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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당의 길 - 진보정치로부터 좌파정치로의 전환
금민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사라졌다. 정당 해산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일어났다. 우연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정확히 2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그에게 감히 무모하게 저항하고 반기를 든 대가는 이처럼 참혹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사망선고를 내린다고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공기와 같다. 그 공기가 상당히 희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질식해 죽은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는 그 구분이 참혹하리만큼 애매하다. 물론 칼같이 진보와 보수로 누군가를, 어떤 집단을 구분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새누리당을 보수라 하기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진보라 하는 것도 모두 우스운 일이다. 전혀 보수 같지도, 또한 진보 같지도 않은, 그저 이익집단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형적인 정치 환경을 반세기 넘게 유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 안에서 진보 정치를 꽃피우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난관을 각오해야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지금껏 많은 이들이 이러한 불가능한 도전을 멈춤 없이 지속했다. 통합진보당의 도전과 실패, 좌절 역시 그러한 무수히 많은 시도 중 하나일 것이다. 때문에 통합진보당이란 이름이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진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진보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다시 힘을 낼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책에서 저자는 진보를 버리고 좌파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좌파란 기존 진보 진영 내의 좌파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 통합진보당 등이 일부 노동자를 대변했다면, 좌파당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불안정한 노동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내세운다. 좌파는 신자유주의 종식 이후 대안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나마 미약하게 존재하던 진보세력을 대변하던 통합진보당이 사라지려는 지금, 저자의 주장은 더욱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종식시킬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가 좌파당을 부르고 있다는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현재 야권 세력 중 진보라 불릴 수 있는 정당은 많지 않다.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등이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 정동영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질 야권신당이 곧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 색깔을 보여줄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 모아도 그 세력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야권통합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철옹성 같은 새누리당의 위세 앞에, 또한 기득권 지키기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양새를 보면 야권통합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확실히 깨달았듯, 통합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획일적인 통합의 과정에서 더 큰 갈등과 분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거대 양당구조에서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우리 정치 지형에서 제3의 정치 세력은 언제나 소외되고, 또한 대선 등에서 야권에 힘을 분산시킨다는 억울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새누리-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양당 구도가 머릿속에 각인된 이들에게 제3의 정치세력은 언제나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양당구도 내에서 새로운 제3의 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경직되고, 또한 권력 지향적인 양당의 구태의연함을 깨버리고, 진정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이다.
2012년 발간된 책은 당시 시점에서 2014년 말까지 좌파당을 건설하고 그 당을 반석 위에 세울 때의 과제, 전략, 경로 등을 담았다. 저자가 좌파당 건설의 시점으로 생각한 2014년 말에 오히려 통합진보당이 해산결정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이자, 시대가 낳은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진보를 넘어 좌파를 꿈꾸어야 할 시기에, 오히려 기존 진보세력은 붕괴된 모습. 여전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었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갈수록 신자유주의 시대가 불러올 파국이 눈에 보이고 있다. 양극화는 더욱 벌어질 것이며,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은 더욱 빨리 째깍 거린다. 남북관계의 경색은 새로운 경제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절망감만을 안겨주고 있고, 어설픈 규제개혁과 위험한 부동산 정책도 파국을 앞당기고 있다.
이미 우리는 이명박 시대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목격했다. 저자는 더 이상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케인스주의 등 기존의 해법으로는 소생이 어렵다고 말한다. 금융·부동산의 규제·과세와 주요 금융회사의 사회화를 통한 급진적·좌파적 방법만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더 이상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치부되지 않는 지금이다. 진보의 싹마저 찍어 누르는 시대, 종북, 레드컴플렉스가 여전히 미쳐 날뛰는 지금, 과연 우리는 진정 노동자들을 위한 좌파당을 만들 수 있을까.
희망은 언제나 곁에 있다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