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진열장 1 펜더개스트 시리즈 1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매번 생각하지만, 서평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가급적 빨리 쓰는 것이 좋다. 나란 녀석이 원래 그다지 좋지 않은 머리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난적까지 만나면, 그야말로 기억이란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비극을 막고자 책에 밑줄을 북북 쳐대기도 한다. 최대한 기억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란 적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결국 시간이 승리하고야 한다. 고로 성실함이 유일한 해답이다.

 

지난 4월 아주 우연히 ‘펜더개스트’ 시리즈를 접하게 되었다. 무심코 웹 서핑을 하던 중 미스터리 스릴러 도서의 서평을 주로 올리는 블로거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곤 그의 서평을 통해 이 책을, 그리고 펜더개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블로그는 많은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을 소개하고 있었고, 글의 수준 역시 높았다.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마니아’임이 분명했다.

 

올 4월은 내게 어떤 시간이었나. 글쎄… 축복과도 같은 새 생명을 얻었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나이에 백수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애매모호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딸과 아내를 두고 여기저기 알바를 위해 뛰어다니던, 대책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의 독서 편력 역시 그 방향을 제멋대로 바꾸기 시작했다. 백수였지만, 몇 가지 알바로 나름 ‘바쁜 백수’였던 나는, 심각하게, 적어도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철없는 욕구에 항복하고 말았다. 당시의 내 심리는 무언가 ‘다 귀찮다’는 자포자기와 아이의 아빠라는 새로운 ‘행복감’,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감’으로 버무려져 있었다.

 

그리고 당분간 내가 붙잡고 있었던 다양한 고민들과 화두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를테면 공동체, 정치 개혁, 남북화해, 통일, 지방자치 등이었다. 특히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미안하지만 ‘꼴도 보기’ 싫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다시 꼬여버린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게다가 보수 언론과 정치권의 썩어빠진 모습과 여기에 무력하게 대응하는 야권이라니. 다 보기 싫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과 어디 바닥끝까지 떨어져보고 그때에도 저 따위 헛소리들을 지껄이는지 보자는 ‘악의’도 있었던 듯싶다. 다 부질없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스토리 전개에 따라 내 의식을 함께 옮길 수 있는, 그냥 편안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책을 찾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오해는 마시라.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수사물이 사회과학, 인문 그리고 이른 바 순수문학이라 남들이 부르는 작품보다 뒤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세상엔 《소년탐정 김전일》이나《명탐정 코난》과 같은 수준 높은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이보다 못한 쓰레기 같은 책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비교적 자주 읽지 못했을 뿐이지, 스릴러 미스터리 물은 원래 내가 즐기는 장르이기도 했다.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엘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로 사춘기를 수놓았던 내가 아니었나.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 펜더개스트와의 만남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살인자의 진열장》은 펜더개스트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그리고 나와 펜더개스트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콤비 작가 프레스턴&차일드는 이미 ‘펜더개스트 시리즈’로 나름의 명성을 얻고 있던 작가였다. 이들은 각각 전직 미국 자연사 박물관과 소설 전문 편집자로 일한 바 있다는데, 작품에는 그들의 삶의 경험들이 적절히 녹아들어 있다. 이 작품은 FBI 특별요원 펜더개스트가 뉴욕 시를 배경으로 10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를 쫓는 과정을 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1권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2권은 반나절 만에 다 읽어 내려갔다. 역시 백수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은 너무 작위적이고, TV나 영화화를 염두하고 썼다는 느낌이 강해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 분야의 작품들은 그러한 2차 흥행을 노리는 경우가 많기에 이해하기로 했다. 게다가 미국 작가들 아닌가!

 

FBI 특별수사관 펜더개스트는 이른 바 ‘엄친아’ 캐릭터다. 재력 빵빵하고, 못하는 것도 없다. 그리고 신비스러운 풍모와 해박한 지식까지. 셜록 홈즈와 뤼팽의 매력을 모두 갖추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약간 어두운 이미지까지 더해, 더 큰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나름대로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들을 몰아가는 작품은 결말에 이르러 조금은 맥이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세게 나갔기에,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미스터리 스릴러 혹은 추리물에서 독자가 결말을 대충이라도 예상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것은 실패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펜더개스트’라는 캐릭터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시공을 초월해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어느 순간 살인의 행렬을 멈추게 된 이유. 그 이유에 주목했다. 그리곤 씁쓸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밝히긴 힘들지만, 인류가 가지고 있는 그 잔인함, 무모함, 어리석음이 결국 살인마의 연쇄살인을 막게 된 이유가 되었다.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왔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언제 다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광기 역시 함께 가지고 있음을. 바로 그것이 인간이란 존재임을 다시 느낀다. 최근 시리아의 비극이나 멈추지 않는 무차별 테러, 전쟁 등 인류는 여전히 광기와 싸우고 있다.

 

흥미진진한 스릴러나 미스터리 물에는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마들이 등장한다. 도무지 제정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대부분 그들은 평범한 이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살인자의 진열장》을 시작으로, 4월, 나의 스릴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서가들의 지적처럼, 1, 2권으로 굳이 나눌 필요는 없었던 듯하다. 속보인다. 출판사. 물론 그 이후 작품들의 단권 발행으로 그나마 덜 욕먹게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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