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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
로버트 F. 케네디 지음, 박수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 2014년 12월, 미국과 쿠바는 전격적으로 국교 정상화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정확히 12월 17일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던 1962년 이후 52년 만에 이뤄진 대사건이다. 향후 추이를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된 미국의 대 쿠바 봉쇄정책이 결국 실패했음을 전 세계 앞에 스스로 인정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1962년 10월, 미국과 쿠바를 둘러싼 미사일 위기는 인류의 멸망까지 불러올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당시 이른 바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과 소련 간 일어날 수 있었던 최악의 시나리오, 즉 핵전쟁은 분명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것이었다. 재앙, 종말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비극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전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위기의 중심에 있었던 양국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국교 정상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제 공식적으로, 세계 모든 국가 중 미국과 맞서고 있는 국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유일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폭발력과 진행 과정의 극적인 성격으로 일반적 외교 갈등을 뛰어넘는 특별함을 가지게 되었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가 책과 같은 제목으로 제작되었고, 정치외교학 분야에서 이 사건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평가는 다양하다. 물론 케네디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과 냉철한 판단력에 대한 평가가 가장 많다. 그가 인류 공멸의 길이 될 수 있었던 핵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분명 평가되어야 한다. 아무나 보여줄 수 없었던 용기를 보여준 탁월한 리더였다.
아울러 함께 의사결정에 참여한 미 고위 인사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들의 뛰어남과 애국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 역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를 전해준다.
그러나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최고위 인사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비밀리에 이뤄졌고, 그 안에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등 의회가 참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그것도 전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선택 과정에서, 정작 의회는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 오직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최고위 인사들이 모여 결정했다는 사실.
더구나 미소를 제외한, 여기에 쿠바를 포함시킨다 해도 초기 논의 과정에서 여타 국가들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 어떤 나라도 사태를 파악할 수 없었으며 후에 유엔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쿠바 사태를 밝히기 전까지 아무런 정보도 입수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례가 단지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1994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폭격할 준비를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북한과 맞닿아 있는 우리는, 당장 핵 참화를 맞을 수 있었던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무기력했고, 국민들은 전쟁 발발의 위기조차 제 때 느끼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우리의 상황은 그때보다 크게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의 갈등이 증폭될수록 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가장 큰 대상은 다름 아닌 우리다. 하지만 외교적 무능과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결국 우리 목숨을 남에게 일방적으로 맡기고 있는 셈이다. 광복 70주년이라는 말을 되짚어 보면 분단 70년이자,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70년이라는 말과도 같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쿠바의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 개시 선언과 62년의 미사일 위기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몇 가지 남겨준다. 먼저 뛰어난 리더십의 중요성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해 책의 저자인 로버트 F. 케네디와 같은 리더가 우리에게 있는가. 그리고 비록 적어도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선택한 오바마와 같은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의 리더들에게 말이다.
또 하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전쟁, 특히 핵무기가 사용되는 전쟁에 대한 권한을 대통령에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또한 현명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긴박하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회나 국민의 동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때론 현실적으로 국회의 동의나 관여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판단을 미리 내릴 수도 있다. 이는 매우 어렵고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난해한 문제다. 어쩜 미국의 전쟁 역사는 이처럼 대통령과 의회 간 힘겨루기에서 누가 우위를 점했는가에 따라 결정된 것들의 역사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권력 작동과 의사결정의 시스템을 두고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깊은 연구와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지, 어떤 방법이 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할지. 여전히 외교라는 단어를 붙이기조차 창피한 우리 외교 수준과, 또한 리더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만드는, 동아리나 이익집단 수준의 우리 정부를 보면 한 없이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분명 우리 역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를 보면, 어처구니없게도 MB정권이라는 사상 최악의 정부에게 “구관이 명관”이라는 표현마저 사용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부질없는 이야기긴 하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히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현재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살피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쩜 죽을 때까지 구관이 명관이라는 헛소리만 늘어놓다 멸망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가 원만히 이뤄졌음 한다. 미국의 굴욕도 쿠바의 항복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양국이 동등하고 공정한 모습으로 우호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국의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며 밝혔던 내용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 ‘쿠바’를 ‘북한’으로 바꾸어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음을, 미국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 한 번 개인적으로, 결국 2013년 서평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2015년을 덜컥 맞았다. 글쓰기의 두려움이 서평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녹이려 하자니, 자존심 상하고, 그대로 두자니 얼어 죽겠다. 난처함도 상습이면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