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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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명박 정권 5년을 돌아보면, 비단 그들만 빛나는(!) 업적을 거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대한민국을 살아낸 우리 모두가 몰라볼 정도로 커다란 성취를 이룬 5년이었다. 감히 자신할 수 있다.

 

우리는 연대의 소중함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억장이 무너지고 슬픔이 목에 차올라 컥컥거리며 눈물을 뿌리게 만든 정권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삶을 버렸고, 또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끝내 몸 둘 바를 몰랐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다시금 절실히 깨달았다. 연대의 소중함을, 희망을 끝내 버릴 수 없는 이들이 하나 둘 모이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 꽤 많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정권에게 무너졌느냐, 우리가 패배했느냐, 이것은 어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대신 우리는 진정한 우리를 얻었고, 함께 어깨동무하고 웃으며 그들 앞에 섰다는 자체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끈질긴 희망 만들기에 시인 송경동이 있었다.

 

그야말로 온 몸으로 시를 쓴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는 이. 주저앉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함께 어깨를 걸며 그 어디든 뛰어올라가 외치는 이. 시라는 것을, 글이라는 것을 종이 속에 갇힌 그 무엇이 아닌 펄펄 살아 꿈틀거리는 날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불의에 맞서 싸울 용기와 힘을 전달한 이. 단 한 번도 직접 만나 대화를 해보진 못했지만, 멀리에서 바라본, 그리고 전해지는 소식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시인 송경동이다.

 

평택 대추리에서, 용산 남일당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노동자들의 가족 앞에서, 그리고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김진숙 동지를 향해 가는 희망버스 속에서, 그의 시는 살아 꿈틀거렸다. 시인의 시는 단지 글로만 기록되지 않았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시가 되었고, 그것은 또 다른 이의 시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또 다른 이의 시로.

 

꿈꾸는 자는 잡혀 가야 하는 시대. 그는 감히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새로운 사회와 인간의 연대를 위한 희망이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하찮은 부속품이 아닌, 진정한 삶의 주체로서의 인간, 노동자의 희망이었다. 거대 권력과 자본 앞에 한없이 무너지는 일회용품이 아닌, 저마다 우주를 품은 우리 자신 하나하나에 대한 희망이었다. 이 더러운 시대에 감히 꾸기 벅찬 꿈을 그는 끝까지 가슴에 품고, 시로 토해냈다. 때문에 그는 끝내 잡혀가고야 말았다.

 

책은 많이 아프다. 읽는 내내 숨죽이게 하고, 끝내 목울대가 아리도록 만든다. 그가 살아온 삶이 서럽고, 그가 시린 듯 맑은 눈망울로 바라보는 이 세상이 서럽다. 수많은 송경동들의 외침이 아프고, 수많은 김진숙들의 외침에 귀가 먹먹하다. 이명박 정권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권 앞에서 단지 서러운 몸뚱이 하나로 싸워온 이들의 그 눈물이 끝내 미치도록 아프다.

 

때문에 쉽지 않다.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다. 그가 드러내는 민낯의 세상, 더럽고도 기가 막히게 불의한 세상을 그대로 쳐다보기 두렵다. 하지만 진실에 눈을 감는다 하여, 이 억울함이, 이 죽음들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또렷이 우리 앞에 비친다. 때문에 살아남은 자는, 조금의 힘이라도 모을 수 있는 자는, 일어나 외치고 싸워야 한다.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에 대해 이의을 제기해야 한다.

 

한 편의 잔인한 블랙 코미디와 같았던 이명박 정권, 우리는 웃으며 싸우자고 다독였다. ‘쫄지마!’라는 말에는 그 어떤 슬픔도, 고통도, 패배도 그들로부터 받을 수 없다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웃으며 싸우고, 키득거리며 저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웃들의, 동지들의 죽음 앞에서는 결국,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우리는 그런 우리를 깨달았고, 이는 현재에도 이어져, 다시금 작은 눈을 반짝이며,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서로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을 겪으며 더욱 힘이 세졌다.

 

설상가상의 시대, 여전히 정답은 우물쭈물 거리는 시대, 세월호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크고 작은 아픔들이 여전히 백주에 폭죽 터지듯 우리 앞에서 춤을 추는 지금, 어쩌면 시인 송경동은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스러져야 할지도 모른다. 2011년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목(!)으로 그에게 2년이란 실형을 선고한 현 정부를 보면, 그에게 또 얼마나 많은 고난이 닥칠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는 늘 그래왔듯, 연대의 소중한 끈을 부여잡고, 또 다시 시를 써내려 갈 것이다. 지금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온 몸으로 부여잡으며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시인 송경동. 불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은, 글쟁이는, 광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온전했다면, 저 거대한 자본과 거기에 굴종하며 기생하는 권력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을 시인.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나는, 그가 있어 눈물겹게 고맙고, 행복하다.

 

그처럼, 내 양심을, 영혼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기적이고, 이 세상엔 큰 복이다. 부디 아프지 마시라.

 

무엇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한 곳에 연대하러 가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그 간명한 마음들이 살아나면 좋겠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게 무슨 죄냐고 무슨 잘못된 일이냐고, 그리고 그게 무슨 그리 큰 어려움이냐고……. 국민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재벌들이 독점하고 있는 99퍼센트의 사회적 자산들이 원래의 사람들 몫으로 나눠지기만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현대 민주주의가 그나마 실험된 게 몇백 년인데 계속 이런 내용적 봉건영주들의 시대를 가만히 놔둘 거냐고……. 이런 세상을 놔두고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더하기, 빼기의 단순 정의를 가르치고 도덕을 얘기할 거냐고 사람들이 마구 얘기하면 좋겠다. 희망버스를 출발시켰던 우리 지역에서만큼은 다시는 조남호 같은 이들이 없게 만들겠다는 지역 희망의 연대운동들이 만개하면 좋겠다.

, 이런 좋은 꿈들을 꾸다 보니 갇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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