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웅 제이크맨 VivaVivo (비바비보) 18
데보라 엘리스 지음, 이승숙 옮김 / 뜨인돌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굳이 ‘낙인의 효과’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편견과 불신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넘쳐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최근 겪고 있는 아픔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는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누가 죽으라고 했어?” “어린 것들이 놀러 가다가 죽은 것을 가지고, 가당찮게 특별법이라니!” “국가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닌데 무슨 의사자야!”

 

도저히 부모라고는, 상식과 이성이 있는 성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들의 저주의 말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얼마나 깊은 편견과 불신 그리고 무지에 갇혀있는지 알 수 있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은 자녀들의 특례입학이나 의사자 선정 등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진실과 재발방지, 즉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순간 보수 세력들로부터, 아니 정부로부터 자식의 죽음을 빌미로 부당한 것을 요구하는 ‘불순한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여기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살펴보는 것이 귀찮기만 한 일부 국민들이 로봇처럼 낙인찍기에 동참한다. 유가족들과 생존자 가족들이 느낄 국가에 대한 환멸과 동시대인들에 대한 배반감, 허탈감이 어떨지는 상상하기조차 죄스럽다. 결국 이 나라는 스스로 국가임을 부정함과 동시에, 또한 현 정부는 정부로서의 책임을 고스란히 바다 속에 수장시킨 셈이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다. 편견과 불신, 무시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모험담이다. 부모가 범죄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아이들이, 자신들 역시 존중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엄연한 이 사회의 일원임을 알리는 투쟁기이기도 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흑인이거나 라틴 아메리카계이다. 미국 사회 내에서 아직까지 ‘비주류’로 불리는 집단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피부색이나 출신지에 상관없이 분명한 ‘미국인’이자 또한 ‘국민’ ‘시민’의 일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이 수없이 부정당하고,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좌절하지만, 그 좌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여기던 모습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신을 묶어오던 밧줄을 벗어버린 것이다.

 

어머니날을 맞아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교도소에 있는 엄마, 친척을 면회하러 가던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버스의 핸들을 스스로 잡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이, 사회가 자신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회복지사의 가방 속에 담겨져 있던 자신들에 관한 서류에는 온통 암울하고 절망적인 미래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바꿀 수 없다고 믿어왔던 세상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다. 엄마를 풀어 달라며 줄기차게 주지사에게 편지를 보내던 주인공 제이크,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미친 것이 분명함. 차단시켜야 함”이라는 답장뿐이었다. 그리고 교도소 측의 늦장 대응으로 아픈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던 아이 할런. 아이들은 이들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또한 자신들의 엄마, 친척을 풀어줄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판단한 주지사를 만나러 가자고 합심한다.

 

언제나 주위로부터 상처와 편견이 가득한 무시를 당해야 했던 주인공 제이크는, 자신만의 영웅 ‘제이크맨’을 만들어낸다. 제이크맨은 평소에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공격을 받으면 온몸에서 가시철사가 돋아나 악당을 무찌르는 슈퍼 히어로다. 제이크맨은 사회의 편견, 억울한 차별에 대한 제이크만의 저항이었다.

 

오직 스케치북 안에서만 활약할 수 있는 제이크맨. 하지만 아이들은 제이크맨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제이크맨이 제이크는 물론, 모든 아이들을 위험에서 구해줄 것을 믿는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새삼스럽게 우리가 얻은 것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가슴 뻐근하게 아픈 것들이지만, 그 중 소중한 것들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타인의 아픔과 상처에 대한 공감이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공감의 능력이, 연대의 가치가 평소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 왜 우리는 지옥과도 같은 정글 속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선입견과 무시, 외면, 증오는 공감과 연대의 마음을 파괴한다. 그리고 그렇게 굳어진 증오나 편견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매일 100여 명의 무고한 이들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생지옥을 바라보면, 그리고 그러한 학살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을 보면, 또한 그런 이스라엘을 멈추게 하기는커녕 정당화하는데 동조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주류들을 보면, 잘못된 증오와 편견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지옥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지금이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정의를 위해 직접 행동한다. 가능성이 단 1% 뿐이라 해도 이들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반전활동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저자는 작품을 통해 뉴욕이라는 화려한 도시에 가려진 소외된 아이들의 한바탕 소동을 통해 불편한 진실과 또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린 이러한 모습을 현실로 목격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친구와 선생님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오직 진실을 요구하며, 먼저 죽어간 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살아남은 부모들은, 생존자의 부모들은 곡기를 끊어가며, 역시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이 거꾸로 되어버린 기막힌 모습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작품이 아님을 느끼며, 책을 덮는다. 그리고 내가 그 누군가의 ‘제이크맨’이 되어,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지, 그들을 괴롭히는 모든 억압과 차별에 대항해 날카로운 가시철사를 휘두를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가 묶어버린, 나를 옥죄고 있는 이 무기력, 체념, 포기라는 밧줄을 끊어버리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동안 너무 머물러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 책이다.

 

“아저씨 자신도 잊지 마요. 스스로 묶여 있으니까요. 그게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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