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
사토 세이난 지음, 이하윤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알만한 이들은 이미 알고 있고, 알보다 조금 더 큰 이들도 대충 파악했을 텐데. 그렇다. 난 겁이 무척 많은 녀석이다. 그리고 그만큼 눈물도 참 많다. 남자에게 눈물이 많다는 것은, 비록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만한 사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만한 일도 물론, 아니다.

 

드라마를 보다 훌쩍거리고, 영화를 보며 징징 짜고, 책을 읽다가도 울컥하고. 암튼 참 실없는 녀석이다. 뭐 가끔은 울어주는 것이 정신 및 신체건강에 좋다고는 하더만. 그럼에도 창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을 쉽게 초과하니 말이다.

 

나를 사정없이 울컥하게 만드는 것 하나가 바로 ‘아이들’이다. 특히 딸아이를 얻고 난 뒤부터는 더 그런 것 같은데, 어린 아이들이 서럽게 울고 있거나, 혹은 애처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볼 때면 참기가 힘들다. 난처하게 속상하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사회의 무관심과 어른들의 삐뚤어진 생각으로 학대받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잃게 되는 일들을 볼 때면, 정말 참담하고, 또 분노가 치솟는다. 모든 범죄가 나쁘겠지만, 특히 어린이 유괴에 내가 더욱 분노하는 이유다.

 

굳이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강조하지 않으시더라도, 지금 우리 시대가 과거 전쟁과 분단, 가난을 이겨내야 했던 때에 비해 차원이 다르게 살기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게 살아가는 전부는 아니라는 소리다.

 

아이들은 언제나 해맑고 순수하다. 하지만 그 순수함은 대한민국에서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그야말로 ‘미친’ 무한경쟁의 틈바구니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들은 곧, 웃음과 꿈을 잃어버린다. 그리곤 왜 그런지도 모른 채, 생각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벗들을 경쟁자로 ‘재정의’하며 살아간다. 이게 비극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비극일까.

 

단언컨대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공동체의 미래는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이들이 더 웃을 수 있도록,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다해 고민하고 또 바라보고, 사랑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살 길이니까.

 

사토 세이난의 이 작품은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혹하다. 아동학대, 폭력이 가져오는 파멸적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받은 철저한 배신, 그리고 가장 즐겁고 편안한 곳이 되어야 하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폭력의 기억은 피해자를 또 다른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이제 식상할 정도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학대나 방치의 경험이 있는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면 훗날 자신의 아이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범죄와 비극을 초래한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유년시절을 살펴봐도, 100%라 할 수는 없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다. 부모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무차별적인 폭력이나 방치의 경험을 겪은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힘들다. 오히려 증오와 불신의 눈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폭력의 악순환은 오늘 이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매년 수많은 아이들이 폭력과 무관심으로 죽어간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안고 자라난 아이들은 또 다시 폭력을 되물림하며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양면성을 지니게 된다. 비극이다.

 

작품은 10년 전 일어났던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증언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은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끼워 맞추는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하고, 거듭되는 반전으로 결말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 뛰어난 능력이다.

 

하지만 작품은 뛰어난 미스터리로서의 재미와 함께 한없이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다. 학대받는 한 소녀를 구해내기 위해 우리 사회는, 우리 이웃은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허술하기만 한 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학대받는 소녀의 ‘눈’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쳐다볼 수 있을까.

 

슬프고도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책을 덮은 후, 다시 한 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이 작품은 물론 일본의 작가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아이들에게 소금밥을 먹이고, 학대하고 방치해 끝내 숨을 거두게 한 사건들이 여전히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미 우리 모두가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오직 경쟁이라는 단 하나의 룰에 아이들을 가두어, 아이들의 소중하고 아름다워야 할 시간들을 잔인하게 ‘유예’시키는 우리는, 어찌 보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아동학대, 인권학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체적 학대만이 학대가 아님을,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학대가 더 무섭고 끔찍함을, 이제는 알 때도 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따르는 사람 중에 나쁜 놈은 없어. 아무리 외면을 꾸며도 아이들은 전부 알아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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