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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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유시민이 다시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는 한 순간도 자신이 지식소매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이제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정치판을 떠나 다시 손에 책을 쥔 지식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처럼 욕(!)을 많이 섭취한 정치인도 없지 않나 싶다. 물론 고 노무현 대통령도 언제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셨고, 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추종세력 못지않게 비판, 음해세력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존 정치인 중 유시민처럼 많은 비판과 논란에 휩싸였던 이는 없지 않았나 싶다. 본인이 들으시면 화내실 지도 모르겠지만.

 

정치인 유시민 이전, 저자 유시민으로 먼저 그를 알았던 나는 그가 언젠가 다시 책을 낼 것을 기대해 왔다. 그의 책은 일단 재미있었다. 그리고 소설도 아닌 것이 읽어가는 동안, 남은 페이지가 아까워지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었다. 많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사랑했으니,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닌 듯싶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저자 유시민으로 있을 때 가장 그답게 보였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다. 정치인으로, 때론 장관으로써의 유시민도 물론 의미가 적지 않았지만, 살짝 국민의 입장을 떠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의 책이 기다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책은 조금 달랐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스스로에게 보다 더 솔직해진 글은 살짝 나를 당황케 했다. ‘이젠 지친 걸까’라는 생각도 들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호불호를 떠나 그의 정치역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아니었나. 참여정부 당시의 모습도 돌이켜보면 마냥 그에게 황금기만은 아니었지 않았나 싶다.

 

더 솔직해진 그는 정치인이라는 ‘자아 검열’의 원인이 제거되었음을 글로써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신념이나 이상이 변한 것도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과 정치적 이상을 지키고 있다. 다만 이제는 ‘자연인’의 입장에서 그것을 보듬고 또는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한때 유시민에게 ‘정당 파괴자’라는 오명이 붙은 적이 있다. SNS에서였는지, 인터넷 상이었는지, 여기저기서 ‘그가 만들었거나 참여한 정당은 결국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또 살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불운인지, 혹은 운명인지, 그가 참여하거나 만들었던 당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혹은 그 존재감이 상당히 미약해졌거나.

 

여기에서 그의 정치적 행적을 두고 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 능력도 주제도 안 된다. 단 나는 언제나 그랬듯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 유시민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의 책을 훌륭하다고 평가했다고 해서 ‘유빠’라든가, ‘노빠’라고 비판한다면,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책은 그가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는 가운데, 정말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것도 이 시대,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고민한다. 그리곤 참 그다운 이야기를 한다.

 

「나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들의 복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자발성, 이 모두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능이며 본능이다.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드는 제4원소이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연대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금 이곳의 행복이 그들의 것이리라!”」

 

그는 책을 통해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죽는 것인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고민한다. 사는 것에만, 그것도 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물질에 휩싸여 살아가는 것에만 몰두하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낯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인간답게 죽는 것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유시민을 생각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을 돕고자 정치에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영욕의 세월을 지나왔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가 없는 지금, 유시민은 혼자다. 그가 인간다운 죽음을 이야기하며, 역설적으로 참다운 삶을 말하는 것에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책을 마무리하며 그는 마치 자신의 유언을 말하는 듯, 자신의 장례식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곤 지구라는 행성에서 품위 있게 작별하는 법을 말한다. 사실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냥 지금처럼 살지 않으면 된다. 지금처럼 남을 짓밟지 않고,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남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럼 그것이 품위 있는 인간의 마지막으로 인도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저자 유시민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이번에는 그의 다른 저서들과는 다른 차원의 위안이다. 다시 거꾸로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지금, 그의 위로는 값싼 힐링 도서와 자기계발서와는 분명 다른 차원의 위로다.

 

그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글을 쓰길 바란다.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정치에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저 지식소매상이란 본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의 글로 위로를 받고, 지성의 자극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는 한, 이는 그의 사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항상 응원한다.

 

예전 아주 우연히 그와 맞담배를 태울 기회가 있었다. 토크카페의 주인공으로 나온 그는 토크가 시작되기 전 잠시 담배를 찾았다. 그리고 우연히 나와 함께 인사를 주고 받으며, 담배를 태웠다.

 

당시 그의 눈빛을 기억한다. 매우 피곤해하면서도, 특유의 날카로움은 잃지 않은 모습. 조금은 슬퍼보이던 눈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시 내고 난 뒤에 그의 모습은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무엇이 잘 된 일인지, 무엇이 정말 슬픈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온전히 유시민 개인의 차원에서 본다면, 잘 된 일이지 싶다.

 

해박한 지식 속에서 길어 올리는 지혜와 깨달음. 언제나 기분 좋고도 감사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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