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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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관광업계에 이민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내 나이 또래 즈음한 사람들, 특히 가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이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 직후 멘붕에 빠진 채로 허탈해 하며 ‘우이쒸~ 이민이나 가야겠다.’ 뇌까린 것이었는데 요즘은 나누는 이야기가 꽤 구체적이다. 멀리 외국에 친척이라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그를 부러워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민을 갈 수 있는 것처럼 부러워한다. 참사를 겪은 후 도대체 뭘 믿고 살아야 하는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지다 보니 ‘내 아이 만큼은 다른 곳에서 키워야한다.’라는 생각이 젊은 가장들 사이에 가득하다.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국가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들로 가득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이상 이민 1세대가 겪었던 그런 신화와 같은 이민 스토리는 더 이상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다못해 용접이나 미장 기술, 전기배선 기술 같은 것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과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격을 취득하기 전까지 가족은 먹고 살아야 하고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이민 대상국에서 비자를 내어줄 지도 확실치 않다. 만나서 이민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실제로 이민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의 암담함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심산일 것이다. 참 슬픈 일이다. 국가의 중추가 되는 30,40대 젊은 가장들이 모이면 꼭 이민 이야기를 나눈 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일자리는 없고 일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불안정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책임져 주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대다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본토에 남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로든 경제적인 이유로든 이민을 간다는 것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의 생활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현재 내 생활이 풍요롭고 행복한데 왜 사서 고생을 하게 될 이민을 꿈꾸겠나. 갈수록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없어지고 있다.



“머리카락 한 올을 봉투에 넣습니다. 봉투 안에 머리카락이 없으면, 누군가가 편지를 뜯어봤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알려주세요.” (1권, p.81)


이 책 「자유로운 삶」의 주인공 난은 시인이자 학자였다. 천안문 사태이후 당국의 처벌과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책은 난과 핑핑의 아들 타오타오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의 미국을 향한 러시가 이어졌고 난과 핑핑도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미국으로 떠났다. 하나밖에 없는 타오타오를 미국 땅에서 만났지만 난은 혼란스러웠다. 아들을 무사히 미국 땅에서 만났지만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이 미국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중국 정부의 박해와 감시를 피해 미국으로 떠나 왔지만 그들은 난을 가만두지 않았다. 비자를 연장하거나 하는 등의 업무를 고의적으로 막거나 방해했다. 난은 미국까지 떠나왔으니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아본 후 확신하게 되었다. 편지에는 머리카락을 동봉한다고 적었으나 실제로는 머리카락을 넣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온 아버지의 답장에는 올 굵은 머리카락 한 올이 동봉되어 있었다. 당국에서 편지 내용을 읽고 집어넣은 것이었다. 난은 비록 몸은 이역만리 떨어져 있었지만 결코 중국에서 떠나있지 못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죠? 내 사업이 잘못되면 중국이 나를 도와줄까요? 내가 어디에서 단 1달러라도 받을 수 있나요? 중국이라면 넌더리가 나요. 더 이상 관대해지고 싶지 않다고요.” (1권, p.370)

“그런 말 하면 안 돼.”

“무슨 말?”

“우리가 중국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


“알아. 화가 나서 그랬을 뿐이야. 우리 피에서 중국을 쥐어짜낼 수 있다면 좋겠어.” (1권, p.372)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난과 핑핑은 멀리 조지아에 정착하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배운 요리기술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식당을 열게 된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남아있는 주택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핑핑은 옷 한 벌 사지 않고 일했다. 우리가 흔히 들었던 자수성가한 이민 1세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말이 자수성가지 하루 1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통해 겨우 살 집과 운영할 식당을 열게 된 것이었다. 그런 난과 핑핑에게 메이 홍에 찾아온다.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모금을 하기 위해 지역에서 꽤 알려진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난을 찾아온 것이다. 난은 넌더리가 난다며 모금을 거부한다. 메이 홍은 어쩔 수 없는 중국인 아니냐며 다그친다. 쫓겨나다시피 떠나 온 중국인데 중국, 국가, 애국을 들먹이는 메이 홍을 보며 난은 분노한다. 하지만 난과 핑핑은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신문을 보면 중국이 메달을 몇 개 땄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는 감정적으로 그러한 사람들과 철저히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2권, p.223)


1992년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렸다. 다시 메이 홍이 찾아왔다. 올림픽에 참가한 중국 선수들이 현지 음식이 맞지 않아 난의 식당에서 음식을 도맡아 해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난과 핑핑은 흔쾌히는 아니지만 결국 그 요구를 들어준다. 그리고 신문을 보며 중국의 메달 숫자를 확인하는 난은 스스로 깨닫는다. 결국 자신은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맙소사. 아직도 20년 전과 똑같네요.”

“그래요. 근본적으로 같죠.” (2권, p.312)

“이제 그는 더욱더 미국에서 살다가 죽고 싶었다. 조지아의 집이 그리웠다.” (2권, p.356)


우연히 당첨된 복권은 베이징 행 왕복 항공권이었다. 다시 찾아간 중국은 여전했다. 스모그와 뇌물과 부정과 부패... 그리고 끈적끈적 들러붙는 요구와 기대들.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욕심만 드러내고 어머니 또한 난이 겪은 어려움과 아픔과 눈물은 생각하지 않고 20달러짜리 지폐에만 탐닉한다. 남동생 또한 호주로의 이민을 꿈꾸고 있었다. 난은 그가 겪은 고통을 동생에게 들려주며 신중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동생도 이민을 떠날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도 잊지 못했던 첫사랑 베이나의 소재도 알아낸다. 고향 하얼빈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 난은 베이나를 찾아 나선다. 멀리까지 찾아간 베이나는 여전히 요염하고 표독스러웠지만 이제껏 꿈꾸고 간직했던 추억의 그녀가 아니었다. 난은 그렇게 아프고 슬프게 현실에 직면한 후에야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의 친구야. 믿어도 돼.”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 (1권, p.100


난은 아내 핑핑을 아프게만 했다. 핑핑은 헌신적인 아내이자 현명한 여자다. 남편 하나만 믿고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도 늘 그의 곁을 지키고 뒷바라지 한다. 여전히 시인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상만을 좇는 남편을 현실로 끌어오기도 하고 갈등을 겪는 난과 아들 타오타오 사이를 적절하게 중재하기도 한다. 주변의 이웃들과도 먼저 친해지는 것은 늘 핑핑이었다. 실제로 난과 핑핑은 현지인 이웃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데 만약 핑핑 없이 난 홀로 이민 생활을 했다면 그는 단시간에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은 베이나를 잊지 못한다. 슬픈 것은 핑핑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자리에서조차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심정이 어떨까.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데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왔을 것 같다. 난은 속으로는 아내 핑핑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고마운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눈은 늘 밖으로 향했다.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부른 현지 여성의 탄탄한 몸을 보고 감탄하며 “여자는 독립적이어야 한다.”라는 헛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책의 말미에서야 난은 핑핑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것도 베이나에 대한 실망을 겪고 난 후다. 결국 난은 핑핑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정과 아이를 지키기 위한 핑핑의 눈물 나는 악전고투가 없었다면 난이 이루어 낸 아메리칸 드림은 그냥 드림으로 그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한 아내를 볼때마다 “신은 분명 여성을 더 위대하게 만들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이민 온 중국 남성들은 고약하다.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백인 여자와 살고 있는 바우는 그저 얹혀 살다가 쫓겨난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헹은 자신의 아내가 식당의 단골손님이던 흑인에게 가버리자 더 여리고 약한 중국 유학생 파오를 강간한다. 난은 헌신적인 아내를 두고도 베이나를 잊지 못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정치적 망명중인 유력인사의 미국내 강의나 강연에서도 남성들은 여전한 꼰대 기질을 벗지 못한다. 자신들조차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상을 향해 뜬구름만 잡고 있다. 오히려 젊은 여성 메이 홍은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비록 중국 당국을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도움을 찾고 이민 온 이민자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 길을 도모하자고 피력한다. 그런 메이 홍의 현실적인 대안에 함께 강연 자리에 모여있던 남성들은 야유를 보낸다.

“더 문제였던 건 중국 본토에서 온 일부 남자들의 성격이 고약해졌다는 것이었다. 전에 갖고 있던 우월감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1권, p.225)

남성적 우월감을 갖는 다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당장 살 길을 찾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상은 필요없다. 살기 위해서 3천권이 넘는 책을 처분해야 하고 빚을 갚기 위해 옷 한 벌 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남성이라 불리우는 존재들은 여성에 대한 태생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남성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민 1세대의 이야기다. 지금은 이민 2,3세대가 이미 가장이 되었다. 이민을 갔지만 여전히 중국과 한국의 가부장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그의 2세대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핑핑과 난은 타오타오가 배우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자를 베껴 쓰게 했다.” (1권, p.517)


어려서부터 미국 학교에서 미국인 아이들과 함께 지낸 이민 2세대는 그들의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민 1세대 들이야 자식들에게도 모국어를 가르치고 집에서 만큼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싶겠지만 그들의 자식들에게 모국어는 큰 가치가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영어를 제외하고 스페인어나 불어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구태여 모국어를 배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이민 2.5, 3세대쯤 되는 아이들이다. 그런 미국인 아이들을 상위에 랭크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굳이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노래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미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국, 모국어, 조국 등을 거론하는 것은 거추장스럽다. 이런 이민 1세대 이후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민 2,3세대를 그리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큰 갈등이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전에는 분명치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분명해졌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10년 동안이나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꿈이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축할 수만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2권, p.436)


이렇듯 이민은 현실이다. 한국에서 이민을 간 이민 1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다. 슈퍼마켓을 하며, 세탁소를 하며, 식당을 하며 어렵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실제적인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없다. 멋진 옷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들의 아이들을 보며 이민에 대한 환상을 가질 뿐이다. 현실은 이 책에 더 가까울 것이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고 고통받는 현실 말이다.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난은 주변의 말처럼 그가 드림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여전히 그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베이나의 표독스러운 말처럼, 또다시 그녀를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품은 명확한 결말이나 사건없이 끝난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난과 핑핑은 여전히 살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미국의 무시무시한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의료보험이 되는 직장을 또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타오타오와의 갈등은 더 심각해 질 것이고 식당일을 하며 망가진 핑핑의 몸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이라면 현재 난과 핑핑은 노년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타오타오는 결혼을 해 어린 아이, 즉 이민 3세대를 낳았을 것이다. 행복한 일이지만 여전히 이들 가족들에게는 현실적 문제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여전히 중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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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초여름의 어느 날...난은 제이드 카페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벌었다.” (p.264)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중국인을 고용한 카페에서 난에게 시간당 10달러를 줬다고 한다. 23년 전 제이드 카페보다 못한 한국의 고용현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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