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자를 사냥한다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1
배리 리가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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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좋아라 해서 한동안 열심히 챙겨 보았던 미드(미국 드라마) 중 ‘덱스터’가 있다. 태어나기를 요상하게 태어났는지, 암튼 살인본능이 충만하신 주인공 덱스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본능을 알아챈 의붓아버지로부터 살인 본능을 발산하면서도 절대 들키지 않는(!) 방법들을 배워가며 성인으로 자란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에는 법칙이 있었다. 반드시 죽어야 할(!) 놈들만 찾아내어 죽이는 것. 참 어찌 보면 신의 영역이거나 아님 법과 제도가 해야 할 일이건만, 우리의 주인공 덱스터는 자신이 알아서 대상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자신이 신이거나 법인 셈이다.

 

암튼 독특한 상황 설정과 주인공의 천진난만한(!) 연기로 꽤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다. 지금도 시즌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 시즌3부터 멈춰있다. 어여 어여 챙겨 봐야지.

 

반면 이 책은 얼핏 덱스터와 비스무리하면서도 살짝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선하다. 주인공 재스퍼 덴트는 17살의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윌리엄 코르넬리우스 덴트, 일명 빌리 덴트는 21년 동안 세 자리 숫자의 살인을 저지른 21세기 최악의 연쇄살인마였던 것이다. 오호, 통재라.

 

재스퍼는 이런 매우 희귀한(!) 아버지에게 살인의 기술, 살인자들의 특성, 살인을 할 때 명심해야 할 사항들, 절대 잡히지 않는 방법 등을 그야말로 일대 일 집중 학습을 받으며 자란다.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아버지라니. 뭐, 물론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그런 부모가 있다면, 음… 암튼 비극이겠다.

 

그런 아버지가 끝내 붙잡혀 32번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갇히게 되고 재스퍼는 정신 상태가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간다. 그렇다고 그가 아주 불행한 것은 아니다. 아낌없이 서로를 보살펴 주는 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 친구도 있으니. 아버지가 사이코패스라 해서 아들까지 불행하다는 법은 없지 않나.

 

하지만 그나마 평온하게 살아가던 재스퍼에게 어느 날 그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벌어진다.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한 마을에서 또 다시 연쇄살인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이 연쇄살인의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재스퍼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건은 그렇게 시작된다.

 

미국의 워너브라더스가 TV드라마로 제작할 예정이라니, 이 작품이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킨 것 같기는 하다. 스토리 자체가 워낙 파격적 이다보니 급기야 ‘좀비’ 정도가 나오시지 않으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미국 시청자들에게도 ‘먹힐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뭐,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이 작품은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나 드라마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그려질 정도로, 실감나는 묘사가 일품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반전 아닌 반전으로 이른 바 ‘재스퍼 덴트’ 시리즈가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자못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시리즈의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다.

 

약간은 스포일러 같지만, 뭐 어차피 작품의 제목 자체가 이미 말해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상관없을 것 같다. 재스퍼는 아버지 빌리 덴트가 전수해 준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연쇄 살인자들을 ‘사냥’하려 한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작품을 읽으며, 또 다시 몹쓸 버릇이 재발함을 느꼈다. 이 책과는 달리 우리의 상황은 어쩐지 부전자전, 아니 부전녀전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주인공 재스퍼 덴트는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그 ‘어떤’ 분은 아닌 것 같다. 닮은 꼴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MB는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버렸다는 비판을 재임 기간 내내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곗바늘이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런 젠장, 복고 열풍이 너무 오래 간다. 우리나라! 도대체 직진은 언제 할 꺼니!

 

예전 검은 선글라스의 아버지는 정부가 불리할 때마다, 자신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간첩을 제조해내고, 빨갱이를 생산해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부끄러움도 수치스러움도 모른다. 그냥 똑같다. 붕어빵이다. 창조경제를 한다더니, 도대체가 창의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거기에다 권력에 빌붙어 온갖 추악한 짓거리를 하는 양아치들은 어찌 그리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천박하고 비굴한지.

 

난 믿는다. 악이라는 것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고, 또한 계승되는 것이 아님을. 하지만 그런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지금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믿음이 흔들리려 한다. 치밀하게 국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손발하나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 신자유주의와 오만한 권력들의 놀음에 언제까지 국민들이 당해야만 하는지. 무참하기만 할 뿐이다.

 

주인공 재스퍼 덴트는 살인자를 사냥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먼저 우리 안의 두려움과 비겁함, 온갖 더러운 욕망부터 사냥해야 하지 않을까.

 

나부터 잘하자.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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