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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펑크 - 어산지,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다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이야기를 꺼내기도 참담하고 슬픈 세월호 참사 소식은 사고 이후 지금까지 온 국민의 마음을 찢어놓고 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 상처와 슬픔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번 참사에 대해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이다. 왜 사고가 났으며, 왜 실종자로 표시된 숫자에서 단 한명도 구조된 사람이 없는지, 왜 구조과정에서 그렇게 불협화음이 있었는지, 왜 다른 방송사들이 똑같은 내용을 하루 종일 반복하는지 하는 것들이다. 사고 초기 SNS를 통해 간간이 들려오던 참사현장의 다른 이야기들은 몇몇 인터넷 언론사가 도착하고 나서야 사실로 들어났다. 그러면 사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를 했을 것이고 각 방송사들의 데스크에서는 그 취재 소스들을 취합해 보도를 했을 것인데, 왜 독립 인터넷 언론이 진도 현장에 내려가서야 다른 이야기들이 들려오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공감하고 있듯이 이번 참사는 총체적인 부실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언론의 무책임함과 선정성, 비굴함이 이번 참사를 더 아프고 슬프게 만든 주범이라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은 언론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말과 글, 생각과 고민이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각 언론사들마다 고유의 정체성과 특성이 있어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이한 보도를 하거나 논평을 할 수는 있지만 사실은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가장 큰 사명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이번 참사를 대하는 이른바 언론들의 태도는 항간에 떠도는 기레기(기자+쓰레기)의 숙주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천박하고 무책임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가라앉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오보를 남발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정부는 보도통제에 열을 올렸다. 정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언론사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SNS가 문제였다. 24시간 똑같은 참사 소식에 지친 사람들은 SNS를 통해 새로운 사실과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해외 언론들을 통해 오히려 이 참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사이퍼펑크」를 읽으면서 지난 대선 전·후 문제가 되었던 댓글부대(군 사이버사령부, 십알단 등을 위시한 댓글 부대들)를 떠올렸다. 힘을 가진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여론을 통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은 마력이다. 만약 지난 대선을 통해 그런 달콤한 맛을 봤다면 세월호 참사 앞에서도 다시 한 번 그때의 맛을 떠올려 봄직도 하다. 그래서 이번 참사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하고 객관적 사실을 SNS에 적시하는 트위터리안들에게 파리같이 들러붙어 댓글 공격을 해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정보란 게 과연 존재할까요? 사회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열을 해야 할까요?” (p.174)
이 책은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사이퍼펑크(cypherpunk -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 기술 및 이와 유사한 방법을 활용하는 사람을 말한다)를 주장하거나 활동하고 있는 4명의 활동가들의 토론을 엮은 책이다. 현 시대에 가장 진보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토론 중 가장 내 눈에 띈 부분은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정보란 게 과연 존재할까요?”라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물음이다. 과연 부정적이니 효과를 미치는 정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통제되고 명령과 규칙에 따르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착한 어린이, 모범적인 학생, 평범한 시민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부터는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리거나 댓글을 달면서도 ‘이런 거 괜히 올렸다가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 국가기관에서 내 글을 보고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A로 가는 길은 B뿐이야.”라고 하면 ‘왜 꼭 B 뿐이지?, 왜 꼭 A로 가야하지?’라고 되묻지 못한다. 그렇게 가르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나 힘이 있는 세력이 “하지마”라고 하면 대부분 그 말을 듣는다. 아니꼽고 속이 뒤틀리기는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 좋을 거 하나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마음을 접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애초에 부정적인 정보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 정보를 대하는 사람에 따라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 되기도, 긍정적인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퍼뜨리고 기억하는 것 자체도 잘못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사이퍼펑크 4명은 이야기한다. 정보의 최초생산자를 통해 확인하는 길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동의한다. 오히려 이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만약 사회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검열해야 한다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사회에 이익이 되는 정보만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하고 기억해야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언론자유순위가 해마다 하락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이들의 투정이 부럽기까지 하다. 이들의 토론 속에서 비판하는 국가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언론자유의 정도가 우리보다는 수십 배 더 큰 국가들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다.
“페이스북은 완전히 집중화되어 있습니다. 트위터도 완전히 집중화되어 있죠. 구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p.103)
“그들은 역사를 지우죠. 역사가 바뀔 뿐만 아니라 아예 사라진 거죠.” (p.160)
페이스북과 트위터, 심지어 네이버와 다음의 이상한 검색 시스템에 넌저리가 날 때마다 해방구가 되어주는 구글 마저 이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페이스북은 완벽한 파놉티콘(panopticon)입니다.” 파놉티콘, 원형감옥으로 표현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마저 힘을 가진 세력의 통제 안에 들어간다면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들은 백인 남성들임에도 수많은 심문과 감시를 받고 있다. 정보와 언론에 대한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이들 백인 남성들에게조차 이른바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국가들에서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국가기관이나 권력의 비밀을 폭로한 것에 대해 어떤 대응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책에 자세하게 나온다. 처음에 말했던 세월호 참사를 그나마 객관적 시각으로 보도한 외신, 뉴욕타임스와 가디언과 슈피겔마저 이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다. 첨예한 자국의 이해의 문제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국의 언론사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은밀하게 숨겨진 전체 정보의 규모에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부분은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합니다.” (p.188)
“위키리크스의 사명은 폭로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이에 따른 법적, 정치적 공격들에 맞서는 것이다.” (p.21)
한 동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부분은 전체 숨겨진 정보의 1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폭로된 1퍼센트의 정보를 두고 미국은 혼이 나갔었다. 각종 검열과 봉쇄공작을 펼쳤다. 그래서 줄리언 어산지는 현재 연금된 상태이다. 책에서는 모든 정보는 반드시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목적이나 이해를 위해 편집되거나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전달되고 공유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는 흔하고 당연한 일이라 한국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용기 혹은 객기를 가지고 비밀을 폭로한 폭로자들은 대부분 왕따가 된다. 바보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브래드 매닝과 같은 사람은 결코 나올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해방을 위한 최고의 도구였던 인터넷이 전체주의의 가장 위험한 조력자로 변신한 것이다. 인터넷이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 (p.9)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물론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도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온 자유, 그리고 문화적으로 익숙해진 자유마저 대부분 종적을 감추고 말 것입니다.” (p.208)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인터넷의 통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완전하게 갖춘 힘을 가진 세력이 태어난다면 그것은 정말 인류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내가 진실을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있다. SNS를 통해서, 독립 언론을 통해서, 외신을 통해서. 그런데 이런 것에 접근하려는 시도조차 감시되고 통제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다. 만들어진 진실만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전까지 문명을 이루며 건설한 자유마저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오히려 정색했다. ‘이 사람들이 너무 나가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 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들의 염려가 현실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불행일 테니까.
“독재와 같은 권력이 역사를 날조하고, 전화를 도청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조직을 와해하고, 새로운 장벽을 세우려고 한다는 게 오늘날 가당키나 한 말인가?” (p.12)
가당찮지 않은 일… 여기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