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크고 많은 단점 중엔 치명적인 것들이 적지 않다. 개중엔 과연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가능할까, 의문이 드는 그런 것들도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소통이다. 평상시엔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한다고 자부하다가도 어느 순간 특수한(!) 계기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내 좀비가 되고 만다.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말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타자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아무리 홀로 있는 것이 좋아서, 가령 외딴 섬에서 그야말로 혼자 살아간다 하더라도 온전히 그렇게 평생 홀로 살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때문에 타자와의 소통은 삶의 질과 행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타자와의 관계를 불행하게 이끌어 파국으로 끝나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격하는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지만, 그것도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비극이 된다.

 

책은 제목 그대로다. ‘아무리 유능해도 적이 많은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말로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 그리고 역시 말을 통해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말을 통해 상대방과 일종의 대결을 펼친다는 의미에서 쿵푸에서 따온 텅푸(Tongue Fu)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일단 그럴 듯하다.

 

분명히 이 책은 자기계발서다. 개인적으로 그리 즐겨 읽는 분야의 도서는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이 아닌 친구를 만드는 대화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상대 역시 나를 존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정이 아닌 긍정을 불러올 수 있는 대화법은 자기계발의 차원을 넘어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워낙 팍팍한 세상이다 보니 예전에 비해 사람들이 부쩍 날카로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는 그저 미안합니다’, 한 마디면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고성이 오가고, 때로는 폭력과 살인까지 부르는 파국을 초래한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성질이 급해졌다거나 참을성이 없어졌다는 정도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극심한 경쟁과 성과주의, 물질주의가 팽배해진 세상에 적응하고, 또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변태(!) 해버린 탓이 클 것이다.

 

이른 바 보복운전 문제가 새로운 사회현상 혹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도 운전 중 사소한 시비가 붙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분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차를 일부러 따라가 위협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깍두기 아저씨들만의 장기(!)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평범한 시민들이 한순간에 도로 위 무법자 혹은 살인자로 변해버린다.

 

우리네 심성이 이렇게 팍팍하게 된 것은, 물론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그것을 모조리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의 생각과 태도는 온전히 나만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사회의 영향으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일정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소통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다시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분노하게 하고 누군가를 증오하게 만드는지 진지하게 돌아봤다. 무엇일까.

 

상대방이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상대방이 틀렸다고 단정 짓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그런 비난을 받는 사람은 심각한 모욕감과 함께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그랬던 적이 많았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면서, 스스로 부끄러운 것이 많아, 자제하고 또 진중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비겁한 놈은 되지 않겠다는 아집 비슷한 신념으로 무심코 상대방을 비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곤 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 도리어 타인을 비난하고 매도해버린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게다가 원체 심성이 나약해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상처받고, 그것을 두고두고 되새김질 하는 녀석이, 제 생각은 하지 않고, 타인에게 똑같이 그런 상처를 주곤 했다는 것도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든다. 순간의 짜증이나 분노를 참으면 아무 갈등 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 문제도 꼭 시비 아닌 시비를 걸어, 사달을 일으키곤 했으니, 이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나.

 

상대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모욕을 주는 것에서 삶의 기쁨을 느끼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다행히도 그런 부류는 아닌 듯싶다. 오히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이, 오래 마음에 남아 불편하게 만든다. 영 개운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방에게 말을 해야,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야 서로 상처받지 않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때로는 새로운 친구나 협력자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책 내용 중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멘트를 날려라식의 이야기는 조금 작위적이고 때론 너무 이상적인 느낌이 나지만, 그럼에도 그런 전략(!)들의 뿌리는 충분히 가슴에 새겨둘 만하다.

 

그것은 바로 공감, 이해, 적당한 인내, 위트, 적절한 침묵, 미래지향, 긍정,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 명령이 아닌 권유 혹은 부탁, 친절, 인간으로서의 예의, 두려움 다스리기, 경청, 분노에 대한 인정, 배려 등이다. 우리는 신이 아닌 부족함 많은 인간이기에 이 모두를 다 갖출 수는 없겠지만, 상황에 따라 이러한 것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크고 작은 갈등과 오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품위 있는 사회>의 저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모욕을 두 가지로 나눈다. 개인적으로 누군가 다른 이를 모욕하는 경우와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는 경우다. 그는 개인적인 모욕이 없는 사회를 문명화된 사회’,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품위 있는 사회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모욕은 자존감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되는 행동이나 조건이다. 모욕은 인간의 명예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그는 자존감이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 말한다. 때문에 자존감이 사라지면 가치에 대한 인식도, 인생이 의미 있다는 인식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어쩜 그동안 너무 쉽게 누군가를 모욕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왔는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목적을 위해, 혹은 단순한 재미를 위해 생면부지의 타인을 모욕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알다시피, 현재 우리 사회는 품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시민을 그야말로 범법자, 불온집단으로 매도하는 정부에 모습에서, 또한 대다수 시민들의 삶과 행복 보다는 알량한 기득권 유지에 목을 매고 있는 야당에 모습에서, 권력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언론 및 방송에 모습에서 품위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문명화된 사회는 만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는 자신의 분노, 혹은 욕망을 위해 타인을 모욕하지 않고, 배려와 공감으로 상생의 말을 던질 수 있는, 바로 우리들의 노력으로부터 조금씩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정치가, 언론이 외눈박이라고 굳이 우리까지 멀쩡한 눈 하나를 없앨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사회생활에 필요한 대화술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로 이 책을 읽으면 딱 그만큼의 도움 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책을 바라본다면 의외로 얻는 것이,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다.

 

그나저나 난 언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에혀.

 

나는 삶의 과정을 단 한 차례 지난다. 그러니 내가 보일 수 있는 친절이나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있다면 모른 척하거나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하게 해 달라. 나는 두 번 다시 이 길을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윌리엄 펜, 영국 출신 신대륙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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