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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상처 ㅣ 스토리콜렉터 1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11월
평점 :
그 어떤 것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 짧은 삶이나마 지금까지 숨을 쉬며 느낀 결론이다. 때문에 결과에 못지않게 그 과정이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결과만 좋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가 중요하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또한 잘못된 과거에 대한 성찰이 끊임없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망각하고, 쉽게 용서한다.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용서와 청산은 얼마나 초라한가. 역사는 살아온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살아갈 힘이기도 하다.
독일과 일본은 그런 점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한때 동맹을 맺고 전쟁을 일으켜 전 세계를 차지하려 했던 두 국가는 패전 이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독일은 철저한 과거 청산과 사죄를 통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그쳐 왔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먼저 살아간 이들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불행을 가져왔는지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한반도의 분단 덕분으로, 패전국으로 응당 받아야 할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왔다. 그리고 경제대국이라는 말이 초라할 정도로 후진적인 정치 시스템을 지속해오며, 이젠 극우의 색채를 점점 더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과거를 정당화하며,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 여전히 그들에게 독도는 자신들의 섬이고,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매춘에 참여한 여성들일 뿐이다. 그런 추악한 역사의식 안에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이런 뒤틀린 역사의식이 쓰나미나 원전 사고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일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깊은 상처>는 여전히 독일인들의 마음 한켠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나치 시대의 죄악을 꺼내든다. 국민 전체가 집단적인 광기에 빠졌던 끔찍한 기억을 굳이 꺼내는 것은, 암울했던 그 시대가 여전히 현재에도 강한 파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치’와 ‘유대인’이라는 단어. 이는 독일인과 독일인이 아닌 사람에게 각각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친일파와 매국노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처럼.
주지하듯, 독일은 나치 시대 당시 히틀러에 충성을 맹세하고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이들을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했다. 프랑스 또한 독일의 침공으로 만들어진 괴뢰 정부에 복무했던 이들을 끝까지 추적해 처벌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복수나 형식적인 법 집행 이상의 의미를 전해준다. 정의는 결국 불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봉선화>의 원작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의 저자 윤정모 작가는 연극을 소개하며 나치 시대 프랑스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프랑스가 처리했던 나치 부역자들이 생각났다. 조사대상자가 2백만 명, 사형이 약 7천명, 정치, 언론, 시인, 작가는 가중처벌까지 받았다. 그리고 대통령 드골이 대국민 선언을 했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 지배를 받을 수는 있을지라도 민족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역사의 올바른 청산과 정립에 대해서는 우리 역시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우리가 과연 시작부터 철저히 역사 청산을 올곧게 진행하며 지금까지 왔다면, 과연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났을까. 과거부터 철저히 뒤틀린 시작은 지금과 같은 끔찍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깊은 슬픔>은 나치 시대 유대인 학살에 동조했던 이들이 하나하나 의문의 죽음을 당하며 시작된다. 쉴 새 없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진행과 그 사이마다 드러나는 추악한 과거는, 어제가 오늘을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결말을 장식하는 반전은 미스터리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보여줌과 동시에, 자신의 조국, 독일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저자의 확고한 신념을 확인케 한다.
많은 유명인사, 사회인사들 중 여전히 뒤틀린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악마와도 같은 말을 내뱉으며, 그것을 비난하는 이들을 오히려 악으로 몰아 부친다. 악이 선을 짓누르는 모습이다.
모든 국민들이 슬픔에 빠져있다. 하지만 권력을 쥔 자들은 반성할 줄 모른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단지 숨죽이며 망각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 세월호의 비극은 결국 대한민국이 만든 뒤틀림의 결과이다. 비극의 사이사이 마다 튀어나와 남은 자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을 박는 악마와도 같은 언사를 내뱉는 일부 인사들 역시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창조물이다.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대한민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기에, 스스로 국민임을 포기하고 이 더러운 땅을 떠나겠다는 희생자 부모의 절규. 감히 어느 누가 여기에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잘못된 역사는 잘못된 현재를 만들고, 미래마저 잠식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우리가 진심으로 깨달아야 할 것은 선장,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하는 것보다, 선박의 실재 소유주, 기업을 박살내는 것보다, 뿌리까지 썩어버린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 말자.
“이제 절대 지금까지처럼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경멸 섞인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천 년이 가도 이 죄를 다 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더 심한 것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은 다시 똑같은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완전히 윤리 의식으로 자리 잡아 그를 괴롭히는 신앙을 저주했다. 아무리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 한들 소용없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하지 않는 한 용서는 없다.” - 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