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의 어둠 - 2조 엔의 이익에 희생되는 사람들...
MyNewsJapan 지음, JPNews 옮김 / 창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나름 금과옥조로 여기던 순서를 무시하고 이 책을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 해 읽었던 책들을 순서대로 이야기해 왔는데, 당시 특정 장르의 책들을 무지하게 많이 읽은 관계로, 솔직히 스스로 서평에 지친 것이 있고, 또 최근 터진 뉴스를 통해 다시 한 번 이 책의 주인공인 토요타의 몰락이 기정사실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명 ‘기레기’라 불리는 최근 우리 언론을 생각할 때, 이 책의 저자들인 MyNewsJapan의 용기와 근성을 칭찬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레기’는 다들 아시겠지만, 기러기가 아니라 ‘기자 쓰레기’의 줄임말이다. 요새 워낙 직장인 같은 기자들이 많아서리. 뭐, 난 이런 말 할 자격이 나름 있으니,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요새 참 ‘기레기’ 많다.

 

3월 20일 미국 정부가 토요타에게 1조 3천억 원이라는 살벌한 금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2009년 발생했던 토요타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에 대해 토요타가 제대로 관련 정보를 제공했는지의 여부를 그야말로 끈질기게 조사해 온 미국 정부가 토요타를 기소 유예 처분을 하지 않는 대신 벌금을 물리기로 한 것이다.

 

정확히 토요타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은폐해 왔는지에 대해 미국 정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최대 금액의 벌금을 물렸음에도 토요타가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이와 관련해 “토요타의 정보은폐의 심각성을 보면 정당한 처벌”이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샌디에이고의 한 일가족이 토요타의 렉서스를 타고 가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토요타는 사고 이후 천만 대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자동차에 대한 리콜을 실시했고, 관련 정보공개를 지체했다는 이유로 66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어낸 바 있었다. 아울러 차량 소유주들에게 무려 10억 달러 이상의 민사 합의금을 지출한 상태였다.

 

이렇게만 보면 도대체 토요타는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09년 대량 리콜 사태에도 불구하고 토요타 자동차의 판매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었다. 2013년에는 998만 대를 판매해 2년 연속 세계 판매 1위를 지켜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국내에서 토요타 자동차에 관련해 출간된 책들은 100여 종에 가깝다. 그리고 대부분 낯간지러울 만큼의 표현이 가득한 토요타 찬양, 성공신화 소개 일색이었다. 기억력이 상당히 나쁜 나조차 기억에 생생하다. 특히 ‘창조경영’이란 말이 기억에 남는데, 혹시나 박 대통령이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창조경제를 들고 나온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스럽기도 하다.

 

일본 역시 토요타에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성공신화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토요타가 어떻게 해서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이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과 홍보 일색이다. 국내 ‘별 셋’ 기업에 대한 우리 언론이나 출판계의 찬양과 심히 닮았다. 그래서 더 역겹기는 하지만.

 

아니, 그저 자녀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되고 경영자가 된 이한테 무슨 혁신적인 ‘경영 스타일’이 있고, 또 그걸 심지어 왜 배우고 존경해야 하는가? 어2, 어3이 없을 뿐이다. 참.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 즉 독립 인터넷 신문 ‘MyNewsJapan’의 기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떳떳이 말한다. “우리는 토요타의 광고를 받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진실된 모습을 밝힐 수 있다”고. 일본 유수의 언론매체들이 토요타로부터 ‘미움’받지 않기 위해 토요타와 관련된 부정적 기사들을 차마 쓰지 못한 상황에서 MyNewsJapan의 언론인들은 저널리즘과 정의를 향해 돌진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토요타를 성공신화의 롤모델로 삼고 구차해보일 정도로 칭찬하던 우리 언론이 토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 이후 마치 자신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르쇠로 일관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토요타를 찬양하기 바빴던 출판계도 입을 다물었다. 이미 팔아먹을 만큼 책을 팔았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 무책임한 행동들로 인해 결코 존경받아서는 안 될 기업에 대해 많은 이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책임을 따져야 할까.

 

토요타는 그러나,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거액의 홍보비, 광고선전비를 퍼부어가며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사원들이 전혀 행복하지 않으며, 성능 자체의 결함이 존재함에도 숨기기에 바쁘고, 하청기업과 그 사원들을 쥐어짜고 착취해 자신의 이익을 끌어올리며, 해외지사 현지 근로자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구조. 자, 떠올려보라. 과연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어둠’에서 자유로운가?

 

책에는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다 결국 과로사한 사원의 아내가 외로이 거대한 맘모스 토요타를 상대로 싸우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여기에서 내가 삼성반도체의 황유미 씨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삼성반도체에서 어이없이 숨져간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외로이 싸워온 단체 ‘반올림’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을 하루 앞두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대형극장들이 개봉을 취소했음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또 이를 모르쇠한 언론 혹은 ‘국내 모 기업에서 숨진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며 비겁하게 삼성의 이름을 ‘모 기업’으로 숨긴 ‘기레기’들의 역겨움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떠올릴 수 있겠나.

 

통제 없는 자본의 질주, 이는 결국 재앙으로 끝을 맺게 된다. 토요타의 사례는 극히 일부분일지 모른다. 우리는 더 큰 죄악, 더 큰 재앙을 바로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돈으로, 자본으로 묻어버리려 하는 비인간적이고 파렴치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가고, 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그레이트’한 리더로 대접받는 사회에서 과연 희망은 있을까.

 

그리고 그런 자들의 충실한 하수인이자 노예를 자처하며, 언론인이 아닌 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기레기’들이 판치는 사회에서 정의와 상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기본 중에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규제를 죄다 풀어버리기만 하면 과연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실현될까? 창조경제가 이뤄질까? 우리는 죄다 빌어먹게 행복해질까?

 

책은 패기와 정의감으로 뭉친 ‘기자’들의 피땀의 결과물이다. 진정한 탐사보도가 무언지, 그리고 진정한 언론의 역할이 무언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어쩜 이 책은 누구보다 이 땅에서 기자란 이름으로 밥을 빌어먹고 있는 이들이 먼저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토요타의 어둠을 바라보며, 삼성이, 그리고 우리나라 거대 재벌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그야말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의와 상식이 휠체어와 앰블런스에 실려와 법정에서 호화 병실로 슬쩍 혹은 뻔뻔히 대놓고 사라지는 이 땅에서, 어찌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여전히 이 땅에는 ‘정의롭게 사업을 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이 드물다. 아니, 극히 찾기 힘들다. 때문에 토요타의 어두운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다. 지난 2013년 삼성전자는 228조 원의 매출, 36조 785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책의 부제는 ‘2조 엔의 이익에 희생되는 사람들’이다. 부디 삼성전자의 228조 원을 위해, 36조 원의 영업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재벌들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더 많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재벌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책임을 져야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빌어먹을 그것이 상식이고, 지랄 같은 정의다. 더 무얼 따질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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