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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낸다는 것 - 칭화대 10년 연속 최고의 명강, 수신의 길
팡차오후이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평점 :
나이가 들면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30대 중반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더욱 간절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말과 행동의 신중함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소위 잘 나가는 3학년 형들의 눈에 띄어 1년을 실컷 놀았다. 할 거 다 해보고 각종 먹을 거 다 먹어 봤다. 그리고 각종 탈 거 다 타 봤다. 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차마 장동건을 닮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겠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을 보고 당시 젝스키스에서 활동하던 은지원을 많이 닮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은지원 보다 조금 더 강하게 생기고 인상이 좀 더 무섭다고 보면 되겠다. 한참 정신 팔려 놀고 다닐 때는 눈빛도 무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하면 ‘더 노는 애처럼 보일까? 더 무섭게 보일까? 상대를 겁먹게 만들까?’ 가 주된 관심사였다. 그래서 오만상을 쓸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실컷 놀고 나니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떨어진 성적과 부모님의 실망 정도? 아무튼 대학교와 군대까지 첫 인상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군대는 또 장교를 지원해 복무했던 관계로 소대장 시절에는 40명 정도의 소대원을 이끌어야 했기에, 더 사나와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 소초에 들어가 경계근무를 하고 있을 때, 전방 소초에서 ‘김일병 사건’이 일어나 이후 소대장 시절 내내 인상을 쓰고 있어야 했다. 도무지 선해질 줄 모르던 내 인상을 그나마 지금정도로 바뀌게 한 것은 아내다. 100% 장담한다. 나는 인상도 무섭게 생긴데 더해 성격도 급하다. 급한 성격에 다가 바른말을 면전에서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 이해되지 않는 처사, 내지는 걸어오는 시비를 일부러 피하지는 않는 성격이다. 그렇다 보니 인상과 기질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가 많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정의로운 신념을 행동으로 보이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맨날 싸움개처럼 싸우고만 다녔다는 것도 아니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살면서 나의 기질과 인상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매일 아내와 마주하고 살다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 또는 어떤 상처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사람의 종류는 딱 두 가지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성실하지 않은 사람. 특히 시간약속. 나는 어지간해서는 시간약속에 늦지 않는다. 어떤 길로 가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약속장소에 도착한다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서 머릿속에서 그린다. 그러면 늦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시간약속에 철저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나는 이렇게 잘 지키는데, 시간 약속하나 안 지키는 것들은 뭐야!!’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분노 게이지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분명히 좋지 않은 그 짓을 꾸준히 해오다가 결혼하고 확 바뀌었다. 여전히 나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만 상대가 혹시 약속 시간에 늦더라도 분노 게이지를 채워 놓지 않는다. 아내의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었는지에 대해서까지 말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으니 생략하고, 어쨌든 나는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과는 다른 기질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허나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고 변할 리는 없는 터, 이 책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책은 총 9강으로 되어 있다. 저자 팡차오후이 교수는 중국 내 젊은이들에게 동양의 고전에서 ‘나를 돌아보고, 지켜내는’ 방법을 찾기를 원했다.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는데, 저자도 수없이 많은 서양철학과 책들을 읽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에 손을 놓았던 동양의 고전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비로소 결핍을 메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팡차오후이 교수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이것을 전한다. 값싸게 멘토질 하려는 자기계발서 따위가 아니라 10년을 꾸준히 젊은 학생들과 만나고 호흡하며 만들어낸 책이다.
없는 말이 아니라 책의 9강 모두 가슴에 새길만한 주제다. 학교에서나, 책에서, 혹은 TV를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주제들임에도 새롭게 전해진다. 어렵고 두껍고 귀찮다고 해서 내쳤던 동양의 고전 중 일부를 소개하는 저자의 친절함이 더해져 읽기에도 어렵지 않다.
“근언(謹言), 언행을 삼가 군자에 이르는 힘” (p.237)
“나이가 들수록 ‘근언(謹言)’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부주의한 말을 내뱉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하려 하지 않는 사람, 또 남의 스승 노릇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고” (p.240)
‘근언(謹言)’, 이 책을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다. 근언이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봤거니와 앞서 길게 말했던 것처럼 요즘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해서 눈을 부릅뜨고 읽었다. 나는 딱히 군자에 이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도 굳이 이르고 싶은 모습을 말하자면 ‘범인(凡人)’ 이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 하지만 범인으로 산다고 해서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근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언이 중요하고, 말이 가볍고 함부로 내뱉는 것, 척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지 않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책으로 읽고 이렇게 풀어보면 아주 당연한 것이고 쉬운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굉장히 어려운 가르침이다. 30대 중반, 내 나이쯤 되면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많다. 직장에서의 직책으로, 교회에서의 직분으로, 친구들 사이에서의 관계로 가르치고 스승 노릇 하고 싶어 할 때가 부지기수다. 운 좋은 날에는 적절한 타이밍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어떤 날에는 상대방의 싫은 내색을 분명히 인지했음에도 그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모임은 영락없이 불편해 진다.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그 말이 무겁고 조용하며, 안정되지 못한 사람은 그 말이 가볍고 빠르다.” <근사록> (p.266)
<근사록>이라는 책에는 근언의 중요한 포인트가 담겨 있다. 단지 말을 삼가고 행동에 주의를 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을 우선한다. 마음이 안정된 사람이 내뱉는 말은 가볍지 않으며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뭔가 다급하고 급박할 때 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결코 진중하지 않다. 일을 할 때는 물론 사람과 대화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뭔가 잘못을 해서 변명을 하는 사람의 말과 일을 끝낸 후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은 사람의 말은 차원이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음색과 목소리 톤도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경험하지만 귀담아 듣지 않아 넘어갈 뿐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겁고 조용한가, 아니면 가볍고 빠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신독(愼獨)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힘” (p.169)
“<중용>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걱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신독을 이해했습니다. 즉 마음에서 솟아나는 모든 생각과 행위에 대해 극도로 경계한 말입니다.” (p.183)
또 하나의 주제 ‘신독(愼獨)’도 인상 깊었다.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힘.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럴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냥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 생각을 줄곧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책에서는 <중용>을 소개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걱정해야 한다.’ 이것 또한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 비로소 자유를 경험하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혼자 있는 것조차 조심하고 경계하란 말이야!’라는 타박을 받기 딱 좋은 권유다. 하지만 이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대학 때까지 내가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졸업 후 성격유형검사를 통해 나의 내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로 내향성을 더 발전시키고 내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외향적인 사람에게도 꼭 필요하다. 사실 성격과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눈과 손과 발이 향해있는 곳은 늘 외부다. 밖이다. 상대방이다. 그곳에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나를 돌아보고 나와 마주하라고 가르친다. 그것도 철저하게 나와 마주하라고 한다. 상대방을 지적하고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향했을 경우는 다르다. 애써 피하고 직면하지 않으려 한다. 결코 나에 대한 부정이 아님에도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방어하려 한다. 그래서 ‘신독(愼獨)’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말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특히 SNS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다들 너무 똑똑하고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스마트폰 키패드에 손가락을 올리기 전에 한번만 ‘신독(愼獨)’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존양(存養) 마음을 살펴 하늘의 뜻을 찾는 힘” (p.41)
“치심(治心) 양심을 지켜 자유를 누리는 힘” (p.135)
더불어 존양(存養), 치심(治心)과 같은 개념도 흥미롭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 계속해서 누적되기만 하고 있는 고민의 웅덩이를 조금이나마 개이게 해 주었다.
남에게 시선을 향하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이 나를 향했을 때는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상 어른이 되는 길은 요원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꼰대가 아니라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지켜내는 일’이 우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