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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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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신교인이다. 성경을 6번 읽었다. 중3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지속적으로 교회에 출석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믿는다. 굳이 따지자면 자유주의적 복음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자유주의와 복음주의자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는 한데 사실이 그렇다. 어떤 사람들이 보면 신앙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이 보면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유대학자의 책 몇 권을 읽은 적이 있다. 대학 때, 유명한 유대교 랍비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책「사람을 찾는 하느님」,「사람은 혼자가 아니다」를 읽으며 유대교의 깊은 명상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기껏해야 이태원 놀러가면서 이슬람 사원에 가서 사진 몇 장 찍은 것이 전부다.

    

 

“지난 50여 년간 이슬람교는 500퍼센트의 성장을 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5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p.385)

 

현재까지는 기독교인의 숫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의 숫자는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무슬림의 숫자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심각한 국제뉴스가 되고 있는 ‘ISIS(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는 하나의 국가다.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에서 이슬람교 원리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니파 무장단체인 그들은 2014년 6월 29일 ‘칼리프 제도의 신정일치 이슬람 국가를 건국했다.’고 선포했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무슬림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난다면 또 다른 이슬람 국가의 건설이 멀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뉴스는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호전적인 것이 많다. 무장단체나 테러, 전쟁과 분쟁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한다. TV에 등장하는 무슬림들은 자신들과 일부 근본주의 이슬람 단체와 세력을 같은 이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호소한다. 하지만 세계의 경제와 정치와 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사실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이다. 아직은 말이다. 여전히 그들의 내재적인 종교성 속에는 ‘이슬람은 정복하고 전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대인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국수주의자들이나 개신교의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 무장단체의 종교적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들의 종교와 자신들의 신념만이 신을 대리하고 신의 뜻에 합치한다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도그마로 합당화한다.

    

 

“세 종교의 가장 큰 차이는 ‘예수에 대한 관점’에 있다.” (p.368)

 

나는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었다고 믿는다. 동시에 신이라고 믿는다.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은 나와 다르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인 관점의 차이는 사실 지금의 세 종교가 갖는 서로간의 불신과 갈등의 주요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노란색을 강요한 것은 더 깊은 의미의 차별이 있었다.” (p.408)

 

기독교가 통치이념이 되고 교황이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의 정점에 있던 암흑의 시대, 중세에는 창궐하던 흑사병도 유대인 탓이었다. 돌+아이 네로도 자기가 불을 질러 놓고 로마의 대화재의 원인을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유대인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차별의 역사’다. 몇 십 년, 몇 백 년 정도가 아니라 수천 년에 걸친 차별이다. 상상할 수 없는 역사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차별 당했다. 지배계급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기독교 국가의 왕실과 귀족들은 국고와 재무 관리를 주로 유대인에게 맡겼다. 자신의 손에는 더러움을 묻히지 않으면서 실리는 챙기자는 것이었다.” (p.422)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과 공격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영원한 종교적 지배와 도그마의 독점을 위해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까지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문맹일 수밖에 없었다. 유대국가의 멸망 이후부터 디아스포라로 살아 온 유대인들에게 토라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었다. 그들에게 토라를 가르치고 삶의 지혜를 나누는 랍비는 사제가 아니다.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산 것이다. 중세부터 유대인은 공직이나 영지를 가질 수도 없었다. 그들이 갈 곳은 상업과 무역, 금융업뿐이었다. 기독교 지배자들에게 유대인들은 똑똑한 하수인들이었다. 글을 읽고 셈을 잘 하고 외국어도 능통한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일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은 그만두지 않았다.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입었던 옷이 노란색이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는 주홍글씨가 아닌 노란글씨를 새겼다. 모두가 손가락질 하고 발길질 할 수 있게 만든 지독한 폭력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비극을 뻔히 보면서도 유럽 사회는 침묵했다. 교회도 침묵했다. 당시 바티칸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한마디 발언도 하지 않았다.” (p.449)

 

이러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공격, 폭력은 나치에 의해 극단에 이르렀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가공할 폭력과 학살에 대해 교회도 침묵하고 바티칸도 침묵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이러한 오랜 시간에 걸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공격이 현재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들과 국수주의자들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과 차별을 정당화 할 없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유대인에 대한 오랜 시간에 걸친 공격과 차별에 대해서 교회와 바티칸이 제대로 사죄한 적은 없다.

    

 

“시오니즘과 유다이즘은 엄격히 구분된다. 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띠며 이를 위해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반면 유다이즘은 평소 경건한 생활을 위해 <성경>과 전통을 중시하는 유대인 고유의 사상이다. 팔레스타인을 인정치 않으려는 극단적 시오니즘을 유대인 진보파는 물론 정통파들조차 반대하고 있다.” (p.471)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유대교와 유대인이 똑같지 않다는 것은 상식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오니즘과 유다이즘은 명백하게 다른 것이다. 일반 무슬림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음... 뭐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싸잡아서 욕해도 변명할 수 없는...흐흐흐

아무튼 알 필요가 있다.

 

 

“<토라>의 내용 중에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쓰기를 멈추고 목욕을 한다. 몸과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98)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토라>의 가르침을 지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일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쓰기를 멈추고 목욕을 한다니.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무슨 이상한 행동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자유주의 복음주의자인 내가 보기에 저들의 종교행위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교회 다니는 개신교인 누가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 혹은 예수라는 단어가 나오면 읽기를 멈추고 목욕을 하거나 기도를 하겠나. 일반 신도들은 물론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슬림들의 철저한 종교적 기준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어느 곳에 있든지 하루 5번 기도를 하고 라마단을 철저하게 지키며 생이 끝나기 전에 메카순례를 꿈꾸는 그들의 철저함과 신실함.

지금이야 기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가 우스개가 되고 비아냥거림거리가 되는 마당이지만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한 후 이천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기독교는 ‘갑’이었다. 지배체제였다. 그 기간 내내 유대교와 유대인을 차별했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공격하고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지금이라도 교황이나 개신교 지도자(세계 개신교를 대표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더 슬픈...)가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역사적 사죄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일은 요원하다.

나를 포함한 개신교인들이 유대인과 무슬림들의 종교적 행위의 반 정도라도 흉내 낼 수 있다면 그토록 강조하는 사랑의 종교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은 부담스럽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내용이다. 저자가 종교 전공자나 전문가가 아니라서 적절한 정도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심층적인 세 종교 이야기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좀 부족한 내용일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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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5
다나미 아오에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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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한 동안 미디어를 뜨겁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책도 쏟아졌고 예전에 출간된 책이 재출간 되기도 했다.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는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짜 이스라엘에 살았던 사람이 이스라엘에는 진짜 누가 사는지 취재하고 인터뷰한 르포르타주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이스라엘 시민들이 마치 불꽃놀이 구경하는 것처럼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폭탄과 미사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떨어진 폭탄과 미사일로 인해 섬광이 발생하고 엄청난 굉음과 무언가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세계에 전해졌다.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온갖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사실 나는 나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약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지금 저렇게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그 폭탄과 미사일로 인해 죽어갈 무수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진심어린 반성과 자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신들 지금 제정신이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내 가족이 죽었다면 이럴 수 있느냐고!” 라고 그들을 향해 비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상대국이 공식적으로 정한 역사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원래 주민의 문화를 빼앗아온 자국의 역사에는 눈을 감는 일이다. 일본과 이스라엘 사이에 그러한 공범관계가 생기고 말았다는 것이 두렵다.” (p.277)

“2008년, 2012년, 그리고 2014년. 지난 6년 동안 세 번의 전쟁, 가자의 아이들은 폭격과 죽음에 둘러싸인 세계밖에 알지 못한다.” (p.13)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일본과 일본사람들을 생각한다.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폭탄과 미사일을 향해 환호하고 박수를 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쟁은 너무나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 한 적이 없었다. 그간의 독서와 쌓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은 당연히 나쁜 놈들 이라고 생각만 했다.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땅과 생명을 빼앗아 온 역사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제국주의 역사를 병치시킨다. 나아가서 공범관계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극우단체와 세력들이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와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역사 교과서를 여러 번 개정하려고 할 때마다 한국과 중국 사람들은 분노했다. 명백하게 드러난 역사마저 부정하고 왜곡하려 하는 일본의 오만함에 분노했다. 그런데,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직접 겪지 않고 원자폭탄이 본토에 떨어진 것을 기껏해야 할아버지에게 몇 번 들은 것에 불과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역사 교과서의 일부분쯤 개정하는 것에 대해 외국(한국과 중국) 사람들이 난리를 치면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이 황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학교에 다니면서 전쟁을 겪고,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에게 직접 아랍국가들의 공습과 탱크에 대해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우리와는 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단지 미디어와 몇 권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계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 엄마는 기독교도, 아빠는 유대인이죠. 저는 유대 커뮤니티 안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이에요.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저는 유대인이 아니에요.” (p.232)

“어쨌든 유대인은 다들 이스라엘로 가야 한다고 온가족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족이 모두 시온주의자였으니까요.” (p.234)

 

지금의 이스라엘에 대한 인상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지만큼이나 단순하다. 중동에서 유일한 유대국가, 강한 군사력, 강한 예비군, 국가에 대한 철저한 충성과 사랑, 키부츠 정도? 저자가 예전에 알게 된 러시아 출신 유학생의 가족은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이스라엘인이다. 유럽의 전역과 북아프리카 러시아에서 유대인들이 몰려든 것을 몰랐다. 시온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필수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어떤 도시에서, 러시아의 농촌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해도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입식자들이 찾아와 빼앗은 것은 단순히 팔레스타인의 땅과 문화만이 아니었다. 선량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주한 이스라엘인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원래부터 자신들의 땅이니까. 야훼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비로소 도착했으니까. 원래 그곳에서, 그 땅에서 발붙이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사는 한방에 싹~ 지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그들의 당위가 되었다.

 

 

“이집트의 유대인은,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민족의식보다 사회의 상류에 속하는 유럽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p.48)

 

책의 저자는 좀 더 내밀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만난 후 알게 된다. 앞서 말한 이스라엘에 대해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단순한 생각들이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것이라는 점에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사랑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세대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인다. 젊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그냥 내가 태어난 나라 정도?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졌던 선민의식과 어렵게 되찾은 나라와 땅에 대한 애착은 세대를 지날수록 희미해 졌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단카이 세대와 68세대를 부모로 둔 젊은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선조가 가졌던 전쟁에 대한 기억, 경제부흥에 대한 기억만큼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기까지 했다. 그간 다른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당연히 단일 민족이고 모두가 백인 내지는 아랍인과는 다른 민족구성을 가졌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스라엘에도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아랍인, 다른 중동의 아랍인들 사이의 갈등도 알게 되었다.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에 살고 있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과 함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랍인 젊은이들이 갖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또 많이 달랐다.

 

 

“입식자들은 자신들의 토지라고 주장하는 그 토지의 지속 가능한 발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입식지 자체도 팔레스타인의 토지를 빼앗아, 파괴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올리브 밭이나 과수원 위에 세워진 것이다.” (p.255)

 

분명히 이스라엘 입식자들에 의해서 땅과 문화, 역사를 빼앗기고 무분별한 개간과 개발을 통해 심각한 환경오명의 문제도 대두되었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 안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마치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같은 아랍인들에게 비난을 받고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랍인만의 권리는 주장하는 게 아니라오. 아랍인이 행복하면 유대인도 행복하게 될 테니 말이오. 아랍인의 재앙은 유대인에게도 재앙이오. 이익은 공통되는 것일 게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아니겠소?” (p.286)

 

이익은 공통된다는 어느 이스라엘 거주 아랍인 할아버지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체에 맞지 않게 지금껏 살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변 아랍 국가들은 함께 행복하게 될 것을 꿈꿔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이스라엘과 중동을 둘러싼 각종 이권과 이해관계, 국제정세가 복잡하고 첨예하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이 분쟁에 놓이기를 원하는 세력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심각한 분쟁을 통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이득과 이익이 실제로 분쟁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 좋으련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일까?

 

 

“원래부터 이 마을에 살던 아랍인은 이 마을에 두고 온 재산까지 몽땅 빼앗기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부재자’ 상태로 있는 것이다.” (p.303)

 

어쨌든 가장 큰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같은 이스라엘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명히 같은 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부재자’인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거듭될수록 팔레스타인 거주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금은 한쪽 구석에 몰린 상태다. 이미 그로기 상태에 빠진 상대에게 줄곧 카운터블로를 날리는 꼴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공격이 멈춘 상태지만 언제 또 반복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가졌던 만큼의 강성한 시온주의자들은 아닐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겪은 전쟁의 기억과 배운 배타적 역사의 기억은 태도의 변화를 더욱 더디게 할지도 모른다. 당연시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이 더욱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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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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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잠시 카피라이터를 꿈꾼 적이 있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광고가 ‘티저 광고’였다. 이전까지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가 나오는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보여 줄 듯 보여주지 않고, 말해 줄 듯 말해주지 않는 그 광고가 나중에 알고 보니 ‘티저 광고’였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때는 책도 많이 읽지 않던 시기였고, 지금 고등학생들 보다야 덜하겠지만 수능이 가장 큰 산이었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연히 본 ‘티저 광고’에 완전히 매료되어 ‘언젠가 저런 광고를 만들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넣어두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 전공을 하면서 광고라는 것이 수많은 전문가가 모여 만든 종합예술임을 알게 되었다. 단지 15초, 30초짜리 광고지만 그 안에서 얻으려는 효과는 장편소설이나 장편영화에 못지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만큼 감각적이고 센스가 있어야 광고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자세히 알고 보니 광고의 영상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광고의 글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물론,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글 보다는 영상 쪽에 관심이 많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영상보다는 글에 더 적합하고, 글을 더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영상에 관련된 분야만 파고들었다.

영상도 글도 아닌 밥벌이를 하게 되면서 영상과 글, 광고와 카피에서도 멀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카파리이터 정철의 책을 보지 않으면 카피라이터의 생생한 글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어 살지만 제대로 눈을 멈춘 채 보게 되지는 않으니까.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다가 광고가 나오면 바로 다른 채널을 탐색하기 일쑤니까 말이다.

정철은 그의 전작 「나는 개새끼입니다」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제목을 보고 뭐야 이건! 했다. 개님 소님들 다 나와서 힐링이다 뭐다 허접 책들이 넘쳐나는 판에 이젠 제목부터 막나가자는 거구나 싶었다. 목차를 살펴보니 내 첫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시대를 참회하는 글이었다. 책을 구입해 읽으며 그 생각은 더 확고해 졌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카피라이터가 또 있나 싶었다. 단지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라디오DJ를 그만두고 출연하던 방송을 그만두어야 했던 시기였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온갖 짓을 해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던 시기였다. 어용학자들을 동원해 이론을 만들고 또 다른 왕, 언론을 이용해 진실인 것처럼 퍼뜨렸다. 모두가 그렇게 살던 때였다. 팟캐스트 들으며 조금의 희망을 엿봤지만 늘 분열하고 지들끼리 잘난 체 하느라 늘 지는 싸움만 하는 이들에게 그 희망을 투사하기가 겁이 났다.

그 책은 솔직하고 겁이 없었다. ‘나는 개새끼입니다.’, ‘당신을 지키지 못한 개새끼입니다.’ 라는 고백이 허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신작을 고민 없이 구입했다.

정철의 「한 글자」. 카피라이터가 쓴 글은 티가 난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뭐야~ 이런 게 글이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철의 글이 좋다. 빼곡하게 들어찬 글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정철의 여백이 있는 글도 좋다.

앞표지에 작게 소개된 일러스트 작가 ‘삐뚤어진 선’의 그림도 한 몫 한다. 원래 정철씨가 그림도 그린 줄 알아서 ‘이 사람 뭐야~ 대단한데~!’ 싶었는데, 다행이다. 정철씨가 그림에는 소질이 없나 보다.

제목처럼 책은 한 글자에 대한 단상으로 가득하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아~ 맞다! 나도 이런 생각한 적 있는데!!’

라는 생각이 날 정도로 나와 당신에게 가까운 생각이다. 하지만 그 작은 소리와 지나침도 허투루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카피라이터인 것 같다. 정철의 생각과 손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나와 당신을 지나친 무수한 한 글자들은 새로운 깨달음과 통찰을 제공한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여러 번 읽게 만드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개새끼입니다」가 훨씬 좋았지만ㅎㅎ.

몇 개 인상 깊고 조금 더 생각하게 만들었던 한 글자를 추려본다.

 

 

지난 4월 태어난 딸아이가 요즘 뒤집기에 푹 빠져 있다. 뒤집기를 하면 그전까지 맹렬하게 하던 팔다리 흔들기나 팔다리 휘젓기를 그만할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더 한다. 오전, 오후, 밤, 새벽을 막론하고 흔들고 휘젓는다. 처음엔 이 녀석이 별난 줄 알았다. 그런데 요맘때쯤 아기들이 하는 일반적인 행동이란다. 그런데 요맘때쯤 다른 아기들이 하는 일반적인 것보다는 좀 더 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어제 새벽2시쯤 맹렬하게 흔들기와 휘젓기를 하는 딸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너는 그렇게 흔들고 휘저으면서 네 존재를 확인하는구나.”

책의 표현대로 이 아이는 간절하게 생(生)을 확인하는구나 싶었다. 오묘하고 거룩하고 성스러웠다. 꼭 이 시간에 깨는 녀석의 고약함에 짜증을 내기 일쑤였는데, 회개하게 되었다. 그렇게 간절함으로 생(生)을 살아갈 것을 기도했다. 나도 그렇고, 내 딸아이도 그렇고.



 

 

나는 쿨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내는 내가 쿨하지 않다고 한다. 쿨하다면 그런 아내의 말에 역정을 내거나 흠칫 째려보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면 피식 웃으며 아내가 말한다. ‘어이구~ 참~ 쿨하시네~’ 아내 말을 들으면 떡이 나온다고 했나? 떡은 모르겠고 아내 말은 참 맞는 것 같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쿨한 대답을 들으면 나는 화를 낸다.

“아니! 장난 해? 그걸 말이라고 해?”

라며 붉으락푸르락.

나는 시간에 민감하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땡이다. 당연히 나는 시간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자연재해가 아닌 이상 적어도 10분 전에는 반드시 도착한다. 그러고 나서 쿨~하게 차를 마시거나 가져온 책을 읽거나 주변을 무심히 구경하면 되는데!

나는 출입문을 볼 때가 많다.

“언제와?”

나는 쿨~하지 못하다.



 

 

사람은 읽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는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더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2년 연속 1년에 100권 이상 책을 읽었다. 그 때는 내가 고개를 숙이고 다녔었나? 지난 4월에 딸아이가 태어났다. 2년 연속 유지해온 ‘1년에 100권 이상’이라는 기록은 2년에서 끝날 것 같다. 도무지 책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책을 읽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던 시간 전부를 지금은 딸아이를 돌보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가까운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듣는다. “사람 됐다.”라는 칭찬에서부터 “어머~ OO씨는 정말 아내 분을 많이 도와주시네요~”라는 칭찬에 이르기까지.

읽는 것은 책만이 아니었나 보다.

유모차에 누워 있는,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내 배를 깔고 누워 있는

고 귀엽고도 예쁘고 사랑스럽고도 오묘하고 놀라운 딸아이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 숨소리 하나하나를 읽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나 보다.



 

세월호 유족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강자에게만 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가 된 줄 알았던 조롱과 놀림이 약자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 야스다 고이치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읽으며 ‘이야~ 이건 일베의 10년 후 모습인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대한민국인들은 빠르다. 그 책을 읽은 지 딱 1년이 지났는데, 내 생각의 9년을 따라잡아 버렸다. 좋다고 하는 약을 구해줘도 시원찮을 마당에 약자를 향한 조롱과 놀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현실이다. 그들의 진짜 노림수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조롱이 정치적 노림수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유희’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더 심각하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조롱이 ‘유희’에 불과하다니. 그런 ‘유희’가 대상이 되는 약자에게는 그 어떤 강자의 폭압보다 더 고통스럽고 참기 힘든 모욕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을까? 아니, 차라리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다. 알면서도 그런다면... 정말 ‘재미있으니까!, 다들 주목하니까! 언론에서도 다뤄주니까!’ 정도라면... 약은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이 얼굴 맨 아래에 위치한 이유는

머리와 멀어지라는.

가슴과 가까워지라는.

즉,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말을 하라는.

가슴이 시키는 말. 어렵다. 드라마나 영화 내지는 노래가사에 등장할 법한 오그라드는 멘트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지어내고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가슴이 시키는 말을 하라고 하니 어려운 것이다.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 한번 가슴이 시키는 말을 마음껏 해본 적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혹 있다 하더라도 그게 정확하게 어떤 말이었는지, 누구에게 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으니까. 모두들 그 두께는 다르지만 가면을 쓴 채 살고 있다. 어느 정도 감추고 다른 사람 인양 흉내 내면서. 그게 더 불편하고 귀찮을 것 같지만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롭다. 누구에게 내 가슴이 시키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도 확증할 수 없으니 말이다.

말이라도 시원하게 많이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해야 할 말. 일에 필요한 말. 지시하는 말. 험담하는 말. 비판하는 말. 비난하는 말. 말고 다른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꼭 술자리에서 취기를 의지한 채 꾸역꾸역 뱉어내는 자기가 기억조차 못할 그런 말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슴이 시키는 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해야 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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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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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 남자들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아이를 낳은 아비가 되어 보니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낳은 내 아이의 아주 작은 몸짓과 소리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비다. 그렇다면 나와 내 나이 또래 남자들의 아버지들도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을 거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버지들과 관계가 좋지 않을 것일까?

지난 추석에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는 명절 때마다 조부가 계시는 시골로 간다. 아버지 형제는 4남2녀 인데, 그중 내 아버지가 장남이시다. 막내 삼촌이 일찍 돌아가셔서 명절에는 삼형제가 모이고 그 삼형제의 식솔들이 모인다. 나와 내 동생을 포함한 3대 중 남자는 모두 4명이다. 딸들도 있고 숙모님들도 계실 때는 화기애애하다. 그런데 이번 추석 때는 남자들 따로 여자들 따로 목욕을 하러 갔다. 모든 목욕탕의 풍경이 그러하듯이 우리 가족들 중 남자들이 먼저 나와 기다리다 집으로 왔다. 여자들이 없는, 남자들만 모인 3대의 분위기는 화기애매했다. 제사음식을 아무리 바쁘게 차려도 도무지 중력의 힘을 이겨낼 길이 없어 보였던 남자들이, 여자들이 없으니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을 떠오기도 하고 리모컨을 집어드리기도 하고... TV를 켠 채 멀뚱히 화면만 응시하는 남자 3대의 모습이 인상 깊으면서도 애잔했다.

뭐, 집집마다 상황이 다르고 스토리가 다르겠지만 남자들만 모여 있으면 대부분 화기애애하지 못하고 화기애매할 때가 많을 것이다. 명절 때 3대가 모여 있고, 평소 자주 보지 못하던 친척들과 뒤섞여 있으면 조금 덜 하다. 한 번씩 본가에 가 아버지와 단 둘이 소파에 앉아 있으면 그것만큼 고역이 없다. 지금이야 아이가 있어 그 녀석에게 거의 모든 분위기를 맡기고 있지만, 그전에는 정말... 별스럽지도 않은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아버지의 대답은 시큰둥. 혹여 아버지가 입을 여시면 ‘너는 어떻게 살거냐?’종류의 훈계 내지는 걱정이 태반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틀어지게 된 그날 밤 이후,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전화도 되도록 어머니와 하게 되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상실.

내 아버지는 암 투병중이시다. 완치 판정에 가까이 갔다가 다시 재발하여 얼마 전까지 방사선 치료를 받으셨다. 첫 발병소식과 수술, 첫 재발 소식과 연이은 수술까지는 많이 힘들었다. 7년이 다 되어가는 암투병기간.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상실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아버지와의 사이가 소원하고 껄끄럽고 불편하다고 해서 아버지의 암 투병까지 데면데면 했던 것은 아닌데, 시간이 흐르고 흐른 탓일까?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라는 것조차 잊을 때가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아버지의 상실, 그 상실된 시간에 파고들 디테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슬프고 죄스럽고 후회되었다.


“남은 금액, 요기 보이시죠. 200을 당장 털어주셔야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니까요. 가입할 대 설명 들으셨잖아요?” (p.18)

“방금 죽은 엄마를 보고 왔다. 그런데 다음 순간, 갈비탕이나 우거짓국 중에 뭐가 더 맛있을지, 바람떡과 송편 중에 어떤 게 보관이 용이하고 잘 쉬지 않을지 가격 대비 만족도로 비교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은 현실은, 현실이라기엔 지나치게 기괴했다.” (p.21)

할머니 장례식장은 저 멀리 김포였다. 우리가 가장 멀리서 온 식구가 된 탓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세팅이 완료된 뒤였다. 이제는 보편화 된 상조보험과 그 서비스에 익숙하다 보니 누군가 돌아가신 후 전화만 하면 모든 준비를 하는 것은 상조회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세하고 귀찮은 것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상주가 결정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할머니 장례야 어른들이 계시니까 손자인 나까지 나서야 할 일은 없었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일을 당하신 후 상조회사 직원이 나와 체크리스트를 눈앞에 내보이며 사인을 하라고 하면, 나는 주먹을 날려야 할까? 뻘건 눈으로 눈물을 떨구며 사인을 해야 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심장이 턱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엄마가 죽었다.” (p.15)

음... 이런 소식을 듣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가늠하지 못하겠다. 아버지 암 발병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휴가를 내 고속도로를 달렸다. 정신없이 가다가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져 근처 갓길인지 임시휴게소인지 하는 곳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끄고 운전대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슬픈 것이었는지, 죄스러운 것이었는지, 걱정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다시 출발했었다.

부모님의 암 발병 소식은, 내게는 닥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막연하게 안심하고 살았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내 일이 되었을 때, 닥쳐오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일이다.

부모님의 암 발병 소식도 그럴 것인데, 부모님의 부고는... 생각하기도 싫다.


“나는 연애소설을 쓴다. 자유업에 비혼, 아이도 없기 때문에 시간이 있다.” (p.29)

“탈상까지 100일 동안, 아버지가 엄마 없는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나한테 떨어졌다.”

석희는 언니와 여동생이 있다. 언니는 호주에 살고 있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동생은 석희만큼 시간이 없다. 그런 탓에 엄마의 장례는 물론, 그 이후에 아버지의 일상을 돌보는 일까지 떠맡게 되었다. 엄마의 죽음은 이미 상실된 감정이 될 정도로 석희는 꼼꼼하고 자세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마치, 슬프기는 하지만 부모 정도는 아닌 조부모나 일가친척의 죽음을 대하는 것처럼. 강인하고 깐깐했던 아버지는 깐깐함만 남아서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30년 동안 복무한 군대의 그것에 머물러 있다.


“언니의 저 제단은 엄마를 아름답게 만들어서 그리워하는 것으로 상실된 시간들을 전부 천국의 사물처럼 만드는 추모로 보인다.” (p.238)

멀리 떨어진 언니나 여동생에게는 여전히 엄마의 부재와 상실 한가운데에 있다. 실컷 슬퍼하고 실컷 추모하고 실컷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석희는 달랐다. 언니와 여동생이 엄마의 장례식장에 도착하기 전, 모든 장례절차를 확인하고 사인해야 했다. 아내의 죽음을 기리고 추모하는 작은 지출조차 꺼리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때론 이해해야 했다. 엄마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교회 권사 아줌마들이 엄마의 옷장에서 엄마가 생전 가장 아끼던 옷을 꺼내 입는 꼴도 지켜봐야 했다. 밥조차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주방기기들의 사용법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 했다.


“이해의 담임이 기록한 생활기록부 평가에 의하면, 나는 리더십이 전혀 없고, 협동심이 현저하게 부족한데다 분쟁이나 일으키기 좋아하는 반사회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p.164)

어쩌면 석희라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석희는 중학교에서도 튀는 아이였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불합리한 것에 대해서는 따지고 저항하는 아이였다. 지금처럼 학생인권이 조례된 때도 아니었고,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군대 내 계급처럼 수직적인 것이었다. 당연히 석희의 튀는 행동은 교권과 학교의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때다. 그렇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상식적인 선이었다. 교사의 무분별한 체벌, 학생에 대한 무시 같은 것들에 대해서 따지고 저항했다. 석희의 저항에는 아무 말 않던 담임이라는 쫌생이는 생활기록부로 복수를 했다. 그런 식이다.


“살다 보면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다 있는 건데... 이런 상황에선 너 자신을 좀 제쳐두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자기 자신을 미뤄두는, 그런 게 필요한 순간이 있는 거야.”

다른 중학교 담임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어린 중학생에게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말이지만 석희는 결국 담임의 말대로 살지 못했다. 자유롭게 글을 쓰는 비혼 여성이지만 당장 닥치는 삶의 구차한 문제들과 밥벌이의 고단함은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다. 자기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채 상실된 엄마의 시간과 공간을 겨우 메우고 있는 터다.


“새벽 5시 7분.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배가 아픈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p.284)

그러면, 엄마의 탈상도 지나가고 아버지가 스스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고 해서 석희는 중학교 담임의 말처럼 자신을 좀 제쳐두고, 자신을 미뤄두는 그런 순간을 즐길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새벽 5시게 받는 아버지의 전화는 100% 나쁜 소식이니까. 아무리 교통이 좋아졌다 해도 서울에서 원주까지 내려가는 길은 쉽지 않으니까. 배가 아프면 119에 전화를 하면 되는데, 아버지는 꼭 석희에게 전화를 할 것이니까. 언니는 호주에 있고, 잘난 박사 막내는 너무 바쁘니까. 둘째 석희는 그래도 시간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정이 많고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는 여전사 같은 석희지만, 그에게도 엄마가 없는 일상은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낯설 상실의 공간이다. 언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일 테다.

나는 남동생이 있지만 멀리 강릉에 산다. 부모님은 포항에 살고 계신다. 나는 대구에 산다. 남동생과 제수씨는 직업 특성 상 쉽게 시간을 낼 수 없다. 그에 반해 나는 낼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아버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의 일상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겁이 많아졌다. 단지 부모님을 여윈 슬픔과 죄스러움뿐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석희가 겪은 자질구레하면서도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에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던 자매간의 반목, 그리고 남아있는 부모님에 대한 봉양에 이르기까지. 닥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모두가 바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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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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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작가다. 그의 전작을 읽을 때마다 경험하는 몰입을 이번 작품 「공허한 십자가」에서도 경험했다. 그의 작품은 하드코어나 고어 장르가 결코 아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인이 소개하지만 오히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와 같은 미스터리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도 작품을 읽기가 거북하지 않다. 이것은 꽤 중요한 작가의 장점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나 최근작 「몽환화」를 읽으면 등골이 서늘하고 식은땀이 나기보다 따스한 인간애가 넘치는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감상을 얻는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하고 덜 힘들게 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나의 사건에 얽힌 여러 등장인물들이 종국에는 날실과 씨실이 하나의 패턴으로 조합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의 사건으로 모여 든다. 모여든 것으로 인해 사건이 해결되는 것으로 엔딩 되는 것도 그의 작품을 찾아 읽는 이유 중 하나다. 일상을 밀어내는 것도 버거운 마당에 엔딩조차 불확실하고 불편하거나 암울하다면 나는 그런 작품을 읽어낼 자신이 없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여간 불편한 영화가 아니었다. 개신교인으로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내게 믿음과 용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이 갖는 고통과 고민을 그려낸 영화 『밀양』은 내 신앙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밀양』을 생각했다. 아들의 죽음과 아들을 죽인 가해자를 용서하기도 전에 미리 용서해 버린 신을 조롱하기 위해 교회 장로의 몸 밑에 일부러 누워 하늘을 향해, 정확하게는 신을 향해 소리친다. 눈이 부셔 제대로 보이지 않는 secret sunshine을 향해서.

 

보여? 보이냐구. 난 너한테 안 져.

 

 

이번 작품 「공허한 십자가」는 제목이 가진 함의가 무엇인지 독자들이 각자 상상을 하게 만든다. ‘공허’라는 단어와 ‘십자가’라는 단어는 다분히 종교적이고 철학적이다. 다중적이고 다면적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쓴 글에서 등장하는 ‘공허한 십자가’는 최근 읽은 책의 제목 중 단연 압권이다. 제목만으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고 왜 이 제목이 붙여졌는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 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p.190) <사형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 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p.212)

 

딸아이를 죽인 범인을 사형에 처하기 위해 나카하라와 사요코 부부는 최선을 다한다. 사요코가 죽기 전 책 출간을 위해 준비하던 원고, <사형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에 등장하는 그녀의 생각이다. 나는 섣불리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다. 세월호 참사와 유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 그 누가 이해한다느니, 공감한다느니 지껄일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사요코가 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나카하라와 이혼한 후 더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 또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범인의 죽음으로 가족의 상실을 보상받을 수 없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범인의 사형 집행으로 범죄율이 현격하게 떨어진다거나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들이대며 유족들에게 사형폐지론을 지껄여서는 안 된다. 그런 유족들, 사요코를 향해 비판을 해서도 안 된다. 영화『밀양』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신애는 아들을 납치해 살해한 범인의 사형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유발한 종교적 귀의에 의한 의지였다. 그런데 어렵게 찾아간 범인의 얼굴에서 신애는 ‘공허한 십자가’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 던진다.

 

 

“남편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p.413)

 

후미야는 그렇게 벗어던진 십자가에 대한 속죄 의식으로 아내 유미를 껴안는다. 그녀의 과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후미야에게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후미야 자신도 어린 시절 사오리와의 사이에서 생긴 생명을 죽인 범인이기 때문이다. 후미야에게 유미는 속죄 의식이었지만 유미에게 후미야는 달랐다. 유미에게 후미야는 ‘구원의 십자가’다. 공허하지 않은 십자가다. 사기꾼 타바타에게 받은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를 후미야가 싸매주고 고쳐주고 있는 중이었다. 유미는 후미야로 인해 십자가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나카하라와 사요코의 딸아이를 살해한 범인, 밀양에서 신애의 아들을 살해한 범인과 후미야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속죄를 요구하거나 처벌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다. 따라서 다분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가치판단의 문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을 통해 독자를 더 골치 아프게 만든다.

당연히 이 작품의 결말은 모호하기 때문이다.

 

 

“눈치 챈 사람은 극히 일부분으로, 함부로 떠들어서 학교의 평판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다고 하더군요. 고등학교 입시가 코앞이었으니까요.”

“눈치는 챘지만 모르는 척했을 거라고요. 어차피 이제 곧 졸업할 학생이니까 골치 아픈 일을 피하고 싶었겠지요.” (p.388)

 

문제는 십자가 아래서 웅성대거나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다. 대중이 가진 무책임함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그 전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라고 하는 처형장으로 올라갈 때, 그전까지는 메시아요 구원자, 슈퍼스타라고 떠들어 대고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무기력하게 패배한 예수를 향해 욕을 퍼붓고 돌을 던졌다. 책임지지 않는다.

이미 지난 과거가 되었고 일부러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사오리와 후미야는 그들 사이에서 불행하게 태어난 갓난아기를 죽여 매장한 후 연락을 끊는다. 절대로 묻을 수도 없고, 치유되지도 않을 상처임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사오리와 후미야는 너무 어렸고 불안했다. 만약 사오리의 배가 불러 오는 것을 눈치 챘던 당시 학교 친구들과 교사가 사오리와 후미야의 일에 개입했다면 최소한 생명을 살해하는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죽어가는 신애를 향해 주변인들이 손을 내민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여겨지는 종교에의 초대였다. 아들의 상실이 주는 슬픔이 깊어질수록 신애의 믿음도 깊어졌지만 근본적인 물음을 애써 회피하는 신과 주변의 신자들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단 교회에 데려왔으니 내 할 일은 다했다는 무책임이다. 신을 조롱하기 위해 들판으로 나와 유혹했을 때, 장로는 응한다. 신을 향한 조롱이 신애의 목젖에서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장로는 일을 마무리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아니 우리는 십자가를 회피하고 책임을 나눠 갖지 않는다. 성가시고 불편하며 내게도 아픈 일이니 말이다.

 

 

“그녀는 후회했다. 역시 고백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비밀은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묻어두었어야 했다.” (p.429)

 

사요코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다면 후미야와의 비밀을 영원히 묻어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오리 자신만의 고통과 상처로 떠안아 살면 될 일이었다. 그랬다면 유미의 아버지가 사요코를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고통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일상을 파괴한다. 참아낼 수 없는 슬픔과 분노는 나는 물론 내 주위 사람들까지 망가뜨린다.

 

 

“분명히 모순투성이군요.”

“인간이 완벽한 심판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p.441)

 

맞다. 인간은 모순투성이이고, 그런 인간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은 더욱 모순투성이다. 완벽한 심판과 치유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해서 뻔히 보이는 타인이 가진 십자가의 고통에 언제까지 모른 채 하고 무책임한 채로 살아갈 것인지는 각자 선택할 일이다. 각자의 가치판단에 따를 일이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 이미 용서 받았대요. 하나님한테.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대요.

이미 용서를 얻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해요?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할 수가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 받고 구원받았어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영화 『밀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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