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인 가의 저주 대실 해밋 전집 2
대실 해밋 지음, 구세희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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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슬픔과 간절함이 분노와 무력감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무능력, 그리고 선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든 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속절없이 가라앉는 모습을 피눈물 흘리며 지켜봐야만 했다. 아니, 차마 볼 수 없었다.

 

정부와 잘난 언론의 지껄임처럼 국가가 아이들을 위해 모든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면, 분명 우린 세계 최고의 후진국이다. 또 만약 SNS나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음모론 중 단 하나라도 사실이 있다면, 우린 이미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 속에 숨져 갔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외쳤을 ‘엄마!’ ‘아빠!’들의 숨쉬기조차 힘들 아픔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들이 과연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할까. 여전히 구태와 권위와 이기주의라는 지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었다는, 그 이유가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아이들만을 잃은 것이 아니다. 실낱같이 남아있던 희망을 잃었고, 간절히 원했던 상식을 잃었다. 그리고 국가의 존재 이유, 우리의 권리와 권력을 위임했던 집단들에 대한 마지막 하나 남은 기대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날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진정 ‘정부’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집단이 되고 말았다.

 

무엇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기껏 ‘이것도 북괴의 소행’이라거나, ‘전라도에서 죽었으니 홍어들과 빨갱이의 합작품’이라는 저주의 굿판이 여전히 날뛰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무슨 희망 따위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사람임을, 차가운 바다 아래로 사라진 아이들 역시 같은 사람임을 망각한 이들의 저주를 무슨 마음으로, 무슨 눈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울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달려갔다. 내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내 조카들과 다를 바 없는, 내 형제 누이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선생님’이길 바랐던 이들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달려갔고, 기도했다. 더러운 국가의 졸개들이나 공권력의 하수인들과는 달리, 그리고 이런 참혹한 상황에서도 표를 구걸하는 쓰레기 같은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끝까지 사람이고자 했다. 그렇다. 이들은 사람이었다. 이들만이 진정 사람이었다.

 

닷새가 흐른 상황 속에서도 에어 포켓을 중얼거리며, 남아있는 이들을 절망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언론. 애초 저체온증의 무서움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가,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안고 있는 이들에게 이제야, 이제야 수온 이야기를 떠드는 것들. 이미 가라앉은 배안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에어 포켓을 주문처럼 외는 것들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이들을 진정 사람으로 봐야만 할까.

 

<데인 가의 저주>는 범인이 치밀한 계획으로 실행한 연쇄살인을 한 여인에게 뒤집어씌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희생양이 된 여인은 자신이 정말 살인의 피가 흐르는 집안의 저주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며 절망한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 그것은 그 무슨 저주가 아니었다. 단지 추악한 욕망을 가진 인간의 끔찍한 범죄였을 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13년 8월, 내가 이런 참혹함 앞에서 이 책을 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대실 해밋의 정통 하드보일드 작품을, 이렇게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먹먹함과 억울함, 분노와 무력감에 진저리치며 무심한 하늘을 바라볼 줄은 정말 몰랐다.

 

단 한 명의 억울한 죽음도 막아야 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다. 존재 이유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는 다시 말하지만, 없어져야 한다. 그 어떤 이유도 이유일 수 없다. 변명일 뿐이다. 치졸한 변명일 뿐이다. 부모들의 피눈물 앞에 그 어떤 변명도, 쓰레기일 뿐이다. 차디찬 바다 아래로 잠들어간 아이들의 18년 삶을 그 어떤 변명으로 보상하려 하는가. 아이들과 함께 잠든 선생님들의 눈물을 그 어떤 권력으로 입막음하려 하는가. 홀로 살아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 곁으로 간 교감 선생님의 마지막 사죄를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해 잘난 신문과 방송으로 떠들려 하는가. 그 더러운 입을 이제는 닥쳐야 하지 않겠는가.

 

사고를 사건으로 만들어버리는 정부, 그리고 그 사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소리 없이 ‘작전’을 벌인 정치 집단. 이들의 무능력과 사악함을 기억하려 한다. 비록 아무 힘도 없는 필부에 불과해도, 기어이 기억할 것이다. 이들의 끔찍함을 기억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이들의 짐승 같은 행동과 생각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줄 것이다.

 

저주받은 집안의 비밀을 풀어헤쳐 나가는 잘 만들어진 미스터리 소설 <데인 가의 저주>.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이 서평을 눈물로 기억할 것이다. 정작 저주를 받아야 할 이들이 누군지는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을 믿는다. 여전히 아이들의 외침이 들린다. 끝까지 기적을 믿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고작’이고 ‘기껏’이다. 2014년 4월의 아픔과 억울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말썽부리고 투정부려도 좋으니, 제발 기적처럼 돌아와라,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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