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여자 스토리콜렉터 10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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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게으름으로 인해 덕을 볼 때가 있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대표작이 되어 버린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기 전에 작가의 ‘타우누스 시리즈’ 첫 작품을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순서대로 해야만 속이 편안한, 별 도움이 안 되는 성격도 가끔은 쓸모가 있다(그렇다고 플랜맨 수준은 아니다. 원체 게을러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꽤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이어 노이하우스의 다른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올 땐, 솔직히 작가나 작품을 알지 못했다. 무엇에 정신을 쏟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또 다시 ‘추세’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다 한 여름(이 책을 읽을 당시는 2013년, 무려 더운 여름이었다), 어느 날 밤, 무심코 작품을 펼쳤다. 타우누스 시리즈의 첫 작품을 말이다. 《사라진 소녀들》을 통해 독일 스릴러 작품을 접한 후 두 번째 ‘독일’과의 만남이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과 추악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높은 평가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굳이 사이코패스나 잔혹무도, 극악해괴, 기상천외한 살인마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스릴러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며 쏠쏠한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다는 극찬도 곁들인다. 아마도 수많은 독자들이 작가의 ‘타우누스 시리즈’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독일의 지방 마인-타우누스 지역의 호프하임 경찰서 강력 11반. 반장인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과 이혼 후 복직한 여형사 피아 키르히호프는 대쪽 같은 성품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부장검사 요아힘 하르덴바흐의 자살 사건을 조사한다(누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제 ‘대쪽 같다’고 하면 어쩐지 우습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젊은 여성이 전망대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부장검사의 자살로 매스컴이 떠들썩한 와중에 두 번째 사망자인 이자벨 케르스트너에 대한 조사를 하던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곧 이 사건이 단순한 자살이나 치정 살인이 아닌 복잡한 음모의 시작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범인과의 두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품은 독일의 한적한 지방 마을을 배경으로 지극히 ‘현실적으로’ 펼쳐진다. 천재적인 두뇌를 소유한 사이코 범죄자나, 역시 동물 같은 직감으로 범죄의 흔적을 추적하는 셜록 홈즈와 같은 형사는 없다. 다만 부지런히 발로 뛰고, 수많은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심문과 탐문을 반복하는 평범한 형사가 있을 뿐이다.

 

범인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하지 않다. 평범하다. 당장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이들도, 언제든지 살인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욕망적이고 조금 더 비인간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우리는 그들과 크게 다를까?

 

지극히 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사소함을 따라가는 것이 작품의 재미를 안겨주는 주요 요소이다. 조금 긴 미드를 보는 기분이랄까.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왜 한 순간 살인자로 돌변할 수 있는지, 그 내막을 확인하는 순간, 독자들은 충격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조금 어설퍼 보이기까지 하는 범인과 형사. 하지만 이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적절히 풀어나가는 저자의 솜씨는 절대 어설퍼 보이지 않는다. 타우누스 시리즈의 첫 작품인 《사랑받지 못한 여자》는 저자가 자비를 들여 출판했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저자의 자신감의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절박함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 선택은 훌륭했다고 할 수 있겠다. 때로는 그런 무모함도 필요하지.

 

2014년의 첫 서평 임에도, 2013년 목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나의 게으름을 비웃으며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줄서 있다. 하지만, 어쩌랴. 서평마저도 순서대로 빠뜨리지 않고 써야만 정신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이상한 놈이니.

 

그런데 정말 우연치고는 희한하다. 2013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김현진의 《뜨겁게 안녕》이었다. 그리고 올 해 첫 서평이 《사랑받지 못한 여자》다. 감이 오시는가? 나에겐 참으로 행복하고도 가슴 아팠던 2013년을 뜨겁게! 안녕하고. 그렇게 맞이한 새해인데, 나는 ‘사랑받지 못한 여자’ 때문에 여전히 답답하고 안타깝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는 불행하다. 특히 그 여성이 아주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면 말이다. 이건 여성 비하적인 발언이 아니다. 지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한 여자 때문에, 역시 많은 이들이 불행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이하우스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늘 비극은 헛된 욕망과 질투, 독단, 자기기만에서 시작된다. 타인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비극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

 

아기자기한 맛과, 때로는 어릴 적 《수사반장》을 떠오르게 하는 노이하우스의 작품이 좋다. 이후 순서에 맞춰 작품들을 읽어 나갔다. 아직 전부를 읽지 않았지만, 곧 백설공주에게 당도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언제 2013년을 졸업할 수 있을까.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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