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안녕 -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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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름답다. 요샛말로 하면 하다. 예전 일하던 잡지사에서 그녀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난 함께 하지 못했고, 후배 기자가 그녀를 만났다. 인터뷰의 내용은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동료 사진기자가 찍었던 그녀의 인터뷰 메인 컷만은 기억난다. 당시 역대 인터뷰 기사 메인 컷 중 가장 섹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긴, 그러니 내가 기억하겠지.

 

하지만 그녀가 만약 단지 아름답기만 했다면, 그걸로 상황 종료였다면 나는 그녀를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며, 2013년의, 그야말로 우울함의 극치를 달리던 그 때, 그녀의 책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겐 다른 이들에겐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분명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마냥 좋은 것인지, 아니면 이건 좀 뭔가 이상타 하며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주변엔 섹시한 여성들이 차고 넘친다. 당장 인터넷만 켜 봐도 확인 가능하다. 온갖 연예인, 일반인 등이 자신의 섹시함을 보여주지 못해 그야말로 안달이 나있다. 물론 자의적 행동인지, 그게 아닌지는 각자 사정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오직 육체적, 성적 매력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그녀도 평범할지 모르겠다.

 

가난했다. 그리고 가난하다. 그녀의 삶을 어쩔 수 없이 규정하고 있는 하나의 명제이다. 참 많다. 이 시대의 가난한 청춘들은.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 전에, 숨이 턱턱 막힐 만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 역시 또한 차고 넘친다. 모순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들이 이렇게 가난함에 눌려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굳이 잘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굳이 저렇게 잘난 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들은, 정말 세속적 차원에서 잘 살고 있는데, 아름답고 착하고 순한 영혼들은 오늘 하루도 힘겹게 삶을 이어간다. 빌어먹게 잘못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살아온 가난한 이웃들의 그 질긴 삶을 기록하려 했다. 머지않아, 빌어먹게 잘못된 이 세상이 그들을 더는 볼 수 없도록 밀어버릴 것임을 운명적으로 느꼈기 때문일까. 그녀가 살아온 비루하지만 한 없이 아름다웠던 풍경들이 결국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리고 바로 그녀의 삶이었기에, 잔인하리만치 생생하다.

 

후미진 거리와 골목의 사이사이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그녀가 뜨겁게 기억하고 뜨겁게 작별을 고한 용산 남일당 건물, 이주 노동자들, 노숙인들,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 윤락 여성들, 황학동 벼룩시장, 신당동 떡볶이 골목, 길고양이, 곱창집 이모에게도 얼마나 많은 눈물과 따뜻함이 담겨있었을까.

 

가장 좋은 글은 가장 솔직한 글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때론 너무 솔직하기에, 한 치의 꾸밈도 없기에 잔인한 글도 존재한다. 나에게 어쩜 그녀의 글은 그렇기에 불편했고, 아팠다. 쉽사리 손이 가질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비굴한 비겁함의 소치였다.

 

이 시대의 명확한 모순은 고통의 원인을 찾는 과정이 고통의 본질만큼 너무나 힘겹다는 사실일지 모르겠다. 도대체 누가 잘못을 한 것이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서성거린다는 것은 분명, 불의다. 우린 얼마나 많은 불의를 참고 당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뜻과는 다르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서로에게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의 미래가 분명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그 하찮고도 위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럼 지금의 현실은 우리를 수만 번 무너뜨릴 기세다. 하지만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그러니 잘 살아가자고, 어떻게든, 기필코 살아내자고. 매일 매일 뜨겁게 작별을 고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만나자고.

 

2013년 겨울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물론 그 해 봄 나는 천사 같은 딸아이를 얻는 과분한 기쁨을 안았다. 하지만 이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상상하는 것 역시 기쁠 수는 없었다. 두려웠고, 미안했고, 몸 둘 바를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한없이 두렵다.

 

아마 더 어려울 것이다. 더 상처받을 것이다. 종국엔 그것이 상처인지, 불의인지, 모욕인지 체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지극한 슬픔을 예감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고문이 반복되는 것과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 어떤 세상이 너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 여전히 모르겠다. 여전히 어렵고 어리석다. 다만, 한 가지는 느끼고 있다. 그 언젠가 아이가 지금 그녀의 나이가 되어갈 무렵, 이 책을 권해볼 생각이다. 재미없다고 내던진다 해도 한 번은 권하고픈 생각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간사한 헛소리 대신, 아프더라도, 함께 아플 수 있는 마음의 넓이를 갖도록 해주고 싶다. 그것이 아이에게 그 어떤 자기계발서를 권하는 것보다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책을 읽었던 2013년 끄트머리, 어쩜 그녀의 책이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날 것 그대로 드러난 슬픔을 확인한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여전히 불편하고, 여전히 아프지만, 더 이상 짐짓 모른 척 어설프게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2015년 봄이 온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소란스럽지만, 기쁘게 맞고 싶다. 그녀에게 안부를 전한다. 여전히 그렇게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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