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전작 〈붉은 집 살인사건〉을 감동적으로(!) 읽은 후 바로 이어 접한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이번에도 어둠의 변호사 고진과 열혈 형사 이유현의 콤비 플레이가 빛을 발하고 있다. 전작이 여러 용의자 중 한 명의 범인으로 그 범위를 좁혀가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범인일 수밖에 없는(!) 한 명의 용의자. 그의 알리바이를 깨부수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는 ‘사건의 대한 의문이나 범인의 트릭을 논리적으로 파헤쳐 실체를 규명하는 본격 미스터리 시리즈’라고! 출판사는 당당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전작에 대한 서평에서 나 역시 이를 인정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의 실타래를 끈질긴 추적과 명석한 두뇌로 풀어가는 콤비 플레이는 페이지 넘기는 속도의 엑셀을 밟게 만든다.

 

 

이제 출판계에서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는 특정 마니아층의 한정된 애호를 넘어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왔던 영미권의 작품 뿐 아니라,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작품이 빠르게 소개되면서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몇 번이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여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측면이 많다. 워낙 국내 추리소설 문학 시장이 작았던 점도 있고, 또한 신선한 신인작가의 작품들이 소개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했다. 더구나, 출판사들의 지극히 시장원리에 입각한 선택들이 국내 작가의 발굴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해외에서 이미 흥행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위주로 번역해 소개해 왔기 때문이다. 즉 ‘돈’이 될 만한 작품만을 골라 시장에 풀어놓았으니, 그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작가들의 패기 넘치는 작품들이 설 자리는 왜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현직 판사 출신 작가라는 이색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도진기 작가의 작품은 단연 의미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무지막지한 사이코패스나 블럭버스터급의 황당한 배경도 없이, 단지 범인과 탐정의 치열한 두뇌플레이에 초점을 맞춘 정통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점에서 반가움마저 다가온다. 또한 법조계라는 특정 분야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지식들이 작품에 녹아들어 더 큰 재미와 사실성을 주고 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전작에 이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관통하고 있는 것 역시 치밀한 알리바이를 깨기 위한 싸움이다. 범인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트릭을 끈질긴 수사와 두뇌 게임으로 하나하나 부수어갈 때의 지적 쾌감은 독자들이 ‘고진과 이유현’ 콤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아울러 또 하나의 관통점은 다름 아닌 ‘인간의 욕망’이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은 어차피 욕망의 노예임을, 그리고 그것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작품은 맨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역시 추악한 욕망의 전쟁터 그 자체일지 모른다. 겉으로는 짐짓 점잖은 척, 도도한 척 그리고 국가와 민족과 국민 어쩌구 하며 대의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척 하지만, 결국 그들의 권력이 사라질 때, 그 추악한 욕망의 찌꺼기는 드러나고야 만다. 국민들은 허탈해하고, 분노하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또 다시 그들에게 권력을 안긴다.

 

 

그렇기엔 난 지금 출판계에서 미스터리 추리물이나 형사물이 얻고 있는 광범위한 인기에 반가움과 함께 씁쓸함을 느낀다. 정의가 실현되고, 악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진리가 오직 활자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이 비루하고 뒤틀린 세상에 절망하고 지쳐버린 이들이, 결국 소설 속 주인공의 활약과 악인들의 최후를 통해, 끝없는 정의에 대한 갈증을 간신히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욕망에 유효기간 따위는 없다. 작품의 결말 부분 드러나는 범인의 실체를 통해 우리는 기막힌 반전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범인의 끝없는 욕망에 다시 한 번 경악하게 된다. 이는 지금 이 시대의 모습과도 겹친다. 끝없이 무언가를 얻고자 하고, 또 채우고 나면 만족하지 않고, 또 다시 채우려 하는 이들. 그런 탐욕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고통 받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는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 그런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새 상대방의 욕망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치밀한 트릭 앞에 속수무책인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답답한 것도 없다. 그리고 반대로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알리바이, 트릭이 보기 좋게 깨질 때, 느낄 수 있는 쾌감 역시 만만치 않다.

 

 

현재 나의 바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소박하다. 지극히 소박하다. 그냥 적어도 많은 이들이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그렇게 상식적으로 일들이 돌아가는 것. 바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왜 이런 당연하고 소박한 바람이 이렇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역시나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둠의 변호사 고진, 열혈 형사 이유현을 찾는 것은 욕심일까. 정통 추리소설에 목마른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픈 책이다. 그리고 상식이 무너진 세상 앞에 극심한 분노와 실망을 느끼고 있을 권은희 과장에게 언제나 응원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시대적 양심을 지키는 이들은 존경받아야 하며, 권력에 무릎 꿇고 굴종하는 이들은 조롱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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