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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엔 공자 한손엔 황제 - 중국의 문화 굴기를 읽는다 ㅣ 아케이드 프로젝트 Arcade Project 1
이유진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8월
평점 :
업무와 관련하여 충무로에 갈 일이 종종 생긴다. 예전 충무로는 그야말로 한국 영화의 1번지였지만, 지금은 옛 정취를 찾기 쉽지 않다. 기껏 충무로역 내부 통로 벽에 전시되어 있는 대종상 시상식 사진들 정도랄까.
충무로는 또한 인쇄 및 출판 거리이기도 했다. 지금도 과거에 비할 순 없지만, 묵직한 인쇄물을, 개조한 오토바이 뒤에 싣고 열심히 달리는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마저 극심한 불황으로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래저래 충무로는 참 많이도 변했다.
대신 지금 충무로의 풍경은 조금은 낯설다. 온통 호텔 천지이고, 여기저기 중국어가 들려온다. 그리고 깃발을 든 채 한옥 마을을 찾는 중국인 무리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엔 어김없이 호텔이 들어선다. 그리고 노래방은 왜 그리 많은지.
사실 이런 모습은 비단 충무로뿐만이 아닐 것이다. 언뜻 언뜻 주위를 둘러보면 유난히 중국인들의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서울 광화문 한 복판에서 멀리 제주에 이르기까지, 중국 관광객들이 아니면 우리 경제가 이미 흔들렸을 것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어설픈 졸부가 대개 그런 것처럼, 과거 우리는 갑자기 얻은 어색한 생활의 윤택을 엉뚱한 곳에 풀어내곤 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아주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른 바 ‘있는 티’를 내며, 없는 이들을 깔보고 무시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생생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도 그런 추태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규모의 차이에 압도되어 우리가 덜 드러날 뿐이다.
예전 우리의 그 모습을 이젠 중국에게서 확인하곤 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에게 주어진 경제적 윤택을 어찌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중국 인구에 비해서는 소수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겐 엄청난 숫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엄청난 돈을 뿌려대며, 과시하고 만족하며 돌아간다.
중국은 대국이다. 광활한 영토와 또 그 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중화’라는 문화적 자부심과 더불어 이젠 세계의 경제를 이끈다는 또 하나의 자부심이 보태져 그야말로 꼿꼿하다. 예전에도 물론 그랬지만, 이제는 한 차원 더해 미국조차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중국이다.
그런 중국과 우리는 긴 시간을 함께 공존해왔다. 역사의 대부분을 황제국과 신하국이라는 관계로 지내왔기에, 언뜻 생각하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관계로 지내온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평화로운 공존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사상 끊이지 않았던 침략과 약탈마저 평화라 부를 순 없지만. 그들이 너그러웠던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슬기로웠기에 가능했던 평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도 중국은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서 중국은 이제 사실 관계를 떠나, 마치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로 비쳐지고 있고, 우리 경제의 대중 의존도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이 전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상황이니,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체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변변한 내수기반 없이 오로지 수출 위주의 산업경제정책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우리 물건을 팔아주는 나라가 재채기를 한 번 해도, 독감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강력한 국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진다. 여기저기 중국 전문가라는 이들은 많아 보이는데, 막상 중국의 행보와 의도, 배경을 제대로 짚어내는 이들은 드물다. 상황이 이 정도이니 미중 간의 패권경쟁에 대한 분석 역시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조금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책은 중국의 새로운 부상 이면에 숨겨져 있는 그들의 ‘본색’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다. 공자로 상징되는, 중국이 자부하는 최고의 문화 자산 유교와 역시 중국의 오랜 정통성과 역사를 말해주는 황제. 저자는 다시금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아니 중국이 새삼스럽게 다시 띄우고 있는 이 두 가지 상징을 통해 지금 중국의 ‘욕망’을 설명한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중화의 부활’이다.
1838년 아편전쟁 이후 위대한 중화는 맥없이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황제는 서구에 무릎을 꿇었고, 유교는 망국의 근원으로 지탄받았다. 그 후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과거 문화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으며, 그 과정에서 공자는 ‘공씨네 둘째 아들 놈’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폄하되었다. 전국 곳곳의 공자 유적과 사당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런 공자와 황제가 지금, 함께 부상하고 있다. 저자는 공자와 황제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세계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문화,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라는 표상을 통해 중국이야말로 국제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지닐 자격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실 중국이 문명의 중심을 자부할 수 없었던 시기는 불과 100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100여 년 전 만청 시기에 엄청난 나락을 경험한 중국은, 오늘날 그 추락의 속도와 깊이에 상응하여 비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두 역사적 시점에서 모두 공자와 황제가 나란히 불려왔다.”
중국의 국기 오성홍기는 중화민족 모두가 황제의 자손임을 나타낸다. 관용과 포용력을 지닌 다민족문화야말로 세계화에 적합한 구조이다. 중국은 이제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서려 한다. ‘처음’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게도 다시’이다. 과연 이런 중국이 세계와 평화로운 공존과 더불어 굴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한때 구태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공자는 이제 세계에 문화 첨병으로 그 역할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세계에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보급하기 위한 공자학원은 급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공자학원이 2004년 세워진 이래 7년 간 358개의 학원이 생겨났다. 매주 한 개꼴로 생겨난 셈인데, 의미심장한 것은 2004년 세워진 세계 최초의 공자학원의 이름이 바로 ‘서울공자아카데미’라는 사실이다. 한국이 공자학원의 근원지가 된 셈이다.
중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돈과 문자와 제도에 있었다. 저자는 향후 중국이 공자와 황제로부터 뽑아내려는 것 역시 세계중심으로서 중국의 기초를 강화해 줄 보강제의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중국은 서구의 무지를 경멸한다. 그들의 단순함과 무례를 기억한다. 때문에 다르고자 한다. 적어도 자신들은 기존과는 다른 패권자의 모습을 갖고자 욕망한다. 하지만 그 다름은 모두가 인정하고 공감할 때에 비로소 다름으로 비쳐질 것이다.
여전히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중국의 욕망을 적절히 읽어내야 할 골치 아픈 과제가 주어져 있다. 분단의 극복과 향후 한반도의 안정된 발전을 위해서라도 중국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중요한 이웃이 될 것이다. 그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여기에 어떠한 대응을 하느냐는 결국, 우리의 미래와 생존에 결부되는 문제일 것이다.
때문에 조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에 쉽게 감동하고 쉽게 경멸하는 조급함과 경망함은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의 역사와 함께 해온 재중 동포들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여전히 못된 사대의 버릇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겐 쩔쩔 매면서 재중동포는 ‘조선족’이라 깔본다. 미국에 사는 동포는 재미동포인데, 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는 조선족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경박함과 저열함부터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중국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재미동포 3세는 우리말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끝끝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 문화를 간직하고 지켜내 온 이들이 재중동포이다. 그들의 역량과 민족애를 우리가 끌어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참되게 이웃과 공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전히 중국은 우리에겐 죽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중국에 관광을 다녀와도, 아무리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아도, 아무리 많은 우리 연예인들이 중국 대륙을 흔들어도, 여전히 중국은 우리에게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틈새를 찾아내는 슬기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