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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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용인의 한 초등학교 가을운동회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네티즌들은 그 사진을 가리켜 꼴찌 없는 운동회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다.

 

달리기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이 몸이 불편한 친구의 손을 잡고 나란히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 친구들과 함께 달린 불편한 아이는 끝내 눈물을 흘린 듯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학부모들과 선생님들도 눈시울을 붉혔다고 소식은 전하고 있다.

 

사진과 글을 보는 순간,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울컥했다. 아이들을 무한경쟁에 도가니로 몰아넣어, 숨조차 쉴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이 미친 세상에서, 그럼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인간임을 보여주었다. 어느 누가 여기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을까.

 

교육은 그럴듯한 포장으로 언제 듯 폼 나게 보여 질 수 있지만, 결국 그 알맹이가 실하지 못하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그동안 우리 어른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사육해왔으며, 그것을 스스로 사랑과 관심이라 포장해왔다. 매년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감히 사랑이라니.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른 바 SKY라 불리는 명문대에 다니던 학생이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며 자발적인 퇴교를 선언했다. 그리고 자본에 의해 간택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학과 국가, 시장이라는 억압의 3각 동맹을 향해 던지는 작은 돌멩이의 외침이었다. 그는 자신부터 혁명하겠다고 외쳤다. 근원적 혁명은 자신의 행동으로,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그의 뒤를 이어 무수히 많은 대자보들이 여러 학교에 붙었고, 2, 3의 돌멩이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잘못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자본과 시장 그리고 돈과 권력 앞에 맥없이 투항한 대학이라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고, 또 가슴 깊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무엇인 진정한 행복이고 무엇이 인간다움인지. 그것은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의 외침으로 시작된 불길은 이미 꺼져버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을까. 여전히 세상은 굳건하게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거대한 자본의 벽은 언제나 그랬듯, 전혀 흔들림이 없는 것일까.

 

여기에 명쾌한 대답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얼핏 보기엔 전혀 달라지지 않은 듯하지만, 그것 역시 확실치는 않다. 세상은 딱 그만큼 변한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정답은 여전히 아득하다.

 

하지만 난 여기에서, 분명 달라진 것이 있다고 믿는다. 야당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진보교육감 다수가 당선된 것은,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열망이 모아져 일어난 작은 기적이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눈물 속에, 뉴타운 개발 공약 따위에 표를 던졌던 그 부모들이, 이제 아이들의 교육을 진보교육감에게 맡기고 있다. 이는 분명한 변화이자, 시작을 위한 시작이었다.

 

20103, 김예슬의 선언은 이와 무방하지 않다.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대를 스스로 뛰쳐나오며, 오직 인간으로 살아가겠다는 선포는 많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숨을 돌릴 시간을 주었다. 행여 내 아이만 뒤쳐질까, 내 아이만 멈추어질까, 걱정하던 이들이 이제는, 내 아이와 우리의 아이들 모두가 더욱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그의 돌멩이는 생각보다 커다란 균열을 이 사회에 일으킨 셈이 되었다.

 

지금, 그는 나눔문화연구소라는 단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삶의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의 도전과 희망 찾기는 여전히 뜨겁게 진행 중이다.

 

문득, MB정권 초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미친 소 너나 먹어라’, ‘0교시 폐지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아이들은, 그 어떤 배후세력없이도 당차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이제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며, 때론 어른보다 더 어른답게사회를 향해 외치는 또 다른 아이들을 바라본다. 친구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함께 슬퍼하며,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한 치의 의혹 없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는 아이들은,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이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당찬지, 얼마나 슬기로운지 우리 전혀 모른다. 오직 줄서기와 무한경쟁만을 강조해 온 우리는, 아이들이 잠자코 어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누구보다 또렷이 구분해 낼 줄 안다.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보다 백배 슬기로운 존재이다.

 

나 하나 행동한다고, 나 하나 덤빈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지레 겁먹고 지레 포기하는 우리들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 용기 있는 이가 먼저 손을 들고 돌멩이를 던져도, 이를 비방하고 왜곡하기 일쑤다. 창피한 어른들이다. 아이들보다 못한 어른들이다.

 

김예슬의 대자보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이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김예슬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자보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것이 언제 어디에서 폭발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분출은 눈물 나게 고마워해야 하리라. 아직 우리 사회가 살아있음을 말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책은 김예슬 씨가 대자보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포함했다. 그의 고민, 그의 문제의식, 그의 결심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잠깐은 을 돌려야 하리라.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김예슬의 대자보에 이렇다 할 답장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쉼 없이 우리는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아픈 친구와 함께 결승선을 함께 통과한 아이들. 우리는 언제나 그런 아이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연대와 사랑과 눈물과 배려가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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