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다산 절망을 경영하다 - 19번 과거 낙방생에서 조선 천재로
차벽 지음 / 희고희고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가끔 한탄을 한다. 경험, 경륜보다 역시 재능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낄 때 그렇다. 나름대로 글을 써온 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강산이 변하는 세월동안 정작 내 글은 요지부동 변함없이 고집스럽게 형편없다. 재능도 그렇거니와 한껏 집중해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거나 연습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할 말이 없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 게으름은 타고 났어! 어쩔 도리가 없다고! .” 변명이 구차하니 그만 하겠습니다.

 

때문에 젊은 작가들이나 후배 기자들의 멋들어진 글을 보면 캬하~!” 감탄하다가도, “에효, 이거 참 부끄러워서 원하게 된다. 그들의 타고난 재능도 부럽고, 그러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요지부동 변함없는 내 글이 처량해질 따름이다. 하지만 단순하고 멍청한 난 금방 헤헤, 좋은 글이야침을 질질.

 

놀랄 만큼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어느 정신 나간 지역의 정신 나간 정당에서(그 지역의 그 정당에 몸담고 계신 분들은 속상하시겠지만, 솔직히 좀 심하셨어요.) 셋째 아이를 낳으면 1억 원을 지원한다는 조례를 추진했다가 결국 비난과 조롱을 한 몸에, 눈부시게 받은 뒤 포기했단 소식이 들린다. 잘 하셨어요. .

 

거기에 지난해부터 65세 이상 노년층의 인구 비율이 유소년의 비율을 처음으로 앞질렀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대통령의 지적처럼 얼마 있지 않아 청년실업이, 청년 인구의 감소로 저절로 해소될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다행 중 더 큰 불행 아닌가. 심각한 해소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스스로 소멸해가고 있는 것이다.

 

앞서 꺼낸 두서가 조금도 없는 이야기들은,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단군 이래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재 취업, 결혼 등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 속에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은 곧 과거와 다르게 더 많은 이들을 부양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재능과 노력을 겸비했지만, 불우한 시대를 만나 자신의 꿈이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한가득인 사회는, 결국 별 볼일 없다. 미래가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그 숫자마저 자연적으로 줄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1억 원이 아닌 1억 개의 해법과 아이디어가 마구 나와야 할 위기 상황이다.

 

예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롯한 허무냉정(!)한 힐링 도서들이 무지하게 많이 팔려, 화제를 모으다가, 곧 청춘들에게 무지하게 욕을 먹어 다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을 패러디한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듣고 배를 잡고 나뒹군 기억이 새록하다. , 죄송합니다. 눈치가 없군요.

 

함부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어설픈 위로나 가식적인 친절 역시 상대로 하여금 모욕과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방아쇠가 된다. 때문에 멍청한 나는 혹시라도 분노의 총알을 맞을까, 어설프게 청춘을 위로한답시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냥 딱 봐도 지쳐 보이고, 악전고투를 이어가고 있는 후배들에게 말없이 소주 한 잔을 건네곤 했다. “결국 네가 좋아서 마시는 것 아니냐!”라고 비난한다면, , 완전히 부정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내 진심도 알아 달라고요!

 

먼저 우리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이 땅의 청춘 누구라도, 그 어떠한 차별 없이 도전하고 성취하고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나와 같은 게으른 멍청이가 아닌 이상 말이다. 지금처럼 위대한 청년들이 허무하게 좌절하는 시대는 분명 미친 거다. 당연히 미친 시대는 싫다. 그렇지 않아도 지구상에 미친 존재들은 차고 넘친다. , 트럼프 씨, 귀가 가려우신가요?

 

저자는 다산 정약용의 청년시절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를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좌절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뜻을 이뤄낸 절망의 경영자로 평가한다. 19번이나 과거에 낙방하면서도 뜻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정조의 총애를 받게 되기까지 그의 청년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그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그는 훗날 많은 업적을 이루었고, 이후 오랜 귀양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

 

사실 그의 고난은 현재 청년들의 어려움과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것은 다른 문제지만, 과거공부 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알뜰하고 살뜰한 아내가 경제활동을 책임져야 했다. 다산은 처갓집의 도움으로 계속 수험생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많이 미안하고 또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 맘 알지.

 

공무원 시험을 19번이나 떨어진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이것은 백 번이 넘게 이력서를 넣어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오늘과 닮아있다. 게다가 당시도 지금처럼 여러 부정과 부패, 부조리가 판치고 있었다. 다산은 불의의 시대에 좌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전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름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정유라는커녕 은수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실력만이 살 길이었다.

 

결국 그는 오랜 도전 끝에 원하던 목표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정조를 만나 비로소 자신의 뜻을 펼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주군을 위해 모든 재능을 쏟아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일성록>을 기본으로 하여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의 청년시절을 보여준다. 때문에 드라마틱한 전개나 급격한 반전보다는 마치 다산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잔잔하게 이어진다. 살짝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직접 다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들을 답사하며 담은 사진들이 지루함을 덜어준다. 두물머리, 지금의 양수리에는 다산박물관이 있다. 매번 지나치기만 한 곳인데,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산과 같은 천재도 어린 시절 수많은 실패를 이겨내며 결국 뜻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니 청춘들아,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 꿈은 이루어진다!”

만약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책을 냈다면, 글쎄, , 난 그다지 동의도 공감도 하지 못하겠다. 아마 대다수의 청년들도 “So What!”이라 답할지 모른다. 이미 그런 동기 부여, 용기 충만용 도서들은 넘치기 때문이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들은 시내 편의점만큼이나 많다.

 

나는 그보다는 그저 다산이 청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을 지를 상상해보며, “어르신도 소싯적에 그러셨군요. 저도 요즘 정말 노답이네요. 이번 생은 정말 망한 걸까요?” 하며 투정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상투적인 위로와 힐링이 아닌, 그저 약간의 동지의식을 느끼는 정도? 그 정도가 딱 좋을 것 같다. 알고 보면 다산도 우리처럼 답 안 나오는 취준생이었다는 점, 그래도 어찌되었든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는 점. 그것으로 충분하다. 억지로 무언가 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전히 힘든 세상이다. 언제는 마냥 편안한 시대가 있었을까. 지금의 청년들은 유례없이 가혹한 환경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불의와 몰상식의 시대에서 다시 정의와 상식을 되찾아오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다시금 주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나 역시 상투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부디 힘내라는 말을 전한다. 천하의 다산도 19번 떨어졌고, 개구리 왕눈이도 일곱 번 넘어졌다. 하지만 결국 일어났고 무지개 연못의 평화를 되찾았다. 반드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환경에서 하고 싶은 꿈을 위해 힘껏 도전해보는 정도는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 안 되면? .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네요. 이러다 맞겠지. 재능이 없고 요지부동인 글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다 상투적이기까지 한 나는 이만 물러가야겠다. 눈부신 청춘들이여, 부디 쉬어가면서 가시길. 참고로 다산도 여행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 뱀에 다리를 달자면 북한에서도 다산은 꽤 인정받는(!) 역사적 인물인 것 같다. 우리는 보통우표에 한 번 다산이 등장했는데, 북한에서는 1960, 1962, 2011년 세 번에 걸쳐서 우표에 모델로 등장했다고 한다. 남북 우표 수집가인 지인의 글에서 읽었다. 아마 다산의 토지분배 제도와 관련해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해석되며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달았던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상으로 뱀의 다리를 자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장이 되려면 마키아벨리를 만나라! - 사장은 왜 이 책을 몰래 혼자서 볼까?
이안 디맥 지음, 이경진 옮김 / 진서원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요새, 아주 느닷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특히나 더, 내가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내가 말하는 늙음은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마음의 늙음에 더 무게가 가있지 싶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뭐야, 저런 궁상은. 쓸데없잖아.”하며 속으로 은근히 비웃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마치 죽을 날짜를 받아둔 것처럼,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또 떠들며 벗들과 술잔을 기울인다거나, 예전 영화나 음악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직접 함께 보냈다는 건 아닙니다.) 수많은 영웅들과 기인들, 예술인들을 추억하며, 스스로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하며 놀랄 만큼, “그땐 그랬지라며 중얼거리는 것이다.

 

. 아무래도 몸보다 마음의 노화가 먼저 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맥이 빠지고, 유치한 허무나 비관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살짝 쳐지고 있는 건가, . 이러고 있다. 한심하기도 하셔라.

 

그러다 최근 사노 요코 여사의 책을 읽게 되었고, 이내 팬이 되었다. 동화작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한 요코 여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전후 궁핍했던 일본이 지금의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그 역사와 오롯이 함께 하며, 숨을 거둘 때까지 치열하게, 그리고 까칠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 사람이다. 그녀의 까칠함과 당당함에 매료되었고, 따뜻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뛰어난 글 솜씨에 더 감동한 것 같다. 지금도 그녀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있다. 맛있는 글이다.

 

2010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그녀와 2017년 마흔 초반에 접어든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멋진 할머니의 글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 아무래도 내가 아재의 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인가. 결국 내가 많이 늙어버렸다고 느낀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단 말이지? 이러니 또 맥이 빠진다. 요코 여사님의 탓은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얼마 전 삼성의 이재용이 구속되고, 또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다, “그들은 자신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을까, 어떤 예감 같은 것은 없었을까궁금해졌다. 아마 이재용 부회장은 가능성이 극히 낮을 것이라 믿었을 것 같고(상상도 못했겠지?), 원 전 원장은 정권이 바뀌었으니, “살짝 불안해지는 걸?”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감옥에는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다.

 

다시 사노 요코 여사를 생각한다. 요코 여사의 그야말로 치열 발랄했던 삶과 저들의 삶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권력의 정점이 있던 이들의 초라한 말로와 암 선고 앞에서도 당당하게 죽을 의욕 충만을 외치며, 재규어 자동차를 덜컥 사버리고, “금연은 무슨!” 하며 줄담배를 고수했던 여사의 삶. 각각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권력을 추구하고, 그 앞에 무력하다. 찰나의 권력일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평생을 소진할 수 있다. 인류 역사 이래 그 무모함과 멍청함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변함없겠지. .

 

그리고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집단이라도, 일단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계급을 나누어 버리고, 상하 위계를 만들어버린다. “이젠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 본능을 없앨 수 없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란 종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한 영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궁리하고 또 궁리한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움켜쥘 수 있을지, 그것을 어찌하면 가능한 한 아주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거기에 정력을 쏟아 붓는다. “전부 그런 건 아니잖아!” 할 수 있는데, 거기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욕망이 단 1%도 없는 사람은, . 그건 비정상 아닌가요? 인간이 아닌 거잖아.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분들께는 사죄드립니다.

 

마키아벨리는 약 500년 전 사람이다. 그 유명한 <군주론>을 썼기에, ‘비도덕적인 권모술수의 대표선수로 꼽힌다. 흔히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표현한다면, 그건 칭찬이 아닌 비난이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나,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한 권력주의자였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뛰어난 문장가이자,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현실 정치인이지 않았을까. ‘무엇이 비도덕적이고 무엇이 기회주의적인 것인가깨닫기 위해 부단히 인간을 탐구하고 비로소 인류에게 , 현실정치는 이런 것이랍니다. 그리고 사실 인간은 다 똑같아요. 다를 게 없어.”라고 용기 있게 외친 용자, 동시에 끈 떨어진 관료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사장이 되려면 마키아벨리를 만나라!>는 지극히 흥미와 판매를 계산한, 속 보이는 제목으로 소개된 <모던 마키아벨리>(표지 글들도 가관이다. “사장은 왜 이 책을 몰래 혼자서 볼까” “전 세계 독자들의 은밀한 사랑을 받은 책!” “<마흔 살 행복한 부자아빠> 저자 아파테이아 추천서!” . . 이렇게 해서 많이 파셨어요? 그리고 독자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혹시 정탐하신 건가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토대로 권력의 7가지 원칙을 찾아, “조직에 몸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권력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게임의 법칙을, 권력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표지 글들에 비해 내용은 흥미롭다. “누구도 얻지 못했던 큰 권력을 잡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는 한 청년이 매년 수백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자토니 카라칼라를 만나, 그의 성공비결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청년은 마키아벨리를 처음 만나게 되고, 권력을 쟁취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깨닫게 된다. 그가 필요한 것은 모던 마키아벨리가 되는 것이었다.

 

저자가 밝힌 7가지 권력의 원칙을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되는 것인가? . 글의 말미에 일단 담아본다. ,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만 하면 나오는 것이니, 별 문제는 없겠지. 그리 기발한 것도 사실 아니고. .

 

권력은 누구나 탐낼 만큼 막강한 것이고, 매혹적인 것이다. 때문에 비록 짧은 순간이더라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불사한다. 그리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영화 <열혈남아>(1987)에서 자신의 보스이자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었던 유덕화의 임무(조직의 비밀을 누설할 것 같은 한 조직원. 그는 경찰에 체포된 상태였다. 그를 제거하라는 것이 유덕화에게 내려진 조직의 명령이었다)를 대신 한 장학우는 그 덕분에 무수히 많은 경찰의 총탄을 맞고 죽게 된다. 장학우는 유덕화의 품에서 이렇게 말한다.

 

개처럼 사느니 하루를 살아도 영웅처럼 살고 싶어.”

 

살짝 결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인정받고 더불어 그에 따른 권력을 갖고 싶은 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지금도 인류는 권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서로의 생명마저 빼앗는다. 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권력에 희생될 것인지 묻는 질문 앞에 다른 대답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짝 생각해본다. 무모한 권력에의 집착이 결국은 인간을 온전히 인간답게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 되어온 것은 아닐지,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은 결과로 얻어진 권력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지배를 강요당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 저항 역시 살벌한 권력 게임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 어차피 멍청한 내 머리에서 해답이 나오진 않겠지만, 열심히 생각해본다. 부지런합니다. 제가 이런 면에선.

 

감옥에 계신 전직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결국 힘없고 몸 아픈 노파가 되었고, 역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온갖 비민주적인 악행을 저질렀던 이도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실질적인 청와대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움직여온 대기업의 총수도 감옥에 있다. 그들은 권력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한 것일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권력을 남용하면 결국엔 권력에 학대받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희생양이 된다고 말했다. 이 세 분들이 <군주론>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아님 이 책이라도. 역시 독서는 힘.

 

언제나 그랬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온라인 서점의 책 분류와는 별개로 다른 것을 느끼고 깨닫는 나다. 부끄럽진 않지만, 어쩐지 저자와 출판사를 배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처세술, 자기계발, 뭐 이런 분류 아닌가요.

 

앞서 세 분은 권력을 가졌고, 누렸고, 빼앗겼다. 뭐 부회장님은 벌써부터 사면 얘기가 나오고, 전직 대통령 역시 그리고 오래 감옥에 계시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암튼 그렇다.

 

하지만 요코 여사는 돌아가신 후에도 이웃나라 40대 초반의 마음이 늙어버린 한 남자에게 기분 좋은 권력을 여전히 휘두르고 있다. 과연 공명과 같은 놀라움이 아닌가.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유한하고 싶진 않다. 찰나의 권력을 위해 평생을 수치스럽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무엇보다 난 적어도 주제파악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고 믿는다. 꿈꿔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꿈꾸지 않는 게 편하다.

 

언젠가 티끌같이 보잘 것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 그리고 피식피식 소리 없는 방귀처럼 웃음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런 권력은 한 번 가져보고 싶다. 그건 어떻게 용납해 주실 수 있나요?

 

권력의 7대 원칙

1원칙. 자기 이익을 좇는 자를 믿어라

2원칙. 사람은 누구나 망상에 빠져 있다, 그 망상을 파악하라.

3원칙. 권력은 투쟁을 통해서만 얻는다.

4원칙. 동지를 친구로 착각하지 마라.

5원칙. 자연스러움이 곧 권력이다.

6원칙. 행운은 현명한 사람의 편이다

7원칙. 권력은 복종을 원한다

 

. 5, 6원칙은 어쩐지 매력적이지 않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가능성이라. 어떠한 가능성을 의미 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껏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참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가능성아니었을까. 하지만 2016년 이 땅의 민중은, 우리 시민은 철벽과 같았던 비정상의 문을 기어이 깨부수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 끝에서 가능성이란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정치는 본래 깨끗함, 고결함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권력이라는, 모든 이들이 갈망하지만, 결국 소수만이 움켜쥘 수 있는 그것을 놓고 다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으로 정치가 끝은 아니다.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는가, 어떠한 가치와 기준에 따라, 정의와 소신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분배하느냐가 정치의 결정적인 권한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에 신물을 느껴온 것은, 권력을 움켜쥐는 과정에만 관심을 먼저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제 대선이 그야말로 코앞이다. 박근혜라 쓰고, 적폐라 읽는 대상이 사라졌어도, 정작 사라진 것은 박근혜일 뿐, 적폐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명색이 대선후보라는 어떤 이는 또 다른 이름의 적폐가 되어 유령처럼 서성이다, 어느 사이 다시금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다. 이게 적폐가 아니면 무엇이 적폐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믿는 이유는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경험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새삼스레 정치의 힘과 위험을 동시에 절감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근거나 희망을 좇아 선택했던 단 한 번이 얼마나 많은 후과를 낳는지 우리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실재 우리의 삶 자체가 위협받았고, 불안과 공포에 눌려 살아왔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상 속에 우리는 하나 둘 자유를 빼앗겼고,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무모한 권력의 남용으로 강이 파헤쳐지고, 남북관계는 끝장이 나버렸다. 경제도 추락을 거듭했다. 우리는 후회밖에 남지 않을 선택을 한 것이었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오랜 시간 거리에 나서야만 했다.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고, 교훈을 얻었다.

 

우습지만, 그것 역시 민주주의였다. 갈등의 증폭과 끝내는 폭발. 갈등이 없다면,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으로 인해 불러 들여진 정치체제이다. 갈등이 없는 곳은 전제주의 국가일 것이다. 우리가 추운 겨울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우리 스스로 이 땅은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곳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75,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한다.

 

과연 정치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며, 어떤 소명을 가진 이들이 나서야 하는 것인가그리고 이 땅에서 진보 정치를 꿈꾸는 이들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어떠한 실력을 키워야 할까. 이들은 보수와 어떻게 경쟁해야 할까, 아니면 보수 자체를 지금껏 그래왔듯 일방적으로 무시하면 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의 의도이자 목적이다. “정치는 다 더러워” “그놈이 그놈” “더러운 쓰레기만 한가득 모인 여의도판이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더러운 곳에 뛰어들어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지닌 집단과의 경쟁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진보 정치를 꿈꾸는 이들의 목표이자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 결국 직접 민주주의가 발현하게 된다. 지난 촛불이 그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광장의 순수한 열정만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실천할 순 없다. 저자는 이 땅의 진보 세력들이 좋은 정당이 되고, 집권하여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공감한다. “‘직접성의 가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발전시키면서 그 기초 위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의 실험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모색하고 보완해 가자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약진에서 알 수 있듯, 유권자들은,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른 대선 후보, 차마 이름을 거론하기조차 불쾌한 누구 역시 지지율이 상승 중이라고 하지만, 그건 조금 차원이 다른 문제 같고. 암튼 진보 세력 역시 정치 엘리트를 배출할 수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지자를 대규모로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원하는, 민중이 바라는 꿈과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국민은 지지하고, 선택할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권력의 정의로운 분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을 깨버리고 나와 바른정당을 만들었던 이들 중 10여 명이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정치적 소신이나 가치관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그저 다만 살기 위함이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조롱했다. 그들이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그것이 치졸한 거짓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두 번 더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과 명분은 이미 사라졌다. 어쩌면 대한민국 보수 자멸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정치가 더러운 것임을, 온갖 음모와 협잡의 소굴인 것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또한 뚜렷한 소명의식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치가 더럽다고 피한다면, 여전히 그곳은 더러운 채 머물 것이다. 끝까지 썩어버릴 것이다.

 

지난해와 최근 우리 정치의 모습을 보면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낀다. 내가 이렇게 편협한 놈이었나,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나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케 하는 이들이라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그들을 부정하는 순간, 나 역시 전체주의에 매몰되는 것이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셈이다. 때로는 극한의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지만, 상대를 악마화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터무니없는 오만함도 버려야 한다. 물론 국민들 역시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정치인들이 사안에 따라 위대한 시민을 칭송하는 일과 욕망에 빠진 시민을 탓하는 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행동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비교적 쉽게 쓰인 책이지만, 세 번을 거듭 읽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스스로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어떠한 정의를 내리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편협함 속에 파묻혀 정치적 신념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악마화하지는 않았는지, 살기를 느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어렵고도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에서의 타협이다.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타협은 협잡이나 부당한 거래와는 다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상을 버리는 것과도 다르다. 민주주의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타협임을 새삼 느낀다.

 

개정 3판이 나왔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읽은 책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기존 진보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애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후보는커녕 국회의원 하나 없는 작은 정당의 당원으로서, 나 역시 진보 정치인들의 약진을 기원한다. 그리고 부디 국민이 국민답게 투표하고, 정치인이 정치인답게 봉사하는, 상식적인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바라본다.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한의 청년들에게 물었습니다
김민종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고, 알보다 조금 작은 분들도 대부분 인식하듯, 상식의 생존율이 매우 낮다.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은 지난 두 정권을 거치며 상당 부분 소멸되었고,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도, 상식의 귀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가슴 아픈 세월호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상식과 정의는 여전히 가라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가 사라졌다고 해서, 바뀐 것은, 어쩌면 바뀔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가 섣부른 낙관으로 흐른다면 말이다.

 

박노자 교수가 새삼 강조했듯, 신자유주의의 혼돈 속에서 기득권을 움켜쥔 자들은 절대 스스로 포기하거나 내놓지 않는다. 잘못은 그대로 방치될 수 없으며, 반드시 바르게 잡아야 한다는 것. 잘못을 저지른 이는 그 누가 되었든, 반드시 응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그 빌어먹게도 당연한 사실이, 말 그대로 현실에서 확인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상식 중 하나는 바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는 뼛속까지 사무쳐 있는 수치스러운 사대주의와 맞물려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썩게 만든다. 북한에 대한 무지막지한 일방적 타자화는 급기야 민족, 민족주의에 대한 혐오, 거부로 이어진다.

 

얼핏 보면 대한민국은 온통 북한 전문가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너도 나도 북한 정권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 있고,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객관적인지, 얼마나 사실에 기반 한 것인지는 필요치 않다. 이미 이분법적으로 나눈 후 바라보는 북한에 대한 평가는 심각한 오류와 편견과 증오로 점철되기 일쑤다.

 

게다가 개성공단마저 중단된 지금, 우리가 북한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활발했던 남북교류로 인해 어느 정도 남과 북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부정적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만 보인다. 때문에 아예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통일과 남북문제를 연구하는 이들, 남북교류나 협력, 인도적 지원을 위해 뛰었던 활동가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도 그 현실을 보여준다. ‘탈북현상은 비단 북한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언론도 잘못된 북한 인식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그들 역시 현장취재를 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분명한 소스에 기반 한 기사를 마구 써댈 권리는 없다. 사실을 보도하는 기사에 본인 혹은 언론사의 입장이 개입되고, 단어의 사용도 갈수록 천박하다. 김정은 정권 들어 더 고약해진 북한의 언론보도, 성명과 점차 닮아가는 모습이다. 지금의 우리 언론은 분명 분단을 고착화하고 남북의 갈등을 확산시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어떤 정부가 새로 들어서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처음 우리가 가졌던 일말의 희망마저 참혹히 부순 바 있다. 애초 그들의 수준을 보았을 때, 섣부른 희망이었다. 하지만 차기 정부 역시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다. 물론 이전 정부보다야 어느 정도 낫겠지만, 변화된 국제 정세와 남북한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열망하는 우리들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슬프지만 일단 정권을 잡은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움직이기가 훨씬 쉽다.

 

이 모든 결과로 인해 현재 우리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그동안 나름대로 쏟아져 나온 북한 관련 논문 등 연구 성과와 언론 기사들도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해마다 한국 땅을 밟고 있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유의미하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재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과 이상을 모르는 이상, 우리는 북한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이 책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저자는 20166월 평양을 방문해 어린이종합식료공장, 김일성종합대학, 장천남새협동농장,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네 그룹의 청년들을 인터뷰했다. 사전에 준비해간 설문은 남한의 청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물어 작성했다. 즉 남한의 청년들이 북한의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100개로 구성된 질문의 내용은 다양하다. ‘통일을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남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등 통일과 남한 관련 질문부터, ‘대학생활은 어떤가’ ‘학생의 용돈은 얼마인가’ ‘사교육은 있는가’ ‘가장 인기 있는 과목 및 학과는 무엇인가등 교육과 학교 관련 질문, 그리고 직업·연애·결혼 관련, 일반생활·문화 관련, 기타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엔 한 달 수입과 지출, 이혼이나 재혼 가능 여부, 지금 북한에서 가장 핫한 것은 무엇인지, 종교 자유 여부, 평양 시내 고층아파트 가격은 얼마인지 등과 사회주의란 무엇인지, 군 복무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이웃 간에 서로 감시를 하는지, 빈부격차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생각, 남한 청년들에게 하고픈 말 등 흥미로운 질문도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20~30대로 구성된 인터뷰 그룹은 저자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겼다. 과연 북한 청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남한, 통일은 어떤 모습일까.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시면 좋겠다.

 

우리가 아직까지 가장 어처구니없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북한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점을 잊거나, 아예 모른 척 한다는 점이다. 그곳도 가정이 있고, 벗이 있으며, 연인이 서로 사랑하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 사는 곳이다. 이를 외면하거나 무시한 채 바라보는 북한은 당연히 괴물들의 세상’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이들은 이내 종북으로 낙인찍힌다. 그런 해괴한 논리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김정은 체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을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북한의 도발을 막고,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것은 여전히 난망하지만, 핵이 없이도 남북이 함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우리도 핵을 가지고 북한과 맞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는, 공멸을 앞당기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더더욱 지금 북한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들이 스스로 원해야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비로소 소통과 공감이 가능하다. 물론 평양에 거주하는, 그리고 이른 바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소속과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북한 전체 인민의 생각과 얼마나 같을 수 있느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 상투적이고 판에 박힌 대답들에서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통의 노력, 서로 알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이제 다시 우리는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그들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한 뒤 순수 동독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까지 약 22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통일이 이뤄진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북한 출신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대선 앞에 여전히 종북이란 단어가 횡행하고 이념을 무기로 상대를 악마로 만들어버리는, 이 천박함 속에서 우리는 언제쯤 상식과 정의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은 분명 만남과 접촉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무슨 거창한 통일기구나, 선언이 아닌, 남북의 학생들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벗으로 삼을 수 있는, 바로 그런 시간부터 통일은 꿈꾸어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Q. 통일을 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요?

 

A. “저는 통일을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갑니다. 자기가 일단 조선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같은 민족끼리 사는 것은 뭐하고 해야 할까, ‘같은 겨레끼리 함께 살자.’ 그러니까, 민족성이란 말입니다. 민족성이 없는 사람은 통일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조선 민족이다 하고 일단 생각했으면 통일을 해야 한다고 무조건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민족의 자주권도 보다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갈라져 있으니까 한민족이라기보다도 이질성이 많아지는데, 이런 분열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남남이 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 어린이종합식료공장 노동자 강옥희(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일 교육 어떻게 할까 - 초등학교 통일 교육 이야기
김현희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을 멸망케 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 중 교육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망국병이라는 표현이 진부할 만큼 대한민국은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줄곧 파국으로 치달아 왔다.

 

최순실 사태에서 씁쓸히 목격한 것은 이른 바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민낯이었다. 한 중년 여성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그들은 시정잡배도 아니고 일반 시민도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인들이자 최고의 관료들이었다. 유명 대학의 교수와 역시 유능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법조인 출신 관료들이 최순실의 공범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저런 괴물들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현 교육 시스템에 목을 매달고,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탕진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일류대에 무조건 들어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공포감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부모들의 피땀과 골수를 빼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류대를 졸업한 이들이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을 사유화하는 데 앞장섰다. 부역자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나 모욕이 아니다. 그저 사실일 뿐이다.

 

여기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상황은 더 우울하다. 여전히 냉전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남과 북은, 때문에 서로를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교육을 당연하다는 듯 시행해왔다. 물론 남측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일정한 변화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동안 분단의 이익을 향유해온 기득권층은 역사마저 왜곡하며 아이들에게 분단의식을 깊숙이 내재화시켜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은 빨갱이이기 때문에 무조건 죽여야 한다, 내가 북한에서 살아야 한다면 자살할 것이라 말하는 초등학생은 기득권 세력이 지속해온 교육의 전형적인 피해자일 것이다. 혹은 그들의 성공작일 수도 있겠다.

 

책은 서울교육대학교 통일 교육 석사 학위를 받은 초등학교 교사들 그리고 오랫동안 역사와 통일 교육 등에서 의미 있는 집필 활동을 해온 함규진 선생이 함께 생각해본 우리 시대 초등 통일 교육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정부(통일부)가 작성하여 일선 교육현장에 배포하고 있는 <통일 교육 지침서>를 주제로 통일 교육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매일 아이들과 소통해야 하는 교사들이 느끼는 현 통일 교육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했다는 차원에서 단순한 잡담 차원을 넘어선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이른 바 전문가들의 단편적인 지적질에 경도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는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여섯 가지의 주요 키워드를 통해 현재 초등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통일 교육을 이야기한다. 먼저 통일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말해왔던 것들이 여전히 아이들에게 유효한가이다. 통일 항아리니 대박이니 하며 그동안 크게 떠들어온 것에 비해, 실상 알맹이는 너무 비약했다. 아이들에게 통일은 거추장스럽고, 쓸데없이 고통을 유발하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 제고 및 통일 의지 확립이란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엔 그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통일이 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말한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단기적이고 또한 속물적이었다. 대박이란 천박한 단어가 말해주듯, 정부는 통일을 천박하게 만들어 버렸다. 물론 경제적 측면의 이익을 강조하면 아이들이 막연히 느끼는 공포를 해소하는 데 조금은 기여할 수 있다. 반면,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 없고, 막연하고, 또한 경제적 이익이 사라졌을 때에는 어떤 정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 등 불명확하고 무책임한 측면도 강하다. 이익이 되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발상에 통일을 대입시킨 것이다. 더구나 그 약발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통일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통일문제에 대한 주인의식도 희박할 수밖에 없고, 통일은 어느 순간 그냥 되는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두 번째는 통일준비 역량 강화이다. 이 정부 들어 참 지겹게도 떠들어 온 것이 바로 통일준비 역량 강화다. ‘영토와 정치, 제도적 통합을 넘어서 사회 문화적 측면의 통합까지, 즉 사람의 통일까지 이루어야 한다는 개념인데, 이처럼 뻔뻔한 이야기가 또 없다. 정부는 그 말과는 정반대로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 크게 위축되었던 남북민간교류나 인도적 지원은 현 정부 들어 그야말로 궤멸되었다. 사람의 통일을 이뤄야 한다면서, 핵 문제를 핑계로 개성공단까지 중단시켰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통일준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통일박람회 등으로 show를 한다고 사람의 통일이 이뤄질까? 통일교육 주간에 잠깐 코스프레를 하면 아이들의 의식이 바뀔까? 헛소리에 불과하다. 때문에 일선의 교사들은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말이 안 되는 것을 가르치라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비민주적 행태들이 버젓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아울러 마치 북한을 비난하고, 저주해야만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인식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즉 민주주의와 반공을 일체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북에 대한 적개심이 당연한 진리라고 믿게 된다. 적개심의 대상이 통일의 파트너나 협력 상대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여전히 우리는 우월하고 북은 모든 측면에서 열등하다는 대결의식, 우월감이 통일 교육에 남아있다. 상대방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통일 교육에 있어 그동안 극심한 비민주주의적 행태를 보여 온 셈이다.

 

이밖에도 책은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통일’ ‘북한과 안보 그리고 평화’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이해등이다. 분단이 내면화되어버린 우리는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6·25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진즉 벗어나야 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밑절미삼아 더 큰 증오와 반목을 키워냈다. 북한은 오직 멸망시켜야 할 대상이고, 탈북자들은 그저 불쌍하고 보살펴 줘야 할 이방인일 뿐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우린 과연 얼마나 벗어났는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책의 서두에는 아이들에게 통일을 이야기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사실 스스로조차 통일의 필요성이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음을 고백한다. 사실 그것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슬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통일과 남북문제는 우리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핵심이지만,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억지로 잊어야 하는 불필요함이기도 하다. 어려운 시험들을 뚫고 교사가 된 이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역시 통일은 당장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통일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통일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더 이상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통일부가 존재하고, 통일교육원, 통일연구원 등이 존재하지만, 아이들에게 통일은 백일장이나 웅변대회 등을 통해 스펙을 쌓을 수 있는 무수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마저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전 이 나라의 교육이 땅에 떨어졌다면, 통일 교육은 지하 깊숙이 더 추락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정부의 목소리는 공허하고, 아이들의 눈빛은 차갑다.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민족의 가치를(민족이라 하면 또 얼굴을 구기는 분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민족은 소중한 가치이다)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교육, 우열의 가치가 아닌 평등과 협력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교육, 적대와 긴장, 증오와 절멸의 가치가 아닌 평화와 화해, 공존과 희망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통일 교육이 지금 우리에겐 절실하다.

 

통일 교육이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중요한 교육을 어떻게 다시 고민하고 구성할 것인가가 먼저이다. 너도나도 꿈같은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는 지금, 과연 통일된 한반도를 위한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들 계신지 궁금하다. 통일교육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철학과 소신을 갖춘 이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