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평전 - 겨레에 바친 애국혼, 반민특위위원장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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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지 정권과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취급을 받고 나쁜 사람 혹은 집단으로 매도되는 경우는 유사이래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각계에서 쏟아진 막말과 망발을 보며 사람들은 분개했지만 저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단 한명도 구조해 내지 못했고 침몰과 구조, 그 이후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정부와 정권에 대해서 이렇게도 관대한 사회는 정말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6월초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더 참담하다. 집권여당 출신 후보자들이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사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유가족과 피해자들에 대한 감동적인 대책이 마련되고 국민 전체가 안고 있는 슬픔과 회한을 적극적으로 위로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사회가 가진 온갖 문제와 갈등, 정치적인 한계와 언론의 비상식적인 행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래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화와 진보, 발전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놈의 나라에서는 점점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것의 기원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광복 이후 미군정을 거치며 남한만의 국회가 만들어지고 반민특위가 설치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반민특위는 헌법 기관이었음에도 6개월의 짧은 활동밖에 하지 못했다.

 

 

“반민특위의 좌절로 민족정기는 굴절되었으며, 친일반민족세력이 다시 득세하고 이승만 정권이 장기 독재체제로 가는 전기가 되었다.” (p.267)

 

반민특위는 일제 강점시기 나라의 광복과 민족의 해방의 편에 서지 않고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일제에 부역하고 협력하면서 반민족 행위를 한 자들을 찾아내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책에서 소개된 반민특위와 비슷한 국가기구는 여러 국가에서 설치되어 활동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를 받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 나치의 압제를 받은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이런 국가기구가 설치되어 많은 반민족행위자들을 찾아내 처벌 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아직도 이런 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 세계를 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한국의 반민특위는 실패했다. 제헌국회에서 반민특위에 대한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되는 것에도 난관이 있었고 어렵게 만들어진 반민특위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다른 것도 아닌 대통령과 당시 국회는 물론 정치·경제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반민족행위자들, 친일파들에 의해 무너졌다. 책에는 당시 반민특위에서 활동했던 인사의 인터뷰를 언급했는데, 친일 경찰로 구성된 당시 한국 경찰은 이승만과 기득권을 가진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백주대낮에 반민특위를 습격한다. 당시 반민특위 사무실에 있던 검찰총장의 권총을 빼앗는 것은 물론, 반민특위 위원들을 빨갱이로 둔갑해 깡그리 망가뜨렸다.

 

 

“반민법 제정에 불안과 공포를 느낀 친일세력은 풍부한 자금과 정보·조직을 이용해 반민법 제정을 반대하거나 이 법 제정에 앞장선 국회의원들을 공산당으로 몰아붙이는 등 방해공작을 시도하였다.” (p.231)

“김상덕은 이승만의 담화에 대해 강력히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p.255)

 

당시 친일세력들은 반민법이 제정되어 반민특위가 활동하고 그들에게 체포되면 처벌받을 것

이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에게는 생사여탈의 여부가 반민특위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반민족 행위를 한 자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지만 그래야 민족정기가 바로 서게 되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미군정과 이승만이 뒤에 있었다. 미군정에게도 이승만에게도 친일세력들은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실제적 조력자였다. 무엇보다 이승만에게는 임시정부가 가진 정통성이 가장 두려운 정치적 라이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친일세력을 이용해 반민특위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악질적인 일제부역자 노덕술이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된 후 비상대책을 논의했을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니었던 사람이다. 거듭되는 이승만의 방해와 협박에도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은 굴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이것이 이승만이 더 무모해지도록 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헌법기관의 수장이지만 대통령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은 사람이 김상덕이었다. 이승만이 담화를 발표하면 곧바로 그 담화를 반박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거듭되는 방해에도 한 명이라도 더 반민족행위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노력한 김상덕은 제가 대상 1순위 이었다.

 

해방된 조국, 그러나 분단된 조국에서 수십 년 동안 조국의 광복과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과 압제당한 조국은 뒤로 한 채 압제자의 편에 서서 호의호식하며 민족을 반역한 친일세력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해방 후 미군정을 거치며 이들의 처신도 완전히 달랐다. 일제 강점시기 독립운동가들을 열심히 탄압하던 친일세력들에게 해방되었지만 분단된 조국의 상황은 오히려 호기였다.

 

 

“친일파들은 반민특위 요인들을 빨갱이라고 몰아쳤다. 자신들이 발행하는 신문을 통해 연일 국가안보를 해치는 빨갱이들을 처단하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특위 요인들을 암살하고자 기도했다. 암살 대상 1호는 김상덕 위원장이었다.” (p.9)

“이성근은 2회 공판을 끝으로 해를 넘겨 반민특위가 유야무야되면서 석방되었다... 김덕기는 재심청구를 냈다가 각하되고 사형이 확정됐지만 6.25직전에 감형으로 풀려났다.” (p.249)

 

빨갱이 프레임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해방된 조국에 들어온 미군들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 군정청이 서울에 진주했으니 임시정부는 개인 자격으로 들어올 것을 통보했다. 단지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오키나와에 진주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미군정 사령관이 된 하지 중장은 일제 강점의 역사와 한반도 백성들의 민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조국의 땅은 아니었지만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와 정통성을 지닌 채 정부를 재구성하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피와 땀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당장 미군정을 도와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무리할 세력이 필요했다. 미군정은 독립운동가와 자생적으로 발생한 인민위원회 대신 이승만과 친일세력을 선택했다. 그래서 친일세력은 그대로 옷만 바꿔 입은 채 여전히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방 된 조국에 빨갱이가 득시글하니 빨갱이를 때려잡아야 한다!” 라는 외침 하나면 충분했다. 왜냐하면 조국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인민위원회에 비해 친일세력은 조직·재정·배후가 막강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치열했던 이념대립의 경험을 이용해 빨갱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다. 배후에 이승만이 있으니 거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공공연히 김상덕 위원장을 비롯한 반민특위 위원들에 대한 암살을 도모했다. 국회 내 존재하던 진보적 성향의 국회의원들은 ‘국회프락치사건’이라는 조작사건으로 쫓아내 버리고 반민특위는 친일경찰들에 의해 부숴버렸다. 당연히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어 조사받던 반민족행위자들은 모두 풀려났다. 반민족행위를 단죄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 영향은 수십 년이나 이어졌다. 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 생각한다. “정부 수립 후 친일파는 자신들의 반민족행위를 반공 이데올로기로 둔갑시키고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에 충성을 다하여 독재정권의 영속을 추구했으며, 분단체제의 고착화에 앞장섰다.” 총선 전 드러나는 후보자들의 약력과 그들 선대의 약력을 보면 친일파의 후손들이 d이렇게나 많나 싶다. 후손이 국회의원에 출마할 정도라면 해방 후 지금까지 기득권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말인데, 그런 사람들이 단지 국회의원 후보자뿐이겠나. 지금 한국사회 곳곳에 친일세력은 잔존하고 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반민특위가 끝내지 못한 일을 조금이라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미완성되었다. 선대의 친일행적이 밝혀졌다면 사죄하거나 최소한 부끄러워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없다. 그게 뭐 대수냐! 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또 뽑아준다. 선대가 아무리 친일행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뽑아주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역사정기를 바로 잡지 못하고 반민족 행위자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를 산 국민들의 당연한 태도라고 보기에는 너무 슬픈 일이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고 뽑아준다고 해도 그 사람과 같은 부자가 될 수 없음에도 그 사람을 뽑아주는 국민들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을 탓하지 말라는 일부 진보개혁 인사들의 언론 인터뷰나 sns 발언을 접하면서 나는 더 답답했다. 나는 국민 탓이라고 본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경북에서는 무조건 1번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슨 실수를 저지르고 무슨 막말과 망발을 일삼아도 무조건 1번이다.

역사에서 만약은 금기이지만, 만약 반민특위 활동이 제헌국회 내내 지속되고 정권이 바뀐 후에도 헌법기관으로 존속했다면 지금과 같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반민족행위자들의 악행이 만천하게 밝혀지고 그것으로 인해 처벌 받고 하는 선례가 명확했다면 국민들의 의식과 수준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상덕은 낮에는 목수일로 학비를 벌고, 밤이면 공부하면서 20대 초반의 청년기를 경신학교에서 보냈다.” (p.23)

“뒤편에 사는 김원봉 장군 댁도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부인이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주변에서 걱정들이 많았다.” (p.90)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한 김상덕 선생은 가난한 시골 출신이었다. 낮에는 학비를 벌고 밤에 공부하면서 독립운동의 싹을 틔웠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3.1운동의 단초가 된 2.8독립선언의 주역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아내를 잃고 두 아이를 거둘 수 없어 고아원에 보내야 할 정도였다. 책에서 언급되는 선생의 아들 김정륙씨의 이야기 속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다. 독립운동을 하다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을 찾아와 빨래를 해주는 아버지. 빨래 후 목을 축이려 술 한 잔을 사지만 맛 좋은 안주를 사지 못하고 가장 싼 마른두부를 샀던 가난했던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모습. 중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살 때, 유명한 약산 김원봉 선생의 집도 우환이 많았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할 때에도 해방된 조국에서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역사의 와중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김원봉 선생과 김상덕 선생보다 월북했다는 이유가 아마 가장 클 것이다. 그러나 약산 김원봉 선생은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경찰에 의해 고초와 수모를 겪은 후 원하지 않았지만 신변의 위협으로 월북했고, 김상덕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두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납치당해 월북했다. 그런데 이들 독립운동가들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김원봉, 김상덕 선생 모두 북에서 숙청당했기 때문이다. 분단 초기 김일성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이용했다가 숙청했다. 남에서는 당연히 월북한 인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노비문서와도 같은 연좌제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진로를 죄 가로막았으니, 김정륙 역시 다 되었던 일자리도 나중에 ‘김상덕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취소당했다. 따라서 이 무렵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이력서나 신원증명서에 애써 선대의 독립운동 사실을 숨긴 사계가 적지 않았다.” (p.309)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노비문서와도 같은 연좌제’가 되었다고 한다.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수십 년을 힘쓰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면 국가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주요한 자리 곳곳에 친일세력과 그들의 후손이 자리 잡고 있으니 될 리 만무하다. 하다못해 작은 일자리조차 갖지 못한 채 막노동을 전전했다는 김상덕 선생의 아들 김정륙씨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울컥했다. 먹고 살기 위해 자랑스러워야 할 선대의 독립운동 사실을 숨겨야만 했던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하고 아팠을까. 나는 짐작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김정륙씨는 아버지가 납북된 후 60년이 지나서야 북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찾아가게 된다. 2006년의 일이었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술을 잔에 가득 부어 올려 드렸다고 한다.

 

 

“‘존재’는 낯익지만 ‘실체’는 낯선 독립지사”

 

이 책의 첫머리에는 김상덕 선생을 ‘존재’는 낯익지만 ‘실체’는 낯선 독립지사라고 표현했다.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월북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알려지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민족사적 사명이었던 반민특위의 위원장이었지만 반민특위의 실패로 더욱 낯설게 되었다. 또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보는데, 반민특위가 성공하고 친일세력을 단죄했다면 김상덕 선생의 국회의원 재선은 당연했을 것이고 그의 공적으로 인해 최소한 대통령 후보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의 후손들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형편으로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인데…….

이 책 「김상덕 평전」을 읽으며 ‘이런 책을 얼마나 읽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처럼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아니라면 찾아 읽을까 싶었다. 학계에서도, 언론에서도 이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나 보도, 취재는 미진한 현실이다. 여전히 친일세력의 후손들이 국가의 기득권으로 형성되어 있고 이것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반민특위가 설치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지난 민주정권에서 친일인명사전 하나 편찬하는 것도 난리를 치며 방해해 성공을 거둔 저들인데 2차 반민특위는…… 아마 이 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절대로 만들어 질 수 없을 것이다.

 

 

 

“조국을 배신한 자는 그가 절대로 다시 해를 끼치기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그리고 신속히 처리되어야 한다.” (p.220)

 

 

벨기에 정부가 공포한 <전시에 국가의 국가 안보에 반해 저지른 범죄로 인해 국적과 일정한 권리를 박탁하고 정지하는 사안에 관한 명령>의 한 대목이다.

신속히 처리한 국가와 정부의 오늘과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오늘을 비교해 보니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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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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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경찰서, 법원, 병원은 가지 말아야 한다.”

경찰서는 몇 번 갔다. 병원은 경찰서보다는 훨씬 많이 갔다. 유일하게 법원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사실 경찰서와 법원은 뭔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피해자라 할지라도 경찰서나 법원에 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경찰서보다 더 문턱이 높고 꺼려지는 곳은 법원이다. 법원이라는 곳을 잘 모를뿐더러 만약 소송의 당사자나 범죄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어 가게 되는 것 자체가 머리 아프고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정말 어른들의 말씀은 새겨들어야 한다.

앞으로도 저 3곳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곳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3곳 중 병원에 갈 가능성이 가장 크겠지만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일. 혹시라도 경찰서나, 특히 법원에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 책 「판사유감」은 현직 판사가 썼다. 이제껏 수많은 책을 읽어 오면서 현직 판사가 쓴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직 판사, 전직 법률가가 쓴 책은 많았는데, 현직 판사는 처음이었다. 이 책을 읽으니 왜 현직 판사가 책을 쓰기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판사는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고와 피고, 검사와 변호사가 제출하는 증거와 자료를 검토한 후 판결만 내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시커먼 법복 입고 높은 법대 위에서 근엄하게 판결만 내리는 것이 판사로 생각되었는데, 하나의 사건에 대한 증거자료가 수천페이지에 달한다는 저자의 언급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자료들을 야근을 하며 꼼꼼하게 검토하고 최종 판결을 내리기까지 엄청난 수고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오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죄는 무간지옥에서 영원히 속죄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늘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p.90)

그래서 저자의 이런 고백에 더 진정성이 느껴진다. 주위에 알고 있는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없으니 법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애환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상대하기 싫은 사람, 굳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건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와 마음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하나의 사건을 대할 때마다 두려워하는 그의 판사로서의 자세에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 판사라는 직업은 명예와 보수, 존경을 한 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되기도 어려울뿐더러 일반 사람들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법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현직 판사로서 저자가 가진 마음의 부담과 판사로서의 소회에 담긴 진정성이 느껴지는데, 흔히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판사는 이상한 판사들일 경우가 더 많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피고인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상스러운 판사도 있다. 물론, 법정에서는 판사가 가장 큰 권위를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기본적인 예의와 상식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론에 노출되는 그런 판사들에 대해 비판을 한다. 심할 경우 신상까지 털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소수일거라 믿고 싶지만 정치검사와 같은 정치판사들도 있어서 민심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정치적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점점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 판결이 나기도 전에 미리 판결을 예측하고 그것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 왔다. 그래서 재미있는 패러디를 많이 만들어 내기도 했다. “술을 먹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바람은 폈지만 불륜을 아니다.” 등등. 우리나라의 법률체계라는 것이 독일과 일본의 것을 그대로 가져와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낡은 성문법 체계를 가졌다. 헌법이 만들어 진 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고 발전되어야 할 법체계가 그대로 굳어진 채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아직도 사문화된 일부 법률들(명예훼손이나 집시법, 통신법 등)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법체계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와 일부 정치판사들로 인해서 사법부에 대한 민심은 좋지 않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판사, 그리고 책에서도 소개되는 김귀옥판사와 천종호판사와 같은 사람들도 사법부에 존재한다. 이런 판사들이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없어서 그렇다고 믿고 싶다.

 

 

“도대체 국민들이 고마워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민들이 힘들게 벌어서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고 편안하게 사는 저 같은 자들은, 원래 직업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라고 월급 받고 사는 겁니다.” (p.244)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판사라는 직업이다. 나는 몰랐다. 당연히 그런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판사는 공공 서비스의 제공자라고 말하는 판사도 없었고 이런 내용을 담은 책도 보지 못했다. “판사” 하면 높은 사람, 무서운 사람, 대단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동사무소 직원에게는 버럭 하지만 법정에서 판사에게 버럭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의 이런 싸가지가 대단하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위치도 높은 사람이지만 저자는 정말 “싸가지가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 내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싸가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드물다. 앞서 말한 가지 말아야 할 3곳 중 하나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싸가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드물다. 환자는 내 돈 내고 치료받으러 갔는데, “싸가지 없는 의사들”을 만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병원에서는 이런 의사들이 더 많다.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환자 눈도 쳐다보지 않은 채 3분도 되지 않는 진료 시간을 명령조가 끝내 버린다. 아버지가 병환 중에 계셔서 최근 수년간 정말 분노하며 경험한 일이다. 의사들은 환자가 내는 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그따위인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소수일거라고 믿고 싶은 판사들 중에서도 “싸가지 없는 판사들”이 많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없어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저자와 책에 소개된 몇몇 판사들과 같은 “싸가지 있는 판사들”은 드물 것이다.

 

 

“피고인,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번 재판에서 제가 했던 말은 해서는 안 될 잘못된 말이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p.27)

법정에서 판사는 1인자다. 최종 판결의 권한을 가진 이가 판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판사가 피고인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판사가 피고인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도 나는 보지 못했다. 들어본 적도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밝힌 개인 경험이 처음이다. 정말 “싸가지 있는 사람”이다. 법정에서 선 피고인도 무죄추정원칙 하에서는 무고한 사람이다. 최종판결이 나게 되어 피고인으로 확정이 되기 전까지는 무고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용기와 양심, “싸가지”를 가진 판사는 정말 드물 것 같다.

 

 

“그래도 최대한하고 싶은 말씀을 마음껏 하도록 했습니다. 진실은 어느 한쪽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p.62)

사람과 사건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가 가장 잘 표현된 부분이다. 시어머니의 밥에 소량의 쥐약을 섞은 베트남 이주 여성에 대한 재판을 소개하며 언급한 부분이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베트남 출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고부 관계와 언어의 문제로 소통하지 못한 채 쌓여 온 불신과 오해와 갈등이 재판을 통해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판사로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최대한 들어주고자 했다. 사건 이전에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 이전에 사건에만 관심이 있는 판사라면 쉽게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게 쉬운 일이니까. 절차도 간단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듣는 판사였다.

 

 

판사, 세상을 배우다.”

책의 2부 제목이기도 한 짧은 문장은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저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자세로 공직에 임하고 있는지 가장 잘 표현된 문장이다. 초임 판사의 나이가 굉장히 어리다. 20대 중·후반 30대 초반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 공부를 하다 판사로 임용된 것이다. 사회 경험이라는 것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배우고자 하는 노력과 마음의 자세가 없는 판사는 법리적 접근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굴곡과 요철을 경험해보지 않은 판사들은 판결은 잘 내릴 수 있지만 판결에 세상을 담을 수는 없다. 저자처럼 판사로 임용되어 일을 시작하면서 “세상을 배우겠다.”라고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판사가 몇이나 될까. 이 책을 읽으며 ‘이런 판사가 있었네. 참 좋은 판사네.’ 생각을 하다가 ‘이런 판사가 한국의 법원에 몇이나 될까?’라는 물음에 이르게 되면 한숨부터 나온다.

 

 

“CEO 범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서의 일반 범죄와 균형을 잃은 양형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을 낳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신뢰야말로 사회를 지켜내는 중요한 버팀목인 것입니다.” (p.82)

그래도 이런 판사들이 드물게 나마 아직(?) 존재한다는 것에 위로를 받고 싶다. 법원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법부는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판사들이 이런 책을 많이 출간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론에서도 비리와 정치판사들 얘기만 늘어놓지 말고 좋은 판사들에 대한 얘기도 많이 보도했으면 한다. 그래서 판사와 법원,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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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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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다. 6년째 되었다. 교회에는 주일학교라는 제도가 있다. 교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영유아부서에서부터 청년부까지 학교가 있어서 담당 교역자(목사,전도사)가 있고 담당 부장·부감집사가 있고 반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은 부장·부감 집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시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학교의 교장·교감 역할과는 다르고 반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과도 하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서의 예산이나 집행, 각종 행사의 기획에서부터 사후평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서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부서의 담당 교역자를 지지하고 부서 안에서 수고하는 반 선생님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도 정치화되고 속물화되다 보니 이런 부장·부감 자리가 차후에 있을 선거(장로, 장립집사, 권사를 뽑는 교회 내 선거)를 위한 사전 활동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극소수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그렇다. 다음 달에 교회 내 선거가 있는데, 뜬금없이 교회의 청년들에게 페이스북 친구요청이 온다거나 누군지 알 수 없는 번호로 좋은 성경구절이 갑자기 문자메시지로 도착하기도 한다. 그리고 해당 부서의 담당 교역자를 지지하고 그(그녀)의 리더십을 세워주기 보다 컨트롤 하고 반 선생님들을 마치 회사 부하 직원 대하듯이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부장·부감 집사를 겪으며 정말 교회도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느꼈었다. 이런 내 경험을 일반화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예전의 부장·부감이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부장·부감 집사가 온 이후로는 부서 전체의 분위기가 또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담당 교역자를 잘 도와주고 반 선생님들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지지를 해주고 있다. 교회가 세속·속물화 되는 와중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드물게나마 아직 교회에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이전 부장·부감에게 있어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부장집사는 현역교사인데, 이분은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회의를 굉장히 좋아했다. 회의에서 자기가 말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단지 말하는 것만 좋아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자신이 말하는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공적인 회의 자리에서 싫은 내색을 하고 회의 중에 바쁘다며 나가버리기도 했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하면 엉뚱한 소리로 회의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분과 3년을 같은 부서에 있었는데, 3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물론, 담당 교역자와 반 선생님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적지만 각자의 역할이 있고 한 부서 내에서도 담당하는 역할이 다른 것인데, 도통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경청이란 남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다. 그것도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듣는 것이며 자신이 모르는 것,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한다. 타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넘어서 타자의 말이 아닌 ‘타자성’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p.269)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려다 보니 벌써 책의 결론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이 책 「단속사회」는 그의 전작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확장판으로 생각되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에서는 학교라는 하나의 사회를 둘러싼 관계간의 이해와 대립, 갈등과 소외를 담아낸 책이라면 「단속사회」는 분석의 틀을 학교에서 한국사회 전체로 옮긴 것이다. 끊임없이 ‘단(斷)’ 차단하고, ‘속(續)’ 연결하고 접속하는 현대 한국사회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에 주목한다. 흔히 경청이라고 하는 단어로 표현되는 ‘남의 말 듣기’는 한국사회에서 병적으로 결여된 사회현상이다. 어제 하루 동안 내가 만나서 이야기 한 사람을 생각해 보면 저자의 말이 그대로 맞아 들어갔다. 주로 내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무적으로나 개인적 대화 모두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그랬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런 저런 말을 쏟아냈던 것이다. 집에만 오면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남편보다야 훨씬 낫겠다고 생각하는 여성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먼저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아내에게 먼저 묻기 전에 내 얘기부터 쏟아 냈다. 모두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사회다. 하지만 책의 서두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쏟아 내고 싶은 ‘말’을 정제된 언어와 상대방의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동의한다. 모두들 자기 얘기를 자기 방식과 언어로 쏟아내기만 할뿐, 상대방이 어떻게 이해해줬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이다. ‘일단 쏟아냈으니, 속은 시원하네~’라는 생각뿐인 것 같다.

 

 

“내가 글과 말을 팔아먹고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곁’과 ‘이야기’다.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 자리에 가깝다.” (p.6)

“곁은 파괴하고 편을 강요하는 것,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곁은 파괴되고 편으로 몰아가는 사회” (p.7)

 

‘곁’이 파괴된 사회. ‘곁’은 파괴되고 ‘편’만 강조하는 사회라는 구조의 틀은 2014년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좋은 도구이다. IMF이후 경제적 상황과 요구만이 개인의 사회적 활동과 역량, 가족 구성원의 관계구도를 결정하게 되면서 우리의 ‘곁’은 급속하게 파괴되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취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아이의 성적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것 말고는 중요한 화두는 모두 사라졌다. 저자가 책에서 줄곧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힐링’의 대두와 범람은 이러한 ‘곁’의 파괴가 단지 개인적 욕망과 소비의 결과라는 것을 내면화하고 개인화 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가장 큰 단위의 사회인 국가가 구조적으로 ‘곁’을 파괴하고 ‘편’을 조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편’이 아니면 ‘남’이 아니라 ‘적’이 되어버리는 기구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도록 국가와 사회 각 기능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총체적 난국>으로 표현되는 두 단어가 주는 유의미함은 이 사회의 각 개인들에게는 가혹하다. 총체적 난국이기 때문에 사회의 거대 단위에서 구조적 모순과 한계, 문제를 해결하고 봉합하기보다 손 놓고 ‘개인이 알아서’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파편처럼 흩어져 부유하는 개인은 기댈 곳이 없다. ‘곁’이 없는 것이다. 가족 단위에서도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은 무의미한 대상일 뿐이고, 일정 수준의 학업성취를 보이지 못하는 학생은 교실 내에서 문맹이 되어 버린다. 비단 가정과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가폭력이 행사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국민들의 광범위한 동의다. 그런 자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지 않는다면 불안을 통한 통치는 성공할 수 없다.” (p.223)

 

지난 이명박 정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 오고 있는 국가폭력의 가시적 대두는 가장 자유롭고 활발해야 할 인터넷이라는 공론장에서조차 ‘내가 쓰는 글이 어떤 이나 세력으로부터 고소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부터 하게 되는 개인적 검열에 이르게 되었다. 국가기관에서 민간인을 사찰하고, 참혹한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문제 등에 있어서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쉽게 타올랐다가 한순간에 사그라진다. 얼마 전 국가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광풍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사라졌다. 모두가 한날한시에 입을 다물고 포털 검색창에서 그런 단어를 일체 입력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내 문제’가 아니면 괜히 나서서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은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이런 개인적 냉소는 이미 학교에서부터 학습된 것이다. 아는 형님의 첫아이가 올 초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한 지 3일째 아침부터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는 것이다. 앉혀 놓고 얘기를 들어보니, 담임선생님이 왼손잡이인 아이에게 “왼손으로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오른손으로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쌍팔년도 초등학교도 아니고 2014년 초등학교 교사가 왼손잡이인 아이에게 오른손으로 쓸 것을 훈계했다니 형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에서부터 국가나 거대 단위 사회가 원하는 데로 학습되고 교육받는다. 일렬로 서야하고 질문은 가급적 하지 않아야 하며, 선생님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이 옳은 학생, 모범 학생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착하게 자라난 학생은 사회인이 되어 국가가 주입하고 가르치는 프로파간다에 그대로 동조한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모난 놈 정 맞는다.’라는 구언을 철석같이 믿고 따른다. 하기야 ‘모난 놈이 잘 되는’ 꼴을 본 적이 없으니 ‘모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이렇게 파편적으로 일상이 채워지다 보니 ‘곁’은 파괴되고 ‘편’을 찾게 된다. ‘내편’끼리만 모여 있으면 편하고 ‘내편’만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직장, 여타 관계에서는 말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자신의 일상을 고백하고 토로한다. 끊임없이 단절되면서도 연결되는 현대한국인의 자화상이다.

 

 

“다름과 차이를 차단하게 되면서,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며 나누는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해진 ‘사회’.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 버리고 편만 강요하는 ‘사회’.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 이 세계를 과연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p.10)

 

그나마 교회를 다니고 있는 나는 교회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속내를 드러내 놓고 대화를 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나누는 이야기들이 피상적이고 수동적이며 뭔가 더 깊은 속내는 감추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책에서 소개된 일선 교사는 부당한 학교장의 지시와 요구에 대해 동료 교사와 이야기할 수 없어 철학관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한다. 그렇게 이 사회를 사는 우리 개인은 소외되고 격리된다. 모두가 할 말은 많지만 제대로 전하지도, 전할 방법을 알고 있지도 못하다. 그래서 나이의 많음과 직급의 높음을 이용해 자기 혼자만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다름과 차이를 학습하고 경험했더라면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각종 사안에 대해 적어도 공감하고 참조하며 배우고 더불어 성장하는 참조점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나와 다르면 나와의 차이가 아니라 ‘틀린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반대하면 나는 종북 세력이 되어 버린다. 직장 내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동료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는다. 그저 니 자신이 못나고 더 노력하지 않아서 지금 그 모양 그 꼴이라는 힐링과 자기계발의 최면에 빠져 끝도 없이 자괴감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88만원 세대」를 읽으며 짱돌을 들고자 마음을 먹기도 했고, 이명박 시절 광우병 소고기 파동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보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들고 있던 짱돌과 촛불은 거리에서 내팽개쳐 진 채 또 다시 고시원으로, 자취방으로,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그저 ‘내방’으로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지난 철도노조 파업 당시 정부와 사측, 보수언론에서는 어김없이 <귀족노조> 프레임을 주입했다. 한해 육천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사람이 더 돈을 받으려고 파업을 하고 있다는 프레임이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 특히 취준생(취업준비생)에게까지 먹혀 들어갔다는 것에 나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인터뷰를 하거나 댓글을 단 취준생이 고시의 문턱을 넘어 코레일에 들어간다면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했던 사람이 본인이 되는 것임에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나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쉽게 공기업에 취업해 많은 연봉을 받으며 아직도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 박탈감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경청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그것은 자기도 모르던 자기의 삶, 즉 자기 삶에 내재되어 있는 타자성이다. 그 타자성을 깨달음으로써 나와 너는 그 타자성을 공유한 사람으로서 공통의 운명이 된다.” (p.271)

 

저자는 책의 결론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어느 누가 명확한 결론과 대책을 낼 수 있을까 싶다. 다만, 경청하는 것. 그래서 ‘너’를 ‘편’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화’해 공감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또다시 말을 쏟아내고 대책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모두가 자기가 옳다고만 생각한다. ‘나의 말’이 아닌 ‘너의 말’을 먼저 듣고 그것에 귀 기울여 배우고 성장하며 함께 공감하는 것은 개별 단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개별 주체간 신뢰를 회복하는 길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관심을 끄는 사건 하나 생기면 우르르 몰려갔다가 우르르 빠져 나오는 파편화의 반복은 무의미하다. 좀 더 유의미한 개인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경청해야 한다. ‘너의 말’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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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펑크 - 어산지,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다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이야기를 꺼내기도 참담하고 슬픈 세월호 참사 소식은 사고 이후 지금까지 온 국민의 마음을 찢어놓고 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 상처와 슬픔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번 참사에 대해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이다. 왜 사고가 났으며, 왜 실종자로 표시된 숫자에서 단 한명도 구조된 사람이 없는지, 왜 구조과정에서 그렇게 불협화음이 있었는지, 왜 다른 방송사들이 똑같은 내용을 하루 종일 반복하는지 하는 것들이다. 사고 초기 SNS를 통해 간간이 들려오던 참사현장의 다른 이야기들은 몇몇 인터넷 언론사가 도착하고 나서야 사실로 들어났다. 그러면 사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를 했을 것이고 각 방송사들의 데스크에서는 그 취재 소스들을 취합해 보도를 했을 것인데, 왜 독립 인터넷 언론이 진도 현장에 내려가서야 다른 이야기들이 들려오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공감하고 있듯이 이번 참사는 총체적인 부실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언론의 무책임함과 선정성, 비굴함이 이번 참사를 더 아프고 슬프게 만든 주범이라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은 언론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말과 글, 생각과 고민이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각 언론사들마다 고유의 정체성과 특성이 있어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이한 보도를 하거나 논평을 할 수는 있지만 사실은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가장 큰 사명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이번 참사를 대하는 이른바 언론들의 태도는 항간에 떠도는 기레기(기자+쓰레기)의 숙주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천박하고 무책임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가라앉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오보를 남발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정부는 보도통제에 열을 올렸다. 정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언론사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SNS가 문제였다. 24시간 똑같은 참사 소식에 지친 사람들은 SNS를 통해 새로운 사실과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해외 언론들을 통해 오히려 이 참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사이퍼펑크」를 읽으면서 지난 대선 전·후 문제가 되었던 댓글부대(군 사이버사령부, 십알단 등을 위시한 댓글 부대들)를 떠올렸다. 힘을 가진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여론을 통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은 마력이다. 만약 지난 대선을 통해 그런 달콤한 맛을 봤다면 세월호 참사 앞에서도 다시 한 번 그때의 맛을 떠올려 봄직도 하다. 그래서 이번 참사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하고 객관적 사실을 SNS에 적시하는 트위터리안들에게 파리같이 들러붙어 댓글 공격을 해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정보란 게 과연 존재할까요? 사회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열을 해야 할까요?” (p.174)

 

이 책은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사이퍼펑크(cypherpunk -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 기술 및 이와 유사한 방법을 활용하는 사람을 말한다)를 주장하거나 활동하고 있는 4명의 활동가들의 토론을 엮은 책이다. 현 시대에 가장 진보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토론 중 가장 내 눈에 띈 부분은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정보란 게 과연 존재할까요?”라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물음이다. 과연 부정적이니 효과를 미치는 정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통제되고 명령과 규칙에 따르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착한 어린이, 모범적인 학생, 평범한 시민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부터는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리거나 댓글을 달면서도 ‘이런 거 괜히 올렸다가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 국가기관에서 내 글을 보고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A로 가는 길은 B뿐이야.”라고 하면 ‘왜 꼭 B 뿐이지?, 왜 꼭 A로 가야하지?’라고 되묻지 못한다. 그렇게 가르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나 힘이 있는 세력이 “하지마”라고 하면 대부분 그 말을 듣는다. 아니꼽고 속이 뒤틀리기는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 좋을 거 하나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마음을 접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애초에 부정적인 정보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 정보를 대하는 사람에 따라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 되기도, 긍정적인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퍼뜨리고 기억하는 것 자체도 잘못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사이퍼펑크 4명은 이야기한다. 정보의 최초생산자를 통해 확인하는 길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동의한다. 오히려 이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만약 사회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검열해야 한다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사회에 이익이 되는 정보만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하고 기억해야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언론자유순위가 해마다 하락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이들의 투정이 부럽기까지 하다. 이들의 토론 속에서 비판하는 국가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언론자유의 정도가 우리보다는 수십 배 더 큰 국가들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다.

 

 

“페이스북은 완전히 집중화되어 있습니다. 트위터도 완전히 집중화되어 있죠. 구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p.103)

“그들은 역사를 지우죠. 역사가 바뀔 뿐만 아니라 아예 사라진 거죠.” (p.160)

 

페이스북과 트위터, 심지어 네이버와 다음의 이상한 검색 시스템에 넌저리가 날 때마다 해방구가 되어주는 구글 마저 이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페이스북은 완벽한 파놉티콘(panopticon)입니다.” 파놉티콘, 원형감옥으로 표현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마저 힘을 가진 세력의 통제 안에 들어간다면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들은 백인 남성들임에도 수많은 심문과 감시를 받고 있다. 정보와 언론에 대한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이들 백인 남성들에게조차 이른바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국가들에서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국가기관이나 권력의 비밀을 폭로한 것에 대해 어떤 대응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책에 자세하게 나온다. 처음에 말했던 세월호 참사를 그나마 객관적 시각으로 보도한 외신, 뉴욕타임스와 가디언과 슈피겔마저 이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다. 첨예한 자국의 이해의 문제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국의 언론사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은밀하게 숨겨진 전체 정보의 규모에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부분은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합니다.” (p.188)

“위키리크스의 사명은 폭로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이에 따른 법적, 정치적 공격들에 맞서는 것이다.” (p.21)

 

한 동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부분은 전체 숨겨진 정보의 1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폭로된 1퍼센트의 정보를 두고 미국은 혼이 나갔었다. 각종 검열과 봉쇄공작을 펼쳤다. 그래서 줄리언 어산지는 현재 연금된 상태이다. 책에서는 모든 정보는 반드시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목적이나 이해를 위해 편집되거나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전달되고 공유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는 흔하고 당연한 일이라 한국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용기 혹은 객기를 가지고 비밀을 폭로한 폭로자들은 대부분 왕따가 된다. 바보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브래드 매닝과 같은 사람은 결코 나올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해방을 위한 최고의 도구였던 인터넷이 전체주의의 가장 위험한 조력자로 변신한 것이다. 인터넷이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 (p.9)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물론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도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온 자유, 그리고 문화적으로 익숙해진 자유마저 대부분 종적을 감추고 말 것입니다.” (p.208)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인터넷의 통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완전하게 갖춘 힘을 가진 세력이 태어난다면 그것은 정말 인류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내가 진실을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있다. SNS를 통해서, 독립 언론을 통해서, 외신을 통해서. 그런데 이런 것에 접근하려는 시도조차 감시되고 통제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다. 만들어진 진실만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전까지 문명을 이루며 건설한 자유마저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오히려 정색했다. ‘이 사람들이 너무 나가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 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들의 염려가 현실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불행일 테니까.

 

 

“독재와 같은 권력이 역사를 날조하고, 전화를 도청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조직을 와해하고, 새로운 장벽을 세우려고 한다는 게 오늘날 가당키나 한 말인가?” (p.12)

 

가당찮지 않은 일… 여기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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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개정판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3사관학교에서 후보생 교육을 받을 때 처음 총을 쏴봤다. 입교 초기부터 총은 또 하나의 몸이라면서 철저하게 청소하고 관리할 것을 명령했다. 교육훈련을 받을 때에도 항상 총은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했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갈 때에도 어깨에 총을 둘러메고 다녀와야 했다. 그래도 실전 사격은 달랐다. 실탄 사격 일정이 잡힌 날 오전부터 훈육교관들의 얼차려는 시작되었다. 사격장으로 이동하는 중간 중간에 별 이유도 없이 얼차려를 다시 받고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하고 안전검사 후 정렬해 자리에 앉기 전까지 얼마나 호통을 치고 얼차려를 주는 지 정신없이 사격을 했던 것 같다. 사격에는 실탄이 지급되고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총구방향을 비틀어 격발을 하면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 갔다. 처음으로 해본 실탄 사격은 생각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입교 시 지급된 K-2소총을 매일 몸에 끼고 살아도 ‘이게 과연 발사가 되는 건가?’싶을 때가 많았다. 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마치 장난감이나 레저용 장비인 것처럼 느껴지던 찰나였다. 실탄 사격은 반동이 생각보다 심하고 소리도 생각보다 컸다. 가장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정확했다는 것이다. 총 20발 중 12발 이상 표적을 넘어뜨려야 합격이 되는 훈련인데, 대부분의 후보생들이 이 기준을 넘었다. 장난감 총 내지는 레저용 정도로 생각했던 총이 살상무기라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식은땀이 났다.

 

10대 초반 어린아이들이 AK소총과 RPG포를 들고 다니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후보생이던 시절 훈련의 일환으로 사격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 사람을 죽이는 사격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끔찍한 사실이다. 이 책 「집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신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그 어떤 신이든 있다면 이 책의 내용처럼 비극적이고 암담하며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싶다. 순전히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이스마엘은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러 날을 계속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남자 두 명이 총을 들고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들은 총구를 들이대며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p.161)

 

힙합 음악과 춤을 좋아해서 형과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스마엘. 옆 동네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 이스마엘에게는 악몽의 시작이 되었다.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에라리온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른들의 욕망이 가득한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과 미국, 이른바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다이아몬드 수요는 끊이지 않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인 다툼과 쿠데타, 반군을 지원해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려는 라이베리아. 이런 아귀다툼은 고스란히 시에라리온에 사는 국민들이 피를 흘리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중에서도 어린 소년병들의 무분별한 징집(납치)은 시에라리온의 가장 큰 악몽이다.

이스마엘도 옆 동네 장기자랑에 참석하기 위해 간 그 길로 소년병이 되었다. 이스마엘은 반군과 맞선 정부군의 소년병이 되었는데, 정부군인가 반군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시체들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경멸하는 마음으로 시체들을 발로 차서 뒤집었다.” (p.189)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p.192)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p.198)

 

2년 동안 이스마엘은 소년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눈앞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들어온 정부군에서는 오로지 반군에 대한 적개심만을 주입했다. 그 불타는 복수심을 이용해 아이들이 총을 쏘고 대포를 발사하고 전장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전혀 가르치지 않은 채 아이들을 사지로 내 몬 것이다.

 

 

“어린 군인 하나가 뭔가 알약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캡슐처럼 보였는데, 그냥 하얀색이었다.” (p.183)

 

더 심각한 문제는 마약이다. 아무리 가족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다 할지라도 소년병들은 아이들이다. 실제로 총알이 빗발치고 동료가 죽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인다. 별 것 아닌 것처럼 그냥 비닐봉지에 가득 담은 채로 배급하듯이 아이들에게 마약을 준다. 너무 처참하다. 이것은 마약이니까 많이 먹으면 안 되고, 혹시나 부상을 당하거나 도저히 전투에 나갈 자신이 없는 소년병들에게만 지급한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감기약 먹듯이,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비타민 알약을 챙겨 먹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줬다. 아이들의 몸은 물론 정신까지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소년병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다. 쓰고 나면 버리는 것이 당연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지급해 환각 상태에서 전투에 뛰어들게 하고 죽으면 그만이고 살아 돌아오면 다시 마약을 먹이면 그만인 것이다.

 

 

“총 한 발이 후골을 박살내고 목구멍 뒤에 깊숙이 박혔다. 시체의 얼굴을 덮은 천을 들친다. 내 얼굴이 보인다.” (p.45)

 

하지만 이스마엘은 마약으로도 악몽을 떨쳐낼 수 없었다. 2년 동안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살인이 습관화 되더라도 악몽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전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몇 시간 뒤 트럭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왔다. 깨끗한 청바지와 ‘유니세프(UNICEF)'라는 파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힌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 네 명이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p.201)

 

그러던 중 유니세프가 정부군을 찾아와 부대장이던 중위와 상의한 후 어린 소년병들 몇을 데리고 간다. 이때부터 이스마엘과 다른 소년병들의 힘든 재활이 시작된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마약에 찌들어 전쟁 기계가 된 아이들은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금단현상이었다. 쉽게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마약을 갈구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재활센터에서 마련해준 포근한 숙소도, 학교도, 사람들도 그들의 적개심과 폭력성을 쉽게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건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p.219)

 

아이들은 서서히 변해 간다. 어김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재활센터에서조차 정부군 소년병과 반군 소년병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아이들이 죽기도 했지만 재활센터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잘못을 돌리지 않는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숀 교수로부터 윌 헌팅이 들었던 그 말. It's not your fault. 아이들은 서서히 마음을 연다. 마약으로부터 멀어지고 금단현상으로부터 멀어진 후 원래 아이의 모습을 되찾는다. 물론, 죽음의 현장에서 전쟁기계가 되었던 절망적인 상처가 한꺼번에 치유될 수는 없었지만 이스마엘은 유엔에서 시에라리온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발표도 하게 되고 훗날 양어머니가 되는 로라도 만나게 된다.

 

 

“프리타운에 계속 있다가는 결국 다시 소년병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예전 군대 동료들 손에 죽든가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떠나야 했다. 나와 함께 재활 과정을 거쳤던 친구들 몇은 벌써 군대로 돌아갔다.” (p.321)

 

이스마엘은 힘든 재활과정을 이겨내고 삼촌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된다. 엄마, 아빠보다 더 사랑을 쏟고 보살펴주는 삼촌과 숙모, 사촌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가 싶었는데, 수도인 프리타운을 반군이 점령하게 되면서 이스마엘은 다시 한 번 집을 떠나야 했다. 이스마엘의 말대로 그대로 프리타운에 남아 있다가는 다시 소년병이 되거나 소년병들의 손에 죽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자명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 바로 옆 나라 기니로 탈출하기 위해 또 다시 험난한 여정을 겪는다. 미국으로 가서 어떻게 양어머니를 다시 만나는지에 대한 과정은 책에는 없지만 이런 책을 출간하고 한국에도 자신의 책이 출간되어 나와 같은 독자들이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꼭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이 이스마엘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성인으로, 한명의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이스마엘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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