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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되려면 마키아벨리를 만나라! - 사장은 왜 이 책을 몰래 혼자서 볼까?
이안 디맥 지음, 이경진 옮김 / 진서원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요새, 아주 느닷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특히나 더, 내가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내가 말하는 늙음은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마음의 늙음에 더 무게가 가있지 싶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뭐야, 저런 궁상은. 쓸데없잖아.”하며 속으로 은근히 비웃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마치 죽을 날짜를 받아둔 것처럼,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또 떠들며 벗들과 술잔을 기울인다거나, 예전 영화나 음악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직접 함께 보냈다는 건 아닙니다.) 수많은 영웅들과 기인들, 예술인들을 추억하며, 스스로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하며 놀랄 만큼, “그땐 그랬지”라며 중얼거리는 것이다.
음. 아무래도 몸보다 마음의 노화가 먼저 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맥이 빠지고, 유치한 허무나 비관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살짝 쳐지고 있는 건가, 흠. 이러고 있다. 한심하기도 하셔라.
그러다 최근 사노 요코 여사의 책을 읽게 되었고, 이내 팬이 되었다. 동화작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한 요코 여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전후 궁핍했던 일본이 지금의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그 역사와 오롯이 함께 하며, 숨을 거둘 때까지 치열하게, 그리고 까칠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 사람이다. 그녀의 까칠함과 당당함에 매료되었고, 따뜻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뛰어난 글 솜씨에 더 감동한 것 같다. 지금도 그녀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있다. 맛있는 글이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그녀와 2017년 마흔 초반에 접어든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멋진 할머니의 글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흠. 아무래도 내가 아재의 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인가. 결국 내가 많이 늙어버렸다고 느낀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단 말이지? 이러니 또 맥이 빠진다. 요코 여사님의 탓은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얼마 전 삼성의 이재용이 구속되고, 또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다, “그들은 자신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을까, 어떤 예감 같은 것은 없었을까” 궁금해졌다. 아마 이재용 부회장은 가능성이 극히 낮을 것이라 믿었을 것 같고(상상도 못했겠지?), 원 전 원장은 정권이 바뀌었으니, “살짝 불안해지는 걸?”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감옥에는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다.
다시 사노 요코 여사를 생각한다. 요코 여사의 그야말로 치열 발랄했던 삶과 저들의 삶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권력의 정점이 있던 이들의 초라한 말로와 암 선고 앞에서도 당당하게 “죽을 의욕 충만”을 외치며, 재규어 자동차를 덜컥 사버리고, “금연은 무슨!” 하며 줄담배를 고수했던 여사의 삶. 각각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권력을 추구하고, 그 앞에 무력하다. 찰나의 권력일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평생을 소진할 수 있다. 인류 역사 이래 그 무모함과 멍청함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변함없겠지. 흠.
그리고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집단이라도, 일단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계급을 나누어 버리고, 상하 위계를 만들어버린다. “이젠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 본능을 없앨 수 없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란 종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한 영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궁리하고 또 궁리한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움켜쥘 수 있을지, 그것을 어찌하면 가능한 한 아주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거기에 정력을 쏟아 붓는다. “전부 그런 건 아니잖아!” 할 수 있는데, 거기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욕망이 단 1%도 없는 사람은, 흠. 그건 비정상 아닌가요? 인간이 아닌 거잖아.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분들께는 사죄드립니다.
마키아벨리는 약 500년 전 사람이다. 그 유명한 <군주론>을 썼기에, ‘비도덕적인 권모술수’의 대표선수로 꼽힌다. 흔히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표현한다면, 그건 칭찬이 아닌 비난이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나,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한 권력주의자였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뛰어난 문장가이자,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현실 정치인이지 않았을까. ‘무엇이 비도덕적이고 무엇이 기회주의적인 것인가’ 깨닫기 위해 부단히 인간을 탐구하고 비로소 인류에게 “자, 현실정치는 이런 것이랍니다. 그리고 사실 인간은 다 똑같아요. 다를 게 없어.”라고 용기 있게 외친 용자, 동시에 끈 떨어진 관료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사장이 되려면 마키아벨리를 만나라!>는 지극히 흥미와 판매를 계산한, 속 보이는 제목으로 소개된 <모던 마키아벨리>는(표지 글들도 가관이다. “사장은 왜 이 책을 몰래 혼자서 볼까” “전 세계 독자들의 은밀한 사랑을 받은 책!” “<마흔 살 행복한 부자아빠> 저자 아파테이아 추천서!” 등. 흠. 이렇게 해서 많이 파셨어요? 그리고 독자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혹시 정탐하신 건가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토대로 권력의 7가지 원칙을 찾아”내, “조직에 몸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게임의 법칙을, 권력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표지 글들에 비해 내용은 흥미롭다. “누구도 얻지 못했던 큰 권력을 잡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는 한 청년이 “매년 수백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자” 토니 카라칼라를 만나, 그의 성공비결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청년은 마키아벨리를 처음 만나게 되고, 권력을 쟁취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깨닫게 된다. 그가 필요한 것은 모던 마키아벨리가 되는 것이었다.
저자가 밝힌 7가지 권력의 원칙을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되는 것인가? 흠. 글의 말미에 일단 담아본다. 뭐,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만 하면 나오는 것이니, 별 문제는 없겠지. 그리 기발한 것도 사실 아니고. 흥.
권력은 누구나 탐낼 만큼 막강한 것이고, 매혹적인 것이다. 때문에 비록 짧은 순간이더라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불사한다. 그리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영화 <열혈남아>(1987)에서 자신의 보스이자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었던 유덕화의 임무(조직의 비밀을 누설할 것 같은 한 조직원. 그는 경찰에 체포된 상태였다. 그를 제거하라는 것이 유덕화에게 내려진 조직의 명령이었다)를 대신 한 장학우는 그 덕분에 무수히 많은 경찰의 총탄을 맞고 죽게 된다. 장학우는 유덕화의 품에서 이렇게 말한다.
“개처럼 사느니 하루를 살아도 영웅처럼 살고 싶어.”
살짝 결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인정받고 더불어 그에 따른 권력을 갖고 싶은 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지금도 인류는 권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서로의 생명마저 빼앗는다. 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권력에 희생될 것인지 묻는 질문 앞에 다른 대답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짝 생각해본다. 무모한 권력에의 집착이 결국은 인간을 온전히 인간답게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 되어온 것은 아닐지,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은 결과로 얻어진 권력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지배를 강요당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 저항 역시 살벌한 권력 게임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 어차피 멍청한 내 머리에서 해답이 나오진 않겠지만, 열심히 생각해본다. 부지런합니다. 제가 이런 면에선.
감옥에 계신 전직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결국 힘없고 몸 아픈 노파가 되었고, 역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온갖 비민주적인 악행을 저질렀던 이도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실질적인 청와대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움직여온 대기업의 총수도 감옥에 있다. 그들은 권력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한 것일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권력을 남용하면 결국엔 권력에 학대받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희생양이 된다”고 말했다. 이 세 분들이 <군주론>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아님 이 책이라도. 역시 독서는 힘.
언제나 그랬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온라인 서점의 책 분류와는 별개로 다른 것을 느끼고 깨닫는 나다. 부끄럽진 않지만, 어쩐지 저자와 출판사를 배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처세술, 자기계발, 뭐 이런 분류 아닌가요.
앞서 세 분은 권력을 가졌고, 누렸고, 빼앗겼다. 뭐 부회장님은 벌써부터 사면 얘기가 나오고, 전직 대통령 역시 그리고 오래 감옥에 계시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암튼 그렇다.
하지만 요코 여사는 돌아가신 후에도 이웃나라 40대 초반의 마음이 늙어버린 한 남자에게 기분 좋은 권력을 여전히 휘두르고 있다. 과연 공명과 같은 놀라움이 아닌가.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유한하고 싶진 않다. 찰나의 권력을 위해 평생을 수치스럽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무엇보다 난 적어도 주제파악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고 믿는다. 꿈꿔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꿈꾸지 않는 게 편하다.
언젠가 티끌같이 보잘 것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 그리고 피식피식 소리 없는 방귀처럼 웃음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런 권력은 한 번 가져보고 싶다. 그건 어떻게 용납해 주실 수 있나요?
권력의 7대 원칙
1원칙. 자기 이익을 좇는 자를 믿어라
2원칙. 사람은 누구나 망상에 빠져 있다, 그 망상을 파악하라.
3원칙. 권력은 투쟁을 통해서만 얻는다.
4원칙. 동지를 친구로 착각하지 마라.
5원칙. 자연스러움이 곧 권력이다.
6원칙. 행운은 현명한 사람의 편이다
7원칙. 권력은 복종을 원한다
“흠. 5, 6원칙은 어쩐지 매력적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