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광과 어느 목수 이야기
이반 바레네체아 지음, 유 아가다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가지면 더 가지고 싶고 받으면 더 받고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그 혹은 그녀가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그 자체로 욕심 덩어리다. 역사 상 존재했던 이념 중 가장 평등하고 이상적이었던 공산주의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과소평가 한 것이다. 새롭게 창조되는 유토피아에서는 인간들이 모두 같은 지위와 계급이 되고 ‘내 것이 네 것이 되는’ 아름다운 이상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라 생각했다. 공산주의라는 이상 앞에 함께 모인 사람들 안에서도 숙청과 파벌과 싸움이 빈번했고 가장 진보적인 정치이념 속에서 가장 보수적인 파시즘과 스탈린주의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기심과 욕심이 인간 본성, 그 자체임을 간과한 것이다.

「전쟁광과 어느 목수이야기」는 얇은 그림책이다. 그림에 비해서 글은 턱없이 내용이 적고 비슷한 구절과 문장이 반복되는 형태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목수 피르민은 어찌나 솜씨가 좋던지, 그가 만든 나무 바퀴는 정말 완벽해서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떼굴떼굴 굴러갔다. 바퀴는 구르고 굴러서 지평선 밖으로 사라졌다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한두 해 뒤에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목수 피르민은 이 책에서 완벽하게 기술을 지배하는 현대사회로 그려지고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사를 통해 알게 된 진실은 결국 그 문명과 과학의 한 가운데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목수 피르민은 그런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미국의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이 그대로 수십,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최첨단의 전쟁 기술로 활용되었다. 당시의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와 실험이 정확하게 어떻게 활용될지 몰랐을 것이다. 목수 피르민은 다만 그가 가진 기술을 활용했을 뿐이다. 나무 바퀴만 만들어서 쳐다보기만 해도 떼굴떼굴 굴러가고 그 나무 바퀴가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을 탑재할 수 있는 최고의 과학자였다. 목수 피르민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술로 봄부스 남작을 만난다.

 


“팔이 만족스럽게 움직이자, 봄부스 남작은 피르민에게 다가가 꼭 껴안으며 말했다.”

“훌륭하군, 목수 선생! 훌륭해! 이 나무 팔은 정말이지 이전 팔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것 같네!”

 

 

봄부스 남작은 아마 부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속한 국가를 향한 뜨거운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목수 피르민이 봄부스 남작의 각종 신체기관을 새로 만들어 줄 때마다 봄부스 남작의 침실을 찾아 온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한 걸 보면 그가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봄부스 남작은 참전한 전쟁에서 꼭 신체기관 중 일부를 잃어버리고 온다. 어찌 보면 엽기적일 수도 있는데 봄부스 남작의 입장에서는 목수 피르민의 존재가 엄청난 위안과 용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재력, 내가 가진 국가를 향한 충성심, 내게 있는 능력으로 나는 전쟁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이다.’라고 매번 전쟁에 참전할 때마다 다짐했겠지만 번번이 큰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봄부스 남작에게는 목수 피르민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봄부스 남작과 목수 피르민이 있을까? 책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봄부스 남작은 목수 피르민보다 사회적 계급적 우위에 있다. 봄부스 남작은 고용인이고 목수 피르민은 피고용인인 것이다. 매번 심각한 부상을 안고 돌아올 때마다 남작은 피르민을 부른다. 피르민이 가진 최고의 기술로 더 나아진 신체기관을 장착(?)한다. 그리고 또 다시 전쟁에 뛰어 든다. 나방이 자신의 불행한 결말을 예측하지 못한 채 불빛으로 뛰어드는 것 같이 전쟁에 뛰어들면 뛰어들수록 더 심각하고 더 치명적인 부상을 안게 되는 데도 불구하고 남작은 멈추지 않는다. 만약 목수 피르민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봄부스 남작과 목수 피르민의 관계는 어떻게 재설정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을 해봤다. 능력 있고 돈 있고 야망 있고 충성심 있는 봄부스 남작을 움직인 것은 결국 목수 피르민이라는 것이다. 목수 피르민의 존재가 없었다면 봄부스 남작은 첫 전쟁에서 입은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다시는 전쟁에 참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술과도 같은 피르민의 기술로 인해 남작은 거듭 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다. 결국 ‘갑은 목수 피르민’, ‘을은 봄부스 남작’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해괴한 생각을 하고 나니 일상에서 보게 되는 여러 가지 현상에도 적용해보게 된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입법을 주도하고 정치를 주무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국회의원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국회의원들이 발의하고 입법한 법을 집행하고 일반 국민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은 행정부에 속한 직원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자본가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앞에 나서서 뭇매를 맞는 이들은 국회의원들과 정치인, 행정가들이지만 그들의 뒤에서 그들을 좌지우지 하는 존재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로 바꿔 버리면 그만이다. 목수 피르민이 봄부스 남작의 팔을 고치고 다리를 고치고 머리를 고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요점은 그들이 가진 힘이다. 그것이 돈, 인맥, 명예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 막강한 힘으로 인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목수 피르민이 없었다면 봄부스 남작은 한 쪽 팔을 잃은 첫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 내지는 장기간의 요양과 휴식, 치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그의 야망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피르민의 기술은 계속해서 봄부스 남작을 움직인다.



“간신히 목숨만 건진 터라 경황이 없어서 어느 쪽 다리로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피르민은 양쪽 다리를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지금까지의 경우보다 두 배로 힘든 도전이었지만 피르민은 겁내지 않았다. 피르민은 작업실로 들어가 사흘 내내 쉬지 않고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다리를 완성했다.”

 

 

봄부스 남작은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내리막길의 자동차처럼 질주한다. 멈출 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위태롭지만 목수 피르민의 강력한 추동으로 인해 멈추지 못한다.



“봄부스 남작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나무 팔과 나무다리를 쭉 편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예전처럼 적들을 찾아 나설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주치의와 남작부인, 총리 그리고 추기경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목수에게 다가가 한 명씩 돌아가며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피르민에게 금으로 가득 찬 주머니를 건네며 기쁘며 말했다.”

 

처음 봄부스 남작이 팔이 새로 만들어졌을 때, 다리가 만들어졌을 때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시큰둥함 이다. 그림에서 잘 드러난다. ‘설마 또?’, ‘에이~ 이제 그만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뭐 이래? 또 졌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책에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추해 보자면 마지막 봄부스 남작의 머리를 새롭게 바꾸고 그로 인해 남작이 생을 마감했을 때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훌륭하군, 목수 선생! 훌륭해! 이 나무 머리는 정말이지 이전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것 같네!”

 

마치 ‘잘 됐어’, 내지는 ‘이제 좀 편안하네’ 정도의 표정으로 읽힌다. 앞서 했던 괴이한 추측처럼 유교기간이 다 차도록 쓴 후 자연스럽게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닌 가 싶다. 그들은 매번 새로운 봄부스를 창조해 내는 목수 피르민을 향해 경의를 표했지만 마지막 경의 또한 이전 것들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봄부스 남작의 야망, 욕심은 끝난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2, 제3, 제4의 봄부스는 차고 넘친다. 마치 ‘을’의 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갑’의 위치에 있는 숨어 잇는 목수 피르민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봄부스를 바꿀 수 있다. 몸부스, 봄무스 등의 형태로 뜨거운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뛰어들 충성심 넘치는 봄부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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