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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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관광업계에 이민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내 나이 또래 즈음한 사람들, 특히 가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이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 직후 멘붕에 빠진 채로 허탈해 하며 ‘우이쒸~ 이민이나 가야겠다.’ 뇌까린 것이었는데 요즘은 나누는 이야기가 꽤 구체적이다. 멀리 외국에 친척이라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그를 부러워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민을 갈 수 있는 것처럼 부러워한다. 참사를 겪은 후 도대체 뭘 믿고 살아야 하는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지다 보니 ‘내 아이 만큼은 다른 곳에서 키워야한다.’라는 생각이 젊은 가장들 사이에 가득하다.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국가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들로 가득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이상 이민 1세대가 겪었던 그런 신화와 같은 이민 스토리는 더 이상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다못해 용접이나 미장 기술, 전기배선 기술 같은 것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과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격을 취득하기 전까지 가족은 먹고 살아야 하고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이민 대상국에서 비자를 내어줄 지도 확실치 않다. 만나서 이민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실제로 이민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의 암담함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심산일 것이다. 참 슬픈 일이다. 국가의 중추가 되는 30,40대 젊은 가장들이 모이면 꼭 이민 이야기를 나눈 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일자리는 없고 일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불안정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책임져 주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대다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본토에 남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로든 경제적인 이유로든 이민을 간다는 것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의 생활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현재 내 생활이 풍요롭고 행복한데 왜 사서 고생을 하게 될 이민을 꿈꾸겠나. 갈수록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없어지고 있다.



“머리카락 한 올을 봉투에 넣습니다. 봉투 안에 머리카락이 없으면, 누군가가 편지를 뜯어봤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알려주세요.” (1권, p.81)


이 책 「자유로운 삶」의 주인공 난은 시인이자 학자였다. 천안문 사태이후 당국의 처벌과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책은 난과 핑핑의 아들 타오타오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의 미국을 향한 러시가 이어졌고 난과 핑핑도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미국으로 떠났다. 하나밖에 없는 타오타오를 미국 땅에서 만났지만 난은 혼란스러웠다. 아들을 무사히 미국 땅에서 만났지만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이 미국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중국 정부의 박해와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떠나 왔지만 그들은 난을 가만두지 않았다. 비자를 연장하거나 하는 등의 업무를 고의적으로 막거나 방해했다. 난은 미국까지 떠나왔으니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아본 후 확신하게 되었다. 편지에는 머리카락을 동봉한다고 적었으나 실제로는 머리카락을 넣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온 아버지의 답장에는 올 굵은 머리카락 한 올이 동봉되어 있었다. 당국에서 편지 내용을 읽고 집어넣은 것이었다. 난은 비록 몸은 이역만리 떨어져 있었지만 결코 중국에서 떠나있지 못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죠? 내 사업이 잘못되면 중국이 나를 도와줄까요? 내가 어디에서 단 1달러라도 받을 수 있나요? 중국이라면 넌더리가 나요. 더 이상 관대해지고 싶지 않다고요.” (1권, p.370)

“그런 말 하면 안 돼.”

“무슨 말?”

“우리가 중국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


“알아. 화가 나서 그랬을 뿐이야. 우리 피에서 중국을 쥐어짜낼 수 있다면 좋겠어.” (1권, p.372)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난과 핑핑은 멀리 조지아에 정착하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배운 요리기술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식당을 열게 된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남아있는 주택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핑핑은 옷 한 벌 사지 않고 일했다. 우리가 흔히 들었던 자수성가한 이민 1세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말이 자수성가지 하루 1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통해 겨우 살 집과 운영할 식당을 열게 된 것이었다. 그런 난과 핑핑에게 메이 홍에 찾아온다.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모금을 하기 위해 지역에서 꽤 알려진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난을 찾아온 것이다. 난은 넌더리가 난다며 모금을 거부한다. 메이 홍은 어쩔 수 없는 중국인 아니냐며 다그친다. 쫓겨나다시피 떠나 온 중국인데 중국, 국가, 애국을 들먹이는 메이 홍을 보며 난은 분노한다. 하지만 난과 핑핑은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신문을 보면 중국이 메달을 몇 개 땄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는 감정적으로 그러한 사람들과 철저히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2권, p.223)


1992년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렸다. 다시 메이 홍이 찾아왔다. 올림픽에 참가한 중국 선수들이 현지 음식이 맞지 않아 난의 식당에서 음식을 도맡아 해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난과 핑핑은 흔쾌히는 아니지만 결국 그 요구를 들어준다. 그리고 신문을 보며 중국의 메달 숫자를 확인하는 난은 스스로 깨닫는다. 결국 자신은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맙소사. 아직도 20년 전과 똑같네요.”

“그래요. 근본적으로 같죠.” (2권, p.312)

“이제 그는 더욱더 미국에서 살다가 죽고 싶었다. 조지아의 집이 그리웠다.” (2권, p.356)


우연히 당첨된 복권은 베이징 행 왕복 항공권이었다. 다시 찾아간 중국은 여전했다. 스모그와 뇌물과 부정과 부패... 그리고 끈적끈적 들러붙는 요구와 기대들.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욕심만 드러내고 어머니 또한 난이 겪은 어려움과 아픔과 눈물은 생각하지 않고 20달러짜리 지폐에만 탐닉한다. 남동생 또한 호주로의 이민을 꿈꾸고 있었다. 난은 그가 겪은 고통을 동생에게 들려주며 신중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동생도 이민을 떠날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도 잊지 못했던 첫사랑 베이나의 소재도 알아낸다. 고향 하얼빈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 난은 베이나를 찾아 나선다. 멀리까지 찾아간 베이나는 여전히 요염하고 표독스러웠지만 이제껏 꿈꾸고 간직했던 추억의 그녀가 아니었다. 난은 그렇게 아프고 슬프게 현실에 직면한 후에야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의 친구야. 믿어도 돼.”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 (1권, p.100


난은 아내 핑핑을 아프게만 했다. 핑핑은 헌신적인 아내이자 현명한 여자다. 남편 하나만 믿고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도 늘 그의 곁을 지키고 뒷바라지 한다. 여전히 시인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상만을 좇는 남편을 현실로 끌어오기도 하고 갈등을 겪는 난과 아들 타오타오 사이를 적절하게 중재하기도 한다. 주변의 이웃들과도 먼저 친해지는 것은 늘 핑핑이었다. 실제로 난과 핑핑은 현지인 이웃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데 만약 핑핑 없이 난 홀로 이민 생활을 했다면 그는 단시간에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은 베이나를 잊지 못한다. 슬픈 것은 핑핑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자리에서조차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심정이 어떨까.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데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왔을 것 같다. 난은 속으로는 아내 핑핑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고마운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눈은 늘 밖으로 향했다.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부른 현지 여성의 탄탄한 몸을 보고 감탄하며 “여자는 독립적이어야 한다.”라는 헛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서야 난은 핑핑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것도 베이나에 대한 실망을 겪고 난 후다. 결국 난은 핑핑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정과 아이를 지키기 위한 핑핑의 눈물 나는 악전고투가 없었다면 난이 이루어 낸 아메리칸 드림은 그냥 드림으로 그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한 아내를 볼때마다 “신은 분명 여성을 더 위대하게 만들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이민 온 중국 남성들은 고약하다.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백인 여자와 살고 있는 바우는 그저 얹혀 살다가 쫓겨난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헹은 자신의 아내가 식당의 단골손님이던 흑인에게 가버리자 더 여리고 약한 중국 유학생 파오를 강간한다. 난은 헌신적인 아내를 두고도 베이나를 잊지 못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정치적 망명중인 유력인사의 미국내 강의나 강연에서도 남성들은 여전한 꼰대 기질을 벗지 못한다. 자신들조차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상을 향해 뜬구름만 잡고 있다. 오히려 젊은 여성 메이 홍은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비록 중국 당국을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도움을 찾고 이민 온 이민자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 길을 도모하자고 피력한다. 그런 메이 홍의 현실적인 대안에 함께 강연 자리에 모여있던 남성들은 야유를 보낸다.

“더 문제였던 건 중국 본토에서 온 일부 남자들의 성격이 고약해졌다는 것이었다. 전에 갖고 있던 우월감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1권, p.225)

남성적 우월감을 갖는 다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당장 살 길을 찾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상은 필요없다. 살기 위해서 3천권이 넘는 책을 처분해야 하고 빚을 갚기 위해 옷 한 벌 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남성이라 불리우는 존재들은 여성에 대한 태생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남성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민 1세대의 이야기다. 지금은 이민 2,3세대가 이미 가장이 되었다. 이민을 갔지만 여전히 중국과 한국의 가부장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그의 2세대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핑핑과 난은 타오타오가 배우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자를 베껴 쓰게 했다.” (1권, p.517)


어려서부터 미국 학교에서 미국인 아이들과 함께 지낸 이민 2세대는 그들의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민 1세대 들이야 자식들에게도 모국어를 가르치고 집에서 만큼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싶겠지만 그들의 자식들에게 모국어는 큰 가치가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영어를 제외하고 스페인어나 불어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구태여 모국어를 배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이민 2.5, 3세대쯤 되는 아이들이다. 그런 미국인 아이들을 상위에 랭크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굳이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노래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미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국, 모국어, 조국 등을 거론하는 것은 거추장스럽다. 이런 이민 1세대 이후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민 2,3세대를 그리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큰 갈등이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전에는 분명치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분명해졌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10년 동안이나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꿈이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축할 수만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2권, p.436)


이렇듯 이민은 현실이다. 한국에서 이민을 간 이민 1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다. 슈퍼마켓을 하며, 세탁소를 하며, 식당을 하며 어렵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실제적인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없다. 멋진 옷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들의 아이들을 보며 이민에 대한 환상을 가질 뿐이다. 현실은 이 책에 더 가까울 것이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고 고통받는 현실 말이다.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난은 주변의 말처럼 그가 드림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여전히 그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베이나의 표독스러운 말처럼, 또다시 그녀를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품은 명확한 결말이나 사건없이 끝난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난과 핑핑은 여전히 살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미국의 무시무시한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의료보험이 되는 직장을 또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타오타오와의 갈등은 더 심각해 질 것이고 식당일을 하며 망가진 핑핑의 몸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이라면 현재 난과 핑핑은 노년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타오타오는 결혼을 해 어린 아이, 즉 이민 3세대를 낳았을 것이다. 행복한 일이지만 여전히 이들 가족들에게는 현실적 문제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여전히 중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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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초여름의 어느 날...난은 제이드 카페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벌었다.” (p.264)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중국인을 고용한 카페에서 난에게 시간당 10달러를 줬다고 한다. 23년 전 제이드 카페보다 못한 한국의 고용현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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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의 기술 - 권력을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전략전술
쿠르치오 말라파르테 지음, 이성근.정기인 옮김, 문준영 감수해제 / 이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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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쿠데타를 겪은 한국에서 여전히 그 쿠데타의 주인공들이 살아 있거나 죽었어도 추앙받는 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박정희시로 개명하고 박정희역으로 개명하고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고 하는 것을 나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한때 전두환에게 탄압받던 민주인사가 변절해 여당 국회의원이 되어 전두환 앞에서 큰 절을 하는 기괴한 상황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일 것이다. 모르겠다. 단지 선거와 표 때문에 그렇게 쇼를 하는 것인지, 예전의 고통은 완전히 잊게 만드는 특수한 주사를 맞은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 나라를 살리셨지! 전두환이 물가는 잡았지! 하는 등의 이야기가 여전히 그 두 대통령 시대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에 경악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극성스러운 극우 집단들은 두 명의 쿠데타의 주인공들을 신격화하기도 한다. 그 집단에는 젊은 지식인, 학생들이 많다. 정상적으로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린놈이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을 겪어보지도 않고 친노종북 빨갱이 놈들한테 선동되어 저란다.”라고 말하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이것과 비슷한 말을 들었던 적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워낙 그쪽 정서에 강한 대구·경북이라 아마 더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쿠데타로 판명이 되고 전두환 같은 경우에는 내란죄가 적용되기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으로 의심되기도 한다.

이 책 「쿠데타의 기술」은 고전이다. 정치가이자 작가였던 말라파르테의 이 작품은 출산 이후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반대로 파시스트와 나치에 의해 금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격동의 시기를 몸으로 직접 살았던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증언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다. 책은 제목처럼 쿠데타의 기술을 가르치거나 묘책을 제안하지 않는다. 국가가 어떤 방법으로 정권이 탈취되고 재 탈취되는지, 그 과정에서 쿠데타라는 방식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 폴란드와 나폴레옹 당시의 프랑스, 스탈린과 무솔리니, 히틀러에 이르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나는 무엇보다 무솔리니와 파시즘에 대한 내용에 가장 큰 관심이 갔다.

“국가의 정복과 방어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그것은 기술적 문제라는 것, 국가 방어의 기술은 국가 정복의 기술을 지배하는 원리와 동일한 원리들에 의해 지도된다는 것, 그리고 쿠데타의 유리한 환경은 정치적 사회적 질서에 관한 것일 필요가 없으며, 국가의 일반적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 (p.283)

저자는 쿠데타가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피력한다. 한국에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나와 같은 세대 혹은 그 이전 세대들에게 쿠데타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때는 쿠데타라고 배우지도 않았다. 5.16 혁명, 12.12사태 정도로 배웠지 그 두 사건이 명백한 쿠데타였음에도 어용 교육을 받아왔던 것이다. 5.16 당시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무능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해 4.19기념일에 대규모 시위도 벌어지지 않았고 국민들의 동요도 없었다. 많은 역사적 사료에서 드러나듯이 박정희는 이미 예전부터 쿠데타를 모의했으며 몇 번에 걸친 변절과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인해 그가 한 쿠데타의 정통성이 사라졌다. 책에서의 논지처럼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였다. 어떤 이들을 포섭하고 회유해 쿠데타에 가담하게 하느냐, 쿠데타 모의의 성공을 위해 어떤 과정을 밟을 것이냐의 문제는 다분히 기술적인 문제이다. 12.12 쿠데타도 마찬가지다. 10.26사건 이후 김재규의 어이없는 판단 착오로 인해 그는 보안사에 의해 억류되었고 보안사를 장악하고 있던 전두환을 비롯한 육사 11기에 의해 정권이 탈취된 것이다. 5.16이후 쿠데타 정권과 12.12이후 쿠데타 정권이 한 일들을 돌이켜 보면 다분히 즉흥적이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쿠데타를 계획하고 모의하기도 했지만 어떤 정치적·경제적 필연에 의해 당위를 찾을 수 없었다. 군인들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정이 들어선 후 일정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정권을 민정에 이양한다는 말을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시간이 흐른 뒤 일정 정도의 시점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던 기술적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에게 국가와 국민의 일반적 상황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정도의 매우 탄력적인 도구에 불과했다.

“그들은 국가를 숭배하는, 절대적 국가의 옹호자들이다. 그들은 중앙 집권적, 권위주의적, 반자유주의적, 반민주적 국가 안에서 공산주의의 위험에 대항하여 자유와 질서를 지킬 수 있는 방파제를 발견했다.”

책에서 소개되는 쿠데타의 장본인들과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에게 국가는 절대적 개념이었다. 절대적 국가의 옹호자가 되어야 그들이 일으킨 쿠데타에 조금이나마 정통성을 덧씌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 국가의 상황이 부정하고 무능하며 자신들이 정권을 탈취하지 않으면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특수한 상황을 덧씌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방파제가 되고 방패가 되려고 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국가의 안에 있고, 국가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국가에 견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라고 말한 무솔리니의 인식에서 쿠데타 장본인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자유주의 의회 민주체제에 대해 정치,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신과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p.209)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집단이 이탈리아를 그렇게 쉽게 장악하고 수도 로마로 당당하게 진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국왕이 있었고 총리도 있었으나 이미 민심은 돌아섰고 만연해 있는 불신과 불만이 무솔리니가 손쉽게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후에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집권 세력이 이탈리아 내·외부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 방증이 되기도 했다. 애초에 정통성을 가지지도 못했고 대중과 국민의 지지를 받지도 못한 세력이었기 때문에 참전하거나 일으킨 전쟁에서 참패를 거듭했고 이반된 민심을 돌이키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2차 대전 이후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세력이 무너지면서도 나치와 같이 숙청이나 단죄를 받지 못한 또 다른 방증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전후 이탈리아 집권 정당이 가톨릭에 우호적인 기독민주당이었다는 점도 정부의 적극적인 파시즘 과거 청산을 어렵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파시스트 정권과의 협력 문제를 깊이 파헤친다면 바티칸과 교회의 독재 정권에 대한 암묵적 동의와 소극적 협력이라는 치부도 드러날 것이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p.299)

한국이 해방 후 친일부역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반민특위를 만들었지만 이승만과 수구·친일세력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일제의 경찰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경찰을 만들었고 식민 시절 내내 반민족 행위를 했던 조선 경찰을 그대로 채용했다. 여전히 입법·사법·행정부 곳곳에 일제 부역자 및 반민족 행위자들이 득시글한데 반민특위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애초부터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책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무솔리니와 파시스트의 몰락 이후 정권을 잡은 기독민주당은 무솔리니와 결탁한 과거를 드러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을 처단할 수 없었다. 뭉개버린 것이다. 마지막까지 일반 대중에게 힘이 되고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종교가 권력과 결탁했던 것이다. 낯설지 않은 역사다.

“전후 나치 정권 인사들과 적극적 협력자들은 철저히 색출해 재판을 거쳐 엄격하게 단죄했던 독일, 프랑스와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정식 재판을 받고 처벌된 파시스트는 아무도 없었다.” (p.298)

책에서 소개된 이탈리아의 역사를 보며 거듭되는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정식 재판을 받고 처벌된 친일 반민족행위자들 또한 없다. 아무도 없다.

“1995년 MSI는 해체되고 국민 연합으로 재편됐으며 곧 베를루스코니의 정당과 연합해 2001년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p.300)

외신을 통해 많이 들었던 베를루스코니. 한 번씩 유럽 학자들의 책을 읽다보면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고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거의 모든 이유가 베를루스코니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 최대의 갑부이기도 한 그가 총리가 되면서 이탈리아의 정치적 민주화는 후퇴하고 경제적으로도 이탈리아를 낙후하게 만들었다. 거대 미디어 재벌이기도 한 그는 언론을 장악해 이탈리아 국민들이 이탈리아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게끔 만들었다. 아... 물밀 듯 밀려오는 이 기시감...

그런데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몰락했지만 처단되지 않았던 파시스트의 잔재들이 만든 MSI라는 정당이 베를루스코니의 정당과 연합해 2001년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파시스트 세력이 이탈리아의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그렇다. 청산하지 못하고 단죄하지 못한 친일세력들은 여전히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나치 부역자들을 전 세계로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한국과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와 친일 부역자들을 앞으로도 영원히 단죄할 수 없다. 한번 어긋난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 이탈리아의 후퇴가 베를루스코니라는 잘못 뽑은 지도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탈리아도 한국과 별반 다른 것을 확인하니 씁쓸하다.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한 농부와 농촌 지역들에서 지지율 증가가 두드러졌다. 사회 계층적인 측면에서는 소지주와 중소 자영업자, 청년 실업자나 사회 진출의 전망이 불투명한 대학생들로부터 지지 세력을 계속 넓혀가고 있었다.” (p.261)

나치가 처음부터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무엇보다 청년 실업자나 사회 진출의 전망이 불투명한 대학생들로부터 지지 기반을 다졌다고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2014년 우리의 현실과 닮은 부분이 많아서다. 자신도 취업 준비생이면서 지난 코레일 철도노조 파업을 향해 “귀족노조”운운하던 보수 언론과 정부의 프레임에 그대로 동의하는 청년을 보면서 암담했다. 사회 구조가 낳은 비극이다. 두 번의 쿠데타를 겪은 한국 사회에서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나는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또 한 번 일어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만들어낸 이념 갈등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심각한 것은 세대 갈등이다. 세대 간 소통의 여지가 없다. 얼마 전 읽은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에서는 교사 간 소통 문제를 언급하는데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갈등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학교문제하면 학교와 학부모, 학생을 둘러싼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런데 일선 학교에서는 교사 간 갈등이 표면화되었다고 한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 세대 갈등이다. 전교조를 겪은 중견 교사들과 어렵게 어렵게 사범대에 입학했지만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젊은 교사들 간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보면서 이 세대 간 갈등이 하나의 직업군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 사회의 전 영역에 걸친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대체로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를 보며 쉽게 취업하고 쉽게 돈 벌고 쉽게 집 산 세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도 엄청나게 힘든 삶을 살았겠지만 현재 자신들의 상황보다는 나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와 국가는 그런 간극을 줄이고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한국의 정부와 기득권은 그런 능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의 보수화 현상과 일베 현상이 쉽게 사라질까?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고발을 하고 사이트를 통제한다고 해서 현상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다. 이미 만연해 있다고 본다. 파편화된 의식 속에 그저 입시와 취직에 매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치가 특정한 선전과 선동으로 실의에 빠진 독일의 젊은이들을 투사로 만들었던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직접 비교하기에는 큰 무리가 따르지만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현실이 될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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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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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돈 벌기 쉬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 책에 실린 짧은 글들은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약 사 년 에 걸쳐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이다.” (p.4)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 한국에서는 또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에세이도 아닌 것이 번역 기사도 아닌 것이, 딱히 뭐라 특정할 수 없는 하루키의 글 모음이다. 주로 미국의 유명한 잡지를 번역하고 그것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정도를 첨가한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발간되면 무조건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의 글이, 삼십년도 더 된 연재글을 모아도 책이 되고 돈이 된다니……. 신기하면서도 얼토당토않게 배가 아프면서도 부럽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주 전 김포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 댁에 갔었는데, 작은 어머니께서 저녁을 차리시면서 기다리는 중에 보라고 예전 사진앨범 몇 개를 들고 나오셨다. 예전 필름 사진을 인화해 3단 혹은 4단으로 끼워 넣으며 스크랩 한 사진 스크랩북이다. 스마트폰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어려서부터 사용해 온 어린 친구들은 ‘무슨 이런 골동품이 있나?’ 할 정도의 앨범들이었다. 바래고 바래 원래 앨범 겉 색깔이 무슨 색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앨범 속에는 작은 어머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여중·여고 시절 시커먼 교복을 입은 흑백사진 밑에는 이런 저런 메모가 적혀있었다. 어떤 페이지에는 은행잎을 코팅지로 붙여 앨범 속에 끼워 놓기도 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촌동생(작은 어머님의 아들)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유~ 형~ 나는 저거 500번은 봤을 걸??”

이 자식, 거짓말은. 아무리 엄마가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해주고자 시간 날 때마다 앨범을 들이 밀었기로 서니 500번은 너무하다 싶었다. 사촌동생에게 엄마의 빛바랜 앨범은 단 한번 엄마의 추억구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작은 어머니가 사촌동생에게 들이 민 수십 번의 추억은 단 한 번의 것이 절대로 될 수 없을 것이다. 펼쳐 들 때마다, 싫은 내색을 확연하게 보이는 아들 녀석에게 예전에 설명해줬던 것 그대로 다시 설명할 때마다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이 스크랩의 진정한 묘미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하루키와 출판사를 용서하기로 한다. 그저 그런 글을 모아 담아 단지 한국 독자들의 쌈짓돈을 빼앗아가려 졸속으로 만든 책은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작은 어머니의 70·80년대가 엄마의 앨범을 대하는 사촌동생의 반응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하루키처럼 「The, 나의 사진 스크랩 북」이라는 제목을 걸고 책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가지 하루키씨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이 500번 5000번도 더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것으로 그의 80년대가 평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하루키씨와 같은 80년대를 살지 않았고 작은 어머니의 70·80년대를 살지 않았지만 누구나 추억을 먹고 산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작은 어머니의 낡은 흑백 사진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아 본다. 추억은 재생산되기 마련이니까. 언젠가는 나의 90년대와 새로운 세기, 2000년대를 스크랩 하며 ‘그때는 그랬었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이야~ 2014년인가 그때쯤 스크랩을 한 책을 냈어. 책 모양도 정말 특이했었는데 말이야~ 책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로 한쪽 귀퉁이를 잘라냈는데, 우연히 그 곁에 있던 출판사 관계자의 눈에 신선해 보여서 그렇게 했다는 데 말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미국에서는 격렬한 콜라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p.215)

1985년 9월 5일 글이다. 지금은 식당에서 콜라를 시켰을 때 펩시를 주면 ‘에이~ 코카콜라 없어요?’ 라며 인상을 찌푸리게 될 만큼 코카콜라가 지배하는 세상인데, 30년 전에는 미국 본토에서 대단한 콜라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나 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ello>라는 곡으로 유명한 라이오넬 리치가 펩시의 전속모델이었다고 하니 해볼 만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던 가 보다. 사실, 그 콜라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말에 이르렀는지 나는 관심이 없다. 30년 전 콜라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과거를 교육받게 되는 것 같다. 그 교육이 학교에서의 그 지겨운 수업이 아니라 재미나다.

나에게 80년대는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이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TV로 보던 기억만 뚜렷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국민학생이던 나의 생일이 바로 ‘88서울 올림픽 개막식’ 당일이었다. 당시에는 생일날이면 친한 친구들을 불러 엄마가 차려 준 생일상에 둘러 앉아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아 풀어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어린 시절 나와 동생의 생일을 고집스럽게 음력으로 챙겨주던 어머니의 성화로 87년과는 다른 날짜에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매년 생일파티를 했는데, 유독 88년 생일파티만 기억나는 이유를 가만히 돌이켜보니, 크크크 좋아하던 여학생을 초대했었다.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스트라이프 원피스를 입고 온 그 아이. 그 아이가 선물해 준 필통. TV에 나오는 ‘88서울 올림픽 개막식’ 장면을 보고 있지만 곁눈질로 그 아이를 보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내게 80년대는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이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알파와 오메가다. 하루키씨처럼 연재를 하거나 메모를 해 놓지 못해 전적으로 흐릿한 기억들을 더듬어야 하겠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얘기해주고 싶은 장면이자 추억이다.


“최근 ‘스니커 미들’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이른바 ‘단카이세대(전후 일본의 베이비붐세대’가 나이를 먹은 것이다. 그러잖아도 숨 막히는 세대인데, 그들이 다들 중년이 되면 대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겁다. 아래 세대는 더욱 힘들 것이다. 진심으로 동정한다.” (p.29)

그가 우려한 대로 ‘단카이세대’이후 아래 세대는 숨 막히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연재하기까지 하루키씨는 일본경제의 추락을 경험하지 않았다. 버블이 한꺼번에 터져버리는 잔인한 기억은 현재 일본을 더욱 우경화하고 개인화·탈사회화했다. 당시에도 유명한 작가였던 하루키씨의 진심어린 동정이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와 닿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서글픈 현실을 마주한 일본과 한국의 상황에는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다.

나도 IMF이후 세대다. 급격하게 신자유주의가 밀어닥치고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탄생하고 불확실성과 무책임함이 사회 기저에 깔린 한국의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을 청춘으로 살았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에 이른 나이지만 톺아보면 생채기가 많다.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나고 아물었다 생각했던 쓴 뿌리가 고통스럽다.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극명하게 추억이 살아난다. 오롯이 아픔일 수 없고 오롯이 흐뭇할 수만은 없었던 우리들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돌아보다가 우리 아래 세대를 생각한다. 우리보다 더 극심한 고통에 있을 그들 이야기를 들먹이며 안타까워하다가 우리 새끼들이 겪을 그 보다 더할 고통을 생각하면 이전 잔까지는 달짝지근했던 술이 쓰다. 쓰고 쓰다.


“애리조나 주 투손에 사는 로버트 하그라는 28세의 남자는 운석 수집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뉴기니의 산골까지 돌아다니며, 산적을 만나기도 하고 사태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운석을 찾아다닌다.” (p.221)

시대가 달라도 사람 사는 모양은 비슷한 가 보다. 얼마 전 경남 진주에 떨어진 운석이 로또 몇 배의 가치가 있느니 마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런 보도가 나간 후 맞은 주말, 그 동네가 난리가 났단다. 전국 각지에서 운석 하나 찾아내려 모여든 것이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할 해프닝이었는데, 30년 전 미국에서는 전문적인 운석 수집가가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다. 단순히 수집가가 아니라 그것을 업으로 삼아 전국도 아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는 로버트 하그라씨.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지 문득 궁금해진다. 미국에 살건, 일본에 살건, 한국에 살건 사는 건 비슷한 모양이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많이 다르다고 생각되지만 한참이 지난 후 돌이켜 보면 비슷할 것 같다. 작은 어머니의 사진 앨범 속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시커먼 교복의 수줍은 여중생도, 하루키의 기억과 기록 속에 등장하고 있는 ‘단카이 세대’와 콜라전쟁, 로버트 하그라씨의 종횡무진 운석수집기도, 짧은 내 추억 속에 박혀 있는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도 비슷하다. 한 사람의 스크랩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거나 인간성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삿짐 싸다 벽장에서 나온 오래된 졸업앨범을 무심코 넘겨보는. 그런 기분으로 읽어주시길.” (p.6)

하루키씨의 제안이 정확하다. 나는 작은 어머니 댁에서 본 빛바랜 앨범을 보는 것 같았다. 하루키씨의 책은 30년 전, 작은 어머니의 앨범은 40년 전의 것이지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듯이, 스마트폰의 셔터 버튼을 누르듯이 일시정지 해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나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기억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의 어떤 순간에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줄 귀한 스크랩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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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성공 - 더 가치있게 더 충실하게 더 행복하게 살기
아리아나 허핑턴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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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아직도 젊고 어리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어?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나?’싶을 때가 있다. 20대 초·중반 새벽 3시30분에 하는 유럽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었다. 새벽 3시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당연히 새벽)경기를 시청한 후 잠이 들거나 잠시 잠들었다가 경기 시작 전 일어나 시청하고 했다. 알람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잠들기 직전까지 나는 잠들지만 깨어 있을 뇌에 명령을 내려놓는다. ‘꼭 3시30분 즈음에 일어나야 해!’ 그러고 나면 반드시 일어났었다. 유럽축구를 좋아하는 내게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생활의 활력소였다. 한숨도 자지 못하거나 1,2시간 쪽잠을 자고 나서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가서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주말에 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11시30분에 시작한 축구 경기를 분명히 보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하프타임이고 잠시 꾸벅하다가 깨 보면 후반전 30분이다. 아~ 정말 예전 같지 않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혹 보신다면 역정을 내시며 나무라실 수도 있지만 요즘 들어 내 몸의 퇴화과정을 인정하고 있다. 2년 전쯤 만성피로를 겪은 적이 있었다. 잠을 자도 피곤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고, 하루 종일 무기력할 때도 있었고 좀처럼 즐겁거나 흥분되는 일도 없었다. 처음에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다행이 그건 아니었다. 하루, 이틀, 한 달 그렇게 무기력하고 피곤한 나날을 지내다 시간이 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증상들이 사라졌다. 이전보다 더 바쁘게 산 것도, 다른 큰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특별한 일이나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 책 「제3의 성공」을 읽으며 그 때를 다시금 돌이켜 보다가 2년 전 그 무더웠던 여름 저녁이 생각났다.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은 달리기였다. 30대 이후 급격하게 불어난 뱃살과 옆구리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너무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여름 티셔츠가 있어서 입으려 했는데, 툭툭 삐져나온 살 때문에 급격히 다운된 후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이어폰을 귀에 끼고 달렸는데, 한 여름 밤에도 열대야가 지속되는 그 해 여름에는 이어폰이 땀에 절어 고장이 나기도 했다. 여름 내내 달렸다. 아무리 더워도 긴팔 상의를 입고 달렸다. 한참 땀을 흘리고 달리고 나면 개운하고 상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달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건설적이거나 내 삶을 돌아보거나 앞으로의 희망을 꿈꾸는 그런 생각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쓸데없는 잡념, 뜬구름 잡는 생각, 혹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단순히 복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년 후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더웠던 그 여름날의 달리기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만성피로와 무기력을 날려 준 결정타였음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 아리아나 허핑턴이 제시하는 것도 그것이다. 그녀는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나는 스미스 칼리지 졸업생들에게 기존의 성공 개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돈과 권력이 기준인 기존의 성공 개념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p.11)

“웰빙과 지혜와 경이로움 이외에, 성공을 판단하는 제3의 기준을 떠받치는 마지막 기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적극적인 마음으로, 감정이입과 측은지심에서 비롯된다.” (p.19)

웰빙과 지혜, 경이로움과 베풂이다. <허핑턴포스트>로 일약 가장 주목받는 언론인이자 경영인이 된 그녀가 바라보는 성공의 기준은 이전의 기준들과는 다른 것이다. 사실 네 가지의 기준이 한국어판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왜 <제3의 기준(혹은 길)>이 아니라 <제3의 성공>으로 번역되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 책에서 성공의 지름길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metric’이 어떤 이유에서 ‘성공’으로 번역되어 제목으로 붙여졌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허핑턴포스트>가 성공가도를 달리던 어느 순간,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현대인들은 앞만 보고 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앞만 보고 달려가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한 눈 팔거나 여유 있게 삶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암 환자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암 진단을 받은 후 비로소 자신의 몸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가능하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그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은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삶은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어. 다른 길이나 기준이 있어.’라고 깨달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히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2년 전 이유 없이 지속되던 만성피로와 무기력함을 이겨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소 불안하고 불투명하며 걱정되는 내 삶의 여정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한 번, 아니 몇 번이고 닥칠지 모르는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지. 그 방법 하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상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뉴에이지 세대의 한 수단이 아니다. 명상은 이제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행위, 다시 말하면 한층 생산적이고 적극적으로, 또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더욱 건강하게 세상에 동참하는 걸 도와주는 행위로 여겨진다.” (p.66)

“명상을 습관적으로 수행하기에 적합한 조용한 장소를 선택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정하라.” (p.143)

그녀가 제시하는 <웰빙>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서 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명상이나 충분한 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내게는 명상이라는 부분이 가장 크게 와 닿았다. 명상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명상은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장소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내게는 혼자 달리는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의 시간이 명상이다. 물론,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와 달리는 도중 마주치거나 추월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고 갑자기 만나는 소나기도 있지만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달리는 동안 나는 내 속으로 들어간다. 내 안으로 집중이 된다.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2년 전의 기억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련함과 시원함, 상쾌함과 개운함을 말이다. 도, 수양, 이상한 종교단체 등의 명상과 같은 기억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상이라고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별 관심도 없다. 명상이 크게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도 별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방법적인 측면이 아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자신만의 명상 즉, 집중할 수 있는 형태의 행위나 상태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달리기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어떤 이들에게는 충분한 수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는 나머지 3개의 또 다른 기준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제3의 기준은 지혜이다.

“우리는 더 예뻐야 하고 더 날씬해야 하며, 더 섹시하게 보이고 더 성공해야 하며,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훌륭한 엄마와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p.195)

우리나라처럼 이것이 큰 사회적 기준이 되고 있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입사시험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외모를 보고 5초 안에 판단한다고 한다. 그(그녀)가 아무리 면접 시 명쾌한 답변을 하고 제시하는 기준에 충족된다 하더라도 애초에 지원자의 외모를 보고 판단한 그 짧은 순간의 기준이 바뀌는 확률은 대단히 작다고 한다. 뭐 외모 지상주의라는 말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도드라진다. 드라마들을 보면 집 안에서도 풀 메이크업에 풀 헤어로 세팅한 여배우들이 잠옷을 입고 잠에 들거나 일어난다. 자고 일어나면 당연히 부스스 해야 하는데, 너무들 예쁘다. 아이돌이라고 나오는 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나 여자아이들이나 너무들 날씬하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아이들의 경악할 만한 식단을 알고 나면 ‘불쌍하다~’라고 생각하다가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또 다시 다이어트를 다짐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기준은 끊임없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어야 하고, 일 잘하는 직장인이 되어야 하고, 훌륭한 아내·남편·부모·친구가 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과의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패감을 감당하지 못하면 힘들어진다.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우월감이 아닌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볼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명상이 될 수 있다. 나는 물론 달리는 시간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이 제시하는 나머지 두 가지 기준은 경이와 베풂이다. 우리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하고 보람 있게 하며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이’에 주목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인이다. 교회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교회의 모습에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신앙을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또 그럴 때마다 내 신앙을 다시금 일깨우고 다지게 되는 ‘경이’의 순간들이 꼭 있었다. 너무나 개인적인 경험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우연히 마주한 상황, 의도치 않게 읽게 된 문장 하나,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다. 나는 유신론자다. 당연히 무신론자도 존중한다. 그들의 무신론도 하나의 믿음이자 신앙이다.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내게는 신이 없다고 믿는 믿음이 더 크다. 신이 있다고 믿는 믿음과 신앙이 내게는 더 자연스럽다. 종종 마주하는 ‘경이’의 순간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몸이 너무 피곤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에 허덕이다 보면 찾을 수 없다. 물리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도 제3의 기준이나 길 따위에 관심이 없으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가장 아끼고 좋아 하는 여름 티셔츠를 멋있게 입지 못할 것 같아 시작했던 2년 전의 달리기가 나에게 ‘제3의 기준 혹은 길’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렵거나 특별한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단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그 문서에서 손을 떼고,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고,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생각부터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전히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고 손가락들은 키보드위에서 춤추고 있으며, 퇴근시간은 도무지 다가오지 않고 그저 퇴근 후 술자리만 기다리고 있다면 ‘제3’은커녕 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도 설 자리를 찾아라. 지혜와 마음의 평화와 장점을 발휘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라.”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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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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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로 데뷔한 모 연예인의 음주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몇 주 전에는 유명한 모 힙합 뮤지션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 되어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을 하차하기도 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이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공인인 연예인이 음주 운전을 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분개한다. 아니 돈도 많은 연예인들이 대리운전하면 될 것을 왜 그러냐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인 일이고 그들이 무슨 공인이냐 반론을 할라치면 우르르 몰려와 난리를 친다. 그 연예인들이 대중들로 인해 인기를 얻고 그들이 출연한 TV프로그램이나 광고를 통해 돈을 벌었다면 그것은 이미 대중적인 혹은 공적인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일견 동의하면서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연예인들의 그런 사건과 사고에는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진짜 공인들에게는 왜 그렇게 관대하냐는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그렇다.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해 선출된 진짜배기 공인이다. 사적 욕망과 입신양명을 달성하라고 국회에 보낸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와 지역사회를 대변해 일을 해달라고 국회에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선거운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국회의원 임기 대부분을 자신의 사적 욕망과 입신양명을 위해 살아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사고와 사건을 일으키거나 사회적 상식의 선을 넘어선 발언이나 망발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한다.’ 라는 막말로 크게 문제가 되었던 전직 국회의원은 지금 케이블TV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내가 본 것만 해도 3-4개 프로그램은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이없는 막말을 한 전직 국회의원인 줄 뻔히 알면서 그가 나오는 혹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희희덕 거린다.

첨단의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지하철 무개념녀, 터미널 무개념남이 SNS상에 올라오면 바로 그(그녀)의 신상을 털어낼 정도다. 실시간으로 지구의 이쪽과 반대편이 연결되고, 과거의 특정 시점을 손바닥 안으로 불러낼 수 있다. 관계와 소통은 파편화되고 분자화되었지만 내가 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거리낌 없이 나를 노출한다. 무개념녀와 무개념남에게는 엄격하게 공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개인이 철저하게 사적 공간을 전시한다.

 

 

“존경은 공공성의 초석을 이룬다. 존경심이 사라지면 공공성도 무너진다. 공공성의 붕괴와 존경의 소멸은 서로에 대해 원인이자 결과이다. 공공성은 무엇보다도 존경심을 가지고 사적인 것에 대해 눈을 감는 태도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 (p.116)

책의 저자 한병철의 논리와 사고에 동의한다. 공적 공간과 공적 영역은 일정정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공공성이 붕괴된 곳에 존경이 움틀 수 없다. 이미 현대 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무시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자본주의의 천박함의 끝을 내달리는 현대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공공성의 확보와 확대인데, 정부의 국민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국민의 정부에 대한 존경심도 없으며 국민들 상호의 존경심도 사라져 버린 오늘이기에 공공성의 확보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디지털시대의 확장과 대두는 사적 거리를 없애 버렸다. 책의 표현처럼 “내밀한 영역이 공적으로 전시되고, 사적인 것이 공개된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에게 공적 책무를 요구하고 거리낌 없이 내놓은 SNS상의 사적 영역이 고스란히 보호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 「투명사회」는 투명성이 가지는 허물과 망상이 어떻게 현대인의 의식과 생활을 파고들었으며 그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미학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재독학자의 책이라 그런지 현학적이고 사변적이다. 책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 때 레포트를 준비하다 미치기 일보 직전에 갔었던 헤겔의 책이 떠올랐다.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 (p.98)

이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나는 이제껏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도 분명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 사회인데, 저자의 말처럼 왜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집요하게 제기되고 있지 않는지 궁금했다. 앞서 언급했던 공공성의 확보와 확대에 대한 개념에 투영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다. 한 사회가, 그 구성원의 대다수가 ‘이 사회는 신뢰의 사회야. 공공성이 확보되고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일상에 미치는 사회야.’라는 확신이 있다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투명성의 필요조차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 부딪치고 경험하는 모든 삶의 기록이 투명성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불신과 의심이 증폭되면 통제가 뒤따른다.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집단은 반드시 통제에 기댄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진도 팽목항에도 수백 명의 사복 경찰을 투입했다고 한다. 경찰 유니폼을 입고 유가족을 위해 공적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함이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미명하에 구성원을 통제한다. 이미 6년이 넘게 겪고 있는 현실이다.

 

 

“현대 통제사회의 주민들은 네트워크화 되어 서로 맹렬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고립을 통하나 고독이 아니라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이 투명성을 보장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그 속의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능동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p.95)

근대의 파놉티콘은 이제 별 의미가 없다. 저자의 지적대로 지금은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넘치는 사회다. 너무 넘치는 것이 문제다. 투명성으로 겉칠해진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은 개인을 더욱 고립시킨다. 고독하게 SNS를 수시로 드나들지만 넘쳐나는 건 탐라의 찌꺼기들뿐이다. 한눈에 죄수들을 통제하고 감시위해 만들어진 원형감옥에 스스로를 집어 던지는 꼴이다. 하지만 한 가지 저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어 보인다. 한국의 현실이다. 지극히 사적 공간인 SNS조차 어떤 집단과 무리에 의해 감시되고 조작되고 왜곡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국보다는 여론개진과 형성이 자유로울 것으로 확신되는 독일에서는 통제사회의 주민들,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을 장착한 개인들이 능동적으로 디지털 원형감옥을 유지하겠지만 한국은 다르다. 능동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SNS조차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려운 대기업 취업과 공무원 고시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그저, 전적으로 사적인 가십을 늘어놓는 것으로 SNS를 활용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내 SNS 감시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광범위한 공포가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과도한 가시성의 장에 던져 넣음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를 촉진한다.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전시가치의 극대화다.” (p.55)

“포르노적 과시와 파놉티콘적 통제가 서로를 넘나든다. 노출증과 관음증이 디지털 파놉티콘인 인터넷을 살찌운다.” (p.96)

이미 자본주의의 천박함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만천하에 들어났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대체할 다른 수단과 방법이 마땅치 않다. 누구하나 ‘자! 이제 이 길로 갑시다!’라는 이도 없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치환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사람)들은 포르노에 출연하지도 못한다. 포르노적 과시와 파놉티콘적 통제가 넘실대는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이 애처롭다. 나도 그 현대인들 중 한명이라는 자각을 하면서도 애처롭다. 투명한 사회를 열망하면서도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다. 이미 비대해져서 감당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는 인터넷은 이것의 첨병이다. 이 책의 한 장을 통해 지적하는 인터넷 댓글과 관련한 논의에서도 이러한 심각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일베’는 여러 각도에서 여러 시도를 통해 조명되고 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을 사회병리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냥 우리는 이런 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일베’또한 함께 디지털 파놉티콘을 살찌우고 있는 공범인 것이라는 생각. 애처롭고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딱히 별다른 대안이 없다면 별 수 없는 문제다.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단한 군중만이 권력을 산출한다. 군중은 권력이다. 디지털 무리에서는 이러한 결연함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행진하지 않는다. 디지털 무리는 갑자기 생겨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p.132)

행진하지 않는 디지털 세대를 향해 ‘분노하라. 거리로 나오라!’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예전의 진용을 갖출 수 없다. 대열도 분명하지 않고 정체성도 모호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경찰버스가 옹위해주고 무료로 사진 촬영도 해주고 한겨울에도 이한치한 하라고 물대포를 쏴준다. 제대로 권력을 형성해 결연한 행동을 함께 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책에서 표현하는 디지털 무리들보다 더 빠르게 생겼다가 사라진다. 미리 겁을 먹는다. 책에서는 따로 다루지 않지만 한국의 특수하고도 기괴한 언론환경에 대해서 저자가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군중의 힘으로 권력을 산출할 수 있다는 것이 가정일 수밖에 없고 행진하고 모이는 것이 이곳에서는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알려주고 싶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에서 돈과 힘과 뒷배경을 등에 업은 큰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내용과 독립 인터넷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이 왜 그렇지 다른지 저자에게 설명해주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부유하는 디지털 무리를 한데 모으는 힘이 과연 다시 탄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타자와 직면할 때 찾아오는 문턱의 감정, 즉 고통은 정신의 매체다. 정신은 고통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고통스러운 삶을 묘사한다. 반면 디지털의 현상학은 정신의 변증법적 고통과 무관하다. 그것은 좋아요의 현상학이다.” (p.187)

그렇다면 우리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타자화라고 생각한다. 창궐하는 디지털의 대해(大海)에서 그저 떠다니며 포르노와 파놉티콘을 소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타자와 직면할 때 찾아오는 문턱의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저자의 말처럼 고통일수도 있고 고통이 아닐 수도 있다. 자꾸만 타자화에 힘써야 한다.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한다. 타자화는 이제 누군가 선동하고 주입하는 것으로 경험할 수 없는 문제다.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도되어야 하는 문제다. 당장의 삶을 영위하고 직면한 문제에 거꾸러지는 오늘이지만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대의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 이유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타자가 겪는 고통과 아픔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 나를 투영하는 노력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결국 그것이 개인이 사는 길이라는 것이 증명된 적은 없지만 최소한 떠돌며 부유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무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간 자의든 타의든 많이 먹었던 겁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언급을 공유하고 리트윗하고 생각하는 행위 정도. 이것마저 무리한 요구라면 그냥 투명사회에서 투명인간으로 손가락질로 디지털의 대해(大海)를 부유하셔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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