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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평점 :
멘탈이 상당히 허약하다. 지성도, 근면함도 빈약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아마 일제 강점기 시대에 살았더라면 십중팔구 조금의 고통도 견디지 못하고 친일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엔 독재정권의 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이명박, 박근혜 시대엔 개가 아닌 사람으로 살기 위해 버텼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편이다.
내 치명적 약점 중 하나는 쉽게 비관주의로 흘러버린다는 것이다. 쉽게 절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이런 멘탈은 비관이 허무로 빠지는 데 취약하기도 하다. 우주라는 끝을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속, 그야말로 하찮은 존재인 인간 따위가, 마치 우주의 지배자인양, 줄이고 줄여 생각해도, 지구의 정복자인양 오만하게 구는 것은 참기 힘들다.
네 까짓 게 뭔데. 이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세상 모든 일들이 그저 부질없어 보인다. 기껏 백년 후에도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그리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사소한 것에 핏대를 세우면서 생명을 걸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갈까.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결론지을 때가 많다. 어떤 면에선 이것도 몹쓸 자기합리화가 아닐까 싶은데, ‘어차피 그런 거지’ ‘너무 큰 바람이었지’ 등으로 나의 실망이나 당혹감을 애써 별 것 아닌 양 소멸시키는 것이다. 꽤 비참한 행동이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 이후, 촛불의 열망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에게 ‘천지개벽’의 그 무엇을 기대한 이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나와 같은 극심한 허무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졌을지 모르겠다. 꽤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을 때의 비통함. 그것은 꽤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처럼(이게 옳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그냥 살짝 덤덤하게 살아간다면(물론 그 사이 기대와 희망과 절망과 비관과 허무가 극렬히 통과했지만) 그마나 덜 피곤하고 덜 상처받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당최 뭔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넌.)
워낙 정열적인 민족이라서 그럴까, 때로 우리는 너무 거창한 담론이나 명분에 사로 잡혀 정작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 무엇을 놓치곤 한다. 솔직히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적폐 청산을 부르짖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주절거리면서 정작 내 아이와 가정에는 소홀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적폐는 따로 있는 게 아님을 느낀다. 내가 바로 적폐이고 없어져야 할 존재였다.
페이스북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귀를 올리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너무 무겁고 거창하고 나 따위는 도무지 어찌 해 볼 수 없는 담론과 주장으로 점철된다. 어떤 이들은 일관되게 자신이 반대하는 정당의 대표를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자신의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분노와 저주가 넘친다. 뭐 각자의 자유이고 권리겠다. 하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슬그머니 그런 분들의 글은 보지 않으려 한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본다. 나도 그러지 않았는지, 술에 취해 헛소리를 배설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어리석고 우둔함을 스스로 자랑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괜한 비난으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고, 결과적으로 참 민폐만 끼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자괴감이다, 이런 게 바로.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면에서 나에게 소중한 따뜻함을 전해주는 작가다. 물론 『남쪽으로 튀어』처럼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다. 그리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신기방기한 재주도 지니고 있다.
결국 사람이다.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거창하게 보자면 이 지구를 날려버릴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동시에 다시 사람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고, 역시 크게 보자면 이 지구를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고 기댈 수밖에 없다.
『무코다 이발소』는 한때 번성했지만, 이제는 쇠락한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다. 우리도 이미 겪고 있는 고령화 문제, 지방의 인구감소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때문에 더 와 닿고 더 큰 울림을 준다.
굳이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 따위가 강조되지 않아도, 책을 통해 충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과 희망이 느껴진다. 이런 게 바로 이야기의 힘이고 문학의 역할이다. 거대담론만 주절거린다고 다 명작이나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남북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비핵화, 국제제재, 평창동계올림픽, 평화협정, 한미군사훈련, ICBM 등 거대한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있다. 벗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사이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북한은 김정은 개인만이 살아가는 곳도 아니고, 조선인민군만이, 조선노동당 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님에도, 대다수는 마치 그들만이 존재하는 곳이 북한인양 말한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민들은 유령처럼 배제된다. 아니면 로봇처럼 표현된다.
우리는 미국을 워싱턴의 정치인들만이, 민주당과 공화당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엔 미국 국민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트럼프의 당선으로 확인했다. 그들의 분노가 결국 매우 독특한 개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때문에 미국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 끝이 재앙일지 축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반도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공감의 마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이야기가 나오면 대번에 국제제재에 위반된다는 참혹한 답변이 들려온다. 그들을 돕는 게 불법이라는 이야기, 전 세계가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데 우리만 다른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무참한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들의 입에서 튀어 나온다. 무섭다. 그 논리와 감정이.
이는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북문제와 통일에 있어 그 당사자인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사거리와 대기권 진입 여부보다 중요한 건 북한의 임산부들이,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영유아들이 어떻게 이 겨울을 지낼 것인가이다. 우리의 독자적 대북제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빌어먹을 한미동맹이나 공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가족을 만나기만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에게 남은 시간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인지 말해 달라.
무언지도 제대로 모르는 4차 산업혁명을 떠들고,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시대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뜨거운 피가 흐르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내일도 우리 학생들은 불법 노동에 스러져갈 것이고, 크레인은 주저앉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 생각해버리는 그 악마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이대로 지옥으로 달려가는 기차에서 내릴 수 없다.
그깟 평창올림픽 따위 성공하지 못해도 좋다. 그깟 일자리 창출 수치판 필요 없다. 수치와 금액으로 환산되는 그 모든 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사람이 행복한가이다. 사람이 없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이나, 사람의 행복이 보이지 않는 일자리 수치판은 필요 없다는 소리다. 올해 안에 국민소득 3만 불이 넘을 것이라는 개소리도 집어치워라. 여전히 마인드는 박정희 시대에 살면서 박정희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소하게 즐거웠으면 좋겠고, 사소하게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소하게 기쁜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이상 비참하게 살거나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떤 명분도 집어치우고 오직 사람만을 생각해야 하리라. 생명에 대한 존중을 먼저 생각해야 하리라. 생명을 우습게 알면 사람이 우습고, 자연이 우습고, 결국 스스로를 우습게 여기게 된다.
2017년 12월,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만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들도 삶의 사소한 평화와 행복을 바라는 사람임을 느꼈다. 만남에 기뻐하고 헤어짐에 슬퍼하는 평범한 이들임을 느꼈다. 그들과의 작별 후 돌아온 이 곳은, 또 다시 독자제재를 부르대고 있다.
그야말로 하찮은 인간이기에, 사소한 인연에 감사하고 사소함에 행복해할 수 있는 사소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애써 화내지 않고, 애써 비난하지 않고, 애써 흔들리지 않는, 로봇이나 쓰레기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여전히 난 드론보다는 방패연이 더 정겹고, SNS보다 손 편지가 그립다.
『무코다 이발소』는 이 추운 겨울, 따뜻한 군고구마 같은 작품이다. 가슴에 쏘옥 품고 읽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