가 분명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을 저자가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다. 결국 청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슬프고 암담했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80년대 청년들은 교회 내에서 민주화 운동과 독재투쟁에 대해 공론화하고 함께 기도하고 실제로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지역 교회의 실정은 더 형편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들이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다른 정치적 아젠다에도 관심이 없는 청년들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슨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김건축 목사의 비위와 거짓말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청년부 간사자리를 물어보기에 이른 것이다. 요즘 대학의 동아리 활동은 무척 위축되었다고 한다. 학회 활동도 그렇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런 학내 활동과 문제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학점과 취업에만 매달린다고 한다. 이들을 탓할 수 없다. 사회와 국가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청년부 예배를 본 후 소그룹으로 나눠져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하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의 참석률은 저조하기 이를 데 없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냥 관성으로, 부모의 간섭으로, 친구 만나러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청년 교인들을 나무랄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는 젊은 교인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다. 그냥 저냥 지금의 교회 몸집 유지하는 것에 급급하다.
이 소설의 결말은 암울하다. 김건축 목사는 여전히 굳건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고 떠들던 언론도 조용하다. 심고 만든 댓글부대도 견고하다. 목사들은 김건축의 눈에 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교인들은 그저 ‘아멘~’ 한다. 청년들은 제 밥그릇 찾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교회 내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교회 내 문제에 대해서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던 내가 보기에도 이 책의 내용들 중 ‘진짜 이렇겠어? 소설이라 과장을 한 거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 옥성호씨는 이 책의 내용은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곪아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이런 책은 교회 목사님은 물론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청년들을 비롯한 젊은 교인들은 필수적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한국 교회의 치부를 그냥 덮어버리고 모른 척만 하다가는 정말 희망이 없다. 돌이키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신의 일을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으니 말을 줄인다.
이 책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 교회에 비판적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 넓이가 한국 교회에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