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일간의 트랙터 다이어리 - 열혈청춘 강기태의 트랙터 국토순례
강기태 글.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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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설픈 나이지만,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청춘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괜스레, 누구에게 탓할 것도 없는데, 내 청춘은 언제였는지, 그 시간을 너무 속절없이 보낸 것은 아닌지, 쓸쓸하다. 결국은 나의 시간이었고, 나만의 선택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살짝 삐치고 싶은 것은 아무래도 조바심이란 것이 나에게도 생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10, 20대를 흔히 청춘이라 생각한다. 30대 역시 어쩌면 그 범주에 속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직 나는 청춘이라는 이름을 어색하게 받아들이면 안 될 터이다. 그런데 어느 새 마음은 이미 청춘이 아님을 시위하는 듯, 그래서 조금은 서글픈 지금이다.

 

오직 속도만을 강조하고 찬양하는 이 시대에 반발해,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슬로우 푸드니, 느리게 사는 지혜니 하며 다소 더딘 것이 실은 더딘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감하고, 또 실천하고픈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기태라는 청년의 도전은 분명, 의미를 지닌다. 속세에서 판단하기엔 한없이 느려터진 트랙터를 타고 전국을 순례한다는 발상, 그 자체가 이미 성실한 느림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니.

 

도전하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라는 문구를 기억한다. , 그렇다고 청춘이 아닌 족속들은 도전할 권리가 없다는 뜻은 아닐 터이다. 그만큼 요즘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는다는, 다소의 비판이 담긴 말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처럼 매일 매일 감당키 어려운 도전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없지 않나 싶다. 생존 그 자체,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자체가 이미 어마어마한 도전 아닌가.

 

저자는 트랙터로 남미를 횡단하겠다는 꿈을 접고, 잠시 고민하다 다시 전국일주라는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이뤄내기 위해 도전한다. 무모해 보이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노력 그 자체가 이미 성공이고 성취이다. 그는 그러한 성취를 통해 다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순례의 여정에서 저자는 유명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 고 노무현 대통령, 활동가 한비야, 최일도 목사 등. 하지만 그보다는 논과 밭에서, 강과 바다에서, 들판과 산에서 만난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더 가슴에 담긴다. 늙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묵묵히 땅을 일구는, 바다를 일구는 이들. 어찌 이들에게 하찮은 FTA 따위가, 그 무슨 법과 제도 따위가 간섭할 수 있으랴. 이들의 숭고한 노동을 기껏 자본의 단위로 매기는 이들에게 그 무슨 상식과 순리를 바랄 수 있으랴.

 

비록 반쪽이지만, 이 땅을 순례하며 저자는 많은 고독과 조우했으리라. 그리고 그 고독이 그를 생각보다 많이 자라게 했으리라. 비록 젊음의 객기라 하더라도, 뜨거운 피를 주체하지 못해 벌인 한 판의 난장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약간의 공명심 때문이었더라도, 그의 트랙터 순례는 분명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에게 남으리라. 그거면 족하지 않나.

 

누구나 청춘을 맞이하고, 청춘을 보낸다. 누구나 희망을 꿈꾸고, 그 희망이 눈앞의 실체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비록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어떠랴. 우리는 제 알을 낳을 해변을 향해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바다거북처럼, 그렇게 청춘을 맞고 또 보내는 존재임을. 우리의 여행 자체가 의미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거늘.

 

저자와 같은 거창한 순례가 아니어도 좋다. 청춘은 도전하는 것이라는 그저 그런 이야기도 필요 없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청춘들은 뜨겁게 그것을 감당하고, 또한 견뎌내고 있으니, 모두가 자신 만의 그 무엇에 올라타면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가을이라고, 외로움을 초대하는 것 같다. 주책스럽다. 하지만 이것도 나에겐 그 어떤 특권이자, 선물이 아닐까. 청춘을 아쉬워하지 말고, 이 시간, 바로 지금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나에겐 더 이문이 남는 장사이리라, 이렇게 믿고 피식 웃었다.

 

한 청년의 트랙터 국토순례, 살짝 삐침과 또한 가벼운 유쾌함을, 그리고 문득 잊고 지냈던 어느 겨울 고성의 앞바다가 떠오르게 만든, 그런 시간이었다. 청년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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