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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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돈 벌기 쉬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 책에 실린 짧은 글들은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약 사 년 에 걸쳐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이다.” (p.4)

1982년 봄부터 1986년 2월까지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 한국에서는 또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에세이도 아닌 것이 번역 기사도 아닌 것이, 딱히 뭐라 특정할 수 없는 하루키의 글 모음이다. 주로 미국의 유명한 잡지를 번역하고 그것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정도를 첨가한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발간되면 무조건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의 글이, 삼십년도 더 된 연재글을 모아도 책이 되고 돈이 된다니……. 신기하면서도 얼토당토않게 배가 아프면서도 부럽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주 전 김포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 댁에 갔었는데, 작은 어머니께서 저녁을 차리시면서 기다리는 중에 보라고 예전 사진앨범 몇 개를 들고 나오셨다. 예전 필름 사진을 인화해 3단 혹은 4단으로 끼워 넣으며 스크랩 한 사진 스크랩북이다. 스마트폰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어려서부터 사용해 온 어린 친구들은 ‘무슨 이런 골동품이 있나?’ 할 정도의 앨범들이었다. 바래고 바래 원래 앨범 겉 색깔이 무슨 색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앨범 속에는 작은 어머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여중·여고 시절 시커먼 교복을 입은 흑백사진 밑에는 이런 저런 메모가 적혀있었다. 어떤 페이지에는 은행잎을 코팅지로 붙여 앨범 속에 끼워 놓기도 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촌동생(작은 어머님의 아들)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유~ 형~ 나는 저거 500번은 봤을 걸??”

이 자식, 거짓말은. 아무리 엄마가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해주고자 시간 날 때마다 앨범을 들이 밀었기로 서니 500번은 너무하다 싶었다. 사촌동생에게 엄마의 빛바랜 앨범은 단 한번 엄마의 추억구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작은 어머니가 사촌동생에게 들이 민 수십 번의 추억은 단 한 번의 것이 절대로 될 수 없을 것이다. 펼쳐 들 때마다, 싫은 내색을 확연하게 보이는 아들 녀석에게 예전에 설명해줬던 것 그대로 다시 설명할 때마다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이 스크랩의 진정한 묘미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하루키와 출판사를 용서하기로 한다. 그저 그런 글을 모아 담아 단지 한국 독자들의 쌈짓돈을 빼앗아가려 졸속으로 만든 책은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작은 어머니의 70·80년대가 엄마의 앨범을 대하는 사촌동생의 반응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하루키처럼 「The, 나의 사진 스크랩 북」이라는 제목을 걸고 책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가지 하루키씨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이 500번 5000번도 더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것으로 그의 80년대가 평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하루키씨와 같은 80년대를 살지 않았고 작은 어머니의 70·80년대를 살지 않았지만 누구나 추억을 먹고 산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작은 어머니의 낡은 흑백 사진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아 본다. 추억은 재생산되기 마련이니까. 언젠가는 나의 90년대와 새로운 세기, 2000년대를 스크랩 하며 ‘그때는 그랬었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이야~ 2014년인가 그때쯤 스크랩을 한 책을 냈어. 책 모양도 정말 특이했었는데 말이야~ 책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로 한쪽 귀퉁이를 잘라냈는데, 우연히 그 곁에 있던 출판사 관계자의 눈에 신선해 보여서 그렇게 했다는 데 말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미국에서는 격렬한 콜라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p.215)

1985년 9월 5일 글이다. 지금은 식당에서 콜라를 시켰을 때 펩시를 주면 ‘에이~ 코카콜라 없어요?’ 라며 인상을 찌푸리게 될 만큼 코카콜라가 지배하는 세상인데, 30년 전에는 미국 본토에서 대단한 콜라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나 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ello>라는 곡으로 유명한 라이오넬 리치가 펩시의 전속모델이었다고 하니 해볼 만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던 가 보다. 사실, 그 콜라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말에 이르렀는지 나는 관심이 없다. 30년 전 콜라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과거를 교육받게 되는 것 같다. 그 교육이 학교에서의 그 지겨운 수업이 아니라 재미나다.

나에게 80년대는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이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TV로 보던 기억만 뚜렷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국민학생이던 나의 생일이 바로 ‘88서울 올림픽 개막식’ 당일이었다. 당시에는 생일날이면 친한 친구들을 불러 엄마가 차려 준 생일상에 둘러 앉아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아 풀어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어린 시절 나와 동생의 생일을 고집스럽게 음력으로 챙겨주던 어머니의 성화로 87년과는 다른 날짜에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매년 생일파티를 했는데, 유독 88년 생일파티만 기억나는 이유를 가만히 돌이켜보니, 크크크 좋아하던 여학생을 초대했었다.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스트라이프 원피스를 입고 온 그 아이. 그 아이가 선물해 준 필통. TV에 나오는 ‘88서울 올림픽 개막식’ 장면을 보고 있지만 곁눈질로 그 아이를 보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내게 80년대는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이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알파와 오메가다. 하루키씨처럼 연재를 하거나 메모를 해 놓지 못해 전적으로 흐릿한 기억들을 더듬어야 하겠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얘기해주고 싶은 장면이자 추억이다.


“최근 ‘스니커 미들’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이른바 ‘단카이세대(전후 일본의 베이비붐세대’가 나이를 먹은 것이다. 그러잖아도 숨 막히는 세대인데, 그들이 다들 중년이 되면 대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겁다. 아래 세대는 더욱 힘들 것이다. 진심으로 동정한다.” (p.29)

그가 우려한 대로 ‘단카이세대’이후 아래 세대는 숨 막히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연재하기까지 하루키씨는 일본경제의 추락을 경험하지 않았다. 버블이 한꺼번에 터져버리는 잔인한 기억은 현재 일본을 더욱 우경화하고 개인화·탈사회화했다. 당시에도 유명한 작가였던 하루키씨의 진심어린 동정이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와 닿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서글픈 현실을 마주한 일본과 한국의 상황에는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다.

나도 IMF이후 세대다. 급격하게 신자유주의가 밀어닥치고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탄생하고 불확실성과 무책임함이 사회 기저에 깔린 한국의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을 청춘으로 살았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에 이른 나이지만 톺아보면 생채기가 많다.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나고 아물었다 생각했던 쓴 뿌리가 고통스럽다.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극명하게 추억이 살아난다. 오롯이 아픔일 수 없고 오롯이 흐뭇할 수만은 없었던 우리들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돌아보다가 우리 아래 세대를 생각한다. 우리보다 더 극심한 고통에 있을 그들 이야기를 들먹이며 안타까워하다가 우리 새끼들이 겪을 그 보다 더할 고통을 생각하면 이전 잔까지는 달짝지근했던 술이 쓰다. 쓰고 쓰다.


“애리조나 주 투손에 사는 로버트 하그라는 28세의 남자는 운석 수집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뉴기니의 산골까지 돌아다니며, 산적을 만나기도 하고 사태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운석을 찾아다닌다.” (p.221)

시대가 달라도 사람 사는 모양은 비슷한 가 보다. 얼마 전 경남 진주에 떨어진 운석이 로또 몇 배의 가치가 있느니 마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런 보도가 나간 후 맞은 주말, 그 동네가 난리가 났단다. 전국 각지에서 운석 하나 찾아내려 모여든 것이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할 해프닝이었는데, 30년 전 미국에서는 전문적인 운석 수집가가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다. 단순히 수집가가 아니라 그것을 업으로 삼아 전국도 아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는 로버트 하그라씨.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지 문득 궁금해진다. 미국에 살건, 일본에 살건, 한국에 살건 사는 건 비슷한 모양이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많이 다르다고 생각되지만 한참이 지난 후 돌이켜 보면 비슷할 것 같다. 작은 어머니의 사진 앨범 속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시커먼 교복의 수줍은 여중생도, 하루키의 기억과 기록 속에 등장하고 있는 ‘단카이 세대’와 콜라전쟁, 로버트 하그라씨의 종횡무진 운석수집기도, 짧은 내 추억 속에 박혀 있는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도 비슷하다. 한 사람의 스크랩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거나 인간성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삿짐 싸다 벽장에서 나온 오래된 졸업앨범을 무심코 넘겨보는. 그런 기분으로 읽어주시길.” (p.6)

하루키씨의 제안이 정확하다. 나는 작은 어머니 댁에서 본 빛바랜 앨범을 보는 것 같았다. 하루키씨의 책은 30년 전, 작은 어머니의 앨범은 40년 전의 것이지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듯이, 스마트폰의 셔터 버튼을 누르듯이 일시정지 해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나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기억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의 어떤 순간에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줄 귀한 스크랩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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