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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마라 - 분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테판 에셀 지음, 조민현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4월
평점 :
“나는 위기로 인한 고통에 대한 대답이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개혁적 민주주의의 힘을 결집시키는 데 있다고 본다. 20세기 동안에 많은 유럽인들은 …… 이데올로기를 떠받들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전지전능한 안내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결코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다. 반공산주의자 역시 되지 않았다. …… 나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혁명적이거나 폭력적인 행위를 통해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변화는, 행동․정치적 협의 - 민주적 참여를 통한 현명한 작업 속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민주주의는 목적이다. 그러나 또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인권과 인간 존엄성 그리고 시민의 연대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지난 해 우리 곁을 떠난 영원한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 책은 그가 인류에게 남긴 지극히 간절한 호소이자 유언이다. 그가 얇은 책자 한 권(<분노하라>)으로 세계의 시민들과 국제 시민사회운동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듯, 이 책 역시 두껍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의 진실함과 함께 역사의 진보와 인간의 용기에 대한 강력한 낙관주의가 빛을 발하고 있다.
스테판 에셀은 “오늘날 오만한 돈의 힘과 시장 독재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봉기하고 싸울 것을 요구한다. 또한 분노와 항의에만 멈추지 말고, 행동할 것을 호소한다. 소수독점 지배세력을 거부한다는 의사와 함께 국가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의욕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는 극단주의를 경계했다. 그리고 극단주의가 부른 혁명이 결국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라 경고했다. 때문에 정치가 중요하다. 정치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욕구를 회복해야만 한다. 정치가 없이는 진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의 진정성이 담긴 사과일까? 지방선거에서의 야당의 압승일까? 그것도 아니면 경제의 회복과 성장, 복지의 확대일까? 물론 모두 각자의 가치관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먼저 시급히 필요한 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도덕적 재무장’이 아닐까.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버린 우리의 양심, 도덕, 상식의 재무장이 아닐까.
스테판 에셀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도덕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에게 굴복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고 호소했다. 분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 우리는 현재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대한민국의 유권자 중 50세 이상의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연령층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다면, 바람직한 변화, 우리가 꿈꾸는 변화 역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도 정의와 상식에 목말라하는 수많은 스테판 에셀이 존재한다.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차마 앞으로 나서지는 못하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 그들이 희망이자 변화의 원동력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단지 연령층으로 진보와 보수, 구태와 개혁을 나누는 것은 우습다.
보수가 악이고 진보가 선이라는 시각도 지극히 위험하다. 그 반대는 말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긍정할 수 있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스테판 에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국내에 출간된 스테판 에셀의 책들을 모두 읽은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다시 한 번 인정한다. 내가 그에게 배운 것은 정당한 분노와 여기에 동반된 낙관주의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 인간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놓지 않는 법. 그럼으로 또 다시 저항하고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 그가 나에게 전해준 선물이다.
참혹하고 암담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 상처에서 과연 언제쯤 회복될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담겨있듯, ‘현 상황이 암울하게 여겨지더라도, 아무리 노력해도 출구가 보이지 않더라도, 비폭력투쟁이 효과가 없어 보일지라도, 내가 지지했던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했다 하더라도, 변화의 속도가 너무 더뎌 인내를 극도로 시험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인간의 정신은 진보할 것이고, 인간 존엄성을 향한 인류의 대장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호소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소하다해도, 세상을 바꾸는 데 0.00000001%의 기여만 할 수 있을지라도 행동하려 노력할 것이다. 영원한 노투사여, 안녕히.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죽음의 위험에 놓여있다. 사회적․경제적 부정으로 또는 환경 파괴로, 또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소멸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세우기 위해 건설적인 비전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야망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에서 태어나는 야망. 세상 일이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염세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야망을 가져야만 한다. 포기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